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창5:29)

 

 

528. ‘노아’는 고대(古代, the ancient)교회를 상징합니다.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는 표현은 교리를 상징하는데, 이 교리로 말미암아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529. ‘노아’는 고대교회 혹은 홍수 후 세 교회인 셈, 함, 야벳의 부모 교회를 상징한다는 내용이, 뒤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을 보시면 나오는데요, 거기 노아에 대한 내용이 정말 엄청납니다. That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parent of the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ill appear from the following pages, where Noah is largely treated of.

 

 

530.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교회, 혹은 같은 말이지만 교리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존재하고, 또 이름하기 때문이지요. ‘노아’ 역시 그런 식으로, 고대교회를 상징하거나, 혹은 태고교회 교리들 가운데 남은 것을 상징합니다.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s we have said, are signified churches, or what is the same, doctrines; for the church exists and has its name from doctrine; thus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doctrine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교회와 교리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는 이미 다루어 왔는데요, 즉, 교회와 교리들은 기울어지는데, 신앙의 선과 진리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까지 기울어지며, 교회가 그 상태, 그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말씀에서는 황폐해졌다 합니다. How the case is with churches or doctrines has already been stated, namely, that they decline, until there no longer remains anything of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and then the church is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그러나 여전히 리메인스, 혹은 신앙의 선과 진리가 남아 있는 어떤 사람들은 늘 보존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선과 진리가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서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인류와 천국이 결합하는 일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But still remains are always preserved, or some with whom the good and truth of faith remain, although they are few; for unles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were preserved in these few, there would be no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kind.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한 사람 안의 리메인스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적을수록 그는 그가 가진 이성과 지식에 관한 것들이 덜 열리며, 덜 밝아집니다. 선과 진리의 빛은 리메인스로부터, 혹은 주님으로부터 리메인스를 통해서 그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As regards the remains that are in a man individually, the fewer they are the less can the matters of reason and knowledge that he possesses be enlightened, for the light of good and truth flows in from the remains, or through the remains, from the Lord.

 

만일 사람 안에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면 그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대신 짐승보다 훨씬 더 끔찍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리메인스가 적을수록 그는 사람이 아니며, 리메인스가 많을수록 그는 사람입니다. If there were no remains in a man he would not be a man, but much viler than a brute; and the fewer remains there are, the less is he a man, and the more remains there are, the more is he a man.

 

리메인스는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별이 적을수록 별빛은 희미하지만, 별이 많으면, 별빛도 밝은 것처럼 말입니다. Remains are like some heavenly star, which, the smaller it is the less light it gives, and the larger, the more light.

 

태고교회로부터 겨우 남은 것들이 ‘노아’라 하는 교회를 이룬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은 것은 퍼셉션이 아닌, 온전함에 관한 것이며, 태고교회의 퍼셉션에서 나온 교리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교회가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이 교회는 이전 태고교회와는 본성적으로 완전히 다른 교회이며, 고대교회라 이름하였습니다. 고대라는 것은, 홍수 직전에 존재, 홍수 후 첫 세대 동안 있었던 데서 가져왔습니다. The few things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among those who constituted the church called Noah; but these were not remains of perception, but of perfection, and also of doctrine derived from the things of perception in the most ancient churches; and therefore a new church was now raised up by the Lord, which being of an entirely different native character from the most ancient churches,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ancient from the fact that it existed at the close of the ages before the flood, and during the first period after it.

 

이 교회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을 받아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Of this chur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more will be said hereafter.

 

 

531.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는 표현은 교리를 상징하는데, 이 교리로 말미암아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라는 이런 내용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으로 이어지는 페이지들 가운데 보시게 됩니다. That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will also appear,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the following pages.

 

’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 진리인지를 그들은 고통에 가까운 수고를 하지 않고는 지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By “work”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what is true except with labor and distress.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것은, 그들은 선을 전혀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By the “toil of the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do nothing good.

 

그래서 ‘라멕’을 가리켜 황폐해진 교회라고 합니다. Thus is described “Lamech,” that is, the vastated church.

 

사람이 참(what is true)을, 진리,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그리고 선을 행하는 것도 ‘일과 손의 수고’가 되는 때는 바로 스스로의 힘으로, 혹은 자신의 것으로 할 때입니다. There is “work and labor of the hands” when, from themselves or from their own, men must seek out what is true and do what is good.

 

이런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곧, 거짓된 것과 악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주하심’의 의미는 위 245번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That which comes of this is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that is, nothing comes of it but what is false and evil. (But what is signified by “Jehovah cursing,” may be seen above, n. 245.)

 

위로하다’라는 표현은 ‘아들’ 혹은 노아와 관련되는데, 새로운 거듭남, 즉, 새로운 교회,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To “comfort” has reference to the “son,” or Noah, whereby is signified a new regeneration, thus a new church, which is the ancient church.

 

이 교회, ‘노아’는 그래서 쉼과, 그리고 쉼에서 오는 위로를 상징하는데, 이 쉼은 태고교회 때, 주님이 쉬셨던 바로 그 일곱 번째 날의 쉼입니다. (참조, 84 - 88번 글) By this church, or “Noah,” is therefore likewise signified rest, and comfort that comes from rest, just as it was sai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t was the seventh day, in which the Lord rested. (See n. 84–88.)

2021-07-25(D1)-주일예배(AC.528-531, 창5,29), '노아, 태고교회의 리메인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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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xL-qEF-vVg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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