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4-19

 

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Verse 19,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 19절 속뜻

 

태고 교회는 마지막 선인 자연적 선 상태도 모잘라 이젠 완전히 거듭남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상태는 정죄와 지옥의 상태입니다. 선악과를 범하면 정말 이런 끔찍한 상황으로까지 떨어집니다. 이후 20절로 끝절까지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후손까지 이 저주가 하나하나 어떻게 실현되는지 하는 내용입니다.

 

 

275.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는 천적(天的, celestial)인 것을 싫어하게 되었음을, ‘취함을 입은 그 흙으로 돌아감’은 거듭남 이전 상태였던 겉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그가 정죄를 받고,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됨을 말합니다. By “eating bread in the sweat of the face,” is signified to be averse to what is celestial; to “return to the ground from whence he was taken,” is to relapse into the external man, such as he was before regeneration; and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signifies that he is condemned and infernal.

 

 

276.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가 천적인 것을 싫어하는 것임은, ‘먹을 것’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o “eat bread in the sweat of the face” signifies to be averse to what is celestial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bread.”

 

먹을 것’은 천사들의 양식인 영적, 천적인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것이 없으면 천사들은 삶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도 양식이 떨어지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By “bread” is meant everything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is the food of the angels, on the deprivation of which they would cease to live as certainly as men deprived of bread or food.

 

천국의 천적, 영적인 것은 또한 지상의 ‘먹을 것’과 상응하며, 이것으로 천국의 많은 것들이 표현되고 있음을 말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at which is celestial and spiritual in heaven also corresponds to bread on earth, by which moreover they are represented, as is shown by many passages in the Word.

 

주님으로부터 모든 천적, 영적인 것이 나오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이 ‘’이심을 요한복음에서 직접 가르치십니다. That the Lord is “bread,” because from him proceeds whatever is celestial and spiritual, he himself teaches in John: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6:58) This is the bread that cometh down from heaven; he that eateth of this bread shall live to eternity. (John 6:58)

 

그래서 성찬(聖餐, the holy supper) 심볼들도 빵과 포도주로 정한 것이고, Wherefore also bread and wine are the symbols employed in the holy supper.

 

만나도 이 천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This celestial is also represented by the manna.

 

천사들의 양식은 천적, 영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주님의 말씀, That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constitutes the food of angels is manifest from the Lord’s words: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4)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Matt. 4:4)

 

곧, 모든 천적, 영적인 것이 주님의 생명에서 나오는 것을 볼 때 분명합니다. that is, from the life of the Lord, from which comes everything celestial and spiritual.

 

[2] 홍수 직전까지 존재한, 지금 다루고 있는, 태고 교회의 마지막 후손은 감각 및 육체의 일에 너무도 철저히 잠긴 나머지 완전 사라져 버릴 정도여서 신앙의 진리가 무엇인지,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혹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 등에 관해 더 이상 일체 귀 기울여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주제들이 언급될 때,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The la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existed immediately before the flood, and is here treated of, had become so thoroughly lost and immersed in sensuous and bodily things, that they were no longer willing to hear what was the truth of faith, what the Lord was, or that he would come and save them; and when such subjects were mentioned they turned away.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는 바로 이런 혐오를 표현합니다. This aversion is described by “eating bread in the sweat of the face.”

 

그렇게 유대인들 역시 천적인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오직 세속적 메시아만을 원하는 그런 캐릭터들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만나를 보고는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나는 그들이 ‘하찮은 음식’이라고 한, 주님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불뱀이 그들 가운데 왔습니다. (민21:5-6) So also the Jews, in consequence of their being of such a character that they did not acknowledge the existence of heavenly things, and desired only a worldly messiah, could not help feeling an aversion for the manna, because it was a representation of the Lord, calling it “vile bread,” on which account fiery serpents were sent among them (Num. 21:5, 6).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21:5-6)

 

게다가 역경과 비참이라는 상태로 그들에게 전달된 천적인 것들을 가리켜, 그들은 울면서 말하기를, ‘역경의 빵’, ‘비참의 빵’ 및 ‘눈물의 빵’이라 하였습니다. Moreover the heavenly things imparted to them in states of adversity and misery, when they were in tears, were called by them the “bread of adversity,” the “bread of misery,” and the “bread of tears.”

 

앞의 구절에서, 혐오하면서 받은 것을 가리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이라 하고 있습니다. In the passage before us, that which was received with aversion is called the “bread of the sweat of the face.”

 

 

277. 이것은 속뜻입니다. This is the internal sense.

 

글자의 뜻, 겉뜻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를 사람은 자기가 먹을 것을 땅을 갈아 힘들게 구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합니다. He who keeps close to the letter, understands no other than that man must procure bread for himself out of the ground by labor, or by the sweat of his face.

 

하지만 여기서 ‘사람’은 어떤 한 사람이 아닌, 태고 교회를 말합니다. ‘’도 땅을, ‘’도 빵을, ‘동산’도 동산을 말하는 게 아니라 천적 영적인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말씀드린 대로 말입니다. Man” however does not here mean any one man, but the most ancient church; nor does “ground” mean ground, nor “bread” bread, nor “garden” garden, but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s has been sufficiently shown.

 

 

278. ‘그가 취함을 입은 흙으로 돌아감’이 교회가 거듭나기 전 상태였던 겉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임이 분명한 것은 ‘’(ground)의 상징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겉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returning to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is signified that the church would return to the external man such as it was before regeneration,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ground” signifies the external man, as previously stated.

 

그리고 ‘’(dust)의 상징이 정죄를 받아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뱀에 관해 들으신 말씀으로 분명한데요, 이 뱀은 저주의 결과, ‘흙을 먹을지니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And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serpent, which in consequence of being cursed is said to “eat dust.”

 

’(dust)의 상징에 대해 거기서 볼 수 있었던 것 외에도, 시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도 있는데요 In addition to what was there shown as to the signification of “dust,” we may add the following passages from David: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시22:29) All those who go down to the dust shall bow before Jehovah, and those whose soul he hath not made alive. (Ps. 22: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Ps. 104:29)

 

이 말씀은 사람들이 주님의 얼굴을 외면할 때 그들은 끝나거나 죽고, 그래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즉 정죄를 받고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which means that when men turn away from the face of the Lord, they expire or die, and thus “return to the dust,” that is, are condemned and become infernal.

 

 

279. 일련의 시리즈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모든 말씀에 들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각 파트 때문에 천적인 것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14절): 주께서 그들과 재결합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다는 것(15절): 겉 사람이 스스로를 외면하는 결과, 전투가 일어난다는 것(16절): 그래서 비참이 초래되었다는 것(17절): 정죄(18절): 그리고 결국은 지옥(19절): All these verses then, taken in a series, involve that the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e celestial (verse 14);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for the purpose of reuniting them (verse 15); that combat arose in consequence of the external man averting itself (verse 16); whence resulted misery (verse 17); condemnation (verse 18); and at length hell (verse 19).

 

이런 일들이 그 교회 안에서 네 번째 후손부터 홍수 때까지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These things followed in succession in that church, from the fourth posterity down to the flood.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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