제 6 장

교황 인노센트 3세 회견 (1)

...

 

초기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은 실제로 이렇게 살았다. 그들은 나병원에서 일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부들의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보수로는 그날 일용할 양식과 한 바가지 물 이외에 다른 보수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거리는 많지 않았고, 어떤 집에선 그들 형제들을 맞아 주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들이 거처하는 무너져가는 음침한 움막집은 비가 새어 바닥이 온통 질퍽거렸다. 그 속에서 형제들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가련하게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먹지 못한 채 몸을 녹일 불도 없었고, 심심풀이할 책 한 권조차 없이 지냈다.

 

이런 생활에 못 견뎌 중도에 탈락한 사람들이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제자들 중에서 중도에 탈퇴한 자는 '모자쓰기 죠반니' 한 사람 밖에는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나무뿌리 같은 것을 캐어 씹으면서도 꾸준히 잘 참았다.

 

스승의 교훈대로 형제들은 금전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어떤 이가 많은 돈을 뽀르치운꼴라 제대 위에 놓고 갔는데, 얼마 후에 그 돈은 길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었다. 남을 구제할 것이 없으면, 자기네 입은 옷이나 두건이나 옷 소매를 잘라서 희사하기도 했다. 누가 일을 부탁하면, 즉시 어디나 가서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형제들끼리는 서로 무척 사랑했다. 한번은 두 형제가 전도 순례를 하고 다니는데 불량한 사람들이 그들을 미치광이로 알고 몰려와 돌을 던졌다. 두 형제는 서로 방패가 되어 동료 형제의 몸을 보호해 주려고 자기 등을 돌받이로 만들려고 서로 애썼다.

 

만일 형제끼리 경솔한 말로 남의 맘을 상하게 했으면 그와 화해하게 되기까지 자기를 꾸짖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칠 때는 욕한 사람은 욕 먹은 사람의 발에 입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쓸데없는 이야기나 좋지 못한 세속함 같은 것은 없었다. 길 가다가 여자들이 있을 때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내려뜨고 땅만 보며 지나갔다.

 

...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태오 빠리(1259년 사망)가 남긴 연대기에 의하면, 그들이 교황을 처음으로 만나러 들어갔을 때, 교황의 태도는 매우 냉담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라테란 궁전에 거리낌없이 들어가 교황 앞에 섰다. 그러나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거지같은 옷차림에 머리에는 빗지 않아 흐트러지고, 커다란 검은 눈썹을 한 초라한 꼴이었기 때문에, 교황은 일부러인지 몰라도 그를 돼지치기인 줄로 잘못 안 체 했다. 천년 묵은 큰 포도나무 줄기 같은 가톨릭 교회를 대변하는 권위자, 손에 향수를 바른 교황 앞에 엎드린 프란치스코는 발과 몸에서 고약한 악취나는 탁발승이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에게 그의 계획을 말해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의 설명은 요령이 없었다. 교황은 "회칙 이야기는 그만 하시오. 당신의 돼지 있는 데로 돌아가 거기서나 마음대로 설교하시오."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솔직한 프란치스코는 다시 더 간청하는 말을 하지 않고 교황 앞에서 물러나 돼지 우리로 뛰어가 돼지 똥으로 자기의 몸을 더럽힌 후, 다시 교황 앞에 돌아와 섰다. "교황 청하, 말씀하신 대로 하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세상에 이런 사람도 보았나! 이 사람은 내가 만나 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독특한 사람이다." 이때 교황은 이 청원자가 반역자나 이단자가 아님을 인정하고, 초면에 그렇게 냉대한 것을 반성하면서 프란치스코를 돼지 똥으로 더러워진 몸을 씻으러 보내면서 추기경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약속하며, 아무 결제도 않고 물러가게 했다. 프란치스코의 실망은 대단했을 것이다. 교황으로서의 완만한 태도나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염려가 되었으나 자기로서 할 말은 다 한 것이고, 다음 차례의 대변을 위한 준비는 유일한 원천인 기도 뿐이었다.

 

...

 

Posted by bygracetistory
,

 저는 세상에서 갓 들어온 신참 영들과 영원한 삶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549

천사 같은 상태란 누구나 자신의 진복(眞福, bliss)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그런 것입니다. 저세상에서는 모든 어펙션들과 생각들을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지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기쁨을 모두와, 그리고 모두는 각 개인과 이런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모두는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형태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의 나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행복 또한 더욱더 커집니다. 천국의 행복은 그 수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왜 천국의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모두가 남을 자기보다 더 사랑할 때, ‘전체는 개인과, 개인은 전체와’라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남보다 자기를 더 이롭게 하기를 원하면 그때부터는 자기 사랑이라는 것이 다스림을 시작합니다. 이 자기 사랑으로부터는 ‘오직 나만, 나만!’이라는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커뮤니케이션 되는 게 없는데, 이것은 정말 악취 나는, 반칙과 같은 짓입니다. 천국에서는 이런 것이 지각되는 순간, 그는 즉시 추방되고, 거부됩니다. The angelic state is such that everyone communicates his own bliss and happiness to others. For in the other life there is a most exquisite communication and perception of all the affections and thoughts, so that each person communicates his joy to all, and all to each, so that each one is as it were the center of all. This is the heavenly form. And therefore the more there are who constitute the Lord’s kingdom, the greater is the happiness, for it increases in proportion to the numbers, and this is why heavenly happiness is unutterable. There is this communication of all with each and of each with all when everyone loves others more than himself. But if anyone wishes better for himself than for others the love of self reigns, which communicates nothing to others from itself except the idea of self, which is very foul, and when this is perceived the person is at once banished and rejected.

Posted by bygracetistory
,

저는 세상에서 갓 들어온 신참 영들과 영원한 삶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548

저는 세상에서 갓 들어온 신참 영들과 영원한 삶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은 이 나라의 주님이 누구시며, 이 나라의 속성과 형태에 관해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하는데요,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서도 다른 나라에 가는 사람들은 특별히 그 나라의 왕이 누구며, 어떤 사람인지, 그 나라 정부는 어떤 정부인지 등등 그 나라에 속한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물며, 여기는 이제 여러분이 영원히 살아가게 될 나라로서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천국과 우주 둘 다를 다스리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하나를 다스리시는 분이 다른 쪽도 다스리셔야 하기 때문인데요, 여러분이 지금 있는 이 나라는 주님의 나라이며, 이 나라의 법은 영원한 진리들이고,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위대한 법, 곧 사람들은 주님을 무엇보다도 사랑해야 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법, 심지어 지금은 자기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법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그런 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천사가 되고 싶으면, 여러분은 이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말을 듣고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직 몸 안에 있을 때, 그들은 이런 종류의 말들을 계속해서 들었지만 계속해서 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천국에 이런 사랑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여기 와보니 여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이웃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들을 듣고는 경이로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세상에서는 모든 선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는 것과, 몸 안에 있는 삶은, 사람이 몸의 일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이유로, 이웃을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게 만든다는 것, 그러나 이런 몸을 벗게 되면, 사랑은 더욱 순수해지다가 마침내 천사처럼 사랑하게 되는데, 이 사랑은 이웃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가능 여부는 다음과 같은 실제 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가령, 먼저, 결혼애입니다. 이것은 결혼한 배우자가 크게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신 죽음도 불사하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사랑입니다. 다음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의 배고픔을 자기가 대신 담당, 유일한 식량을 흔쾌히 자녀에게 먹이고, 자기는 기꺼이 굶주림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심지어 새나 짐승들도 같습니다. 신실한 우정을 통해서도 이런 사랑을 볼 수 있는데요, 친구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참된 우정을 흉내내는, 짐짓 정중함을 가장한 꾸민 우정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심지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큰소리치며 하더라도 좋게 대하며, 더 나은 것으로 제공하면서 말이지요. 최종적인 예는 바로 사랑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에서 기쁨을 발견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사랑 그 자체를 위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 사람들, 그리고 육체적 삶 가운데 이익을 얻기 위해 탐욕적이었고, 욕심 많은 삶을 산 사람들한테는 정말 이해 불가한 것입니다. I have sometimes spoken with spirits fresh from the world concerning the state of eternal life, telling them how important it was for them to know who is the Lord of that kingdom, and what is the nature and form of its government, just as those in this world who go into another kingdom are especially interested to know who and of what sort is the king, what is the nature of the government, and many other things that belong to the kingdom; and how much more should they be interested in this kingdom, where they are to live forever. I told them that the Lord alone rules both heaven and the universe, for he who rules the one must rule the other; and that the kingdom in which they were now is the Lord’s kingdom, the laws of which are eternal truths, all of which are based on the one great law that men shall love the Lord above all things and their neighbor as themselves, and now even more than themselves, for if they would be as the angels this is what they must do. To all this they could make no reply, because in their bodily life they had heard something of the kind, but had not believed it. They marveled that there is such love in heaven, and that it is possible for anyone to love his neighbor more than himself, seeing that they had heard that they were to love their neighbor as themselves. But they were instructed that in the other life all goods are immeasurably increased, and that the life in the body is such that men can go no further than loving the neighbor as themselves because they are in the things of the body, but that when these are removed, the love becomes purer, and at last angelic, which consists in loving the neighbor more than themselves. The possibility of such love is evident from the conjugial love that exists with some persons, who would suffer death rather than let their married partner be injured; and also from the love of parents for their children, in that a mother will endure starvation rather than see her infant hunger, and this even among birds and animals; and likewise from sincere friendship, in that perils will be undergone for our friends; and even from polite and feigned friendship, that would emulate real friendship in offering the better things to those to whom we wish well, making great professions even when they do not come from the heart. And finally its possibility is evident from the very nature of love, which finds its joy in being of service to others, not for the sake of self but for the love’s own sake. But all this could not be comprehended by those who loved themselves more than others, and who in the bodily life had been greedy for gain, and least of all by the avaricious.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