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45.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Verse 7. And Jehovah was seen of Abram, and said, 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who was seen of him.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여호와께서 주님이 아직 아이였을 동안 나타나셨음을 말합니다. Jehovah was seen of Abram” signifies that Jehovah appeared to the Lord while yet a child;

 

※ 앞에,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을 통해서, 그리고 ‘아브람’이라는 이름, 곧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표상이라는 것, 또한 주님은 먼저 천적인 것을 얻으신 후, 퍼셉션을 받으시는데, 이런 순서를 통해 ‘여호와께서 나타나심’이 이어지는 것 등을 두루 연결하면, 위와 같은 내적 의미로 정리됩니다. (AC.1446)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천적인 것은 주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야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and said, 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signifies that celestial things should be given to those who should have faith in him;

 

※ ‘네 자손’의 ‘자손’은 ‘seed’입니다. 또 ‘이 땅을’의 ‘’은 ‘land’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말씀에서 ‘seed’는 주님 신앙을(AC.255, 256), ‘land’는 천적인 것을(AC.620, 636, 662, 1066) 각각 가리킵니다. (AC.1447)

 

※ 겉 글자의 뜻으로는, ‘아브람의 씨’는 야곱으로 말미암은 그의 후손을, ‘’은 가나안 땅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땅을 그들의 소유로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왕국과 교회에 관한 영적, 천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 가운데 표상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주님께서 그곳에서 태어나시니까요. 그러나 속뜻, 곧 내적 의미로는, ‘’는 주님 신앙 말고는, 그리고 ‘’은 천적인 것 말고는 달리 의미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위 본문의 내적 의미가 ‘천적인 것은 주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야 받을 수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AC.1447)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아버지께 드린 첫 번째 예배를 말합니다.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who was seen of him” signifies the first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e celestial of love.

 

※ ‘제단’은 예배에 관한 주된 표상(representative)입니다. (AC.1448)

 

※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창8:20)는 주님에 관한 표상입니다. 고대교회의 모든 제의는 주님에 관한 표상입니다. 유대 교회의 제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후대에 이르러 제의 중 메인 표상, 즉, 가장 주된 표상이 바로 ‘제단’(altar)과 ‘번제’(burnt offering)입니다. 번제에는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가 각각 그 상징하는 바 표상을 따라 드려졌는데, 정결한 짐승은 체어리티의 선을, 정결한 새는 신앙의 진리를 상징하였습니다. 고대교회의 사람들은 이런 걸 드리면서, 자기들이 주님께 선과 진리의 선물을 드리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그 밖의 것으로는 사람이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AC.921)

 

 

※ 이상으로 오늘 본문 7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은 천적인 것, 곧 하늘에 속한 것은 오직 주님 신앙을 가진 자라야만 받을 수 있음을 퍼셉션으로 아셨고, 그때 주님은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아버지께 첫 예배를 드리셨다

 

2021-09-20(D2)-매일예배(2196, AC.1445-1448, 창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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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S6YruGTT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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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31. 5절,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Verse 5. And Abram took Sarai his wife, and Lot his brother’s son, and all their substance that they had gotten, and the soul that they had gained in Haran: and they went forth to go into the land of Canaan; and into the land of Canaan they came.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선과 그동안 선에 인접해 있어 온, 붙어있어 온 진리를 말합니다. And Abram took Sarai his wife” signifies good to which truth has been adjoined;

 

아브람’,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대로, 주님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어린 시절 주님을 가리킵니다. by “Abram,” as has been said, is meant the Lord; here, when he was a child;

 

아내’로서의 ‘사래’, 진리를 의미합니다. by “Sarai” as a “wife” is meant truth:

 

※ 말씀에서 교회가 묘사되는 두 가지 표현 중 하나는 ‘남자(vir)와 그의 아내’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homo)과 그의 아내’입니다. 전자의 경우, ‘남자’는 언더스탠딩(understanding) 또는 진리를, ‘아내’는 윌(will) 또는 선을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 ‘사람’은 사랑의 선 또는 사랑을, ‘아내’는 신앙의 진리 또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AC.915) 그러므로 여기 5절, ‘아브람과 그의 아내’는 후자, 곧 ‘아브람’은 선을, ‘아내’는 진리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AC.1432)

 

※ 사람의 모든 것 안에는 결혼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말이지요. 그 이유는, 주님의 휴먼 에센스와 디바인 에센스가 바로 이 결혼이라는 이미지로 하나가 되기 때문이며, 만물의 기본 질서는 바로 결혼이라는 이 하나됨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천국과 지상 두 왕국의 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아브람’은 선을 의미하고, 그리고 선과 어울리는 짝은 진리이므로 여기서 ‘그의 아내’, 곧 ‘사래’가 나오는 것입니다. (AC.1432)

 

조카 롯과’, 감각적 진리를 말합니다. 한 어린아이 안으로 맨 처음 스며드는 것입니다. and Lot his brother’s son” signifies sensuous truth, thus the first that is instilled into a child;

 

※ 조카는 형제의 아들입니다. 말씀에서 ‘아들’은 진리를 (AC.264, 480, 491, 533), ‘형제’는 신앙의 진리를 (AC.367), 그리고 ‘’은 앞에서 감각이라 하였으므로, 이 ‘조카 롯’이 감각적 진리를 표상하는 것입니다. (AC.1434)

 

※ 어린아이는 주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으로 봅니다. 눈에 비치는 그 모든 것을 ‘보며,’ ‘이것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일까?’, ‘왜 이것을 만드셨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그 내적 의미까지는 알 수 없는 어린아이는 그러나 주님 지으신 이 세상을 ‘’으로 보며, ‘아, 이곳을 보니 천국도 이렇겠구나!’ 하며,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감각적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는 오직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한테만 스며들며, 오직 주님만이 천인이시므로 주님의 어린 시절인 지금, 주님에게 이런 감각적 진리가 스며든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천국의 진리를 받을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AC.1434)

 

모은 모든 소유와’, 모든 감각적 진리를 말합니다. and all their substance that they had gotten” signifies all things that are sensuous truths;

 

※ 식재료가 없으면 음식을 준비할 수 없듯,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 때도 우선은 그 생각의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 나오는 ‘모은 모든 소유’입니다. 이렇게 얻은, 또는 습득한 감각 진리들 중, 기억-지식은 영적 재료를 담는 그릇, 애정은 천적 재료를 담는 그릇입니다. 특별히 ‘하란’에서 얻은 것을 어슴푸레한 상태라 하는 것은, 그때가 아직 주님의 유아기를 비롯, 어린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AC.1435)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 그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가능했던 모든 리빙 에센셜을 말합니다. and the soul that they had gained in Haran” signifies every living essential that was possible in that obscure state;

 

※ ‘사람들’로 번역한 것은 ‘’이라고도 하는 ‘소울’(soul)입니다. 이 소울은 인간 안에 있는 ‘살아있는 것’, 곧 인간의 ‘생명’입니다. 인간 안에서 살아있는 것은 육체가 아닌 소울이며, 육체는 단지 소울에 의해 사는 것일 뿐입니다. 이 소울이라는 생명의 근원은 천국의 사랑입니다. 천국 사랑에 근원을 두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생명을 가질 수도, 생명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소울은 천국 사랑을 가지고 사는 선이며, 이 선이 곧 리빙 에센셜입니다. (AC.1436)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주님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천적이며, 사랑인 것들을 향해 나아가셨음을 말합니다. and they went forth to go into the land of Canaan” signifies that he thus advanced to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 ‘가나안 땅’, 곧 ‘랜드 오브 가나안’은 천국과 지상, 주님의 왕국을 표상합니다. 이곳에 표상 교회가 있었고, 이 교회 안 모든 것, 가령, 각종 제의, 희생 제물, 제사장 등 섬기는 사람들, 성막 등 모든 것이 주님과 주님의 왕국에 대한 천적, 영적 표상물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거룩한 곳이며, 그러나 참으로 거룩한 곳으로 구별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로 인한 천국적 퀄러티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 왕국에는 이런 퀄러티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AC.1437)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주님은 결국 천적이며, 사랑인 것들을 얻으셨음을 말합니다. and into the land of Canaan they came” signifies that he attained to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 주님은 마침내 천적이며, 사랑인 것들에 도달하셨습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이 여기서 연유합니다. 이런 천적 사랑이 어린 시절 주님에게 맨 먼저 유입되며, 서서히 스며든 것입니다. 이것은 씨가 되어 이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씨는 천국이며, 주님은 여호와로부터 출생하셨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자기 안에 그 씨로 천국을 가지신 유일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씨는 악한 씨요, 더러운 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시는 새로운 씨를 받아야 합니다. 아멘, (AC.1438)

 

※ 이상으로 위 5절의 내적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선이신 주님은 늘 곁에 있어온 진리와, 순진무구한 감각으로 받아들인 모든 진리, 그리고 비록 아직은 어슴푸레하지만 모든 기억-지식과 애정 및 생명의 에센셜들을 가지고 천국, 사랑의 여정을 시작, 결국 도달하셨다

2021-09-17(D6)-매일예배(2193,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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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Rsvdjn4O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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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25.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Verse 4. And Abram went as Jehovah spoke unto him; and Lot went with him. And Abram was a son of five years and seventy years when he went forth out of Haran.

 

아브람’, 이미 말씀드린 대로, 휴먼 에센스 측면에서 주님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By “Abram,” as already said, is represented the Lord as to his human.

 

※ 휴먼 에센스(human essence), 이 에센스를 우리말로 옮기기가 살짝 개운치가 않습니다. 굳이 옮기자면, ‘인간으로서의 본질(本質)’ 정도가 되겠습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정수(精髓)’, ‘진수(眞髓)’도 있습니다. 창12는 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주님의 인성(人性)이 신성(神性)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곧 신적 인성이 되어가시는 과정이므로 필요한 곳에서는 단순히 ‘인성’으로 번역하겠습니다.

 

※ ‘아브람’은 주님의 휴먼 에센스 측면을, ‘아브라함’은 주님의 디바인(Divine) 에센스 측면을 각각 표상합니다. (AC.1426)

 

※ 1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휴먼 에센스를 유전하신 주님이 그러나 자신에게 디바인 에센스 역시 있음을 처음 자각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AC.1407)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신성한 것을 향하신 주님의 진보, 나아가심을 말합니다. And Abram went as Jehovah spoke unto him” signifies his progression toward Divine things;

 

※ 주님의 휴먼 에센스가 디바인 에센스로 되어가는 첫발을 떼신 것, 그 여정의 시작을 말합니다. (AC.1427)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감각적인 것을 말합니다. ‘’ 역시 주님을 표상하는데, 특별히 육체적 감각을 가진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주님을 표상합니다. and Lot went with him” signifies what is sensuous; by “Lot” is represented the Lord as to his sensuous and corporeal man;

 

※ 주님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것 외에는 여느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몸, 곧 육체적 감각을 가지셨는데, ‘’은 주님의 이런 측면을 표상합니다. 주님은 타고나신 이런 외적 속성들로 하여금 일생을 통해 천적 속성들과 하나 되게 하셔서 결국 신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인성, 주님의 휴먼은 우리와 달리 나중에 신적 인성, 디바인 휴먼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화, 영광화(glorification)입니다. (AC.1428)

 

아브람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직은 신성이 많지 않으셨음, 충분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and Abram was a son of five years and seventy years” signifies that as yet there was not very much of the Divine;

 

※ 말씀에서 ‘’(7), ‘칠십’(70)은 거룩함(AC.395, 433, 716, 881), 특히 주님을 가리키며, 그래서 신적 거룩, 디바인 홀리니스(Divine holiness)를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숫자 ‘’(5)는 ‘적다’를 표시합니다(AC.649). 그래서 ‘칠십오’(75)는 신성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AC.1429)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주님의 불투명한 상태를 말합니다. when he went forth out of Haran” signifies an obscure state of the Lord.

 

※ ‘하란’은 데라, 아브람, 그리고 라반, 곧 우상숭배와 관련된 곳입니다. 즉, 예배가 외적일 뿐이었던 곳이지요. 이런 ‘하란’도 내적 의미로 넘어가면 더 이상 ‘우상숭배’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어슴푸레하다’, ‘불투명하다’ 같은 의미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위 표현이 곧 주님의 불투명한 상태를 표상하는 이유입니다. (AC.1430)

 

※ 이상으로 위 4절의 내적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이 신성(神性, Divine things)을 향하실 때, 주님의 육체적 감각들도 함께 하였으며, 그때는 아직 주님의 신성이 충분하지 않아 어슴푸레한 상태였다.

2021-09-16(D5)-매일예배(2193,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4),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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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r2oir1Vy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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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눈 상태가 안 좋아 하루 이틀에 한 챕터씩 진도를 나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당분간은 며칠에 한 번씩, 한 챕터 하는 데 여러 날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양해 바랍니다...

 

 

창12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THE INTERNAL SENSE

 

 

1407. 1절,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Verse 1. And Jehovah said unto Abram, Get thee out of thy land, and from thy birth, and from thy father’s house, to the land that I will cause thee to see.

 

이 말씀과 이어지는 내용은 그 기록된 대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표상이며, 각 단어는 깊은 의미들이 있습니다. These and the things which follow occurred historically, as they are written; but the historicals are representative, and each word is significative.

 

※ 주님의 말씀은 사람의 몸과 같습니다. 몸이 영을 담는 그릇이듯, 말씀의 겉 글자는 속뜻을 담는 그릇입니다. 육이 잠잠할 때, 영이 생생해지듯 사람의 마음이 말씀의 겉 글자로부터 물러날 때, 말씀의 내적 의미, 곧 속뜻은 또렷해집니다. (AC.1408)

 

※ 비록 말씀을 겉 글자로만 읽고 신앙생활을 했어도 그 천성이 천진난만하고, 선하여 말씀의 최종 결론인 주님 사랑, 이웃 사랑, 즉 체어리티의 삶 가운데 계신 분은 안전하며, 괜찮습니다. 이런 분은 나중에 말씀을 겉 글자로 읽은 데서 온 모든 오류가 쉽게 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AC.1408)

 

‘아브람’은 그 속뜻, 그 내적 의미로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주님을 의미합니다. By “Abram” in the internal sense is meant the Lord, as has been said before.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는 모든 것에 관한 첫 번째 눈 번쩍 떠짐, 곧 깨달음(realization)을 말합니다. By “Jehovah said unto Abram” is signified the first mental observation of all;

 

※ 고대인들은 어떤 것이 양심에 의하거나, 무슨 내면의 소리 및 말씀에 의한 훈계 등이 있을 때, 그걸 가리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이 표현은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문체입니다. (AC.1410)

 

‘너는 너의 땅을 떠나라’, 한글 번역은 ‘고향’인데요, 이는 주님이 물러나 계셔야 했던 육적이고 세속적(혹은 세상적)인 것을 뜻합니다. “get thee out of thy land” signifies the corporeal and worldly things from which he was to recede;

 

※ 아브람의 고향은 우상숭배의 땅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주님을 표상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런 외적인 것들로부터는 물러나 계셔야 하며, 아니 오히려 이런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물러나야 하며, 주님 안의 외적인 것들은 역시 주님 안의 내적인 것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AC.1411)

 

‘너의 출생으로부터’, 한글 번역은 ‘친척’으로 번역했는데요, 이것은 역시 육적이고 세속적인데, 더 외적인 것을 뜻합니다.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이 역시 육적이고 세속적인데, 이번엔 더 내적인 것을 뜻합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앞으로 제공되어 보게 될 영적, 천적인 것을 뜻합니다. “and from thy birth” signifies the more exterior corporeal and worldly things; “and from thy father’s house” signifies the more interior of such things; “to the land that I will cause thee to see” signifies th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that were to be presented to view.

 

※ 몸을 가진 사람은 그 특성상, 그 안에 육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있기 때문인데, 그러나 외적 및 내적, 두 가지로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인 기쁨 같은 것은 외적, 어펙션(affection, 애정) 같은 것은 내적입니다. (AC.1412)

 

※ 1절의 속뜻, 그 내적 의미는 태어나실 때의 주님의 첫 상태입니다. 주님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잉태되셔서 처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신 것 말고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으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허약함(infirmity)을 주님도 물려받으셨지요.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두 가지 유전, 곧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이 있습니다. 주님의 경우는, 아버지로부터는 신성을, 처녀 어머니로부터는 다른 사람들처럼 허약함이셨습니다. 주님의 일생은 여호와로서의 신성이 드러나도록 허약한 인성으로 하여금 신성이 되게 하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주님은 인성의 모든 외적인 것들, 곧 육적, 세속,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물러나 계셨던 것입니다. (AC.1414)

 

 

1415. 2절,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Verse 2. And I will make thee into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thee, and will make thy name great; and thou shalt be a blessing.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하늘과 땅에 있는 왕국을, ‘큰 민족’, 천적인 것과 선으로 말미암음을, “I will make thee into a great nation” signifies the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t is said “a great nation,” from things celestial and from goods;

 

※ 한글 번역은 ‘민족’이지만, 천적으로는 ‘나라’, 영적으로는 ‘왕국’입니다. 사람들의 퀄러티가 천적이며, 그런 사람들한테서 선한 체어리티가 있는 곳, 그곳이 ‘나라’요, ‘왕국’입니다. 주님은 이 나라의 주인이시며, 나라 그 자체, 왕국 그 자체이십니다. 모든 천적인 것과 체어리티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AC.1416)

 

※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창17:5), 사래의 이름을 ‘사라’(창17:15-16)로 개명하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에 있는 글자 ‘h’가 여호와, 주님을 표현하기 때문이며, 사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C.1416)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17:5)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17:15-16)

 

‘네게 복을 주어’, 천적인 것의 결실과 영적인 것의 배가를,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영광을, “and I will bless thee” signifies the fructification of celestial things and the multiplication of spiritual things; “and will make thy name great” signifies glory;

 

※ ‘복’은 외적, 곧 세상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이익, 잘됨을 말합니다.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요삼1:2)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천적, 영적 이익, 잘됨입니다. 천적인 것들의 결실, 열매를 많이 맺음과 영적인 것들의 배가, 곧 번성을 말합니다. (AC.1420)

 

※ 천국에서는 모든 이를 섬기며, 가장 작은 자가 되는 것이 ‘이름이 창대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6-28)

 

천국이 천국인 것은 모두가 자기의 모든 것을 남과 나누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모든 것 되신 주님이 친히 본을 보이시며, 자신을 인류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영광이며, 이것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에 담긴 내적 의미입니다. (AC.1419)

 

‘너는 복이 될지라’, 일반적이든 구체적이든 만물이 다 주님으로 말미암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and thou shalt be a blessing” signifies that from the Lord are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 ‘복이 되는 것’,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모든 선의 근원이 되는 것, 모든 선을 주는 자가 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 아브람으로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 오직 주님! 오직 주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주님으로부터 모든 천적, 영적 퀄러티가 오고, 그리고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라야 선한 것이며, 그래야만 참으로 진정한 것입니다. 세상 복에 이렇게 주님으로 말미암는 천적, 영적 복이 함께 할 때, 즉 외적, 내적 복 가운데 있을 때, 이때가 바로 참으로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AC.1420)

 

 

1421. 3절,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Verse 3. And I will bless them that bless thee, and will curse him that curseth thee; and in thee shall all the families of the ground be blessed.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모든 행복은 심정에 우러나 진심으로 주님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I will bless them that bless thee” signifies all happiness to those who acknowledge the Lord from the heart;

 

※ 주님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복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님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모든 선 안에 거하며, 그로 말미암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됩니다. (AC.1422)

 

※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것은 고대인들의 관습적 언어 형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시68:26)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시96:2)

 

19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0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단2:19-20)

 

사가랴와 시므온도 역시 ‘여호와를 찬송하라’입니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눅1:64)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2:28)

 

여호와를 찬양, 찬송하는 것은, 그분을 노래하는 것이요, 그분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요, 그분의 지혜와 권능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마음의 애정을 다해 주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주님의 축복 가운데 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AC.1422)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주님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행을, “and will curse him that curseth thee” signifies unhappiness to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him;

 

※ 주님은 저주는커녕, 누구를 미워하시지도, 벌하시거나 외면하시거나 죽이시거나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셔서 본성상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며, 그때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아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저주는 모든 복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복에 포함된 모든 것과 정반대되는 모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끊어지는 것, 그래서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이것이 저주이며, 저주 아래 놓인 자들의 처지가 곧 모든 불행인 것입니다. (AC.14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참되고 선한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in thee shall all the families of the ground be blessed” signifies that all things true and good are from the Lord.

 

※ ‘땅’, 곧 ‘지면’(ground)은 교회를 뜻합니다.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신앙을 가리키지요. (AC.566) 여기 ‘모든 족속’은 ‘가문들’(families)로, 모든 선과 진리를 가리킵니다. (AC.1424)

2021-09-15(D4)-매일예배(2191,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1-3),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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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F0zzW48t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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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1

 

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279. 1절로 9절에서 다루는 주제는 첫 번째 고대교회로서, 홍수 후에 있었던 교회입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first ancient church, which was after the flood (verses 1–9).

 

 

1280. 1절은 그 첫 번째 상태로서, 모두가 하나의 교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Concerning its first state, that all had one doctrine (verse 1);

 

※ ‘언어’는 교리, ‘’은 교회이며,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는 전반적으로, ‘말이 하나였더라’는 구체적으로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양하게 퍼져나간 고대교회의 내적, 외적 예배의 모양과 형태는 저마다 다 달랐지만, 처음, 곧 아직까지는 하나의 교리였다는 말이며, 이것은 마치 신체 내 각 장기와 모든 지체가 저마다 그 역할과 기능은 다 다르지만 한가지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AC.1284)

 

2절은, 그 두 번째 상태, 곧 그 교리가 외면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its second state, that it began to decline (verse 2);

 

※ ‘동방으로 옮기다가’는 그들이 체어리티의 삶에서 점점 후퇴하였음을, ‘시날 평지를 만나’는 그들의 예배가 점점 불결해지고, 주님을 모독하게 되었음을 뜻하며, 이는 곧 그들이 처음 교리, 신학, 가르침을 가볍게 여기며 외면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AC.1290-1292)

 

3절, 세 번째 상태, 탐욕에서 나온 거짓들이 군림하기 시작했음을 its third, that the falsities of yearnings began to reign (verse 3);

 

※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는 자기들을 위해 변화시킨 거짓과 자기 사랑에서 온 악을 말하며, ‘벽돌로 돌을’은 거짓으로 진리를, ‘역청으로 진흙을’은 탐욕으로 선을 각각 대신하는 것입니다. ‘서로 말하되’는 이런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4절, 네 번째 상태입니다. 사람들이 신성한 예배를 가지고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its fourth, that men began to exercise dominion by means of Divine worship (verse 4)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는 그들이 교리와 예배의 틀, 프레임을 짰음을, 여기 ‘성읍’은 교리, ‘탑’은 자아를 예배함입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는 그들의 지배권이 하늘에 속한 것들에까지 미치도록을, ‘우리 이름을 내고’는 그런 식으로 유명해져서 권세를 누리고자 함을,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이런 방법 말고는 자기들이 인정받을 길이 없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5절, 6절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 교회의 상태가 변했습니다. and therefore the state of the church was changed (verses 5–6);

 

※ ‘여호와께서 내려오셨더라’는 그들 위에 내려질 심판을,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는 그들이 교리를 뒤집고 예배를 모독했기 때문임을, ‘사람들이 건설하는’은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런 걸 고안하였음을,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는 그들 모두 신앙과 교리에 관한 하나의 진리를 가졌음을, ‘이같이 시작하였으니’는 그들이 지금 변화에 대한 추구를 시작했음을,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는 그들의 상태가 지금 안 바뀌면...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는 이상과 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7절로 9절입니다. 그 결과, 신앙의 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so that none had the good of faith (verses 7–9).

 

※ 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는 그 결과,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아, 그리고 잠깐, 여기 ‘우리’라는 복수 형태가 사용되는 이유는, 이것이 심판의 집행이고, 이 집행은 영들, 실제로는 악한 영들에 의해서 집행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는 어느 누구도 교리의 진리를 갖고 있지 않음을,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는 모두가 서로 상충되는 가운데 있음을, 8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는 그들은 인정받지 못했음을,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는 그런 교리는 받으시지 않았음을, 9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는 그런 예배, 곧 주님을 향한 예배에 자아 사랑이 저변에 깔려 있어 몹시 불결, 순수를 짓밟은 예배, 즉, ‘바벨’이라 하는 예배를,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는 이 고대교회의 상태, 곧 내적 예배가 소멸되기 시작한 상태를, 여기 ‘땅’은 교회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는 내적 예배가 전멸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10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1281. 두 번째 고대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교회는 에벨로 명명되며, 그 퍼져나감 및 상태, 그리고 결국엔 우상숭배로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The second ancient church is then treated of—which was named from Eber—and its derivation and state, which finally ended in idolatry (verses 10–26).

 

※ 10절입니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는 두 번째 고대교회의 퍼져나감을, ‘셈’은 일반적으로 내적 예배를, ‘백 세’는 시작 당시 이 교회의 상태를, ‘아르박삿’은 이 이름으로 명명된 나라였으며,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상징함을, ‘홍수 후 이 년’은 홍수 후 두 번째 교회임을 각각 상징합니다. (AC.1329)

 

가급적 반복되는 표현들은 빼고, 좀 특별한 표현들 위주로 풀이를 달겠습니다.

 

11절,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는 셈이라는 교회가 아르박삿 이후 존속한 기간과 상태를, ‘자녀를 낳았으며’는 교리적 것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AC.1336)

 

12절,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는 두 번째 상태의 시작 및,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상태 자체를, ‘셀라를 낳았고’는 그렇게 파생됨을 상징합니다. 셀라는 그 이름으로 명명된 나라이며, 기억-지식에 존재하는 것을 이 이름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AC.1339)

 

14절, ‘셀라는 삼십 세에’는 세 번째 상태의 시작을, ‘에벨을 낳았고’에서 ‘에벨’은 그 이름으로 부르던 나라였으며, 히브리 나라는 이 에벨을 아버지로 한 나라입니다. 히브리 나라는 일반적으로 이 두 번째 고대교회의 예배를 상징합니다. (AC.1342)

 

16절, ‘에벨은 삼십사 세에’는 이 교회의 네 번째 상태의 시작을, ‘벨렉을 낳았고’, 벨렉은 앞장 25절은 보면,

 

25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창10:25)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은 그의 아우 욕단과 함께 이 두 번째 고대교회를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AC.1345)

 

벨렉과 욕단은 에벨이라는 교회의 두 예배, 곧 내적 예배인 벨렉과, 외적 예배인 욕단을 의미합니다. ‘땅’은 교회를 의미하므로, ‘땅’, 곧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은,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18절, ‘벨렉은 삼십 세에’는 다섯 번째 상태의 시작을, ‘르우’는 훨씬 더 외적인 예배를 상징합니다. (AC.1347)

 

20절, ‘르우는 삼십이 세에’는 여섯 번째 상태의 시작을, ‘스룩’은 외적인 것들 가운데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AC.1349)

 

22절, ‘스룩은 삼십 세에’는 이 교회의 일곱 번째 상태의 시작을, ‘나홀’은, 예배가 외적인 것에 치중하다가 아예 우상숭배로 기울어진, 그런 예배를 말합니다. (AC.1351)

 

24절, ‘나홀은 이십구 세에’는 이 교회의 여덟 번째 상태이 시작을, ‘데라’는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AC.1353)

 

26절입니다. ‘데라는 칠십 세에’는 아홉 번째 상태의 시작을, 그리고 이 상태가 끝입니다. 아브라함, 나홀, 하란부터는 실제 했던 인물들(persons)이었습니다. (AC.1355)

 

창1부터 여기 아브라함 전까지는 고대인들의 문체인 일종의 스토리텔링입니다. 긴 역사, 생생한 많은 일들을 무슨 재미난 역사서술식 이야기로 함축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며, 고대인들은 이런 문체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처음 열한 장은 글자 그대로인 겉 글자의 뜻으로 읽으면 여러 난센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The Word)은 모두 네 가지 문체로 기록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27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282. 세 번째 고대교회의 기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우상숭배로 시작, 표상(表象) 교회, 표현(representative) 교회가 되었습니다. The origin of a third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from being idolatrous became representative (verses 27–32).

 

※ 27절,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는 우상숭배의 기원과 그 파생되어 나감, 그리고 거기서 표상교회가 나왔음을 가리킵니다. ‘데라’ 하면 우상숭배(idolatrous worship)를 상징합니다. (AC.1359)

 

※ 우상숭배는 크게 세 종류입니다. 자기를 사랑함, 세상을 사랑함, 그리고 감각을 사랑함, 곧 관능적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 세 종류의 우상숭배를 데라의 세 아들, 아브라함, 나홀, 그리고 하란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AC.1357)

 

※ 표현(representative)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표현, 즉 그것의 속이 아닌, 겉만 취하는 것입니다. 가령, 꼭 선한 왕이 아닌, 아주 악한 왕이라 하더라도 왕은 주님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왕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왕의 기능과 역할을 취하여 주님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 배우들이 실제 그 배우의 성품이 아닌, 극 중 인물을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AC.1361)

 

※ 유대교회에서, 그리고 말씀에서 ‘표현’된 것은 주님과 주님의 왕국, 곧 사랑의 천적인 것들과, 신앙의 영적인 것들입니다. 또 이것들에 속하는 많은 것들, 곧 교회에 속하는 모든 것이 표현됩니다. (AC.1361)

 

※ 교회가 표현뿐인 교회가 된 이유는 내적 예배가 완전히 사라지고 우상숭배로 전락했을지라도 여전히 지상은 천국과, 즉 주님은 천국을 통하여 인간과 어떤 결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AC.1361)

 

28절,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는 내적 예배는 완전히 잊히고, 껍데기뿐인 우상숭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란’은 내적 우상숭배를, ‘그 아비 데라’는 일반적으로 우상숭배를, ‘고향’은 그것이 발원한 기원을, ‘갈대아인의 우르’는 그 안에 거짓이 있는 외적 예배를 작각 상징합니다. (AC.1365)

 

29절,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는 우상숭배, 곧 우상을 섬기는 예배 가운데 보면, 악과 거짓 간 결혼들이 있는데 바로 그걸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악을, 아내들은 거짓을 상징합니다. (AC.1369)

 

※ 아브라함과 사라 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위와 같은 속뜻이 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표현’의 의미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30절,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는 악과 거짓이었던 것이 더 이상 무슨 재생산이 없었음을 말합니다. (AC.1371)

 

31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는 우상숭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신앙의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 바야흐로 본격적인 표상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AC.1373)

 

32절,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더라’는 우상숭배, 곧 우상을 향한 예배를 그치고, 아브람을 통한 표상교회(a representative church)를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2021-09-10(D6)-매일예배(2188, 아케이나말씀리딩.창11), '바벨, 에벨, 아브라함, 고대교회의 세 상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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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ZnpV5-1aZY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10, 아케이나말씀리딩.창11), '바벨, 에벨, 아브라함, 고대교회의 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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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0

 

1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1130. 1절, 이 장 전체를 통해 다루는 내용은 고대교회와 그 전파, 퍼져나감입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throughout this whole chapter is the ancient church, and its propagation (verse 1).

 

 

2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1131. 2절, 내적 예배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야벳의 아들’입니다. They who had external worship corresponding to internal are the “sons of Japheth” (verse 2).

 

※ 예배의 실체는 애정을 가지고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경배, 예배하되 참된 애정이 없으면 그건 경배도, 예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체어리티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서 오직 체어리티의 사람들, 실제로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심정을 알며, 그래야 주님을 참된 애정으로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의 실체가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천진난만한 사람들입니다. ‘야벳’이 바로 이런 예배이며, 이런 예배 가운데 있는 이들이 바로 ‘야벳의 아들’입니다. (AC.1150)

 

3, 4절, 내적 예배로부터 더 먼 외적 예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고멜의 아들, 야완의 아들’입니다. They who had worship more remote from internal are the “sons of Gomer and Javan” (verses 3–4).

 

※ 지상의 예배는 갈수록 더 감각적, 곧 세상적, 육체적, 지상의 것과 함께하려 하기 때문에, 영적 예배, 곧 내적 예배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AC.1153:3)

 

5절, 여전히 더 먼, 훨씬 더 먼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여러 나라 백성’, 곧 ‘여러 나라의 섬들’입니다. And they who had worship still more remote are the “isles of the nations” (verse 5).

 

※ 말씀에서 ‘섬들’은 진정한 내적 예배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사람들, 겉으로는 무슨 예배라고 드리기는 하는데, 정말 무지하여 주님에 관해, 교회 신앙의 교리들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AC.1158:1)

 

 

6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1132. 6절, 지식 및 기억 속 지식들, 그리고 제의(祭儀, rituals)를 경작하여 내적인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 떼어낸 사람들, 이들이 바로 ‘함의 아들’입니다. They who cultivated knowledges, memory-knowledges, and rituals, and separated them from things internal, are the “sons of Ham” (verse 6).

 

※ 주님의 것을 열심히 연구, 심지어 말씀의 속뜻, 곧 아케이나에 밝고, 신앙 관련, 모르는 게 없으며, 어떤 질문이든지 막힘이나 망설임이 없고, 목회 경험 풍부, 무슨 영적 기적과 권능을 행하여도, 그의 삶 가운데 체어리티가 없고, 선행의 삶이 없는, 그리고 끝에 가서 엉뚱하게도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 이들은 결국 처음부터 주님보다는 자기를 위하여 그랬던 것이 틀림없으며, 이들이 바로 ‘함의 아들’입니다.

 

7절,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경작한, 곧 영적 지식을 추구한 사람들은 ‘구스의 아들’,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경작한, 곧 천적 지식을 추구한 사람들은 ‘라아마의 아들’입니다. They who cultivated the knowledges of spiritual things are the “sons of Cush”; and they who cultivated the knowledges of celestial things are the “sons of Raamah” (verse 7).

 

※ 여기 영적, 천적 지식을 추구하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적 예배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내적 예배 없이 이런 걸 추구하게 되면, 그 결과는 자기가 가진 거짓 원리들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한 애정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133. 8-9절,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예배는 겉과 달리 그 속이 악과 거짓이며, 그런 예배를 ‘니므롯’이라 합니다. Those treated of who have external worship in which are interior evils and falsities, “Nimrod” being such worship (verses 8–9).

 

※ ‘니므롯’은 내적 예배를 외적 예배로 만드는, 변형시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내적 예배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예배, 곧 예배의 실체인 반면, 외적 예배는 이것이 없는, 그래서 사실은 예배가 아닌 것이며, 따라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주님의 일을 거꾸로 뒤집는 사람들이며,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라는 말은, 이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미혹케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는 말은, 얼마나 이런 미혹이 성행했으면 그만 하나의 속담이 될 정도였으며, 이런 니므롯의 종교는 사람 마음을 쉽게 훔쳐 포로로 만들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AC.1173)

 

10절, 그런 예배에 있는 악과 The evils in such worship (verse 10).

 

※ 겉은 거룩하나 속은 주님을 모독하는 그런 예배를 뜻합니다. 겉과 속은 결국 같이 갑니다. 속이 거룩하면 결국 겉도 거룩해지며, 속이 더러우면, 결국 겉도 더러워집니다. 이들은 점점 더러워지며, 이들의 예배는 점점 더 주님을 모독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AC.1182)

 

11, 12절, 그런 예배 가운데 있는 거짓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e falsities in such worship (verses 11–12).

 

※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는 위와 같은 외적 예배 가운데 있던 자들이 이제 예배의 내용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는 이런 이성 활동, 이런 추론 활동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신앙의 교리들을 꾸며냈다는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인간의 이성, 합리성을, ‘니느웨’는 인간 이성에서 나오는 거짓, ‘갈라’는 탐욕에서 나오는 거짓입니다. (AC.1184)

 

 

13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1134. 13-14절, 기억 속 지식들을 가지고 추론,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예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Concerning those who form for themselves new kinds of worship out of memory-knowledges by means of reasonings (verses 13–14);

 

※ 내적 예배, 즉 주님 말씀의 속뜻은 오직 교회에 속한 것만을 다룹니다. 그러므로 이런 속뜻 없이 드리는 외적 예배, 그리고 그걸 또 인간의 머리로 추론, 무슨 예배를 만든들 그건 그저 겉보기에 치중한 예배 의식 외에 더 뭐가 아닙니다. 속뜻이 없는 무슨 장중한 예배 절차 같은 것은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AC.1195)

 

14절, 그리고 신앙 관련 지식들을 단순한 기억 속 지식들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and concerning those who make mere memory- knowledge of the knowledges of faith (verse 14).

 

※ ‘블레셋’은 신앙에 관하여 말은 많이 하고, 구원은 신앙 안에 있다 하면서 정작 신앙의 삶은 없는 사람들을 고대교회에서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할례받지 않은 자’(삼상14:6)입니다.

 

 

15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1135. 15-18절, 내적 요소가 없는 외적 예배, 이게 바로 ‘가나안’인데요, 이 예배의 파생 Concerning external worship without internal, which is “Canaan,” and the derivations of this worship (verses 15–18);

 

※ ‘가나안’은 내용물이 하나도 없는, 겉모습만 있는 예배입니다. 이는 마치 주님 오시기 전과 후, 유대인들의 예배와 같습니다. 그들은 외적 예배를 대단히 엄격하게 준수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내용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여, 그들은 인간은 오직 육체로만 존재한다 믿었습니다. 영, 신앙, 주님, 영적, 천적 생명, 사후 삶 등의 본성에 대해 그들은 완전 무지했습니다. 사후 삶에 대해 무지하고, 그래서 그걸 부정하게 되면, 이후 그의 모든 예배는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가 되며, ‘가나안’은 바로 이런 예배를 말합니다. (AC.1200)

 

19-20절, 및 그 확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and its extension (verses 19–20).

 

 

21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2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1136. 21절, 내적 예배, 바로 ‘’인데요, 이 예배와, 심지어 두 번째 고대교회에까지 미친 그의 확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Concerning internal worship, which is “Shem,” and its extension even to the second ancient church (verse 21).

 

※ ‘에벨’은 두 번째 고대교회입니다. 이 ‘에벨’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이 ‘에벨’에서 나왔습니다.

 

22-24절, 내적 예배와 그 파생, 즉 퍼져나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예배는 체어리티에서 비롯되는데, 지혜, 지성, 기억 속 지식 및 지식 등으로 다양하게 퍼져나갔고, 이를 상징하여 ‘나라들’이라 하였습니다. Concerning internal worship and its derivations, which being from charity are derivations of wisdom, of intelligence, of memory-knowledge, and of knowledges, which are signified by the “nations” (verses 22–24).

 

※ 내적 예배를 통해서는 주님과 직접 교통하며, 그 결과, 천사들처럼 주님으로부터 모든 신령한 좋은 것을 받게 됩니다.

 

 

25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1137. 25절, 시리아에서 일어난 어떤 교회에 관한 내용으로, 이 교회는 에벨이 세웠고, 두 번째 고대교회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는 ‘벨렉’이라는 내적 예배와, ‘욕단’이라는 외적 예배를 드렸습니다. Concerning a certain church which arose in Syria, instituted by Eber, which is to be called the second ancient church, the internal worship of which is “Peleg,” the external “Joktan” (verse 25).

 

26-29절, 이 예배의 제의들이 26절로 29절에 죽 나열된 나라 이름들입니다. Its rituals are the nations named in verses 26 to 29.

 

30절은 이 교회의 확장입니다. The extension of this church (verse 30).

 

 

31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1138. 31-32절, 고대교회에 각 나라의 타고난 천성을 따라 다른 종류의 예배들이 있었습니다. That there were different kinds of worship in the ancient church, in accordance with the genius of each nation (verses 31–32).

2021-09-09(D5)-매일예배(2187, 아케이나말씀리딩.창10),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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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c8nsXX-PG0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9, 아케이나말씀리딩.창10), '셈, 함, 야벳의 족보, 가나안, 니므롯, 에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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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 지금 이어지는 주제는 거듭난 사람의 상태인데요, 속 사람이 주(主), 또는 먼저 되고, 겉 사람이 종(從), 또는 나중이 되는 상태입니다. The subject that now follows on is the state of the regenerate man; first, concerning the dominion of the internal man, and the submission of the external.

 

창9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8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972. 즉, 겉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이 속 사람에게 종속되고, 속 사람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1절로 3절의 아케이나입니다. 4절, 5절은, 그러나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신앙의 선과 진리를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했던) 갈망(yearnings)에 침수, 잠기게 하거나, 속 사람에게 속한 선과 진리를 가지고 악과 거짓을 컨펌하게 되기 때문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처벌받게 하고, 계속해서 6절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영적인 사람, 혹은 하나님의 형상(image)을 그와 함께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Namely, that all things of the external man have been made subject to and serviceable to the internal (verses 1 to 3), but that especial care must be taken lest the man should immerse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in yearnings, or by the goods and truths which are of the internal man should confirm evils and falsities, which must of necessity condemn him to death, and punish him (verses 4 and 5); and thus destroy the spiritual man, or the image of God, with him (verse 6).

 

7절, 이런 일만 피하면 모든 일이 형통할 것입니다. That if these things are avoided, all will go well (verse 7).

 

 

973. 다음 8절로 11절, 홍수 후 인간의 상태입니다. 주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며, 그 방법은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해서 인간이 태고교회 마지막 후손처럼 멸망당하지 않도록 인간의 상태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It next treats of the state of man after the flood, whom the Lord had so formed that he might be present with him by means of charity, and thus prevent his perishing, like the la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verses 8 to 11).

 

※ 즉, 체어리티의 삶을 사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며, 그렇게 주님과 늘 연결되어 있어 영원히 안전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974. 12저로 17절입니다. 그후, 체어리티를 수용할 수 있게 된, 홍수 후 이어지는 인간의 상태를 ‘구름 속 무지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닮게 됩니다. Afterwards the state of man subsequent to the flood, who is in the capacity to receive charity, is described by the “bow in the cloud,” which he resembles (verses 12 to 17).

 

12, 13절은, 이 ‘무지개’는 그 교회에 속한 사람 혹은 거듭난 사람에 관한 것임을, 14, 15절은,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도, 16절은, 특별히 거듭날 수 있는 사람도, 그리고 17절에서는, 결론적으로,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 뿐 아니라 아직 속하지 않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이 무지개는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This “bow” has regard to the man of the church, or the regenerate man (verses 12, 13); to every man in general (verses 14, 15); specifically, to the man who is in the capacity of being regenerated (verse 16); and consequently not only to man within but also to man without the church (verse 17).

 

 

975. 끝으로 19절 이하에서는, 고대교회에 관한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셈’은 내적 예배를, ‘야벳’은 그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를, ‘함’은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을, ‘가나안’은 내적 예배와 분리된 외적 예배를 각각 가리킵니다. It treats lastly of the ancient church in general; by “Shem” is meant internal worship; by “Japheth,” corresponding external worship; by “Ham,”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and by “Canaan,” external worship separated from internal (from verse 19 to the end).

 

이 교회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 및 활동을 통해서, 먼저 자기도 모르게 여러 오류와 곡해, 왜곡들 가운데로 점점 빠져들어갔습니다. 이것이 19절로 21절 내용입니다. This church, through the desire to investigate from itself the truths of faith, and by reasonings, first lapsed into errors and perversions (verses 19 to 21).

 

22절, 내적 예배와 분리된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신앙의 교리 자체를 조롱하며, 그 결과, 그런 오류와 왜곡 가운데로 빠져듭니다. 23절은, 그러나 내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외적 예배 가운데에도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관한 선한 해석과 함께 그들을 넉넉히 품어줍니다. Those who are in external worship separated from internal, deride the doctrine of faith itself, in consequence of such errors and perversions (verse 22); but those who are in internal worship, and in the external worship thence derived, put a good interpretation on such things, and excuse them (verse 23).

 

※ 즉, 신앙의 교리 중 무슨 연약함들이 보여도 저들처럼 조롱하는 대신 이들, 곧 참된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의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24, 25절입니다. 내적 예배에서 분리된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가장 안 좋은 경우이며, 26, 27절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조차 교회에서 그런 아주 낮은 봉사라도 할 수 있습니다. Those who are in external worship separated from internal, are most vile (verses 24, 25); and yet they are able to perform vile services in the church (verses 26, 27).

 

 

976. 끝으로, 28절, 29절입니다. 첫 번째 고대교회의 기간과 상태가 노아의 년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Lastly, the duration and state of the first ancient church are described by the years of Noah’s age (verses 28, 29).

2021-09-07(D3)-매일예배(2186, 아케이나말씀리딩.창9),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무지개, 노아의 세 아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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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1JWnstFmk8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7, 아케이나말씀리딩.창9),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무지개, 노아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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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7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https://youtu.be/x4mLbHl9ISM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6, 아케이나말씀리딩.창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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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6:1-8

 

554.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state of the people before the flood.

 

THE INTERNAL SENSE

 

560.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기 전에 먼저, 홍수 이전 교회의 상황은 어땠는지를 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efore proceeding further we may mention how the case was with the church before the flood.

 

일반적으로는, 후대에 일어난 교회들의 상황과 같았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즉, 주님 강림 전 유대교회의 경우나, 주님 강림 후 기독교회의 경우처럼, 참 신앙 지식의 부패와 타락, 뒤집힘 및 불순물을 섞음 등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홍수 전 교회에 속한 사람의 경우,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서운 신념, 곧 소름 끼치는 망상을 품게 되었고, 신앙에 속한 선과 진리를 역겨운 갈망, 욕망에 철저히 잠기게 하여 그 결과, 그들 안에 리메인스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지경까지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Speaking generally, it was as with succeeding churches, as with the Jewish church before the Lord’s advent, and the Christian church after his advent, in that it had corrupted and adulterated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ut specifically, as regards the man of the church before the flood, he in course of time conceived direful persuasions, and immersed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in foul yearnings, insomuch that there were scarcely any remains in them.

 

그들이 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사실은 스스로를 질식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리메인스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AC.530), 사람을 짐승 수준의 삶에서 인간의 삶으로 고양하는 것이 바로 이 리메인스이기 때문입니다. When they came into this state they were suffocated as if of themselves, for man cannot live without remains; for, as we have said, it is in the remains that the life of man is superior to that of brutes.

 

리메인스를 가지고, 즉, 주님에게서 온 리메인스를 통해서, 사람은 사람이 될 수도,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 수도, 온갖 종류의 일들을 생각할 수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리메인스 그 안에는 영적, 천적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remains, that is, through remains from the Lord, man is able to be as man,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to reflect upon matters of every kind, and consequently to think and to reason; for in remains alone is ther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561. 그러면 리메인스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But what are remains?

 

리메인스는 사람이 유년기부터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배워 그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선과 진리뿐 아니라, 거기서 기원한 모든 상태, 가령, 영유아기 순진무구한 상태, 부모, 형제, 선생님과 친구를 향한 사랑의 상태,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및 가난한 자, 빈궁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상태 등, 한 마디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상태를 가리킵니다. They are not only the goods and truths that a man has learned from the Lord’s Word from infancy, and has thus impressed on his memory, but they are also all the states thence derived, such as states of innocence from infancy; states of love toward parents, brothers, teachers, friends; states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nd also of pity for the poor and needy; in a word, all states of good and truth.

 

선과 진리와 함께 기억에 각인된 이런 상태를 일컬어 리메인스라 합니다. 이것은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때 주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도 눈치 못 채게 조심조심 그의 속사람 안에 쌓아가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즉, 악과 거짓에 관련된 것들하고는 철저히 격리됩니다. These states together with the goods and truths impressed on the memory, are called remains, which are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and are stored up, entirely without his knowledge,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things that are proper to man, that is, from evils and falsities.

 

이 모든 상태는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것조차 잃는 것이 없도록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존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도록 전에 이런 경험을 했는데요, 사람의 모든 상태는 그의 영유아 때부터 아주 늙었을 때까지 내세에 그대로 보존될 뿐 아니라 다시 체험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상태는 그가 현세에 살면서 처음 겪었던 상태 그대로 정확히 다시 체험됩니다. All these states are so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that not the least of them is lost, as I have been given to know from the fact that every state of a man, from his infancy to extreme old age, not only remains in the other life, but also returns; in fact his states return exactly as they were while he lived in this world.

 

※ 사람의 사후, 그 영은 둘 또는 세 번의 상태변화를 겪게 되는데 보통은 첫 번째 변화 때, 지상의 모든 기억과 경험 등 외적인 것들이 휴면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즉, 주님이 원하실 때는 언제든지 꺼내어 다시 생생하게 재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영이 자신의 행적을 부인하거나 무엇을 확인해야 할 때 등이 되겠지요.

 

우리 기억에 아로새겨진 선과 진리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이노센스나 체어리티도 마찬가지, 즉, 하나도 잃는 것은 없습니다. Not only do the goods and truths of memory thus remain and return, but also all states of innocence and charity.

 

그리고 악과 거짓의 상태가 재생, 유지 및 다시 휴면상태로 들어갈 때,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심지어 아주 작은 것조차 말이지요, 이때는 주님이 선한 상태들을 가지고 누그러뜨리십니다. And when states of evil and falsity recur—for each and all of these, even the smallest, also remain and return—then these states are tempered by the Lord by means of the good states.

 

이 모든 사실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면, 그는 반드시 영원한 지옥살이, 곧, 영원히 지옥에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AC.468번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that if a man had no remains he must necessarily be in eternal damnation. (See what was said before at n. 468.)

 

 

562. 홍수 전 사람들은 결국 리메인스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게 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독특한 멘탈 때문인데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관해, 무서울 정도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멘탈적 특성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고자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들은 어마어마한 자아 사랑의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을 신으로 여기며, 자기들이 하는 생각은 무엇이든지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people before the flood were such that at last they had almost no remains, because they were of such a genius that they became imbued with direful and abominable persuasions concerning all things that occurred to them or came into their thought, so that they would not go back from them one whit, for they were possessed with the most enormous love of self, and supposed themselves to be as gods, and that whatever they thought was Divine.

 

이런 종교적 신념, 혹은 종교적 설득력, 이쯤 되면 종교적 수준의 자기기만인데요, 이런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어떤 사람들한테서도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고 질식시켜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내세에서는 이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은 다른 영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는데요, 이들이 나타나면 이들은 공포스럽다 판명된 자신들의 이 종교적 신념을 주입함으로써 사람들의 모든 사고능력을 거두어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쯤 하고, 나머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이어지는 그 부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AC.1265-1272) No such persuasion has ever existed in any people before or since, for it is deadly or suffocative, and therefore in the other life the antediluvians cannot be with any other spirits, for when they are present they take away from them all power of thought by injecting their fearfully determined persuasions, not to mention other matters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shall be spoken of in what follows.

 

 

563. 이런 종류의 자기기만이 사람을 점유, 점령하게 되면, 이것은 무슨 접착제처럼 착 달라붙어 만일 이것이 없었으면 여전히 남아있었을 선과 진리로 하여금 도저히 남아나게도, 더 이상 쌓이게도 하질 않습니다. 또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은 사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들은 이런 망상의 정상, 끝판왕에 도달, 결국 그들에게 부합하는 종말, 정말 전무후무한 멸망에 이르게 되며, 홍수와 다름없는 범람으로 질식당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종말을 ‘홍수’에 비유하며, 태고인들의 언어습관, 관용적 표현에 따라 같은 것, 곧, 홍수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When such a persuasion takes possession of a man, it is like a glue which catches in its sticky embrace the goods and truths that otherwise would be remains, the result of which is that remains can no longer be stored up, and those which have been stored up can be of no use; and therefore when these people arrived at the summit of such persuasion they became extinct of their own accord, and were suffocated by an inundation not unlike a flood; and therefore their extinction is compared to a “flood,” and also,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most ancient people, is described as one.

 

 

THE CONTENTS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And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an that they were good; and they took to themselves wives of all that they chose.

 

555. 사람과 더불어 교회가 있었던 곳에 갈망(yearnings, 동경, 욕구, appetites)이 일어나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갈망이 바로 ‘딸들’입니다. That with man, where the church was, yearnings—which are the “daughters”—began to reign.

 

※ ‘사람’은 그 시절 존재하던 인류를, ‘땅 위’는 교회가 있던 모든 지역을, ‘딸들’은 사람의 의지에 속하는 것들이며, 결과적으로는 갈망, 욕망을 상징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 안에 선을 위한 게 있으면 여전히 의지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때는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대홍수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초유의 종말을 앞둔 이 당시 마지막 인류가 가진 갈망, 이 선이 사라진 갈망은 ‘끔찍하다’, ‘지독하다’, ‘혐오스럽다’, ‘더럽다’와 같은 형용사를 붙여야만 할 정도의 갈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신앙의 가르침들을 자신들의 갈망으로 결합, 그 결과, 자기들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음을 확실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라는 표현은 이런 뜻입니다. (1-2절) Also that they conjoin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with their yearnings, and thus confirmed themselves in evils and falsities, which is signified by “the sons of God taking to themselves wives of the daughters of man” (verses 1–2).

 

※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앙의 교리, 신학, 가르침들을, ‘사람의 딸들’은 선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의지, 곧 혐오스러울 정도로 더러워진 갈망을 말합니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556. 그 결과, 선과 진리의 리메인스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언되는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리메인스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게 하시려고, 사람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백이십 년’은 리메인스를 가리킵니다. (3절) And whereas there were thus no remains of good and truth left, it is foretold that man should be differently formed, in order that he might have remains, which are “a hundred and twenty years” (verse 3).

 

※ 즉, 인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퍼셉션의 유무입니다. 퍼셉션은 지상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하는 태생적 은사, 능력으로서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하다 못해 황송하기까지 한 영적 선물을 그러나 태고교회 후손들은 하찮게 여겼고, 그 결과, 홍수 즈음하여서는 깡그리 박탈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박탈당했다’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은 이런 귀한 하늘의 선물이 타락한 사람들 안에 도무지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홍수로 표현된 종말 역시 사실은 이들이 자초한 것이고요... 결국, 이렇게 소멸될 인류를, 그러나 주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그럼, 퍼셉션을 대신할 새로운 뭔가를 준비, 인류가 여전히 하늘, 곧 나와 연결될 수 있게 해야겠다’ 하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주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대용품이 바로 ‘양심’입니다. 주님은 홍수 후 인류에게는 이 ‘양심’이 있게 하셔서, 이것으로 계속해서 주님과 연결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There were Nephilim i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most especially after the sons of God went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are to them; the same became mighty men, who were of old, men of renown.

 

557. 신앙의 가르침들을 자기들이 가진 욕망 실현의 도구로 이용하고, 이런 상태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아를 사랑하면서, 남들과 비교, 자기들만이 가진 위대함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 하는, 끔찍할 정도로 소름 돋는 망상, 즉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런 자들이 바로 ‘네피림’입니다. (4절) Those who immers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and in consequence of this as well as of the love of self conceived dreadful persuasions of their own greatness in comparison with others, are signified by the “Nephilim” (verse 4).

 

※ ‘네피림’은, ‘아,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아, 나는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 하는 신념(persuasion)과 망상(delusions)에 사로잡혀, 거룩하거나 참된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을,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는, 이런 일이, 그들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을 그들의 갈망(yearnings)과 욕구(appetites)에 잠기게 하여 거짓된 것을 신념화했을 때 일어났음을, ‘그들은 용사라’는 그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을,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는 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각각 말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And Jehovah saw that the evil of man was multiplied on the earth, and that all the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every day.

 

558. 이렇게 되고 나자 선과 진리에 관한 무슨 의지나 퍼셉션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절) In consequence of this there no longer remained any will or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verse 5).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는, 진리와 선에 관한 퍼셉션이 전혀 없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Jehovah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both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fowl of the heavens; for it repenteth me that I have made him.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And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Jehovah.

 

559.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주님의 자비(mercy)에 대한 묘사입니다. (6절) The mercy of the Lord is described by “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 (verse 6).

 

※ 6절, ‘한탄하사’는 자비(mercy)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걸 상징합니다. ‘한탄하사’(후회, repent)는 지혜와 관련이 있고,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가 자비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상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 곧 결론지을 수 있는데요, 여호와는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만물을 온전히 영원부터 예견(豫見, foresee)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람을 지으셨을 때, 즉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온전하게 하사 천적 인간이 되게 하셨을 때에도 그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지금 여기서 설명 중인 이런 인종이 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후회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들은 이런 갈망과 이런 신념은 사람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을 입증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 That they became such that their yearnings and persuasions must needs prove fatal to them (verse 7).

 

※ 7절, ‘이르시되 내가 사람을 쓸어버리되’는 인류가 전멸을 자초할 것을,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는 태고교회의 후손이었던 사람들을,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는 그들의 의지 안에 무엇이 있든지 그것이 그들을 전멸시킬 것을, ‘공중의 새까지’는 그들의 지적 능력 또는 사고능력 안에 무엇이 있든지를,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는 위에서(cf. AC.587-588) 살핀 대로, 불쌍히 여기심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건짐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려면 새로운 교회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노아’입니다. (8절) Therefore in order that the human race might be saved, a new church should arise, which is “Noah” (verse 8).

 

※ 8절, ‘노아’는 새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는 말씀은, 주님은 인류가 이렇게 구원받게 될 것임을 예견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이 인류가 구원받는 방법임을 주님은 예견하셨다는 것입니다.

 

 

597. ‘노아’는 고대교회라 하는 새 교회를 상징하는데요, 고대교회라는 명칭은 홍수 전 존재했던 태고교회와, 홍수 후 존재했던 이 교회를 구별해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By “Noah” is signified a new church, whi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for the sake of distinction between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before the flood, and that which was after the flood.

 

이들 두 교회의 상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The states of these two churches were entirely different.

 

태고교회의 상태는,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거기서 나오는 진리에 관한 일종의 퍼셉션(perception, 지각, 배우지 않고도 주님의 선과 진리를 아는 타고난 능력)을 받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The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such that they had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good and the derivative truth.

 

고대교회, 혹은 ‘노아’의 상태는, 그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일종의 양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The state of the ancient church, or “Noah,” became such that they had a conscience of good and truth.

 

즉, 선량함(goodness)과 진실에 관한 일종의 양심으로 상태가 바뀐 것입니다.

 

태고교회와 고대교회 간 상태의 차이는 이런 차이, 곧 퍼셉션을 갖는 것과 양심을 갖는 것 간 차이였습니다. Such as is the difference between having perception and having conscience, such was the difference of state of the most ancient and the ancient churches.

 

퍼셉션은 양심이 아닙니다. 천적(天的, celestial) 천사들은 퍼셉션을, 영적(靈的, spiritual) 천사들은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Perception is not conscience: the celestial have perception; the spiritual have conscience.

 

태고교회는 천적이었고, 고대교회는 영적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as celestial, the ancient was spiritual.

 

[2] 태고교회는 영들 및 천사들과 어울려 지냄을 통해, 그리고 비전 및 꿈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고,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는 선과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이런 걸 인식하게 되자, 이번에는 이런 퍼셉션 능력으로 얻게 된 무수한 인사이트들(insights, 통찰력)을 통해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들, 말하자면, 엑시엄(axioms, 자명한 이치, 公理)들을 컨펌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인사이트들은 특정 디테일들을 구성하는데, 넓은 카테고리들이 이런 디테일들로 채워지는 그런 것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immediate revelation from the Lord by consort with spirits and angels, as also by visions and dreams; whereby it was given them to have a general knowledge of what was good and true; and after they had acquired a general knowledge, these general leading principles, as we may call them, were confirmed by things innumerable, by means of perceptions; and these innumerable things were the particulars or individual things of the general principles to which they related.

 

즉, 천국, 곧 주님의 신적 질서의 나라, 질서정연한 진리 체계가 차곡차곡 각 사람 내면에 자리 잡아갔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들이 날마다 컨펌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이 원리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걸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부합하면 그런 것으로 지각했습니다. Thus were the general leading principles corroborated day by day; whatever was not in agreement with the general principles they perceived not to be so; and whatever was in agreement with them they perceived to be so.

 

즉, 주님의 신적 질서의 근본에 대한 감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 어떤 것이 그 질서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직관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천적 천사들이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Such also is the state of the celestial angels.

 

[3] 태고교회의 보편적 원리들, 곧 엑시엄들은 천적이며, 영원한 진리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주님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신다.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사람의 것(own, 사람에게 고유한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 등등... 그외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heavenly and eternal truths—as that the Lord governs the universe, that all good and truth is from the Lord, that all life is from the Lord, that man’s own is nothing but evil, and in itself is dead; with many others of similar character.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진리들, 원리들을 컨펌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것들, 생각들에 관한 퍼셉션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And they received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countless things that confirmed and supported these truths.

 

그들에게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었습니다. With them love was the principal of faith.

 

그들로 하여금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도록 주님이 그들을 북돋워 주신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cf. AC.32:2, 202, 398) By love it was given them of the Lord to perceive whatever was of faith, and hence with them faith was love, as was said before.

 

그러나 고대교회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고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ancient church became entirely different,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2021-09-03(D6)-매일예배(2182, 아케이나말씀리딩.창6,1-8), '사람의 딸들, 백이십 년, 네피림, 한탄하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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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cAQjD8rNMk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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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5

 

460. 이 장은 특별히 거의 홍수 전까지 죽 이어진 세대들을 통해 태고교회가 퍼져나간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61. 태고교회 자체는,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는데, ‘사람’(아담, man, [homo])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일컬음을 받는 교회입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 천적이라 함, 곧 어떤 사람을 가리켜 천적 인간이다, 어떤 천사를 가리켜 천적 천사다 하는 것은, 그를 다스리는 주된 동기가 사랑인 사람이나 천사를 말합니다. 사랑, 선, 가슴 및 의지 등은 모두 천적 특성들이고, 반면, 신앙, 진리, 머리 및 이해력 등은 영적 특성들입니다. 주님은 천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의지 안으로 직접 들어가시지만, 영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이해력(understanding)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들어가십니다.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62. 태고교회처럼 그렇게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 여기 3절의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은 그 아담이 아니라, ‘셋’의 부모 교회인 ‘아다와 씰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속뜻이며, 말씀에서 이런 반복이 나올 때는 무슨 다른 상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얼핏 2장에서 또 한 번 반복되는 그런 경우인데,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영적 사람의 거듭남을, 2장의 창조는 천적 사람의 거듭남을 각각 가리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아담(homo)과 그의 아내’라는 표현은 지금 보고 있는 교회의 부모 교회를 상징하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해서, 이 3절의 아담은 4장 1절의 그 아담과 하와가 아닌, 바로 ‘아다와 씰라’를 가리킨다 보는 것입니다.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463. 세 번째 교회는 ‘에노스’(6절)라는 이름으로, 네 번째는 ‘게난’(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12절), 여섯 번째는 ‘야렛’(15절), 일곱 번째는 ‘에녹’(18절), 그리고 여덟 번째는 ‘므두셀라’(21절)로 각각 불렀습니다.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verse 6); a fourth “Kenan” (verse 9); a fifth “Mahalalel” (verse 12); a sixth “Jared” (verse 15); a seventh “Enoch” (verse 18);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verse 21).

 

※ 여기 나오는 ‘날’과 ‘해’, ‘자녀들’ 및 ‘몇 세를 살고’ 하는 표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날’(日, days)은 일반적으로, ‘해’(年, years)는 구체적으로, 각각 때와 상태를 상징하며,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을 상징합니다. 또한 ‘팔백 년’, ‘구백삼십 세’ 같은 표현들의 아케이나는 해당 교회의 수많은 상태 변화들을 의미하는데, 그 수가 아주 크다는 뜻입니다. 이런 큰 수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1’에서 ‘12’까지 기본적인 수에 대한 아케이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하여튼 여기 나오는 이런 큰 수들은 해당 교회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상태와 그 변화들을 상징하는 것이지 우리가 알던 겉뜻대로, 어느 한 개인의 실제 수명이 그렇게 천 년 가까이 오래 살았다는 그런 뜻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464. ‘에녹’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지각된 것들로부터 골격이 짜여진 교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고 대신 후손들의 사용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2-24절) 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verses 22–24)

 

※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에녹은 그때까지 계시되고, 지각된 태고교회의 교리 혹은 신학, 가르침들을 가지고 일종의 조직신학처럼 다듬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앞서 시대를 뛰어넘은 것이었던지 이때는 쓰임을 받지 못하고 후대를 위해, 사실은 홍수 후 세대이지요, 나중 세대를 위해 따로 보관하신 것이며,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에녹은 일종의 리메인스, ‘남은 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465. 아홉 번째 교회는 ‘라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466. 열 번째 교회, 이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로서, 이름하여 ‘노아’라 하였습니다.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28-29절)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태고교회(아담교회, 아담에서 홍수 전까지), 고대교회(노아교회, 홍수 후부터 모세까지), 이스라엘교회(모세에서 주님 초림 때까지), 기독교회(주님 승천 후 재림 때까지), 끝으로 주님 오셔서 시작하실 새 교회(새로운 기독교회)가 있습니다.

 

 

467. ‘라멕’은 태고교회가 즐겁게 누리던 퍼셉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로 그려지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 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은 홍수 전과 후를 나누는 아주 중요한 인류의 특징인데요, 이게 있으면 태고교회, 이게 없으면 나머지 교회들입니다. 즉, 홍수 후에 일어난 모든 교회들은 이게 없으며, 대신 양심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 자체가 사실 불가능하며, 아무리 설명을 한들 현생 인류는 못 깨달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퍼셉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인데, 설명 불가, 천사들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홍수 전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선물을 기본적으로 타고나던 사람들, 인류였습니다.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것은,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들, 곧 현 맥락에서는 태고교회로부터 바로 이 ‘노아’ 때까지, 변화를 겪으며 내려오면서도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부른 것입니다.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 ‘남은 자’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 혹은 ‘중간에’, ‘땅에’ 있다고도 합니다.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 안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나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기 때문입니다.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은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사람은 죽게 됩니다.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로 상징된 사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 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사4:3-4)

 

위 구절에서 남은 자들을 거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교회의 리메인스와, 또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다시 Again: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사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렘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미5:7)

 

[4] 한 사람 혹은 한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십’(10)은 리메인스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사6:12-13)

 

여기 남아 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아모스에서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암5:3)

 

이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리메인스’가 속뜻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한 도시가 그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이 들은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창18:32)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532. ‘라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황폐해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Lamec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the church vastated.

 

‘자녀들’은 그와 같은 교회를 계속해서 잉태 및 해산하였음을 상징합니다. (30-31절)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such a church. (verses 30-31)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534. ‘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敎會,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32절)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verse 32)

 

 

535. ‘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That the church called “Noah” is not to be numbered among the churches that were before the flood, appears from verse 29, where it is said that it should “comfort them from their work and the toil of thei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것은 살아남아 견디는 것입니다. The “comfort” was that it should survive and endure.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But concerning Noah and his s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36. 선행 페이지들에서, 홍수 전에 존재한 교회들에게 소유되었던 퍼셉션에 관한 많은 내용을 말씀드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은 퍼셉션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 없어 어떤 사람들은 퍼셉션을 일종의 계시의 지속으로, 혹은 사람들 안에 심긴 어떤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상일 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걸로 등 이렇게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리고 퍼셉션은 주님이 사랑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천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광범위한 천국 전체의 끝없는 다양성 안에는 이 퍼셉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등, 이런 여러 이유로, 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As in the foregoing pages much has been said about the perception possessed by the churches that existed before the flood, and as at this day perception is a thing utterly unknown, so much so that some may imagine it to be a kind of continuous revelation, or to be something implanted in men; others that it is merely imaginary, and others other things; and as perception is the very celestial itself given by the Lord to those who are in the faith of love, and as there is perception in the universal heaven of endless variety: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ay be among men some conception of what perception is, of the Lord’s Divine mercy I may in the following pages describe the principal kinds of perception that exist in the heavens.

2021-09-02(D5)-매일예배(2181, 아케이나말씀리딩.창5), '아담의 계보, 에녹, 하나님과 동행, 노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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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a8R-fVJwyQ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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