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1-8

 

4절,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Verse 4, There were Nephilim i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most especially after the sons of God went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are to them; the same became mighty men, who were of old, men of renown.

 

※ 4절 속뜻

 

 

580. ‘네피림’은, ‘아,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아, 나는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 하는 신념(persuasion)과 망상(delusions)에 사로잡혀, 거룩하거나 참된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는, 이런 일이 그들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을 그들의 갈망(yearnings)과 욕구(appetites)에 잠기게 하여, 거짓된 것을 신념화했을 때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용사라’는 그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는 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By “Nephilim” are signified those who through a persuasion of their own loftiness and preeminence made light of all things holy and true; “and especially after the sons of God went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are to them” signifies that this occurred when they immersed the doctrinal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and formed persuasions of what is false; they are called “mighty men” from their love of self; “of old, men of renown” signifies that there had been such before.

 

 

581. ‘네피림’ 하면, ‘아,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아, 나는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 하는 신념과 망상에 사로잡혀, 거룩하거나 참된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을 말한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것과 뒤에 이어지는 내용, 즉,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그들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을 그들의 갈망과 욕구에 잠기게 하여, 거짓된 것을 신념화하였음을 상징한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by the “Nephilim” are signified those who through a persuasion of their own loftiness and preeminence made light of all things holy and true, appears from what precedes and what follows, namely, that they immersed the doctrinal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signified by the “sons of God going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ir bearing unto them.”

 

그들 자신 및 그들이 가진 환상과 관련된 신념과 망상은 그와 관련된 것들이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증가하다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갑니다. 이런 상태에서, 이번엔 여기다 신앙의 교리들, 신앙적인 가르침들까지 보태어지면 원리에 가까운 가장 강력한 엉뚱한 종교적 신념들이 생겨나고, 이것이 하나의 입장이 되면, 이번에는 거룩하고 참된 모든 것의 가치를 무시해 버리고 마는 상태가 되는데, 이 상태가 바로 ‘네피림’인 것입니다. Persuasion concerning self and its fantasies increases also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things that enter into it, till at length it becomes indelible; and when the doctrinals of faith are added thereto, then from principles of the strongest persuasion they make light of all things holy and true, and become “Nephilim.”

 

이 네피림이라는 인종(race)은, 홍수 전에 살았는데, 자기들이 가진 끔찍한 환상, 망상으로 모든 영들을 질식시켜 죽이는 그런 인종입니다. (cf. AC.562-563) 이들에게서 쏟아져나오는 이 망상은 질식시키는 독가스 같은 것인데, 영들은 여기에 한 번 걸리면 생각하는 능력을 완전히 빼앗겨 거의 반 죽은 상태가 되지요. 주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런 독을 가진 인종으로부터 영들의 세계를 해방하여 주지 않으셨으면, 거기에 아무도 존재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들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인류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That race, which lived before the flood, is such that they so kill and suffocate all spirits by their most direful fantasies (which are poured forth by them as a poisonous and suffocating sphere) that the spirits are entirely deprived of the power of thinking, and feel half dead; and unless the Lord by his coming into the world had freed the world of spirits from that poisonous race, no one could have existed there, and consequently the human race, who are ruled by the Lord through spirits, would have perished.

 

그래서 그들은 지금 지옥 왼쪽 발뒤꿈치 아래, 안개 속 육중하고 거대한 바위 밑에 격리되어, 그곳을 빠져나갈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습니다. They are therefore now kept in a hell under as it were a misty and dense rock, under the heel of the left foot, nor do they make the slightest attempt to rise out of it.

 

그래서 영들의 세계는 이 가장 위험한 무리로부터 안전합니다. 이들에 관한, 그리고 이런 종류의 신념, 망상이 왜 독과 같은 것인지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cf. AC.1265-1272) Thus is the world of spirits free from this most dangerous crew, concerning which and its most poisonous sphere of persuasi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네피림’이라 하는 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거룩하고 참된 모든 것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These are they who are called “Nephilim,” and who make light of all things holy and true.

 

말씀에 그들에 대한 언급이 더 나오는데요, 그들의 후손은 ‘아낙 족속’으로, ‘르바임’으로 불렸습니다. Further mention is made of them in the Word, but their descendants were called “Anakim” and “Rephaim.”

 

그들을 ‘아낙 자손’으로 불렀음이 모세의 글에 나옵니다. That they were called “Anakim” is evident from Moses: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13:33) There we saw the Nephilim, the sons of Anak, of the Nephilim, and we were in our own eyes as grasshoppers, and so we were in their eyes. (Num. 13:33)

 

그들을 또한 ‘르바임’으로도 불렀음이 모세의 글에 나옵니다. That they were called “Rephaim” appears also from Moses:

 

10이전에는 에밈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아낙 족속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크므로 11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불렀으며 (신2:10-11) The Emim dwelt before in the land of Moab, a people great, and many, and tall, as the Anakim, who also were accounted Rephaim, as the Anakim, and the Moabites call them Emim. (Deut. 2:10–11)

 

네피림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반면, 르바임은 계속 나오는데, 선지자들은 르바임을 바로 위에서 다룬 저런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Nephilim are not mentioned any more, but the Rephaim are, who are described by the prophets to be such as are above stated; as in Isaiah: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사14:9) Hell low down has been in commotion for thee, to meet thee in coming, it hath stirred up the Rephaim for thee, (Isa. 14:9)

 

르바임 같은 영들이 거주하는 지옥을 설명합니다. speaking of the hell which is the abode of such spirits.

 

다시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사26:14) Thy dead shall not live, the Rephaim shall not arise, because thou hast visited and destroyed them, and made all their memory to perish, (Isa. 26:14)

 

여기서도 그들의 지옥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where also their hell is referred to, from which they shall no more rise again.

 

계속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사26:19) Thy dead shall live, my corpse, they shall rise again; awake and sing, ye that dwell in the dust, for the dew of herbs is thy dew; but thou shalt cast out the land of the Rephaim; (Isa. 26:19)

 

‘르바임의 땅’은 위에서 말한 지옥입니다. “the land of the Rephaim” is the hell above spoken of.

 

다윗의 글입니다. In David: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시88:10) Wilt thou show a wonder to the dead? Shall the Rephaim arise, shall they confess to thee? (Ps. 88:10)

 

르바임의 지옥에 대해 같은 뜻으로 말하면서, 그들은 절대 일어나지 못하며, 그들의 아주 끔찍한 독과 같은 망상으로 영들의 세계를 들끓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speaking in like manner concerning the hell of the Rephaim, and that they cannot rise up and infest the sphere of the world of spirits with the very direful poison of their persuasions.

 

그러나 주님은 인류가 더 이상 그런 끔찍한 망상과 신념에 푹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But it has been provided by the Lord that mankind should no longer become imbued with such dreadful fantasies and persuasions.

 

홍수 전을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로 하여금 그런 뒤틀린 생각들을 흡수하게 했던 본성(ature)과 정신(genius)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cf. AC.927) 밝힐 것입니다. Those who lived before the flood were of such a nature and genius that they could be imbued, for a reason as yet unknown,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82.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After that the sons of God came in unto the daughters of men, and they bare to them.

 

이 말씀은, 그들이 신앙에 대한 가르침들을 자신들의 타락한 갈망(yearnings)을 가지고 합쳐버린 바로 그때, 그들은 네피림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런 사실은 위 2절의 내용, 즉,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앙의 가르침들을, ‘딸들’은 갈망(yearnings)을 각각 상징함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became Nephilim when they had immersed the doctrinals of faith in their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in verse 2, namely, that the “sons of God” signify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and that “daughters” signify yearnings.

 

그 결과는, 신앙의 거룩한 속성들을 하찮게 여기고, 모독하는 것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곧 물질만능주의로 되어 있는 인간의 갈망(yearnings)은 거룩하고 참된 것하고는 완전히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The birth thereby produced must needs make light of an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for the yearnings of man, being those of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are altogether contrary to what is holy and true.

 

지금은 사람 안에 갈망(yearnings)이 만연합니다. 거룩하고 참되며, 또 그런 걸로 인식되는 무언가가 갈망(yearnings)에 잠기면, 사람은 끝입니다. 갈망은 뿌리뽑히거나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망(yearnings)은 모든 생각(idea)에 착 달라붙습니다. 예를 들면, 저세상에서는 생각으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거룩하고 참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모독과 거짓이 그 생각과 결합하고, 이런 이상한 일은 즉시 지각됩니다. Now in man yearnings prevail, so that when what is holy and true, and is acknowledged to be such, is immersed in yearnings, it is all over with the man, for the yearnings cannot be rooted out and separated; they cling to every idea, and in the other life it is ideas that are communicated from one to another, so that as soon as any idea of what is holy and true is brought forth, what is profane and false is joined to it, which is instantly perceived.

 

이런 이유로,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분리되어 지옥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Therefore such persons have to be separated and thrust down into hell.

 

 

583. 네피림을 일컬어 ‘용사’라 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말씀 여러 곳에서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용사’라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That the Nephilim are called “mighty men” from the love of self, is evident from various passages of the Word, where such are called “mighty”; as in Jeremiah:

 

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그치고 그들의 요새에 머무르나 기력이 쇠하여 여인 같이 되며 그들의 거처는 불타고 그 문빗장은 부러졌으며 (렘51:30) The mighty ones of Babel have ceased to fight, they sit in their holds, their might faileth, they are become as women, (Jer. 51:30)

 

여기 ‘바벨론의 용사’는 자기 사랑의 덫에 걸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where the “mighty ones of Babel” denote those who are eaten up with the love of self.

 

같은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칼이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렘50:36) A sword is against the liars, and they shall be insane, a sword is against her mighty ones, and they shall be dismayed. (Jer. 50:36)

 

5그들이 놀라 물러가며 그들의 용사는 패하여 황급히 도망하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함은 어찜이냐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음이로다 6발이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며 용사도 피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 북쪽에서 유브라데 강가에 넘어지며 엎드러지는도다 9말들아 달려라 병거들아 정신없이 달려라 용사여 나오라 방패 잡은 구스 사람과 붓 사람과 활을 당기는 루딤 사람이여 나올지니라 하거니와 (렘46:5-6, 9) I saw them dismayed, and turning away back, their mighty ones were broken in pieces, and have been put to flight, and looked not back; fear was round about; the swift shall not flee away, nor the mighty one escape; come up, ye horses, and rage, ye chariots, and let the mighty ones go forth, Cush, Put, the Lydians, (Jer. 46:5–6, 9)

 

사람을 속이는 합리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speaking of persuasion from reasonings.

 

계속해서 Again:

 

14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 하느냐 15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렘48:14-15) How say ye, We are mighty, and men of strength for war? Moab is laid waste. (Jer. 48:14–15)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렘48:41) The city is taken, and the strongholds, it has been seized, and the heart of the mighty men of Moab in that day is become as the heart of a woman in her pangs. (Jer. 48:41)

 

같은 뜻으로 말씀하시기를 In like manner it is said:

 

에돔 용사의 마음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렘49:22) The heart of the mighty ones of Edom. (Jer. 49:22)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렘31:11) Jehovah hath redeemed Jacob, and hath avenged him from the hand of him that was mightier than he, (Jer. 31:11)

 

여기 ‘강한 자’는 다른 말, 히브리 말 표현입니다. where “mighty” is expressed by another term.

 

네피림이었던 아낙 자손이 ‘강대한 나라들’이었음은 모세의 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Anakim, who were of the Nephilim, were called “mighty ones” is evident from Moses:

 

1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신9:1_2) Thou passest over Jordan today, to go in to possess nations greater and more numerous than thyself, cities great and fortified to heaven, a people great and tall, the sons of the Anakim, whom thou knowest, and of whom thou hast heard; who shall stand before the sons of Anak? (Deut. 9:1–2)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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