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8-25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Verse 25.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 25절 속뜻

 

천적 인간의 오운은 주님의 손길로 이노센스의 상태 가운데 있을 수 있었습니다.

 

 

163. 그들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순진하였다, 그들에게 이노센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오운, 자아(selfhood)에 이노센스를 스며들게 하셨기 때문인데, 이 이노센스로 인해 그들의 오운은 수용 불가 상태, 무례한 상태(being objectionable)가 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Their being “naked and not ashamed” signifies that they were innocent, for the Lord had instilled innocence into their own, to prevent its being unacceptable.

 

 

164. 앞서 서술한 대로, 사람의 오운은 그저 악일 뿐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전시가 되면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모양이지요.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면, 그때는 정반대로 그토록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AC.154번 글에서 관찰한 것처럼) The own of man, as before stated, is mere evil, and when exhibited to view is most deformed, but when charity and innocence from the Lord are instilled into the own, it then appears good and beautiful (as before observed, n. 154).

 

체어리티, 곧 친구, 동료들에 대한 사랑과 이노센스는 그 오운, 즉 사람 안에 있는 악하고 거짓된 것을 너그럽게 대할 뿐 아니라 그것을 거의 폐지하기까지 합니다. 어린아이들한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는 한, 어린아이들한테는 악하고 거짓된 것은 보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즐겁게 놀 수 있기까지 한 건데요, 어린아이들의 유아적 이노센스를 보면 이런 걸 알 수 있습니다. Charity and innocence not only excuse the own (that is, what is evil and false in man), but as it were abolish it, as may be observed in little children, in whom what is evil and false is not merely concealed, but is even pleasing, so long as they love their parents and one another, and their infantile innocence shows itself.

 

이런 이유로, 사람한테 어느 정도의 이노센스가 없으면 그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Hence it may be known why no one can be admitted into heaven unless he possesses some degree of innocence; as the Lord has said: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막10:14-16)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and forbid them not, for of such is the kingdom of God. Verily I say unto you, whosoever sha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as a little child, he shall not enter therein. And he took them up in his arms, put his hands upon them, and blessed them. (Mark 10:14–16)

 

 

165.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이 이노센스를 상징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으로 확인이 되는데요, 거기 보면, 그들에게서 온전함과 이노센스가 떠나자 그들은 자기들의 벗었음을 보고 부끄러웠으며 수치스러웠고 그래서 자신들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That the “nakedness of which they were not ashamed” signifies innocence is proved by what follows, for when integrity and innocence departed they were ashamed of their nakedness, and it appeared to them disgraceful, and they therefore hid themselves.

 

같은 걸 영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을 가지고도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데요, 거기서는 영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하며 결백을 증명하고자 할 때, 자신들의 이노센스를 시험하려고 벌거벗은 채로 자신들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representations in the world of spirits, for when spirits wish to exculpate themselves and prove their guiltlessness, they present themselves naked in order to testify their innocence.

 

아주 특별하게는 천국에 있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경우인데요, 그들은 자기들의 이노센스에 따라 화환을 두른 벌거벗은 유아들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들보다는 좀 덜한 이노센스를 가진 사람들은 빛나는 옷, 말들을 하기를 다이아몬드 실크 옷이라고 하는 그런 옷을 입습니다. 선지자들이 종종 본 천사들이 바로 이들이지요. Especially is it evident from the innocent in heaven, who appear as naked infants decorated with garlands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eir innocence; while those who have not so much innocence are clad in becoming and shining garments (of diamond silk as you might say), as the angels were occasionally seen by the prophets.

 

 

166. 이 정도는 말씀 본 장, 즉 창세기 2장에 들어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다루어 온 것들은 정말 얼마 안 되는 겁니다. Such are some of the things contained in this chapter of the Word, but those here set forth are but few.

 

천적 인간을 다루었기 때문인데요, 천적 인간은 오늘날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그와 관련된 요만큼조차 어떤 사람들한테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그런 주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And as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who at the present day is known to scarcely anyone, even these few things cannot but appear obscure to some.

 

 

167. 만약 사람들이 한 구절 한 구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아케이나가 들어있는지를 안다면 그는 너무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겁니다. 거기 들어있는 정말 많은 아케이나를 그동안 말하지 않고 스킵했기 때문인데요, 이런 건 겉 글자 상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If anyone could know how many arcana each particular verse contains, he would be amazed, for the number of arcana contained is past telling, and this is very little shown in the letter.

 

이걸 간단히 말씀드리면, 겉 글자로 된 이 세상 말들은 영들의 세계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정확한 실체에 대한 표상(表象)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추상적인 것들이 거기 가면 생생해지며, 또 여기서는 모호한 것들이 거기서는 아름다운 순서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To state the matter shortly: the words of the letter, exactly as they are, are vividly represented in the world of spirits, in a beautiful order.

 

영들의 세계는 일종의 표상의 나라이며, 그곳 모든 생생한 표상들은 극히 미세한 것 안에 들어있는 것일지라도 둘째 천국 천사적 영들에게 모두 퍼셉션 수준으로 지각됩니다. 같은 패턴이 이번엔 삼층천 천사들에게 일어나는데요, 이 천사적 영들에게 퍼셉션, 곧 지각만 될 뿐이던 것들이 이번 이 셋째 천국 천사들한테는 형언할 수 없는 천사적인 감, 인상, 생각으로 아주 풍부하게 지각됩니다. 그리고 이건 또 주님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무한히 다양하게 전개되고 말입니다. For the world of spirits is a world of representatives, and whatever is vividly represented there is perceived, in respect to the minute things contained in the representatives, by the angelic spirits who are in the second heaven; and the things thus perceived by the angelic spirits are perceived abundantly and fully in inexpressible angelic ideas by the angels who are in the third heaven, and this in boundless variety in accordance with the Lord’s good pleasure.

 

※ 즉 해상도가 144p, 240p 등 아주 낮은 데서 720p, 1080p, 더 나아가 4K, 8K, 16K, 32K 등 초고해상도로 발전하는 것과 같고, 과거 14.4k, 28.8k 같은 모뎀 시절에서 ISDN, ADSL을 거쳐 LTE, 그리고 최근의 5G, 6G 등의 통신 발전과도 같으며, 더 나아가 과거 참 답답한 기록문화에서 지금은 모든 걸 링크를 따라가며 원하는 정보를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무한정 얻는 것과도 같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Such is the Word of the Lord.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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