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창6:3)

 

 

57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인도함을 받지 않을 것임을,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는 그들이 육(肉, flesh)-중심의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는 그들은 남은 신앙의 리메인스(remains, traces)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By “Jehovah’s saying my spirit shall not always reprove man” is signified that man would not be so led any longer; “for that he is flesh” signifies because he had become corporeal;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signifies that he ought to have remains of faith.

 

이것은 또한 앞으로 다가올 교회의 미래에 관한 예언입니다. It is also a prediction concerning a future church.

 

 

57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는 표현이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게 인도함을 받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본문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앞선 본문을 보면, 그들은 종교적 가르침이나 진리를 자신들의 고유한 욕망으로 뒤섞어 결국 자신들의 길의 오류를 더 이상 볼 수도, 무엇이 악인지를 알 수도 없는 지경까지 자신들의 캐릭터를 발전시켰습니다. 선과 진리를 지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은 그들의 자기기만에 의해 심지가 꺼지듯 꺼지고 말았는데요, 그것은 그들이 참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것들이라고는 그저 자기들의 이론에 딱 맞는 것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뒤에 나오는 본문을 보면, 그 교회 사람들이 홍수 후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퍼셉션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들 가운데 일어난 것은 양심이었습니다. 이 양심으로 그들은 비로소 가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That by Jehovah’s saying my spirit shall not forever reprove man is signified that man would not be so led any longer, is evident from what has gone before and from what follows; from what has gone before in that men had become such, through the immersion of the doctrinal things or truths of faith in yearnings, that they could no longer be reproved, that is, know what evil is; all capacity to perceive truth and good having been extinguished through their persuasions, so that they believed that only to be true that was in conformity with their persuasions; and in regard to what follows, that after the flood the man of the church became different, in that with him conscience succeeded in place of perception, through which he could be reproved.

 

여호와의 영의 책망’은 그래서 내적 음성, 곧, 퍼셉션 혹은 양심을 상징하며, ‘여호와의 영’은 흘러들어 오는 진리와 선, 곧 인플럭스(influx, 入流)를 상징합니다. 이사야도 그렇게 말합니다. Reproof by the spirit of Jehovah” therefore signifies an inward dictate, a perception, or a conscience; and the “spirit of Jehovah” signifies the influx of what is true and good; as also in Isaiah: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I will not contend to eternity, neither will I be forever wroth, for the spirit would overwhelm before me, and the souls I have made. (사57:16)

 

 

574. ‘’(肉, flesh, 살)은 사람이 육-중심(body-centered)이 된 것을 상징하는데요, 이것은 말씀에서 ‘’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거기 보면, 두 가지, 곧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는 육-중심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That “flesh” signifies that man had become corporeal, appears from the signification of “flesh” in the Word, where it is used to signify both every man in general, and also, specifically, the corporeal man.

 

요엘서에서, 모든 사람을 넌지시 나타내기 위해 쓰였습니다. It is used to signify every man, in Joel: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I will pour out my spirit up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욜2:28)

 

만민’(flesh)은 사람들을, ‘’은 주님에게서 나와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선과 진리, 곧 인플럭스를 나타냅니다. where “flesh” signifies man, and “spirit” the influx of truth and good from the Lord.

 

다윗의 글입니다. In David: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Thou that hearest prayers, unto thee shall all flesh come, (시65:2)

 

여기 ‘육체’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where “flesh” denotes every man.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Cursed is the man that trusteth in man, and maketh flesh his arm, (렘17:5)

 

육신’은 사람을, ‘’은 파워를 상징합니다. where “flesh” signifies man, and “arm” power.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4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That all flesh may know. (겔21:4-5)

 

스가랴입니다. In Zechariah: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Be silent, all flesh, before Jehovah, (슥2:13)

 

여기 ‘육체’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where “flesh” denotes every man.

 

[2] 육(flesh)은 특별히 육-중심적인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이 이사야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it signifies specifically the corporeal man, is evident from Isaiah: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The Egyptian is man and not God, and his horses are flesh and not spirit, (사31:3)

 

그들의 지식은 육-중심 수준임을 상징합니다. 여기 및 말씀 어디에서나 ‘말들’은 합리적 수준, 이성적 수준을 나타냅니다. signifying that their memory-knowledge is corporeal; “horses” here and elsewhere in the Word denoting the rational.

 

계속해서 Again:

 

오른쪽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왼쪽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He shall withdraw to the right hand, and shall be hungry; and he shall devour on the left hand, and they shall not be satisfied; they shall eat everyone the flesh of his own arm, (사9:20)

 

고기’는 사람의 고유한 것들, 곧 육-중심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signifying such things as are man’s own, which are all corporeal.

 

같은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He shall consume from the soul, and even the flesh, (사10:18)

 

여기 ‘’은 그를 온통 사로잡고 있는 육-중심의 모든 걸 상징합니다. where “flesh” signifies corporeal things.

 

계속해서 Again: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The glory of Jehovah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the voice said, Cry; and he said, What shall I cry? All flesh is grass, (사40:5-6)

 

여기 ‘육체’는 모든 육-중심, 몸-오리엔티드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flesh” here signifies every man who is corporeal.

 

[3] 같은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In fire will Jehovah dispute, and with his sword with all flesh, and the slain of Jehovah shall be multiplied, (사66:16)

 

’은 왜곡된 욕망에 가해지는 형벌을, ‘’은 거짓에 가해지는 형벌을, 그리고 ‘혈육’(flesh)은 육-중심, 몸 관련 일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각각 상징합니다. where “fire” signifies the punishment of yearnings; the “sword,” the punishment of falsities; and “flesh” the corporeal things of man.

 

다윗의 글입니다. In David: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God remembered that they were flesh, a breath that passeth away, and cometh not again, (시78:39)

 

이 말씀은 광야에서 살(flesh)과 고기(meat)를 탐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몸-중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육(flesh)에 대한 그들의 갈망은 그들은 그저 육-중심, 몸 수준 보상만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speaking of the people in the wilderness desiring flesh, because they were corporeal; their desiring flesh represented that they desired only things corporeal (Num. 11:32–34).

 

32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11:32-34)

 

 

575.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라는 표현은, 그들이 남겨진 신앙의 리메인스(remains), 신앙의 흔적들(traces)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전 장 3절과 4절에서, ‘날들’(days)과 ‘해들’(years)은 그들의 때(times)와 상태(states)를 상징한다(cf. AC.482, 487-488)는 것과, 태고인들은 그 교회의 상태와 상태 변화들(cf. AC.487:2)을 상징하기 위해 숫자들의 서로 다른 조합들을 사용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그들이 그 교회와 관련된 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숫자 조합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That by 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 is signified that he ought to have remains of faith, appears from what has been said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5:3–4), concerning “days” and “years” signifying times and states; and also from the circumstance of the most ancient people from numbers variously compounded signifying states and changes of states in the church; but the nature of their ecclesiastical computation is now totally lost.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3-4)

 

본 절 이 ‘백이십 년’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숫자 역시 같은 방식이며, 그래서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one, 1)에서 ‘열둘’(twelve, 12) 및 기타 등등 그 각각의 숫자에 감춰진 의미들부터 먼저 알지 않고서는 말입니다. Here in like manner numbers of years are mentioned, whose signification it is impossible for anyone to understand, unless he be first acquainted with the hidden meaning of each particular number from “one” to “twelve,” and so on.

 

분명한 건, 그 안에 뭔가 비밀스러운 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백이십 년’이라는 인간의 수명과 선행절들하고는 맞지가 않기 때문이며, 홍수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봐도 사람들이 딱 백이십 년만 산 게 아닙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셈의 경우,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되어 있고,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셀라는 에벨을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에벨은 벨렉을 낳은 후, ‘사백삼십 년’을, 그리고 노아는 홍수 후, ‘삼백오십 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It plainly appears that they contain within them something else that is secret, for that men were to live a “hundred and twenty years” has no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part of the verse, nor did they live one hundred and twenty years, as is evident from the people after the flood (chapter 11), where it is said of Shem that “he lived after he begat Arphaxad five hundred years”; and that Arphaxad lived after be begat Selah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nd that Selah lived after he begat Eber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nd that Eber lived after he begat Peleg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that Noah lived after the flood “three hundred and fifty years” (Gen. 9:28), and so on.

 

그러나 숫자 ‘백이십’(one hundred and twenty, 120) 안에 들어있는 의미는 ‘’(ten, 10)과 ‘열둘’(twelve, 12)의 의미로만 나타나는데, 이 둘이 곱해져서 백이십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들 숫자를 이루는 숫자 성분들의 상징으로부터, ‘백이십 년’은 신앙의 리메인스를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But what is involved in the number “one hundred and twenty,” appears only from the meaning of “ten” and “twelve,” which being multiplied together make one hundred and twenty,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se component numbers it may be seen that “one hundred and twenty” signifies the remains of faith.

 

말씀에서 숫자 ‘’은 ‘십분의 일’(tenths, tithes 십일조)과 함께 리메인스를 상징하고 표현합니다. 이 리메인스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것은 오직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한편, 숫자 ‘열둘’은 신앙, 혹은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숫자 ‘백이십’이 이들 숫자 성분들의 조합으로 신앙의 리메인스를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The number “ten” in the Word, as also “tenths,” signify and represent remains, which are preserved by the Lord in the internal man, and which are holy, because they are of the Lord alone; and the number “twelve” signifies faith, or all things relating to faith in one complex; the number therefore that is compounded of these, signifies the remains of faith.

 

 

576. 숫자 ‘’, 그리고 ‘십분의 일’이 리메인스를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다음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number “ten,” and also “tenths,” signify remains,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passages of the Word:

 

9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Many houses shall be a desolation, great and fair, without an inhabitant; for ten acres of vineyard shall yield one bath, and the seed of a homer shall yield an ephah, (사5:9-10)

 

영적, 천적인 것들이 황폐해지는 것에 관한 본문입니다.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는 영적인 것들의 리메인스가 아주 보잘 것 없을 것을,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는 천적인 것들의 리메인스 또한 그럴 것임을 상징합니다.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ten acres of vineyard making a bath” signifies that the remains of things spiritual were so few; and “the seed of a homer yielding an ephah” signifies that there were so few remains of things celestial.

 

같은 이사야 본문입니다. In the same: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And many things are forsaken in the midst of the l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nevertheless it shall be consumed; (사6:12-13)

 

여기 ‘이 땅 가운데에’는 속사람을, ‘그 중에 십분의 일이’는 그 리메인스가 아주 적음을 상징합니다. where the “midst of the land” signifies the internal man; a “tenth part” signifies the smallness of the remains.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10너희는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쓸지니 11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하게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십분의 일 호멜을 담게 하고 에바도 십분의 일 호멜을 담게 할 것이며 14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십분의 일 밧을 드릴지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 (십 밧은 한 호멜이라)Ye shall have balances of justice, and an ephah of justice, and a bath of justice: the ephah and the bath shall be of one measure, the bath to contain the tenth of a homer, and an ephah the tenth of a homer; the measure thereof shall be after the homer; and the ordinance of oil, a bath of oil, the tenth of a bath out of a kor, ten baths to the homer, for ten baths are a homer; (겔45:10-11, 14)

 

이 구절에서는 여호와의 거룩한 속성들을 도량형 용어들을 써서 표현하되, 신성한 퀄러티들은 각기 다른 카테고리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 ‘’(ten, 10)은 천적,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영적 리메인스를 상징합니다. 여기 나오는 도량형 용어들과 관련 숫자들이 만일 그 안에 무슨 감춰진 신성한 속뜻이 없다면 뭐하러 이렇게 장황하게 기록했겠습니까? 이것은 하늘의 예루살렘과 새 성전을 다루는 에스겔 45장과 그 앞장들에도, 그리고 다른 예언서들과 유대 종교의 다양한 의식, 의전들에도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in this passage the holy things of Jehovah are treated of by measures, whereby are signified the kinds of the holy things; by “ten” are here signified the remains of celestial and of the derivative spiritual things; for unless such holy arcana were contained herein, what could be the use or intent of describing so many measures determined by numbers, as is done in this and the former chapters in the same prophet, where the subject is the heavenly Jerusalem and the new temple?

 

[2] 아모스입니다. In Amos:

 

2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The virgin Israel is fallen, she shall no more rise. Thus saith the Lord Jehovih, The city that went out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remaining, and that which went out a hundred, shall have ten remaining to the house of Israel, (암5:2-3)

 

리메인스 본문입니다. 리메인스 중에서도 가장 적은 리메인스가 남는다는 내용인데요, ‘십분의 일의 일’, 즉, 리메인스의 리메인스만 남는다는 말씀입니다. where, speaking of remains, it is said that very little would be left, being only a “tenth part,” or remains of remains.

 

계속해서 아모스입니다. Again:

 

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9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I abhor the pride of Jacob and his palaces, and will shut up the city, and its fullness, and it shall come to pass if there shall be left ten men in one house they shall even die, (암6:8-9)

 

리메인스가 거의 남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speaking of remains which should scarcely remain.

 

모세의 글입니다. In Moses: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An Ammonite or Moabite shall not come into the congregation of Jehovah, even the tenth generation of them shall not come into the congregation of Jehovah to eternity; (신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신앙의 천적, 영적 신성모독을 상징하며, 그들의 ‘리메인스’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cf. AC.468, 530, 560-561) an Ammonite and a Moabite” signify the profanation of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the “remains” of which are spoken of in what precedes.

 

[3]십일조’(tenths, tithes) 또한 리메인스를 표현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다룬 내용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appears also that “tenths” represent remains.

 

십일조 내용이 말라기에도 이렇게 있습니다. And so in Malachi: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Bring ye all the tithes [tenths] into the treasure house, that there may be booty in my house, and let them prove me, bestir ye in this, if I will not open for you the cataracts of heaven, and pour you out a blessing; (말3:10)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는 속사람 안에 있는 리메인스를 상징합니다. 리메인스는 ‘양식’(booty, plunder)에 비유되는데요, 수많은 악과 거짓 가운데 슬며시 넣어두는 스텔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리메인스를 통해 모든 복이 옵니다. that there may be booty in my house” signifies remains in the internal man, which are compared to “booty,” because they are insinuated as by stealth among so many evils and falsities; and it is by these remains that all blessing comes.

 

모든 사람의 체어리티가 그 속사람 안에 있는 리메인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유대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그들이 모든 십일조 드리기를 마쳤을 때에, 그들은 그 십일조를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That all man’s charity comes by the remain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was also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is statute: that when they had made an end of tithing all the tithes, they should give to the Levite, to the stranger, to the fatherless, and to the widow. (신26:12 seq.)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26:12)

 

[4] 리메인스가 오직 주님께만 속한 까닭에, 십일조 또한 ‘여호와의 성물’로 불립니다. 모세의 글입니다. Inasmuch as remains are of the Lord alone, therefore the tenths are called “holiness to Jehovah”; as in Moses:

 

30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31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All the tenths of the land, of the seed of the land, of the fruit of the tree, they are Jehovah’s, holiness to Jehovah: all the tenths of the herd and of the flock, whatsoever passeth under the shepherd’s rod, the tenth shall be holiness to Jehovah. (레27:30-31)

 

십계명이 ‘’ 계명, 혹은 ‘’ 가지 말로 되어 있는 것과, 여호와께서 그것을 돌판에 쓰신 것은 리메인스를 상징하며, 그것을 여호와의 손으로 쓰신 것은 리메인스는 오직 주님께만 속한 것이라는 거, 그리고 그것을 돌판에 쓰신 것은 리메인스를 속사람 안에 두셨음을 각각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That the Decalogue consisted of “ten” precepts, or “ten” words, and that Jehovah wrote them on tables (Deut. 10:4), signifies remains, and their being written by the hand of Jehovah signifies that remains are of the Lord alone; their being in the internal man was represented by the tables.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신10:4)

2021-08-08(D1)-주일예배(AC.572-576, 창6,3), '나의 영이 영원히..., 육신이 됨이라, 백이십 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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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qGLJl1yy4c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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