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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s in Heaven

 


366. As heaven is from the human race, and angels therefore are of both sexes, and from creation woman is for man and man is for woman, thus the one belongs to the other, and this love is innate in both, it follows that there are marriages in heaven as well as on the earth. But marriages in heaven differ widely from marriages on the earth. herefore what marriages in heaven are, and how they differ from marriages on the earth and wherein they are like them, shall now be told.

 

 

367. Marriage in heaven is a conjunction of two into one mind. It must first be explained what this conjunction is. The mind consists of two parts, one called the understanding and the other the will. When these two parts act as one they are called one mind. In heaven the husband acts the part called the understanding and the wife acts the part called the will. When this conjunction, which belongs to man’s interiors, descends into the lower parts pertaining to the body, it is perceived and felt as love, and this love is marriage love. This shows that marriage love has its origin in the conjunction of two into one mind. This in heaven is called cohabitation; and the two are not called two but one. So in heaven a married pair is spoken of, not as two, but as one angel.(각주241)
 
각주241. It is not known at this day what marriage love is, or whence it is (n. 2727).

 

이하 생략...

 

천국과지옥.1.40.366-386.'천국 안의 결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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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pk8lcdlv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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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창4:3)

 

 

346. ‘세월이 지난 후에’는 시간의 경과를; ‘땅의 소산’은 이웃 사랑이 없는 신앙으로 한 행위들을;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은 그런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각각 의미합니다. By the “end of days” is meant in process of time; by the “fruit of the ground,”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nd by “an offering to Jehovah,” worship thence derived.

 

 

347. ‘세월이 지난 후에’가 시간의 경과를 상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합니다. That by the “end of days” is signified in process of time, is evident to all.

 

처음에는, 그리고 아직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을 때는, 여기 ‘가인’이라 부르는 교리가 그렇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자녀를 ‘여호와로 말미암았다’ 한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At first, and while there was simplicity in it, the doctrine here called “Cain” does not appear to have been so unacceptable as it became afterwards, a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y called their offspring a “man Jehovah.

 

그래서 처음엔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세월이 지난 후에’, 혹은 시간이 그만큼 흐른 것으로 표현해야 할 만큼 그 정도로 분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참 신앙의 교리들이 다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Thus at first faith was not so far separated from love as at the “end of days,” or in process of time; as is wont to be the case with every doctrine of true faith.

 

 

348. ‘땅의 소산’이 이웃 사랑이 없는 신앙으로 한 행위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또한 다음과 같이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웃 사랑이 전혀 없는 신앙으로 한 행위들은 절대로 신앙의 행위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그저 겉 사람의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the “fruit of the ground” are meant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ppears also from what follows; for the works of faith devoid of charity are works of no faith, being in themselves dead, for they are solely of the external man.

 

예레미야에 이런 것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Of such it is written in Jeremiah:

 

1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Wherefore doth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Thou hast planted them, they also have taken root; they have gone on, they also bear fruit; thou art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reins;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렘12:1-2, 4)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는 이웃 사랑과 분리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 ‘이 땅이 슬퍼하며’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 denotes those who are of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concerning whom it is said that “the land mourns.

 

같은 예언서에서 이런 일들을 일컬어 ‘그의 행실대로’라 하고 있습니다. In the same prophet such works are called the “fruit of works”: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The heart is deceitful [supplantativum] above all things, and it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I Jehovah search the heart, I try the reins, even to give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works. (렘17:9-10)

 

미가서에서 In Micah: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The land shall be desolate because of them that dwell therein, for the fruit of their works. (미7:13)

 

이런 ‘열매’는 아무 열매도 아니며, 이런 ‘행위’는 죽은 행위라는 사실, 그리고 열매와 뿌리 둘 다 진멸된다는 선언이 아모스서에 나옵니다. That such “fruit” is no fruit, or that the “work” is dead, and that both fruit and root perish, is thus declared in Amos: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I destroyed the Amorite before them, whose height was like the height of the cedars, and he was strong as the oaks; yet I destroyed his fruit from above, and his roots from beneath. (암2:9)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Their fruit shalt thou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seed from the sons of man. (시21:10)

 

그러나 이웃 사랑의 행위들은 살아 있으며, 이런 행위들에 관하여, 이사야에 보면,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라 선포되고 있습니다. But the works of charity are living, and of them it is declared that they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as in Isaiah: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The remnant that is escaped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사37:31)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는 이웃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To “bear fruit upward” is to act from charity.

 

같은 예언서에서, 그런 열매를 일컬어 ‘영화로운 소산’이라 하고 있습니다. Such fruit is called the “fruit of excellence,” in the same prophet: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In that day shall the shoot of Jehovah be beautiful and glorious, and the fruit of the earth excellent and comely for them that are escaped of Israel. (사4:2)

 

그것은 또한 ‘구원의 열매’이며, 같은 예언서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It is also the “fruit of salvation,” and is so called by the same prophet: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Drop down, ye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pour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and let them bring forth the fruit of salvation, and let righteousness spring up together; I Jehovah will create it. (사45:8)

 

 

349. ‘제물’이 예배를 의미한다는 것은 유대 교회의 표상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유대 교회에서는 모든 종류의 희생제물들 및 땅의 첫 열매들과 그 모든 소산물, 그리고 초태생(初胎生)의 봉헌물 등을 가리켜 ‘제물들’이라 하였고, 그들의 예배는 이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That by an “offering” is meant worship is evident from the representatives of the Jewish church, in which sacrifices of every kind, as well as the first fruits of the earth and of all its produce, and the oblation of the firstborn, were called “offerings,” in which their worship consisted.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천국의 어떤 것들을 표현하며, 모든 것이 주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사실은, 참 예배는 이런 제물들로 상징된다는 사실입니다. And as they all represented heavenly things, and all had reference to the Lord, it must be obvious to everyone that true worship was signified by these offerings.

 

어떤 표상이라고 하면서 정작 표현하는 게 없거나, 어떤 겉보기에 종교이면서 정작 무슨 내적인 건 없고 대신 무슨 우상이나 죽음에 관한 것만 있다면 그게 무슨 표상이며, 그게 무슨 종교인가요? 겉이 가지고 있는 생명은 속, 곧 주님으로부터 속을 통해서 공급된 생명입니다. For what is a representative without the thing it represents? Or what is an external religion without an internal but a kind of idol and a thing of death? The external has life from things internal, that is, through these from the Lord.

 

이런 고찰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표상 교회의 모든 제물은 주님을 향한 예배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우리는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From these considerations it is evident that all the offerings of a representative church signify the worship of the Lord; and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reat in particular in the following pages.

 

제물들’이 보통은 예배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예언서들 전반을 보면, 특히, 말라기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by “offerings” in general is meant worship, is evident in the prophets throughout, as in Malachi:

 

2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Who shall abide the day of his coming? He shall sit as a refin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he shall purify the sons of Levi, and purge them as gold and silver, and they shall offer unto Jehovah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Then shall the offering of Judah and of Jerusalem be pleasant unto Jehovah, as in the days of eternity, and as in ancient years. (말3:2-4)

 

공의로운 제물’은 내적 제물이며, ‘레위 자손’, 곧, 거룩한 예배자들이 드릴 것입니다.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is an internal offering, which the “sons of Levi,” that is, holy worshipers, will offer.

 

옛날’은 태고 교회를, ‘고대’는 고대 교회를 각각 상징합니다. The “days of eternity,” signify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e “ancient years,” the ancient church.

 

에스겔에서 In Ezekiel: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In the mountain of my holiness, in the mountain of the height of Israel, there shall all the house of Israel, all that land, worship me; there will I accept them, and there will I require your oblations, and the first-fruits of your offerings, in all your sanctifyings. (겔20:40)

 

예물’과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웃 사랑으로 행해진 신성한 행위와 똑같은 것입니다. Oblations” and the “first fruits of the offerings in the sanctifyings” are likewise works sanctified by charity from the Lord.

 

스바냐에서 In Zephaniah: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From beyond the rivers of Ethiopia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습3:10)

 

구스’는 하늘에 속한 것들, 곧, 사랑, 이웃 사랑 및 이웃 사랑으로 행한 선행들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Ethiopia” denotes those who are in possession of celestial things, which are love, charity, and the works of charity.

 

2021-05-20(D5)-창세기(창4,3, AC.346-349), '땅의 소산, 가인의 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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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Uo_Pm2Wj8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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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창4:2)

 

 

341. 교회의 두 번째 자녀는, ‘아우’,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입니다; ‘양 치는 자’가 가리키는 것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고;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는, 하지만 신앙은 신봉 수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사람의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이런 건 아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신앙입니다.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s charity, signified by “Abel” and “brother”; a “shepherd of the flock” denote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and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342. 교회의 두 번째 자녀가 체어리티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합니다. 즉, 교회는 신앙과 체어리티 말고는 잉태하고 해산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That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s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church conceives and brings forth nothing else than faith and charity.

 

레아가 야곱에게서 낳은 첫 자녀들 역시 같은 것을 상징합니다; ‘르우벤’은 신앙을; ‘시므온’은 행하는 신앙을; 그리고 ‘레위’는 체어리티를 각각 가리키며, 이런 이유로, 레위 지파는 제사장직을 받아 ‘양 치는 자’임을 나타냈습니다. The same is signified by the first children of Leah from Jacob; “Reuben” denoting faith; “Simeon,” faith in act; and “Levi,” charity (Gen. 29:32, 33, 34), wherefore also the tribe of Levi received the priesthood, and represented the “shepherd of the flock.

 

32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29:32-34)

 

체어리티가 교회의 두 번째 자녀이므로, 부르기를, ‘아우’라 하고, 이름하여 ‘아벨’이라 하는 것입니다. As charity is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t is called “brother,” and is named “Abel.

 

 

343. ‘양 치는 자’는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자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데요, 이것은 신구약 말씀에 나오는 하나의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i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must be obvious to everyone, for this is a familiar figure in the Word of both Old and New Testaments.

 

인도하고 가르치는 자를 ‘목자’라 하고, 인도를 받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양 떼’라 합니다. He who leads and teaches is called a “shepherd,” and those who are led and taught are called the “flock.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도,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지도 않는 자는 참 목자가 아니며, 선으로 인도함을 받지도, 선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는 자는 양 떼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He who does not lead to the good of charity and teach it, is not a true shepherd; and he who is not led to good, and does not learn what is good, is not of the flock.

 

굳이 말씀에서 무슨 구절들을 대대적으로 인용하면서까지 ‘목자’와 ‘양 떼’가 상징하는 것을 확실히 하려고 애쓸 필요는 거의 없습니다. 다음 몇 구절들 정도면 되지 싶습니다. It is scarcely necessary to confirm this signification of “shepherd” and “flock” by quotations from the Word; but the following passages may be cited.

 

이사야에서: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The Lord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owest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사30:23)

 

여기,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 체어리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where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denotes charity.

 

계속해서: Again: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The Lord Jehovih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herd; he shall gather the lambs into his arm, and carry them in his bosom, and shall gently lead those that are with young. (사40:11)

 

시편에서: In David: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Give ear, O Shepherd of Israel, thou that leadest Joseph like a flock; thou that sittest on the cherubim, shine forth. (시80:1)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I have likened the daughter of Zion to a comely and delicate woman; the shepherds and their flocks shall come unto her, they shall pitch tents near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렘6:2, 3)

 

에스겔에서: In Ezekiel:

 

3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ih, I will multiply them as a flock of man, as a hallowed flock, as the flock of Jerusalem in her appointed times; so shall the waste cities be filled with the flock of man. (겔36:37–38)

 

이사야에서: In Isaiah: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All the flocks of Arabia shall be gathered together unto thee, the rams of Nebaioth shall minister unto thee. (사60:7)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양 떼를 모으는’ 자들인 반면,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는 자들은 ‘양 떼를 흩는’ 자들입니다. 모두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의 일이요, 모두를 흩어 하나가 되지 못 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가 결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y who lead the flock to the good of charity are they who “gather the flock”; but they who do not lead them to the good of charity “scatter the flock”; for all gathering together and union are of charity, and all dispersion and disunion are from want of charity.

 

 

344. 신앙, 즉, 기억-지식 [스키엔티아], 지식 [코그니시오], 그리고 신앙의 교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고 있을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이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What avails faith, that is, the memory-knowledge [scientia], the knowledge [cognitio], and the doctrine of faith, but that the man may become such as faith teaches? And the primary thing that it teaches is charity. (Mark 12:28-35; Matt. 22:34-39)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12:28-35)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4-39)

 

이것이 모든 신앙의 최종목표이며, 만일 이게 안 되면, 모든 지식이나 교리는 한낱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지 않겠습니까? This is the end of all it has in view, and if this be not attained, what is all knowledge or doctrine but a mere empty nothing?

 

 

345.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는, 하지만 신앙은 신봉 수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사람의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이런 건 아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신앙입니다.’ 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가인의 제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가 그의 동생을 죽인 것, 즉,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를 파괴한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is evident from what follows: that Jehovah had no respect to his offering, and that he slew his brother, that is, destroyed charity, signified by “Abel.

 

땅을 간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육(肉)적, 세속적인 것들에 시선을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창세기 3장 19절과 23절에,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ose were said to “till the ground” who look to bodily and earthly things, as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in Gen. 3:19, 23, where we read that the man was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19, 23)

 

2021-05-19(D4)-창세기(창4,2, AC.341-345), '아벨, 양 치는 자, 농사하는 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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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Raf-IUze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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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창4:1)

 

 

338.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태고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첫 자식, 처음 난 자녀가 신앙이며, 여기서는 ‘가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가 상징하는 것은, ‘가인’이라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을,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와 별개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By the “man and Eve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as has been made known; its first offspring, or firstborn, is faith, which is here called “Cain”; her saying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ies that with those called “Cain,” faith wa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339. 앞선 세 장에서, 지금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충분히 보여드렸던 것은, ‘아담과 그의 아내’가 태고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면서 이제 분명한 것은, 이 태고 교회의 영향을 받은 임신 및 출생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온 본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In the three foregoing chapters it has been sufficiently shown that by the “man and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so that it cannot be doubted, and this being admitted, it is evident that the conception and the birth effected by that church were of the nature we have indicated.

 

이름을 주고, 이름을 가지고 사물을 상징하고, 그런 식으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는 것은, 태고인들에게는 하나의 관례였습니다. It was customary with the most ancient people to give names, and by names to signify things, and thus frame a genealogy.

 

태고 교회와 관계된 것들도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대대로 하나는 잉태하고, 다른 하나는 해산하고 하였습니다. For the things of the church are related to each other in this way, one being conceived and born of another, as in generation.

 

그래서 말씀에서 교회와 관계된 것들을 일컬어, ‘잉태’, ‘해산’, ‘자녀’, ‘유아’, ‘어린이’, ‘아들’, ‘’, ‘젊은이’ 등으로 부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Hence it is common in the Word to call things of the church “conceptions,” “births,” “offspring,” “infants,” “little ones,” “sons,” “daughters,” “young men,” and so on.

 

말씀 중 예언서들에서 이런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The prophetical parts of the Word abound in such expressions.

 

 

340. 본문,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의 상징이, ‘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을 체어리티와 별개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음이라는 것은, 이 장을 처음 시작할 때 드린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words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y that with such as are called “Cain” faith i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t the beginning of this chapter.

 

전에, 그들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해 무지한 듯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퍼셉션이라는 것으로 신앙의 모든 것을 지각했기 때문입니다. Previously, they had been as it were ignorant of what faith is, because they had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of faith.

 

그러나 그들이 신앙의 교리를 뚜렷이 구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퍼셉션으로 알던 것들을 가져다가 교리화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전에는 심비(心碑)에 저절로 새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But when they began to make a distinct doctrine of faith, they took the things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reduced them into doctrine, calling it “I have gotten a man, Jehovah,” as if they had found out something new; and thus what was before inscribed on the heart became a mere matter of knowing.

 

고대에 그들은 모든 새로운 것에 어떤 이름을 주었고, 이런 식으로 그 이름들에 들어있는 것들을 설명했습니다. In ancient times they gave every new thing a name, and in this way set forth the things involved in the names.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그녀의 고통을 들으셨다’(창16:11)를 상징하며, Thus the signification of the name Ishmael is explained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her affliction; (창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1)

 

르우벤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창29:32)를, that of Reuben, by the expression, “Jehovah hath looked upon my affliction; (창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9:32)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다’(창29:33), the name Simeon,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that I was less dear; (창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29:33)

 

유다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29:35)를, and that of Judah by, “This time will I praise Jehovah; (창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29:35)

 

그리고 모세가 세운 제단을 가리켜 ‘여호와 닛시’(출17:15),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 하였습니다. and an altar built by Moses was called, “Jehovah my banner. (출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17:15)

 

이런 식으로 여기 신앙의 교리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또는 ‘가인’이라 명명한 것입니다. In like manner the doctrine of faith is here denominated “I have gotten a man, Jehovah,” or “Cain.

 

2021-05-18(D3)-창세기(창4,1, AC.338-34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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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v6vQvx61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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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

THE INTERNAL SENSE

 

 

337. 이번 장이 태고 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 교회는 천인(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외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인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인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시72:1, 3, 5, 7)

 

여기서 ‘’는 사랑을 상징하며, ‘’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 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 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 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고대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 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2021-05-17(D2)-창세기(창4, AC.337), '창4 이해를 위한 배경, 참된 교회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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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Q__1bxAh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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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

Genesis 4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창4)

 

 

내용

THE CONTENTS

 

 

324.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리들, 이단이라고도 하는 교리들을 여기서 다루며, ‘에노스’라고 하는, 나중에 새롭게 일어난 교회도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325. 태고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사랑과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이름하여 ‘가인’이라 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사랑)를 이름하여 ‘아벨’이라 하였습니다.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1-2절)

 

 

326. 각각의 예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과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인의 제사’라 하고,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를 ‘아벨의 제사’라 합니다.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3-4절)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있었으나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없었습니다.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4-5절)

 

 

327.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의 상태는 악하게 되었는데요, 이걸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5-6절)

 

 

328. 신앙의 퀄러티(quality, 質)는 체어리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늘 함께 하고 싶어하므로, 만일 신앙이 주(主)가 되려 하거나 체어리티 위에 올라 높아지려고 하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And that the quality of the faith is known from the charity; and that charity wishes to be with faith, if faith is not made the principal, and is not exalted above charity. (7절)

 

 

329. 신앙을 분리하여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체어리티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8-9절)

 

 

330. 사라진 체어리티를 ‘핏소리’로, 왜곡된 교리를 ‘땅에서 저주를’로, 거기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10절);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11절);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12절)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13-14절)

 

그러나 나중에 체어리티가 이식되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님은 신앙을 불가침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것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15절)

 

그리고 그것의 본래 지위에서 쫓겨나는 것을 가리켜 ‘에덴 동쪽을 향하여 거주하는 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16절)

 

 

331. 이 이단의 엄청난 확장을 가리켜 ‘에녹’이라 합니다.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17절)

 

 

332. 이 에녹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난 이단들 역시 자기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그 끝에 라멕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라멕이라는 이단은 신앙이라는 게 전혀 없는 이단이었습니다.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18절)

 

 

333. 그후에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는데요, 이것이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입니다. 이 새롭게 일어난 교회를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야발’로, 영적인 것들을 ‘유발’로, 그리고 자연적인 것들을 ‘두발가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19-22절)

 

 

334. 신앙과 체어리티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일어난 이 교회, 그리고 이 교회에 일어났던 폭동과, 이 폭동으로 신성이 가장 심각하게 더럽힘을 당한 이야기입니다. That this church arose when everything of faith and charity was extinguished, and had violence done to it, which was in the highest degree sacrilegious, is described. (23-24절)

 

 

335. 요약입니다. ‘가인’으로 상징되는 신앙 이후 체어리티가 사라졌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이 일어났고,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체어리티가 새롭게 이식되었습니다. 이 신앙을 이름하여 ‘’이라 합니다. A summary of the subject is given: that after faith, signified by “Cain,” had extinguished charity, a new faith was given by the Lord, whereby charity was implanted. This faith is called “Seth. (25절)

 

 

336. 신앙에 의해 이식된 체어리티를 이름하여 ‘에노스’, 또는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교회의 이름입니다.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26절)

 

2021-05-16(D1)-창세기(창4, AC.324-336), '창4 아케이나 브리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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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

영(혼)으로 산다는 것의

본성에 관하여

Genesis 4

ON THE NATURE OF THE LIFE

OF THE SOUL OR SPIRIT

 

 

320. 영이 된다는 것, 이제 막 영이 되었을 때 어떤 생활이 시작되는지에 관해, 일반적으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은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사람은 저 세상에 들어온 처음에는 자기가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대신 자기는 아직도 이 세상에 있는 줄로, 자기는 여전히 몸 안에 있는 줄로 안다는 사실입니다. With regard to the general subject of the life of souls, that is, of novitiate spirits, after death, I may state that much experience has shown that when a man comes into the other life he is not aware that he is in that life, but supposes that he is still in this world, and even that he is still in the body.

 

이런 경우가 참 많은데요, 사람은 그러다가 자기가 영이라는 말을 들으면 크게 놀라며 경악해 합니다. 그가 이렇게 놀라는 데는 두어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보기에 자기는 너무나도 사람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감각들도, 욕구들도, 그리고 생각들도 말이지요. 또 하나는, 그가 세상 살 동안 영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So much is this the case that when told he is a spirit, wonder and amazement possess him, both because he finds himself exactly like a man, in his senses, desires, and thoughts, and because during his life in this world he had not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the spirit, or, as is the case with some, that the spirit could be what he now finds it to be.

 

 

321. 이제 막 영이 되었을 때, 일반적인 그 두 번째 모습은, 영은 훨씬 더 탁월해진 감각 능력들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에 있어 훨씬 더 월등해지는데요, 그가 몸 안에 살 때하고는 차원이 다른 능력들이 됩니다. 그래서 이 두 상태, 곧 몸 안에서 지냈을 때와 몸을 벗고 영이 되었을 때는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능력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영들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로 숙고(熟考)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A second general fact is that a spirit enjoys much more excellent sensitive faculties, and far superior powers of thinking and speaking, than when living in the body, so that the two states scarcely admit of comparison, although spirits are not aware of this until gifted with reflection by the Lord.

 

 

322. 영들은 몸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정교한 감각들을 갖지 못한다는 거짓 관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Beware of the false notion that spirits do not possess far more exquisite sensations than during the life of the body.

 

저는 수천번 반복된 경험을 통해 오히려 사실은 정반대임을 알고 있습니다. I know the contrary by experience repeated thousands of times.

 

영의 본성에 관한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이런 거 믿는 걸 영 껄끄러워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저 세상에 올 때, 이런 사실들을 안 믿을 수가 없는 그런 곳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합니다. Should any be unwilling to believe this, in consequence of their preconceived ideas concerning the nature of spirit, let them learn it by their own experience when they come into the other life, where it will compel them to believe.

 

처음 장소에서 영들은 시력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빛 가운데 살기 때문이며, 선한 영들, 천사 같은 영들, 그리고 천사들은 지상 정오의 빛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밝은 빛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In the first place spirits have sight, for they live in the light, and good spirits, angelic spirits, and angels, in a light so great that the noonday light of this world can hardly be compared to it.

 

그들이 지내게 될, 그리고 보게 될 이 빛에 대해서는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The light in which they dwell, and by which they see,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described hereafter.

 

영들은 또한 듣는데요, 이 듣기 또한 얼마나 뛰어난지 몸에 있을 때 가졌던 청력하고는 정말이지 비교가 안 됩니다. Spirits also have hearing, hearing so exquisite that the hearing of the body cannot be compared to it.

 

수 년 간 그들은 정말 계속해서 저랑 얘길 했는데요, 그들의 스피치에 관해서도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For years they have spoken to me almost continually, but their speech also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described hereafter.

 

그들은 냄새도 맡을 수 있으며, 이 또한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They have also the sense of smell, which also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treated of hereafter.

 

그들은 가장 예민한 촉감 또한 갖고 있는데요, 그래서 예를 들면, 지옥에서 견뎌야 하는 아픔들과 고통들이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모든 감각은 촉감과 관련이 있어서 촉감 관점에서 보면 다른 감각들은 그저 촉감의 다양한 형태, 버라이어티한 모습일 뿐입니다. They have a most exquisite sense of touch, whence come the pains and torments endured in hell; for all sensations have relation to the touch, of which they are merely diversities and varieties.

 

영들은 욕구들과 애정들 또한 갖는데요, 그들이 몸 안에 있었을 때 가졌던 것들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이 역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They have desires and affections to which those they had in the body cannot be compared,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more will be said hereafter.

 

영들은 그들이 몸 안에서 지내면서 했던 생각과 사고들에 비해 훨씬 더 명료하고 뚜렷하게 생각합니다. Spirits think with much more clearness and distinctness than they had thought during their life in the body.

 

그들이 세상 살 때 가졌던 천 개의 아이디어 안보다 지금 그들의 사고 단 한 개 아이디어 안에 들어 있는 게 더 많습니다. There are more things contained within a single idea of their thought than in a thousand of the ideas they had possessed in this world.

 

그들은 서로 말할 때, 아주 날카롭게, 섬세하게, 총명하게, 그리고 탁월하게 말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런 걸 조금이라도 지각하면 그는 깜짝놀라며 흥분할 것입니다. They speak together with so much acuteness, subtlety, sagacity, and distinctness, that if a man could perceive anything of it, it would excite his astonishment.

 

요약하자면, 사람한테 있는 건 영들한테도 다 있습니다. 단, 더 완벽한 수준으로 있습니다. 다만 살과 뼈와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결함은 빼고 말이지요. In short, they possess everything that men possess, but in a more perfect manner, except the flesh and bones and the attendant imperfections.

 

영들은, 심지어 몸 안에서 지낼 동안 감각을 느낀 것도 사실은 영이었고, 오감(五感)의 능력이 몸 안에서 모든 걸 장악했어도 여전히 그건 몸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 몸을 벗게 되었을 때, 영 본연의 오감 능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로 완벽, 완전하다는 것을 영들은 알고 지각합니다. They acknowledge and perceive that even while they lived in the body it was the spirit that sensated, and that although the faculty of sensation manifested itself in the body, still it was not of the body; and therefore that when the body is cast aside, the sensations are far more exquisite and perfect.

 

삶은 오감을 느끼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게 없으면 삶도 없지요. 이런 게 바로 오감의 능력이며, 이런 게 바로 삶이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Life consists in the exercise of sensation, for without it there is no life, and such as is the faculty of sensation, such is the life, a fact that anyone may observe.

 

 

323. 이 장 끝에, 자기들이 세상에 있을 동안 이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At the end of the chapter, several examples will be given of thos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thought otherwise.

 

2021-05-15(D7)-창세기(창4 오프닝, AC.320-323), '창4 오프닝, 영(혼)으로 산다는 것'.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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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WMH3xH93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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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4. 소생한 사람, 즉, 영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그에게 빛의 사용이 주어지고 나면, 앞서 말한 영적 천사들이 그 상태에서 그가 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서비스하며, 저 세상 삶에 관한 정보를 그에게 제공하되 그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After the use of light has been given to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so that he can look about him, the spiritual angels previously spoken of render him all the kindly services he can in that state desire, and give him information about the things of the other life, but only so far as he is able to receive it.

 

만일 그가 신앙 안에 있었고, 원한다면, 천사들은 그에게 원더풀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천국을 보여줍니다. If he has been in faith, and desires it, they show him the wonderful and magnificent things of heaven.

 

 

315. 그러나 만일 그 깨어난 사람, 즉, 영이 지도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라면, 그는 함께 있는 영들이 좀 가줬으면 하는데, 그러면 천사들은 그걸 즉시 알아차립니다. 저 세상에서는 모든 생각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입니다. But if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is not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willing to be instructed, he then desires to be rid of the company of the angels, which they exquisitely perceive, for in the other life there is a communication of all the ideas of thought.

 

그들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그들을 떠나갑니다. Still, they do not leave him even then, but he dissociates himself from them.

 

천사들은 모두를 사랑하며, 그를 친절히 도와 인도하여서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 말고는 무슨 원하는 게 없습니다. The angels love everyone, and desire nothing more than to render him kindly services, to instruct him, and to convey him to heaven.

 

그들은 이것을 가장 기뻐합니다. In this consists their highest delight.

 

 

316. 그 영이 그렇게 스스로 물러나면, 이번에는 선한 영들의 순서가 되는데,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그에게 모든 친절한 사무를 제공합니다. When the soul thus dissociates himself, he is received by good spirits, who likewise render him all kind offices while he is in their company.

 

그러나 그가 세상 살 때 모습이 이런 선한 영들하고 있는 것조차 불편한 그런 것이었다면, 그는 이번에도 이들 선한 영들이 어서 좀 가줬으면 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 또 반복, 결국 그가 세상 살 때 모습과 딱 맞는, 그래서 ‘완전 내 스타일이야!’ 싶은 영들을 만날 때까지 그에게 계속됩니다. If however his life in the world has been such that he cannot remain in the company of the good, he desires to be rid of these also, and this process is repeated again and again, until he associates himself with those who are in full agreement with his former life in the world, among whom he finds as it were his own life.

 

그때부터 그는 정말 놀랍게도 그가 몸 안에 있을 때 살던 그대로 그들 가운데서 생활합니다. And then, wonderful to say, he leads with them a life like that which he had lived when in the body.

 

이런 생활 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는 그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부는 오래, 일부는 짧게 이곳에 머물다가들 지옥으로 전달됩니다. 반면,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던 영들은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천국으로 인도됩니다. But after sinking back into such a life, he makes a new beginning of life; and some after a longer time, some after a shorter, are from this borne on toward hell; but such as have been in faith toward the Lord are from that new beginning of life led step by step toward heaven.

 

 

317. 그러나 일부는 아주 천천히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또 어떤 영들은 아주 빨리 나아갑니다. Some however advance more slowly toward heaven, and others more quickly.

 

저는 사후 즉시 천국으로 올려지는 영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허락하심으로 두 가지 케이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I have seen some who were elevated to heaven immediately after death, of which I am permitted to mention only two instances.

 

 

318. 어떤 영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몇 가지 점에서,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음이 분명했습니다. A certain spirit came and discoursed with me, who, as was evident from certain signs, had only lately died.

 

처음에 그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저 세상에 와 있고, 자기는 더 이상 세상 살 때 소유했던 집, 부(富) 같은 것들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른 나라에 있고, 그래서 세상 살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박탈당했음을 알고, 근심에 쌓여 어디로 가야 할지, 지낼 곳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At first he knew not where he was, supposing himself still to be in the world; but when he became conscious that he was in the other life, and that he no longer possessed anything, such as house, wealth, and the like, being in another kingdom, where he was deprived of all he had possessed in the world, he was seized with anxiety, and knew not where to betake himself, or whither to go for a place of abode.

 

그때 그는 오직 주님이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과, 그는 세상 살 때처럼 혼자 자유롭게 생각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He was then informed that the Lord alone provides for him and for all; and was left to himself, that his thoughts might take their wonted direction, as in the world.

 

그는 이제 생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사후 세계에서는 모든 이의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이렇게 제가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심 중에 그는 심장 지역에 속한 어떤 천적 영들의 교제권 속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들은 그가 원하는 것에 모든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He now considered (for in the other life the thoughts of all may be plainly perceived) what he must do, being deprived of all means of subsistence; and while in this state of anxiety he was brought into association with some celestial spirits who belonged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o showed him every attention that he could desire.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체어리티 가운데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받은 이 엄청난 친절을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 이것을 보면, 그는 살아생전, 신앙의 체어리티로 살던 사람임이 틀림없었고, 그래서 그는 즉시, 천국으로 올려졌습니다. This being done, he was again left to himself, and began to think, from charity, how he might repay kindness so great, from which it was evident that while he had lived in the body he had been in the charity of faith, and he was therefore at once taken up into heaven.

 

 

319. 저는 또 다른 경우를 보았는데, 그는 즉시 천사들에 의해 천국으로 옮겨져 주님의 영접을 받고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약간 경과 후에 천국으로 옮겨지는 훨씬 더 많은 경우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I saw another also who was immediately translated into heaven by the angels, and was accepted by the Lord and shown the glory of heaven; not to mention much other experience respecting others who were conveyed to heaven after some lapse of time.

 

2021-05-14(D6)-창세기(창3 클로징, AC.314-319), '창3 클로징, 사후 영원한 삶을 시작하기 (3)'.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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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Mi2n0ajR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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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창3:24)

 

311. 홍수로 사라진 사람들의 저세상 상태는 이렇습니다. 그들은 영들의 세계 그 어디에서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영들과 함께 할 수도 없지요. 있을 데라고는 오직 지옥뿐인데, 그마저도 다른 어떤 지옥으로부터도 분리된, 어떤 산 아래인 것 같은 지옥에 있습니다. In the other life, the state of those who perished by the flood is such that they cannot be in the world of spirits, or with other spirits, but are in a hell separated from the hells of others, and as it were under a certain mountain.

 

이것은 그들의 무서운 판타지들과 설득들의 결과, 마치 중간에 가로막는 산처럼 나타납니다. This appears as an intervening mountain in consequence of their direful fantasies and persuasions.

 

그들의 판타지들과 설득들은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영들을 아주 중증(重症) 인사불성 상태에 이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게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다른 영들에게서 진리에 대한 그들의 모든 이해력을 빼앗아 그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Their fantasies and persuasions are such as to produce so profound a stupor in other spirits that they do not know whether they are alive or dead, for they deprive them of all understanding of truth, so that they perceive nothing.

 

세상 살 동안의 그들의 설득 능력, 사람의 혼을 쏙 빼먹는 능력 또한 그랬습니다. 저 세상에서도 그들은 다른 영들을 일종의 죽음으로 이르게 하지 않고는 그들과 어울릴 수가 없는 자들임이 예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소멸되었고, 저 세상에서도 저렇게 격리된 채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들과는 다른 상태들을 허락하셨습니다. Such also was their persuasive power during their abode in the world; and because it was foreseen that in the other life they would be incapable of associating with other spirits without inducing on them a kind of death, they all became extinct, and the Lord of his Divine mercy induced other states on those who lived after the flood.

 

 

312. 이 절에서, 이들 홍수 전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상태가 아주 충분히 설명되었습니다. 그들은 ‘쫓아내시고’, 혹은 천적 선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In this verse, the state of these antediluvians is fully described, in that they were “cast out,” or separated from celestial good, and in that “cherubim were placed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이 표현, 개역 성경 표현인 ‘에덴 동산 동쪽에’라는 표현 대신 아래 영어 성경을 원어 그대로 옮기면 ‘에덴 동산을 향하여(toward) 동쪽으로부터(from)’라는 표현은 그들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홍수 후 세대들에게는 쓸 수 없습니다. 만일 홍수 후 세대들에게 이 표현을 썼다면 ‘에덴 동산으로부터 동쪽을 향하여’라고 했을 것입니다. This expression,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is applicable only to them, and could not be used in relation to those who lived afterwards, of whom it would have been said, “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

 

마찬가지로, 말씀 ‘두루 도는 불 칼’, 즉, ‘스스로 도는 검의 화염’이라는 표현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쓰고자 하였다면, ‘스스로 도는 화염의 검’이라고 표현해야 했을 것입니다. In like manner, had the words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been applied to the people of the present day, they would have been “the sword of a flame turning itself.

 

뿐만 아니라, ‘생명 나무’, 즉, ‘생명들의 나무’ 역시 ‘생명의 나무’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설명이 불가능한, 오직 천사들에게만 이해되는 이런 일련의 다른 것들은 더 이상 말씀드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상태마다 무한한 아케이나가 들어 있으며, 그 중 단 한 개도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이걸 이해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이 이들에게는 계시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며, 이들은 그 계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Nor would it have been said the “tree of lives,” but the “tree of life”; not to mention other things in the series that cannot possibly be explained, being understood only by the angels, to whom the Lord reveals them; for every state contains infinite arcana, not even one of which is known to men.

 

 

313. 여기서 말씀드리는 내용이 첫 사람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한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유전된 악은 그로 말미암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가정한 것입니다. From what is here said of the first man, it is evident that all the hereditary evil existing at the present day did not come from him, as is falsely supposed.

 

여기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교회이며, 이 교회를 ‘아담’이라 부를 때,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사람은 땅에서, 즉 ‘사람이 아닌 상태’(nonman)에서 시작,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For it is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s here treated of under the name of “man”; and when it is called “Adam,” it signifies that man was from the ground, or that from being nonman he became man by regeneration from the Lord.

 

이것이 그 이름, 곧 ‘사람’이라는 이름의 기원과 상징입니다. 유전악에 대해서는, 이 경우는 이렇습니다. 실제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로 인해 그 자신 안에 어떤 본성이 초래되며, 그로 인한 악이 그의 어린 시절에 심겨 유전되는 것입니다. This is the origin and signification of the name. But as to hereditary evil, the case is this. Everyone who commits actual sin thereby induces on himself a nature, and the evil from it is implanted in his children, and becomes hereditary.

 

그렇게 해서 모든 부모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그리고 가계를 따라 그들의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며, 그렇게 각 세대 후손들 안에서 배가하고 늘어납니다. 유전악은 각 사람 안에 남으며, 각자 실제 짓는 죄로 인해 증가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저절로 소멸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It thus descends from every parent, from the father, grandfather, great-grandfather, and their ancestors in succession, and is thus multiplied and augmented in each descending posterity, remaining with each person, and being increased in each by his actual sins, and never being dissipated so as to become harmless except in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by the Lord.

 

모든 주의 깊게 관찰하시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진리임을 분명히 아십니다. 부모의 악한 경향은 자녀 안에 눈에 보이게 남아 한 가족, 심지어 그 가계 전체가 그로 인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말입니다. Every attentive observer may see evidence of this truth in the fact that the evil inclinations of parents remain visibly in their children, so that one family, and even an entire race, may be thereby distinguished from every other.

 

2021-05-12(D4)-창세기(창3,24, AC.311-313),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후손 이야기 (3)'.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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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창3:24)

 

 

309. ‘두루 도는 불 칼’이 비정상적인 탐욕들과 설득들을 동반한 자아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페이지들을 가득 채울 수도 있을 만큼 많은 인용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에스겔에 나오는 몇 구절만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비정상적인 탐욕들과 설득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의 신비들을 추구하게 하지만, 사실은 육체적, 세속적인 것들에게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말게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That by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is signified self-love with its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which are such that they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ut are carried away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might be confirmed by so many passages from the Word as would fill pages; but we will cite only these from Ezekiel: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Prophesy and say, Thus saith Jehovah, Say a sword, a sword, it is sharpened, and also burnished to make a sore slaughter; it is sharpened that it may be as lightning. Let the sword be doubled the third time, the sword of his slain; the sword of a great slaughter,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that their heart may melt, and their offenses be multiplied, I have set the terror of the sword in all their gates. Alas! it is made as lightning. (겔21:9-10, 14-15)

 

여기 ‘’은 사람의 황량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이 선과 진리는 전혀 못 보고, 대신 ‘많이 엎드러지게 하다’로 표현한 거짓들과 잘못된 일들만 볼 뿐임을 상징합니다. A “sword” here signifies the desolation of man such that he sees nothing that is good and true, but mere falsities and things contrary, denoted by “multiplying offenses.

 

또 나훔에도 나오는데요, 거기 신앙의 신비들을 추구하는 자들을 가리켜,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라 하고 있습니다. It is also said in Nahum, of those who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word, and the flash of the spear, and a multitude of the slain. (나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나3:3)

 

 

310. 이 구절 각각의 표현들에는 가장 깊은 의미들을 가진 아케이나가 너무나 많아 그걸 다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아케이나에 들어있는 것들은 홍수로 사라진 지금 이 사람들의 천성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홍수 후 살았던 사람들의 천성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Each particular expression in this verse involves so many arcana of deepest import (applicable to the genius of this people who perished by the flood, a genius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those who lived subsequent to the flood), that it is impossible to set them forth.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간략히 보겠습니다. 그들의 첫 부모 세대는 태고 교회를 형성한 세대로서, 천인(天人)들이었고, 그 결과, 그들 안에 심긴 천적(天的)인 씨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천적 기원을 가진 씨를 자기들 안에 가졌습니다. We will briefly observe that their first parents, who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celestial men, and consequently had celestial seeds implanted in them; whence their descendants had seed in them from a celestial origin.

 

천적 기원을 가진 씨는 사랑이 온 마음을 다스리며, 하나로 만드는 그런 것입니다. Seed from a celestial origin is such that love rules the whole mind and makes it a one.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의지와 이해력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방금 ‘하나로 만든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즉, 이 두 가지가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For the human mind consists of two parts,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사랑 혹은 선은 의지에, 신앙 혹은 진리는 이해력에 각각 속합니다. 태고 교회 사람들은 사랑 혹은 선을 가지고 무엇이 신앙 혹은 진리에 속하는지를 지각하였으며,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Love or good belongs to the will, faith or truth to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or good those most ancient people perceived what belongs to faith or truth, so that their mind was a one.

 

이런 인류의 후손이기 때문에, 동일한 천적 기원을 가진 씨가 필연적으로 남게 됩니다. 진리와 선이 각각 자기 쪽, 곧 진리는 진리 쪽에서, 선은 선 쪽에서 조금씩이라도 떨어져 나가는 것은 가장 끔찍한 경우인데요, 그렇게 되면 그들의 온 마음이 너무나 왜곡되어 저 세상에서 도저히 회복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With the posterity of such a race, seed of the same celestial origin necessarily remains, so that any falling away from truth and good on their part is most perilous, since their whole mind becomes so perverted as to render a restoration in the other life scarcely possible.

 

한편, 천적인 씨 대신 영적인 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홍수 후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오늘날 사람들도 해당합니다. It is otherwise with those who do not possess celestial but only spiritual seed, as did the people after the flood, and as also do the people of the present day.

 

이들에겐 사랑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선한 의지도 없지요. 그러나 신앙, 혹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있습니다. 이 능력으로, 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체어리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즉,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에 기반, 주님으로 말미암은 양심의 암시라는 방식, 즉, 이런 양심을 주님이 은근히 사람들 속으로 주입하시는 방식이지만 말입니다. There is no love in these, consequently no will of good, but still there is a capability of faith, or understanding of truth, by means of which they can be brought to some degree of charity, although by a different way, namely, by the insinuation of conscience from the Lord grounded in the knowledges of truth and the derivative good.

 

그들의 상태는 그래서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와 아주 다릅니다. 그 상태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후 다루겠습니다. Their state is therefore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the antediluvians, concerning which stat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현 세대에게는 정말 낯선 아케이나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아무도 천인이 무엇인지, 심지어 영인 조차 아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 사람의 마음과 생명의 퀄러티에 대해서조차 아는 바가 없고, 최종 결과인 사후 상태에 대해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These are arcana with which the present generation are utterly unacquainted, for at the present day none know what the celestial man is nor even what the spiritual man is, and still less what is the quality of the human mind and life thence resulting, and the consequent state after death.

 

2021-05-11(D3)-창세기(창3,24, AC.309-310),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후손 이야기 (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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