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

 

324.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리들, 이단이라고도 하는 교리들을 여기서 다루며, ‘에노스’라고 하는, 나중에 새롭게 일어난 교회도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 여기 언급되는 헤로시(heresies), 즉, 이단은 ‘태고교회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한 종교적 입장들(positions)’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25.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한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 사랑 따로, 신앙 따로,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신앙하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 태고교회는 원래 주님 사랑, 주님 신앙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 영적 통찰력)을 통해 그들 심비(心碑)에 직접 새겨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해의 열과 빛이 하나로 융합되어 만물에게 지각되듯 그들에게는 사랑과 신앙이 별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신앙을 따로 떼어내는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신앙은 하는 ‘가인’이라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교리요, 가르침이요, 신학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이며, 마치 자기들이 무슨 새로운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것인 양 말한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로 융합, 결합된 것이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선조는 그냥 알고 누리던 ‘신앙’이라는 것을 이들은 이제 학습을 하고, 땀 흘려 배워야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가인’이라,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를 ‘아벨’이라 각각 이름하였습니다. (1-2절)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verses 1–2)

 

※ 교리(doctrine)에 대한 다른 번역은 가르침(teaching), 신학(theology) 정도가 좋겠습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창세기 1장부터 11장, 아브라함 등장 전까지는 실제 역사가 아닌, 고대인들의 문학 양식인 스토리텔링입니다. 즉, 이 기간 등장하는 인명(人名)은 실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닌, 그 시대에 존재했던 교회의 이름, 교리 혹은 신학의 이름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사람을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 저는 현재까지 밝혀진 지질학적 지구의 연대인 45억 년을 받아들입니다. 즉, 말씀(The Word)을 겉 글자의 뜻(letter sense, external sense)이 아닌, 속뜻(inner sense, internal sense)으로 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창세기 1장도 전통적인 육일간의 천지창조로 읽기보다는 한 사람의 거듭남의 여섯 상태, 또는 단계로 읽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쩌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가 이 45억 년 전체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구의 연대를 꼭 말씀에 명시적으로 일대일 대응시키실 필요를 느끼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인류의 구원, 곧 사람의 거듭남에만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326. 각각의 예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인의 제사’로,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아벨의 제사’로 각각 표현하였습니다. (3-4절)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verses 3–4)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있었으나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4-5절)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verses 4–5)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327.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은 악한 상태가 되었는데요, 이걸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5-6절)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verses 5–6)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28. 체어리티를 보면 그 신앙의 퀄러티(quality, 質)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만일 신앙이 주(主)가 되려 하거나, 체어리티 위에 올라 높아지려고 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7절) And that the quality of the faith is known from the charity; and that charity wishes to be with faith, if faith is not made the principal, and is not exalted above charity. (verse 7)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29. 신앙을 분리하여 체어리티보다 앞세우는 사람들로 인해 체어리티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로 표현한 것입니다. (8-9절)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verses 8–9)

 

※ 체어리티에서 신앙을 떼어낸 후, 신앙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체어리티는 흔적도 없이 씻겨 사라집니다.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330. 사라진 체어리티를 ‘핏소리’로 (10절), 왜곡된 교리를 ‘땅에서 저주를’로 (11절), 거기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12절)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verse 12)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그리고 그들은 자원하여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13-14절)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그러나 나중에 체어리티가 심기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님은 신앙을 불가침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것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15절)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verse 15)

 

※ 가인은 일종의 남은 자, 리메인스입니다. 홍수 후 인류에게는 홍수 전 인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님과 인류가 연결되는데요, 그때 쓰시기 위해 비록 가인 같은 신앙일지라도 주님은 보호하시며, 보전하시는 것입니다. 홍수 후 인류는, 홍수 전 인류와 달리 먼저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을 통해 체어리티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홍수 전 사람들, 특히 태고교회, 아담교회 사람들은 주님 사랑의 삶, 체어리티의 삶을 타고날 수 있었고,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생소해했습니다.

 

※ 가인에게 표를 주셨다는 것을 무슨 눈에 보이는 특별한 표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단순히 주님의 방법으로 그를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그리고 이전 입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가리켜 ‘에덴 동쪽을 향하여 거주하는 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16절)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verse 16)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331. 이 이단의 엄청난 확장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고 있습니다. (17절)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verse 17)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332. 이 에녹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난 이단들 역시 자기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그 끝에 라멕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라멕이라는 이단은 신앙이라는 게 전혀 없는 이단이었습니다. (18절)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verse 18)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333.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는 그때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새롭게 일어난 교회를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야발’로, 영적인 것들을 ‘유발’로, 그리고 자연적인 것들을 ‘두발가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22절)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verses 19–22)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334. 신앙과 체어리티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일어난 이 교회, 그리고 이것에 가해졌던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폭력으로, 주님이 표를 주시면서까지 정하신 가장 신성한 금지가 가장 심각하게 더럽혀졌습니다. (23-24절) That this church arose when everything of faith and charity was extinguished, and had violence done to it, which was in the highest degree sacrilegious, is described. (verses 23–24)

 

※ 주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시면서까지 그를, 곧 신앙을 보호하신 것은, 이것으로 나중에 인류를 구원하셔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걸 건드리는 것은, 마치 이듬해 쓸 종자를 건드리는 것이어서 주님이 특별히 구별하시고, 금하신 것인데, 라멕이라는 이단 끝판왕에 이르러 이마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는 이를 미리 아시고, 이때를 대비, 아다와 씰라를 일으키십니다. 항상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335. 요약입니다. ‘가인’으로 상징되는 신앙 이후 체어리티가 사라졌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이 일어났고,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체어리티가 새롭게 심기게 되었습니다. 이 신앙을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5절) A summary of the subject is given: that after faith, signified by “Cain,” had extinguished charity, a new faith was given by the Lord, whereby charity was implanted. This faith is called “Seth.” (verse 25)

 

※ 가인이라는 신앙은 사실 건강하지 못한 신앙, 바람직스럽지 못한 신앙, 사랑에서 자신을 떼어내 자발적으로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인류 구원의 종자로 쓰기에는 좀... 그런데 이렇게 온전히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신앙, 셋이라는 신앙이 일어났습니다. 인류 구원의 파노라마는 이 새로운 신앙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336. 신앙에 의해 이식된 체어리티를 이름하여 ‘에노스’, 또는 또 다른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교회의 이름입니다. (26절)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verse 26)

 

 

337. 이번 장이 태고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교회는 천인(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외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인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인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시72:1, 3, 5, 7)

 

여기서 ‘해’는 사랑을 상징하며, ‘달’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고대에 있었던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 여기 글 번호들은 스베덴보리 저, ‘Arcana Coelestia’의 글 번호들이며, 이 참고 표시 ‘※’는 역자의 보충 설명이라는 표시입니다. 이 표시 글들은 아래 영어문장이 없습니다.

2021-09-01(D4)-매일예배(2180, 아케이나말씀리딩.창4), '가인과 아벨, 라멕, 아다와 씰라, 셋, 에노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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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fQXlwcVxyw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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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3:1-13

 

190.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 곧 자신의 본성(own)을, 사랑할 정도로 원했던 태고교회의 상태를 다루는 장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 즉,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거진 패션(passion, 격정, 욕정)에 이를 정도가 된 것입니다.

 

 

191. 자아 사랑, 즉 그들의 본성 사랑으로 인해 이제 그들은 감각(sense)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기 시작했는데, 이때 이 감각적인 부분을 ‘뱀’으로, 자아 사랑, 혹은 그들의 본성 사랑을 ‘여자’로, 그리고 합리(合理), 이성(理性)을 ‘남자’로 표현하였습니다.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and the rational by the “man.”

 

※ 즉, 자아 사랑에 이끌린 나머지 이들은 이때부터 육체적 감각들을 가지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뱀은 감각 능력, 여자는 자아 사랑, 그리고 남자는 이성적 판단력에 대한 표현입니다.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192. 그래서 뱀, 즉,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하여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이 과연 그런지를 보게 하는데, 이걸 가리켜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이라 하고, 그리고 덩달아 이런 걸 덥석 동의한 남자의 이성을 ‘그도 먹은지라’ 한 것입니다. (1-6절)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verses 1–6).

 

※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은 신앙에 관한 교리들을 말합니다. 뱀, 즉, 감각들이 여자, 곧 자아 사랑으로 하여금 이 주님 신앙의 교리들을 의심하게 한 겁니다. 이럴 때, 사람의 이성 또한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자아 사랑에 휩쓸려 버리고 말게 된 그런 내용입니다.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193.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지각했습니다. ‘눈이 밝아져’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가 상징하는, 남은 퍼셉션 (7-8절), 그리고 그들이 치마라고 만들어 가렸던 무화과 나뭇잎들 (7절), 부끄럽다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 (8-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인과 자백 (10-13절) 등을 볼 때, 그들 안에 아직은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 여기 ‘퍼셉션이 남았다’는 것은 그 흔적이 조금 남은 것이고요, ‘치마’는 그저 아랫도리 가운데만 살짝 가릴 정도인 가리개(loincloth)를 말합니다. 자연적 선이란, 세속적 종류의 선량함을 말합니다.

 

※ 이 상태가 바로 자아 사랑에 빠진 나머지 감각적 삶을 추구, 이성도, 합리도 다 마비된 사람의 실존인 것입니다.

 

 

 

창3:14-19

 

234. 결국은 홍수를 만나게 될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상태가 여기 기술됩니다. 그리고 그때 교회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언을 주십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235. 감각으로 파악이 안 되는 것들은 도무지 믿으려고를 하지 않는 감각 파트, 이게 바로 ‘뱀’인데요, 이런 태도 때문에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4절)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self) 혹은 본성(own)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을 ‘다스리도록’ 이성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6절)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 위 본성(own)은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autonomy)을 말합니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238. 그 다음은 합리의 퀄러티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 보면, 남자, 남편(합리)은 동의했고,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결국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성은 없고 대신 추론만 남게 되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합리의 품질’(the quality of the rational)이란, ‘합리적 능력의 본성’(the nature of this rational capacity)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 추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왜곡된 논리만 남은 겁니다. 궤변이라고도 하지요.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239. 저주와 황폐,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그들의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절)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 ‘황폐’로 번역한 영어 베스테이션(vastation)은 현대 영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현대 영어로는 루이네이션(ruination, 파괴), 디스트럭션(destruction, 파멸) 정도가 되겠습니다.

 

※ 영어 페린(ferine)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은 페럴(feral)을 사용하며, 그 뜻은 죽음을 초래하다, 치명적이다입니다. 이 ‘죽음을 초래하는 본성’이란, 그들의 본성이 동물적인 본성, 짐승과도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19절)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 ‘사람’이라는 호칭은 본래 오직 주님에게만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인류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이 ‘사람’이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첫 사람들, 곧 아담 교회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감히 이 용어를 자기들에게까지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을 ‘사람’이라 할 수 있으려면 자기들에게 주님의 성품, 신성, 주님과 닮은 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19절 본문에서 왜 이들이 이제 더 이상은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나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241. 태고적 사람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사실은 그 사물들이 상징하고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그들의 시력은 그저 돕는 도구였을 뿐이었고, 그래서 그 결과는 그들의 말, 언어였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 ‘아, 지금 저 사람이 하고픈 말은 사실은 이거구나...’ 하고 딱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뒤 무슨 장황한 말을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는 그것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늘과 주님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 그저 도구일 뿐이어야 하는 돈이 안타깝게도 원리가 되고, 목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 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창3:20-24

 

280. 태고(太古) 교회와,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어집니다; 즉, 그 교회가 끝났을 때, 결국 홍수로 이어진 그 후손들을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81.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태고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 신앙의 생명으로 시작한 교회이며, 이 교회를 가리켜 ‘하와’(Eve),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20절)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 ‘천적이었던 태고교회’란, ‘하늘의 속성을 가졌던 태고 시대 참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천적 영적 선이 있었습니다; 이어 그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이 있었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하였습니다. (21절)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 여기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란 ‘천적 선의 영적 종류’(a spiritual kind of heavenly good), 즉, 천적 선이 일종의 영적 선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선에는 천적 선, 천적 영적 선, 그리고 자연적 선이 있습니다. 천적 선은 옷을 입지 않으며, 천적 영적 선은 광채 나는 흰옷을, 자연적 선은 가죽옷을 입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세속적 선(earthly good)입니다.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83. 네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자연적 선이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거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더라면, 그들은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을 텐데요,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 여기 ‘영생할까 하노라’의 영생은, 지옥에서 영생하는 것, 곧 지옥 같은 상태에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 다시 말해, 주님에게 속한 것을 가지고 신성모독을 하기 때문인데요, 이 신성모독은 마치 영혼의 코로나 같아서 사람의 영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신성모독이란 주님의 것에 사람의 사사로움을 섞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사람의 영은 성과 속이 뒤섞여 영원히 그를 천국과 지옥으로 서로 끌어당겨 찢는 듯한 고통, 즉, 지옥과도 같은 고통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숨기셨습니다. 유대인의 속성상, 그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신성모독의 길을 걸을 것이며, 그것은 곧 그들을 영원히 파멸시킬 것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시인 후 부인하여 신성모독의 길에 들어서느니 차라리 알고 시인조차 하지 않는 게, 모르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맞춰 나름 최대한으로 보호하신 것입니다.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84.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절)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 ‘에덴동산’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을 갖춘 천적 인간, 천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가 이 모든 것을 박탈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 그 아름다웠던 태고교회가, 일곱째 날, 천적 인간, 천인(天人)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그 교회, 그 순결한 주님 신앙의 교회였던 아담교회가 이렇게까지 퇴행, 다시 창1:2 상태인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285.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후손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지식을 박탈당했고, 그들의 본성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과 신념들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로 말미암아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이 모독을 당할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가 상징하는 것이 이런 내용입니다. (24절)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 여기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그에게서 선에 관한 모든 의지와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를 깡그리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그것들과 분리되었고, 그렇게 ‘사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는 무슨 비밀스런 신앙의 일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이런 뜻인 것은, ‘에덴동산 동쪽’은 天的인 것이며, 지성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며. ‘그룹’이란, 저런 사람이 신앙의 일들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 ‘두루 도는 불 칼’은 비정상적인 것들을 원하고, 그 결과 그런 것들로 고착된 자아 사랑입니다. 그는 정말 거룩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게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즉, 거룩한 것에 대한 신성모독을 금하시는 이유입니다.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2021-08-31(D3)-매일예배(2179, 아케이나말씀리딩.창3), '선악과, 가죽옷, 에덴동산에서 쫓겨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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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oGVV0Bi-Pc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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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25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 교회의 후손들 이야기인데, 이들은 선조들과 달리 자신의 오운(own, proprium, 本性)(주3), 자신의 것, 자기 자신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주3) is here treated of.

 

※ 즉, 자기 주도적 삶(a sense of autonomy)을 지독하게 추구하며 산 사람들, 주님에게서 철저하게 독립하고자, 분리하고자 했던,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된 사람들입니다.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32. 사람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보다는 혼자 알아서 세상에 기대 살거나 자신의 본성(own)을 따라 사는 걸 더 원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류에게 허락된 그런 본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 즉 주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더욱 원하는, 아주 고약한 본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여기, ‘허락’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마지못해서’에 가까운 뜻입니다. 주님은 아무리 창조주시라 해도 사람의 자율, 자주적인 선택에 개입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셨음에도 끝내 사람이 주님이 아닌 지옥을 선택하는 한, 그건 주님도 어쩌실 수가 없으십니다...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133. 그래서 먼저 주님은 그에게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울어지는 가운데 있습니다. (19-20절)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 혹시 주님이 주시는 것들, 정말 좋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통해 마음을 돌릴까, 주님을 향할까 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이미 육체와 세상 쪽으로 눈이 돌아간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이런 영적, 천적인 것들의 가치를 못 알아봅니다. 말초적이며, 근시안적인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134.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기 본성(own)의 상태 안으로 깊이 인도되며, 어떤 또 하나의 본성(own)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을 여자로 빚어지는 갈빗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1-23절)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 ‘자기 본성’은 피조물로서의 고유 본성,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 여기 ‘또 하나의 본성’은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본성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a sense of autonomy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사람의 본성과 붙어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 둘은 하나로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 ‘남자가 부모를 떠나’, 즉, 속사람으로부터 멀어져 겉이 된 사람, 그러나 주님의 자비로 주님의 천적, 영적 생명이 본인 모르게 입류에 의해 겉, 곧 육과 하나가 됩니다. 마치 리메인스를 차곡차곡 쌓으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순진함이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드는데요, 덕분에 사람은 여전히 주님께 열납될 수 있습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 저들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저들이 천진난만하였음을 상징합니다. 주께서 저들이 수용 불능 상태가 되는 걸 막으시려고, 저들의 본성 안으로 그동안 천국의 천진난만함을 늘 공기처럼 공급하신 덕분입니다.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에 가서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 교회는 ‘사람(man, homo)’으로 회자되었는데요,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이 교회의 후손과 그들이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지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 각주

 

3. 이 표현에 대한 원전 표현은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입니다. 다른 데서는 ‘오운’(own, 특성, 특징, 특색, 자기 것, 소유)이라는 표현으로 의역되고 있습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프로프리우스(propius)의 형용사로서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것인)’(one’s own), ‘고유한, 원래의’(proper), ‘개인 소유의’(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 특유한, 특수한’(special), ‘독특한, 남다른, 독자적인’(particular), ‘개인적인’(peculiar) 등입니다.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이 말의 중성 표현인 프로프리움이라는 단어는 명사로 사용되면 그 의미가 ‘소유’(possession), ‘특성’(property) 및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characteristic mark), ‘구별되는 점’(distinguishing sign), ‘특유함’(characteristic) 등입니다.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영어 형용사 ‘오운’(own)에 대한 웹스터의 정의들은 ‘...에 속한’(belonging to), ‘...에 배타적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유한, 독특한’(peculiar)인 것을 보면, 이 ‘오운’이야말로 라틴어 프로프리우스에 대한 아주 딱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으며, 만일 라틴어 프로프리움에 딱 맞는 명사 하나를 고르는 경우에도 이 ‘오운’ 하나면 최적, 이것이면 라틴 원전에 아주 근접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2021-08-30(D2)-매일예배(2178, 아케이나말씀리딩.창2,18-25), '아담과 하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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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l5TpAP42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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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TWR : Arcana The Word Reading, 아케이나 말씀 리딩

2. 오늘부터 창세기 50장, 출애굽기 40장을 매일 한 장씩 이렇게 읽겠습니다.

 

창1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6. 육 일, 또는 기간들은,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된 수많은 일련의 상태들인데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The six days, or periods, which are so many successiv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are in general as follows.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7. 첫 번째 상태는 선행 상태인데, 두 가지, 유아기부터 거듭남 바로 직전까지의 상태를 말합니다. The first state is that which precedes, including both the state from infancy, and that immediately before regeneration.

 

이 상태를 일컬어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이라 합니다. This is called a “voi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이때 첫 움직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자비인데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입니다. And the first motion, which is the Lord’s mercy, is “the spirit of God moving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8. 두 번째 상태는 주님에게 속한 것들과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들 사이, 하나의 구분이 생기는 때입니다. The second state is when a distinction is made between thos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nd those which are proper to man.

 

주님에게 속한 것들을 이름하여 말씀에서는 ‘리메인스’라 하며, 여기서는 특별히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말하는데, 이 지식들은 유아기부터 배워 온, 그래서 차곡차곡 쌓인, 그러나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를 때까지는 우위를 점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Th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re called in the word “remains,” and here are especially knowledges of faith, which have been learned from infancy, and which are stored up, and are not manifested until the man comes into this state.

 

오늘날(1750년대 유럽) 이 상태는 시험이나 불행 혹은 큰 슬픔의 상황 같은 때가 아니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데요,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되면 그는 육신이나 세상, 즉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런 육체에 속한 일들은 마치 죽은 것처럼 휴면상태에 들어갑니다. At the present day this state seldom exists without temptation, misfortune, or sorrow, by which the things of the body and the world, that is, such as are proper to man, are brought into quiescence, and as it were die.

 

그렇게 겉 사람에게 속한 일들이 속 사람에게 속한 일들과 분리가 됩니다. Thus the things which belong to the external man are separated from those which belong to the internal man.

 

이때 속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이 바로 '리메인스'이며, 주님이 이때 쓰시려고 지금까지 그 사람 안에 간수해 오신 것입니다. In the internal man are the remains, stored up by the Lord unto this time, and for this use.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9. 세 번째 상태는 뉘우침의 상태입니다. 이때 사람은 그의 속 사람으로 말미암아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말도 하고,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기부, 자선, 선행)의 일들 같은 선행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은 그 안에 활동할 수 있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가 이런 일들이 자기한테서 나오는 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The third state is that of repentance, in which the man, from his internal man, speaks piously and devoutly, and brings forth goods, like works of charity, but which nevertheless are inanimate, because he thinks they are from himself.

 

이런 선들을 가리켜 ‘’, 그리고 ‘씨 맺는 채소’, 나중에는 ‘열매 맺는 나무’라 합니다. These goods are called the “tender grass,” and also the “herb yielding seed,” and afterwards the “tree bearing fruit.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o rule in the day, and in the night,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ourth day.

 

10. 네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애정 어린 사랑의 사람, 조명받은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The fourth state is when the man becomes affected with love, and illuminated by faith.

 

그는 앞서 실제로 경건하게 말도 하고 선도 행했지만 그건 그가 땀 흘려 시험을 치루고, 애를 쓴 결과로 그런 것이지, 신앙이나 체어리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즉, 겉으로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의 속 사람 안에 신앙과 체어리티라는 불이 켜졌고, 그래서 이를 가리켜 ‘두 큰 광명체’라 하는 것입니다. He indeed previously discoursed piously, and brought forth goods, but he did so in consequence of the temptation and straitness under which he labored, and not from faith and charity; wherefore faith and charity are now enkindled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alled two “luminaries.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 waters cause to creep forth the creeping thing, the living soul; and let fowl fly above the earth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of the heavens. 21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caused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11. 다섯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신앙의 말을 하며, 그래서 자기가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확실히 압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분명, 활동하는 생명력이 있으며, 그래서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하늘의 새’라 합니다. The fifth state is when the man discourses from faith,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ruth and good: the things then produced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heavens.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12. 여섯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신앙으로, 그리고 그래서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고,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가 행하는 일들을 가리켜 ‘생물’이라, ‘짐승’이라 합니다.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이렇게 그가 신앙과 사랑, 둘 다를 가지고 즉시 그리고 함께 행하기 때문에, 즉, 사랑과 신앙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를 가리켜 영적이라 하며, ‘형상’이라 합니다.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그의 영적 삶은, 신앙의 지식들이 속한, 그리고 체어리티의 일들이 속한 그런 것들, ‘먹을거리’라고 하는, 그런 것들로 밝아지고, 지속되며, 그의 자연적 삶 역시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밝아지고, 지속됩니다. 그래서 둘 사이, 곧 영적 삶과 자연적 삶 사이, 사랑이 우위를 점하여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까지 전투가 일어납니다. 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 “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13. 거듭남 가운데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이 상태에까지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do not all arrive at this state.

 

오늘날 거의 절대다수가 겨우 첫 번째 상태에, 일부가 겨우 두 번째, 그리고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일곱 번째 상태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희귀한 경우입니다. The greatest part, at this day, attain only the first state; some only the second; others the third, fourth, or fifth; few the sixth; and scarcely anyone the seventh.

2021-08-27(D6)-매일예배(2175, ATWR.창1), '창조 첫 육 일, 거듭남의 여섯 상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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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uLdUAj-B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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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TG2SgZQd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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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z8WGVp8d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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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And Noah begat three sons: Shem, Ham, and Japheth. (창6:10)

 

 

616. ‘세 아들을 낳았으니’는 그 교회에서 일어난 세 종류의 교리, 신학(theology)을 말하며, ‘셈과 함과 야벳이라’가 의미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Noah begat three sons” signifies that three kinds of doctrine thence arose, which are meant by “Shem, Ham, and Japheth.

 

 

617. 세 아들을 낳았으니 이것은 거기, 곧 노아 교회에서 세 종류의 새 교리, 신학이 일어남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은, 앞서 살핀 모든 내용들(AC.337, 339, 402, 468), 곧 이름들은 오직 다양한 교회들, 그리고 같은 말이지만, 교리들, 신학들을 상징할 뿐이라는 내용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름들이 여기 언급되는 이유는 순전히 이전 내용의 연속성 혹은 본문의 문맥 때문인데, 그것은 주님이 예견하신 것으로, 이런 지니어스를 가진 사람들, 곧 타고난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체어리티, 곧 이웃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가운데서 세 종류의 다른 교리들이 생겨남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이들 세 교리, 곧 신학은 아래 셈, 함 및 야벳을 다루는 데서 주님의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Noah begat three sons. That this signifies that three kinds of doctrine thence arose is evident from all that has been shown before about names signifying nothing else than churches, or, what is the same, doctrines. So it is here; but here they are merely mentioned for the sake of the series or connection with the things that precede, which are, that it was foreseen by the Lord that the man of this genius could be endowed with charity; but yet that three kinds of doctrines would thence have birth, which doctrines, of the Lord’s Divine mercy, shall be described hereafter, where Shem, Ham, and Japheth are treated of.

 

 

618.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리고 본 절, ‘세 아들을 낳았으니’ 모두 과거 시제로 언급되었다는 사실, 이 모두, 아직 미래의 일인데 말이지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속뜻이라는 건, 시간, 즉 시제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최초의 언어(the original language, 원어)는 이런 방식을 선호합니다. 거기서는 종종 한 가지 같은 말을 가지고 아무 시제에나 상관없이 사용합니다. 시제에 따라 다른 말을 쓰는 게 아니고요. 그렇게 하면, 그 속뜻, 그 내적인 것들이 더 명료해지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이런 융통성을 그 속뜻으로부터 얻는데요, 그 풍부함이란,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왜 시제라든지 혹은 언어 문법의 어떤 엄격함 같은 걸 따지지 않았을까 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That “Noah was righteous and perfect,” that he “walked with God,” and in this verse that he “begat three sons,” is all said in the past tense, and yet these expressions look to the future. It should be known that the internal sense is such that it has no relation to times; and this the original language favors, where sometimes one and the same word is applicable to any time whatever, without using different words, for by this means interior things appear more evidently. The language derives this from the internal sense, which is more manifold than anyone could believe; and therefore it does not suffer itself to be limited by times and distinctions.

2021-08-23(D2)-매일예배(AC.616-618, 창6,10), '세 아들을 낳았으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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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eZRKltof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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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These are the births of Noah; Noah was a man righteous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Noah walked with God. (창6:9)

 

 

610. ‘노아의 족보’는 새 교회가 개선되거나 다시 태어날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의미합니다. By “the births of Noah” is signified a description of the reformation or regeneration of the new church.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그 교회는 체어리티를 타고난 교회였다는 뜻입니다. ‘의인’(또는 ‘의로운’)(just, righteous)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관계가 있고, ‘완전한’(perfect)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That “Noah was a man just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signifies that he was such that he could be endowed with charity; “just” (or “righteous”) has relation to the good of charity, and “perfect” to the truth of charity.

‘당대’(generation)는 종교적 발전의 한 단계를 말합니다. The “generations” are those of faith.

‘하나님과 동행’은 앞서 에녹의 경우처럼, 여기서도 신앙과 관련된 교리를 상징합니다. To “walk with God” signifies here as before, when said of Enoch, the doctrine of faith.

 

 

611. ‘노아의 족보’라는 표현이, 새 교회가 개선되거나 다시 태어날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창2:4; 5:1) That by “the births of Noah” is signified a description of the reformation or regeneration of the new church,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Gen. 2:4; Gen. 5:1).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2:4)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612.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Noah was a man righteous and perfect(주2) in his generations.

이 교회는 체어리티라는 정서를 타고날 수 있었던 교회였음을 위와 같이 표현한 것이라는 이런 사실은, ‘의인이요 완전한’이라는 표현의 상징을 확인하면 됩니다. ‘의인’(또는 ‘의로운’)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완전한’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각각 관련됩니다. 같은 의미를 이 교회만의 차별화된 특징인 체어리티를 들여다 볼 때 또 만나게 되는데요, 그것은 주님의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따라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AC.640, 765) That this signifies that he was such that he could be endowed with char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just and perfect,” “just” (or “righteous”) having regard to the good of charity, and “perfect” to the truth of charity; and also from the essential of that church being charity,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의인’(또는 ‘의로운’)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관련이 있고, ‘완전한’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아래 이사야 말씀을 보면 확실합니다. That “just” (or “righteous”) has regard to the good of charity, and “perfect” to the truth of charity,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Isaiah: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They will seek me daily and desire knowledge of my ways, as a nation that doeth righteousness, and forsaketh not the judgment of their God; they will ask of me the judgments of righteousness, and will long for the approach of God. (사58:2)

 

여기 ‘규례, 판단’(judgment)은 진리에 의해 옹호되는 일들을, ‘공의, 의’(righteousness)는 선에 의해 촉구되어지는 일들을 각각 대표합니다. Here “judgment” denotes the things which are of truth, and “righteousness” those which are of good.

 

‘정의와 공의를 행함’은 선과 진리를 행하는 일종의 공식 표준이 되었습니다. (아래 말씀들 참조) “Doing judgment and righteousness” became as it were an established formula for doing what is true and good (as in Isa. 56:1; Jer. 22:3, 13, 15; 23:5; 33:15; Ezekiel 33:14, 16,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사56:1)

 

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13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5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렘22:3, 13, 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렘23: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렘33:15)

 

14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16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19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겔33:14, 16, 19)


주님 말씀입니다. The Lord said: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The righteous(주3) shall shine forth as the sun, in the kingdom of my father, (마13:43)

 

‘의인들’은 체어리티를 타고난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종말과 관련된 구절에서는, “the righteous” meaning those who are endowed with charity; and concernin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he said: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The angels shall go forth and shall sever the wicked from among the righteous. (마13:49)

 

여기서도 ‘의인들’은 체어리티에서 오는 선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Here also the “righteous” denote those who are in the good of charity.

 

[2] 하지만 ‘완전한’(perfect)은 체어리티 가운데 자라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진리는 여러 다른 곳에서 비롯될 수 있는데, 체어리티의 품에 안겨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 가운데서 자란 진리, 이 진리를 이름하여 ‘완전한’, ‘완전한 자’(perfect man,)라 하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다윗의 글에 나옵니다. But “perfect” signifies the truth which is from charity, for there is truth from many another origin; but that which is from the good of charity from the Lord is called “perfect” and a “perfect man,” as in David: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Who shall sojourn in thy tent, who shall dwell in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He that walketh perfect, and worketh righteousness, and speaketh the truth in his heart. (시15:1-2)

 

‘완전한’(perfect, 혹은 온전한 complete, 정직한, 반듯한 upright) 사람을 여기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perfect” [or “complete”] man is here described.

계속해서 Again: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With the holy thou wilt show thyself holy; with the perfect man thou wilt show thyself perfect, (시18:25)

 

‘완전한 자’는 체어리티를 동반한 거룩이나 선의 결과로 완전한 사람, 반듯한 사람입니다. where the “perfect man” is one who is so from holiness, or the good of charity.

다시 계속해서 And again: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Jehovah will withhold no good from them that walk in perfectness [integritate]. (시84:11)

 

[3] ‘완전한 자’(perfect man), 반듯한 한 개인은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선으로 격려를 받는 사람, 다시 말해서,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은 반듯함, 정직함에 대해 말씀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면 분명한데요, 말씀에서는 이것을 종종 ‘걸어가다’(walk), ‘길’(way) 같은 단어로 표현합니다. 반듯한 사람 혹은 성실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반듯한, 옳은’(upright, right)이나 ‘정직, 청렴’(uprightness, rectitude)을 사용하는데, 이런 단어들은 진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That a “perfect man” is one who is true from good, or who speaks and does truth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words “walk” and “way” being often applied to what is perfect, that is, to wholeness or entirety, and also the words “upright” or “uprightness,” which words pertain to truth.

예를 들면, 다윗의 글입니다. As in David: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I will teach the perfect in the way how far he shall come unto me. I will walk within my house in the perfectness of my heart; (시101:2)

 

그리고 6절에서 and in the sixth verse: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He that walketh in the way of the perfect, he shall minister unto me. (시101:6)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Blessed are the perfect in the way, who walk in the law of Jehovah. (시119: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Perfectness and uprightness shall guard me. (시25:21)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Mark the perfect man, and behold the upright, for the end of that man is peace. (시37:37)

 

이 구절들을 보면, ‘정직하다, 의롭다’(righteous)는 선을 행하는 사람을, ‘온전하다’(perfect)는 선에서 나온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또한 ‘정의와 공의를 행함’인 것입니다. It is evident from these passages that he is called “righteous” who does what is good, and that he is called “perfect” who does what is true therefrom, which also is to “do righteousness and judgment.”

 

‘거룩’(holiness)과 ‘의’(righteousness)는 신앙의 천적 측면이며, ‘온전함, 성실’(perfectness, integrity)과 ‘공의’(judgment)는 그런 천적 측면에서 나오는 영적 측면입니다. “Holiness” and “righteousness” are the celestial of faith; “perfectness” and “judgment” are the spiritual thence derived.

 

 

※ 각주

 

2. 여기에 쓰인 ‘완전하다’는 ‘전체’, ‘모든, 온’의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말, 단어는 정수입니다. [개정자] “Perfect”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whole,” “entire.” Swedenborg’s word is integer. [Reviser]

 

3. 두 영어 단어 ‘정의롭다’, ‘의롭다’에 대한 라틴어는 하나밖에 없으며, ‘정의’, ‘의’의 경우도 같습니다. [개정자] The Latin has only one word for our two English words “just” and “righteous,” and it is the same with “justice” and “righteousness.” [Reviser]

2021-08-20(D6)-매일예배(AC.610-612, 창6,9), '노아의 족보,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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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3klxbYx5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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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

THE INTERNAL SENSE

 

 

605. 지금 다루는 주제는 ‘노아’라는 이름을 가진 새 교회의 생겨남(formation)입니다. 이 교회의 생겨남을 방주를 가지고 묘사하고 있는데, 방주 안에는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The subject now treated of is the formation of a new church, which is called “Noah”; and its formation is described by the ark into which living things of every kind were received.

늘 그렇듯, 새 교회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 그것을 방주를 지어 띄움, 홍수로 범람한 물 위를 흔들거리며 하염없이 둥둥 떠다님 등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But as is wont to be the case, before that new church could arise it was necessary that the man of the church should suffer many temptations, which are described by the lifting up of the ark, its fluctuation, and its delay upon the waters of the flood.

새 교회, 곧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은 마침내 참된 영적 인간이 되면서 자유하게 되는데, 이것을 물의 빠짐과, 이어지는 많은 일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And finally, that he became a true spiritual man and was set free is described by the cessation of the waters, and the many things that follow.

말씀의 문자적 의미만 고수하시는 분들은 결코 이런 메시지를 볼 수 없습니다. 이 경우가 특히 그런데요, 말씀에 기록된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연결되고,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No one can see this who adheres to the sense of the letter only, in consequence (and especially is this the case here) of all things being historically connected, and presenting the idea of a history of events.

 

하지만 말씀을 이렇게 겉 글자와 달리 그 속뜻이 담기도록 기록한 이유는, 이런 형식이 그 당시 사람들의 스타일이요, 그들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무슨 대표성을 띤 그림처럼 포장, 그걸 역사 형태로 정돈하는 이런 문학 형태는, 그것이 더욱 더 역사 시리즈물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은 더욱 더 그들의 재능에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But such was the style of the men of that time, and most pleasing to them it was that all things should be wrapped up in representative figures, and that these should be arranged in the form of history; and the more coherent the historical series, the better suited it was to their genius.

고대인들은 오늘날처럼 어떤 사실을 날 것으로, 있는 그대로 다루느라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깊은, 심오한 사고(思考, thoughts)에 힘썼고, 그 결과는 오늘 본문에서 보듯 아주 기름진 결과들을 가져왔습니다. For in those ancient times men were not so much inclined to memory-knowledges as at this day, but to profound thoughts, of which the offspring was such as has been described.

이것이 고대인들의 지혜였습니다. This was the wisdom of the ancients.

 

 

606. ‘홍수’, ‘방주’ 및 이런 이유로, 이들과 관련된 것들이 거듭남과, 거듭남에 앞서 선행하는 시험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거듭남과 시험을 홍수, 그 범람하는 물에 비유하지요. That the “flood,” the “ark,” and therefore the things described in connection with them signify regeneration, and also the temptations that precede regeneration, is in some degree known among the learned at this day, who also compare regeneration and temptations to the waters of a flood.

 

※ 여기서 말하는 ‘오늘날’은 1750년대 유럽을 말합니다.

 

 

607. 하지만 이 교회의 캐릭터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But the character of this church will be described hereafter.

여기서는 살짝, 간략히만 말씀드리면, 태고 교회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던 반면, 지금 보고 있는 이 교회는 영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That an idea of it may be presented here, it shall be briefly said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was celestial, as already shown, but this church became spiritual.

태고 교회는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을 가졌었던 반면, 지금 이 고대 교회는 퍼셉션이 아닌,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른 종류의 딕테이트(dictate, inner voice), 곧 양심(conscience)이라고 하는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this, or the ancient church, had not perception, but in its place another kind of dictate, which may be called conscience.

 

[2] 그러나 아직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고, 또 아마 믿기도 어려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태고 교회 사람들은 내적 호흡을 했다는 것입니다. 외적 호흡은 그저 암묵적이었고요. But what is as yet unknown in the world, and is perhaps difficult to believe, is that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ad internal respiration, and only tacit external respiration.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천사들처럼 생각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안색의 무궁한 변화, 특히 입술 주변의 미세한 변화들을 가지고 어떤 정신적 이미지들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Thus they spoke not so much by words, as afterwards and as at this day, but by ideas, as angels do; and these they could express by innumerable changes of the looks and face, especially of the lips.

입술에는, 셀 수 없는 근섬유들이 시리즈로 있는데, 오늘날엔 이 근섬유들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자유로웠습니다. 그들은 그 근섬유들을 가지고, 오늘날 사람들이 또렷한 음성으로 한 시간 동안이나 설명해야 할 어떤 아이디어를 일 분도 안 되어 보여주기도, 상징하기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오늘날 우리처럼 단어나 단어의 이런저런 조합, 곧 문장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만하고 분명하게 확 이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In the lips there are countless series of muscular fibers which at this day are not set free, but being free with the men of that time, they could so present, signify, and represent ideas by them as to express in a minute’s time what at this day it would require an hour to say by articulate sounds and words, and they could do this more fully and clearly to the apprehension and understanding of those present than is possible by words, or series of words in combination.

이런 이야기는 확실히 믿어지지 않지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입니다. This may perhaps seem incredible, but yet it is true.

또한 이 행성에 속하지 않은 다른 많은 존재가 있는데, 그들은 이런 비슷한 방식의 언어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관해서는 나중에 주님의 자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cf. AC.6814, 7359-7360, 7745-7746, 8022-8026, 8247-8248, 10587-10588, 10708-10710) And there are many others, not of this earth, who have spoken and at this day speak in a similar manner; concerning whom,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3] 저로 하여금 이 내적 호흡이 과연 무엇과 같으며,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It has been given me to know the nature of that internal respiration, and how in process of time it was changed.

그들 태고 교회 사람들은 천사들, 천사들이 이런 식으로 호흡을 하는데요, 이렇게 천사들이 가진 것과 같은 호흡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사고 속 아주 깊은 데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일종의 퍼셉션 같은 것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퍼셉션이라는 것은 설명 불가한 것인데, 설령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따라서 실제로는 아무도 그걸 믿지 않을 것입니다. As these most ancient people had a respiration such as the angels have, who breathe in a similar manner, they were in profound ideas of thought, and were able to have such perception as cannot be described; and even if it could be described such as it really was, it would not be believed, because it would not be comprehended.

그러나 그들의 후손으로 가면서 이 내적 호흡은 점차 감소, 고갈되어 갔습니다. 끔찍한 신념과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이 내적 호흡은 소름 끼치도록 추한 것 말고는 무슨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생존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그들 모두는 쓸어버림을 당했습니다. But in their posterity this internal respiration little by little came to an end; and with those who were possessed with dreadful persuasions and fantasies, it became such that they could no longer present any idea of thought except the most debased, the effect of which was that they could not survive, and therefore all became extinct.

 

 

608. 내적 호흡이 줄어들면서,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은 외적 호흡이 점점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 외적 호흡과 함께 온 것이 바로 말로 하는 스피치인데, 또렷이 발음되어 잘 들리는 스피치입니다. 생각을 구성하는 개별 아이디어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바로 이 스피치입니다. When internal respiration ceased, external respiration gradually succeeded, almost like that of the present day; and with external respiration a language of words, or of articulate sound into which the ideas of thought were determined.

이 과정에서 인간의 상태는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이 전에 가졌던 그런 식으로 사물을 지각할 수가 없었고, 이 퍼셉션을 대신해서, 양심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내적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곧 이 ‘내적 음성’이라는 것은 양심과 흡사하며, 퍼셉션과 양심 사이 거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 양심과 친숙합니다. Thus the state of man was entirely changed, and became such that he could no longer have similar perception, but instead of perception another kind of dictate which may be called conscience, for it was like conscience, though a kind of intermediate between perception and the conscience known to some at this day.

생각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들이 이런 형태의 주물 안으로 부어지기 시작하자, 즉, 말로 표현, 발음되기 시작하자, 태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속사람을 통한 가르침을 받는 대신, 오직 겉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And when such determination of the ideas of thought took place, that is to say, into spoken words, they could no longer be instructed, like the most ancient man, through the internal man, but through the external.

태고 교회 계시들의 자리를 교리들이 계승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육체적 감각들을 가지고 붙들 수 있는 첫 번째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육체적 감각들은 기억 속 구체적 이미지들로 이미지화 되어 가고, 다시 아이디어들, 생각을 구성하는 것들인데, 다시 이미지화되어 아이디어들이 됩니다. 바로 이 아이디어들이 가르침의 어떤 도로 내지는 틀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And therefore in place of the revelations of the most ancient church, doctrinal things succeeded, which could first be received by the external senses, and from them material ideas of the memory could be formed, and from these, ideas of thought, by which and according to which they were instructed.

이렇게 태고 교회 뒤를 이어 일어난 교회인 고대 교회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니어스(genius, 재능, 마음, 정신, 심령)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인류에게 이 새로운 지니어스 또는 상태를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Hence it was that this church which followed possessed an entirely different genius from that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if the Lord had not brought the human race into this genius, or into this state, no man could have been saved.

 

 

609. ‘노아’라 이름하는 교회 사람들의 상태 변화 역시 똑같이 태고 교회 사람들의 상태 변화에서 왔기 때문에, 앞서 설명대로, 그들 역시 아무도 더 이상 태고 사람들이 누렸던 방식으로 무슨 가르침을 받거나 내면이 열리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내면이 닫히고, 그래서 더 이상 하늘과 교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예전의 그런 건 다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As the state of the man of this church which is called “Noah” was altogether changed from that of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e could no longer—as said before—be informed and enlightened in the same way as the most ancient man; for his internals were closed, so that he no longer had communication with heaven, except such as was unconscious.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제는 오감을 통한 외적 방식으로밖엔 무엇을 배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Nor, for the same reason, could he be instructed except as before said by the external way of sense or of the senses.

이런 이유로, 태고 교회를 위해 만들었던 어떤 계시들과 함께, 신앙에 관한 가르침들이 이 세대의 사용을 위해 보호, 보전된 것은 바로 주님의 섭리입니다. On this account, of the Lord’s providence, doctrinal matters of faith, with some of the revelations to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preserved for the use of this posterity.

‘가인’이 바로 이런 가르침들을 맨처음 수집, 멸망을 대비, 보전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죽임을 면케 하셨다 하신 이유입니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창4:15 관련 내용인 AC.392-396 참조) These doctrinal things were first collected by “Cain,” and were stored up that they might not be lost; and therefore it is said of Cain that a “mark was set upon him, lest anyone should slay him” (concerning which see what was said at that place, Gen.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에녹’은 이런 가르침들을 일종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으로 줄인 사람입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세대에게만 유용한 것이었으며, 이걸 가리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창5:24 및 AC.521 참조) These doctrinal matters were afterwards reduced into doctrine by “Enoch”; but because this doctrine was of use to no one at that time, but was for posterity, it is said that “God took him.” (See also Gen.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4)

 

지금 설명 중인 후손 또는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님이 따로 보관하신 것이 바로 이들 신앙의 가르침입니다. 퍼셉션은 사라질 것이며, 그래서 이 신앙의 가르침들이 잘 견디고 보존, 후대에 전달되어야 할 것을 주님은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These doctrinal matters of faith are what were preserved by the Lord for the use of this posterity or church; for it was foreseen by the Lord that perception would be lost, and therefore it was provided that these doctrinal things should remain.

2021-08-19(D5)-매일예배(AC.605-609, 창6,9-22), '창6,9-22 Inner Meaning'.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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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24TgJlfh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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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6:9-22

Genesis 6, verses 9–22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These are the births of Noah; Noah was a man righteous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Noah walked with God.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And Noah begat three sons: Shem, Ham, and Japheth.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And the earth was corrupt before God; and the earth was filled with violence.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And God saw the earth, and behold it was corrupt, for all flesh had corrupted its way upon the earth.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And God said unto Noah, The end of all flesh is come before me, for the earth is filled with violence from their faces, and behold I will destroy them with the earth.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Make thee an ark of gopher woods; mansions shalt thou make the ark, and shalt pitch it within and without with pitch. 15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And thus shalt thou make it: three hundred cubits the length of the ark, fifty cubits its breadth, and thirty cubits its height. 16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A window shalt thou make to the ark, and to a cubit shalt thou finish it from above; and the door of the ark shalt thou set in the side thereof; with lowest, second, and third stories shalt thou make it. 17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And I, behold I do bring the flood of waters upon the earth, to destroy all flesh wherein is the breath of lives from under the heavens; everything that is in the earth shall expire.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And I will set up my covenant with thee; and thou shalt enter into the ark, thou and thy sons, and thy wife, and thy sons’ wives with thee.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And of every living thing of all flesh, pairs of all shalt thou make to enter into the ark, to keep them alive with thee; they shall be male and female. 20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Of the fowl after its kind, and of the beast after its kind, of every creeping thing of the ground after its kind, pairs of all shall enter unto thee, to keep them alive. 21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And take thou unto thee of all food that is eaten, and gather it to thee, and it shall be for food for thee and for them.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And Noah did according to all that God commanded him; so did he.

 

 

요약

THE CONTENTS

 

 

599.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노아’라는 이름을 가졌던 교회의, 거듭나기 이전 상태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state of the church called “Noah,” before its regeneration.

 

 

600. (9절) 그 교회의 사람들을 거듭날 수 있었던 사람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 그런 가운데 그 교회에서 세 종류의 교리(doctrine), 신학(theology)이 일어났는데, 그들이 바로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The man of that church is described, that he was such that he could be regenerated (verse 9); but that there arose thence three kinds of doctrine, which are “Shem, Ham, and Japheth” (verse 10).

 

 

601. (11-12절) 태고 교회의 남은 후손들은 그들의 끔찍한 종교적 신념(persuasion, 설득, 기만)과 더러운 갈망(yearnings, 욕망) 때문에 아무도 거듭날 수 없었으며, (13절) 그들은 결국 이런 걸로 자신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That the man who was left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could not be regenerated, on account of his direful persuasions and foul yearnings (verses 11–12); whereby he would utterly destroy himself (verse 13).

 

 

602. (14절) 그러나 ‘방주’로 묘사하고 있는 ‘노아’ 교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5절) 그들에게 남아 있는 리메인스를 여러 수치(measures, 측량)로, (16절) 그들의 언더스탠딩(understanding, 이해력)의 여러 특징들은 ‘’, ‘’, ‘’으로 각각 묘사하고 있습니다. But the man of the church called “Noah,” who is described by the “ark,” was not so (verse 14); and the remains with him are described by the measures (verse 15);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by the “window,” “door,” and “mansions.” (verse 16)

 

 

603. (17절) 그들은 보호를 받게 되지만 나머지 다른 모든 사람은 악과 거짓의 범람, 홍수로 사라질 것입니다. That he would be preserved when the rest would perish by an inundation of evil and falsity (verse 17).

 

 

604. (18절) 그들에게 있던 진리들과 선들이 건짐을 받으며, (19-20절) 언더스탠딩에 속한 모든 것, 그리고 의지에 속한 모든 것도 건짐을 받을 텐데, 그 방법은 바로 거듭남입니다. (21절) 그들은 거듭남을 위한 준비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며, (22절) 그렇게 되었습니다. And that the truths and goods which were with him would be saved (verse 18); and thus whatever was of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was of the will, by regeneration (verses 19–20); for receiving which he was to be prepared (verse 21); and that it was so done (verse 22).

2021-08-18(D4)-매일예배(AC.599-604, 창6,9-22), '창6,9-22 Summary'.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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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JwkfCsF9LY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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