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both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fowl of the heavens; for it repenteth me that I have made him. (창6:7)

 

 

593.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Whom I have create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이 본문이 태고 교회의 후손이었던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은, 이 사람을 일컬어, 그는 주께서 ‘창조하신’(created), 즉, 거듭나게 하신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될 때까지 ‘만드신’(made), 즉, 완벽하게 하신, 또는 거듭나게 하신 사람이었다라는 표현 뿐 아니라, ‘지면(地面)에서’(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e man from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not only from its being said, the man whom he had “created,” that is, whom he had regenerated; and afterwards whom he had “made,” that is, had perfected, or regenerated until he became celestial; but also from its being sai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지(地)’, 곧 ‘’(ground)은 앞서(cf. AC.566-567) 보여드린 대로, 교회가 있는 지역입니다. The “ground” is where the church is, as has been shown before.

 

다음 사실 또한 그 분명한 증거가 되는데요, 이 본문은 신앙의 교리적인 것들을 자신들의 갈망(yearnings)에 침수시킨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리적인 것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The same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ose are treated of who immers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and those who had not doctrinal things of faith could not do so.

 

즉, ‘내가 지면에서 창조한 사람’이라는 이 표현은 한편으로, 신앙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욕구를 합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며, 참 신앙의 교리가 무엇인지도 몰라 접근도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런 행위(offense, 위법 행위,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런 짓을 하는 사람들의 예로는, 자신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말씀(the Word) 또는 어떤 종교적인 이슈를 사사로이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진리와 선에 관해 무지하며, 이런 사람들은 신앙의 진리와 선에 다소 반대되는 말과 행실 중에도 일종의 이노센스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무슨 환상, 곧 그것이 진리요 선인 줄 믿는 그런 것으로 가득 찬 나머지 어떤 열심을 가지고 워십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They who are outside the church are in ignorance of truth and good, and those who are in ignorance may be in a kind of innocence while speaking and acting somewhat contrary to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for they may act from a certain zeal for the worship with which they have been imbued from infancy, and which they therefore believe to be true and good.

 

그러나 그 가운데 신앙의 교리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는 아주 다릅니다. But the case is entirely different with those who have the doctrine of faith among them.

 

그들은 진리를 거짓과, 거룩한 것을 신성모독과 섞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These can mingle truths with falsities, and holy things with profane.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운명은 내세에서는 소위 이방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운명보다도 훨씬 더 나쁜데,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을 받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Hence their lot in the other life is much worse than the lot of those who are called gentiles, concerning whom,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94.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 Both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

 

이 말씀의 뜻이, 의지와 관련된 무엇이든지 그것이 그를 끝낸다라는 것임은 ‘사람’(man), ‘가축’(beast), 그리고 ‘기는 것’(creeping thing)의 상징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whatsoever is of the will would extinguish hi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man,” of “beast,” and of “creeping thing.

 

사람은 오직 의지(will)와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 intellect)이 있어 사람이며, 이것이 있어 사람은 짐승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 외 다른 모든 면은 짐승과 매우 유사합니다. Man is man solely from the will and understanding, by which he is distinguished from brutes; in all other respects he is very similar to them.

 

그런데 지금 저들의 경우는, 모든 선한 의지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In the case of these men all will of good and understanding of truth had perished.

 

선한 의지 대신 제정신이 아닌 갈망이,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 대신 정신나간 환상이 각각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런 갈망과 환상이 서로 뒤섞이자 그들의 상황은 마치 리메인스가 파괴된 것 같았으며, 그렇게 그들은 종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In place of a will of good there followed insane yearnings, in place of an understanding of truth insane fantasies; and these were commingled with their yearnings, so that after they had thus as it were destroyed remains, they could not but be extinguished.

 

의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켜 ‘가축’과 ‘기는 것’이라 한다는 것은, 짐승과 기는 것에 관해 전에 말씀드린 내용(cf. AC.44-46, 246)을 보시면 됩니다. That all things of the will are called “beasts” and “creeping things”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concerning beasts and creeping things.

 

그러나 여기서는, 지금 다루고 있는 사람의 캐릭터 때문에, ‘가축’이 선한 어펙션(affections, 애정, emotions)이 아닌, 악한 것, 곧 악한 갈망을, ‘기는 것’은 쾌락(pleasures), 곧 육체적, 감각적 쾌락을 각각 상징합니다. But here, because of the character of the man treated of, good affections are not signified by “beasts,” but evil, consequently yearnings; and by “creeping things,” pleasures, both bodily and sensuous.

 

가축’과 ‘기는 것’이 그런 걸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을 가지고 더 이상 깊이 확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앞서 이미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AC.45-46, 142-143을 보시기 바랍니다.) That such things are signified by “beasts” and “creeping things” needs no further confirmation from the Word, because they have been treated of before (see n. 45–46, 142–143).

 

 

595. 공중의 새가 이해하는 능력, 곧 사고력에 관계된 모든 것을 상징한다는 것은 앞의 내용을 보시면 됩니다. (cf. AC.40) That the fowl of the heavens signifies whatever is of the understanding, that is, of thought, may also be seen above (n. 40).

2021-08-15(D1)-주일예배(AC.593-595, 창6,7), '창조한 사람, 지면, 가축, 기는 것, 공중의 새'.hwp
0.07MB

https://youtu.be/q8FrG6yjWuY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