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71.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Verse 1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 기억-지식이 천적 지식을 볼 때,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묘사입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즉, 기억-지식의 눈에는 천적 지식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한 묘사입니다.

 

※ 세속적, 육체적인 사람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만일 신앙과 신앙에 관한 모든 것을 감각에 속한 것들을 통해 보거나, 기억에 속한 것들을 통해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합니다. 그리고 자연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과 반대될 수 없다고 확신하지요. 그런 식으로 그는 천적이고 신적(Divine)인 것들을, 감각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알 수 있기를 원하는데, 그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면 믿을 수 없다, 내가 가진 지식을 가지고 이해할 수 없으면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건 과학으로 설명 가능하며,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더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점점 더 소경이 되어갈 뿐이며, 결국 그는 아무 것도 믿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영적인 일이나 더더욱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이런 일, 이런 결과는 그가 세웠던 원리들에서 오며, 이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창2:17)입니다. 누구든지 이 열매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는 죽게 될, 즉, 생명에서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님은 당연히 믿어야 한다, 즉, 말씀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들은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이니까 합니다. 그리고 이 원리에 따라, 그는 자신의 사고를 조정합니다. 그의 조정된 사고를 통해 이성과 지식, 감각 및 본성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그는 자신을 컨펌(confirm, 확정, 확신)하며, 컨펌되지 않는 것들은 한쪽으로 던져버립니다.

 

즉, 이성, 지식, 감각, 본성 등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거듭나는 것이며, 이 모든 근본적인 변화가 그의 의지, 곧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AC.128)

 

※ 사람은 자기가 상정(想定)한, 가정한 원리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습니다. 심지어 그 원리들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의 모든 지식과 미루어 짐작하는 모든 생각은 그 원리들에 대해 호의적입니다. 이런 원리들에 대해 호의적이고, 또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런 수많은 생각들을 통해서 결국 그 사람 마음에 그 원리들은 선명해지며, 결국 그는 그런 거짓 안에서 큰 확신을 갖게 됩니다.

 

결국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즉, 의지가 앞장서면, 나머지는, 곧 지식, 이성 등은 이 의지를 섬기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돈이다!’ 하는 생각을 자신의 인생철학과 원리 중 하나로 받아들인 사람은 지금 저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사람들처럼, 분명히 이 ‘돈을 첫 자리에 모시는 생각’은 잘못이요,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삶의 중심원리로 삼아, 이후 모든 걸 이걸 가지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가령, 시장, 도지사, 더 나아가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 말이지요.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 하여 재판도 돈으로, 선거도 돈으로, 언론, 방송 등 각종 미디어, 여론도 다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 믿으며, 그래서 돈이 있어야 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 곧 ‘대장동 의혹’ 같은 일을 몇 번만 하면 된다 하는 식이지요. ‘50억을 주겠다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있겠느냐?’ 하고 말입니다.

 

이런 세속적 사고는, ‘육안으로 볼 수 없거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절대 믿을 수 없어!’ 하는, 근본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이 하나의 중심원리가 된 사람은 이후 결코 무엇을 믿을 수가, 곧,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영적, 천적인 것들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요, 사람의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순서,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곧,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는 것이며, 모든 것이 그 뒤를 따르고, 이어 심지어 이성(理性, reason)과 기억-지식에까지 깨달음을 받는(be enlightened)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 지식, 세속 지식으로 주님과 천국을 엿보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하는 것, 과학을 배우는 것이 절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며, 신앙의 사람이라 하여 학자들의 세계에서 하듯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이라고 하는 자연계의 질서도 그 기원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세상 학자들이 그 질서 속에서 주님을 시인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서 문제이지요...

 

다만 이 원리, 곧,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가능한 한, 학자들 세계에서 세상, 세속적 지식에 친숙한 용어들을 사용, 영적, 천적 진리들을 자연적 진리들을 가지고 컨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식 사고요, 입장입니다. 세상을 세속이라 하여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 기독교와 달리, 세상 친숙한 것들로 쉽게 비유, 천국 아케이나를 풀어주신 주님처럼 말이지요. 또한 기억-지식도 주님의 빛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즉, 쓰임새의 문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하지, 절대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AC.129)

 

※ 세상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동산’을 위해 감각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가지며, 그의 ‘에덴’은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요, 그의 ‘동쪽’은 서쪽 혹은 자기 자신, 그의 ‘유브라데스 강’은 그가 소유한 모든 기억-지식인데, 그건 정죄를 받게 됩니다. 그의 ‘두 번째 강’은 ‘앗수르’에 있는데, 거짓을 생산하는 정신 나간 이성적 활동입니다. 그의 ‘세 번째 강’은 ‘구스’에 있으며, 악과 악에서 나오는 거짓의 원리들이며, 이것이 그가 가진 신앙 지식들입니다. 그의 ‘네 번째 강’은 거기서 나온 지혜이며, 말씀에서는 이걸 가리켜 ‘마술’이라 합니다. 그래서 ‘애굽’은, ‘애굽’은 기억-지식인데, 나중에 이 지식은 ‘마술’이 됩니다. 이 ‘애굽’은 또한 그런 ‘사람’도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말씀으로부터 알 수 있듯, 그가 자아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해, 에스겔을 보면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겔29:3, 9)

 

이런 사람들을 또한 일컫기를, 같은 예언서에서 ‘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이라 합니다. 거기에는 애굽 사람, 바로를 가리켜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31:16, 18)

 

여기 ‘에덴의 나무들’은 말씀에서 오는 지식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그들은 얄팍한 사유(思惟) 행위로 모독하는 것입니다. (AC.130)

 

지금까지 애굽, 곧 기억-지식이란 무엇인가, 그 두 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식은 그릇입니다. 그릇 자체는 선, 악이 없고, 다만 그 안에 뭘 담느냐의 문제이며, 그걸 정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결국 선용의 문제입니다. 아이큐가 높은 사람도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악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지만 반대로 그 좋은 머리를 천국의 빛을 받아 주님 위해 쓰면 영원토록 쓰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신성을 목표, 즉, 신성과 하나됨, 신성과 인성의 합일을 목표로, 어머니로부터 받은 인성, 곧 악을 유전한 인성을 벗기 위해, 오직 천적인 것을 추구, 어린 시절, 다른 어린이들처럼 지식 습득을 시작하실 때에도 다른 데 한눈팔지 않으시고, 정주행, 아주 일찍 완덕의 경지, 곧 천적 인간을 이루시고, 유전 악 인성을 신적 인성으로 갈아입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쓸데없는 세상 지식을 일체 가까이 하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과 관련된 지식만 마치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그렇게 흡수하셨습니다. 우리도 일과 중,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각종 세상 뉴스나 컨텐츠 등을 가급적 절제, 멀리한다면 많은 시간, 주님께 훌쩍 다가가며, 아주 빨리 내면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어서 내면이 열려, 이 아케이나의 말씀들이 참으로 꿀송이보다 더 달게(잠16:24) 느껴지기를, 그리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목이 갈한(시42:1) 그런 사람,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1-10-03(D1)-주일예배(2204, AC.1471, 창12,12), '애굽, 기억-지식(memory-knowledge)(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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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c7dn1NpVA8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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