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 AC.182-319.pdf
1.98MB

 

창세기 3장 번역을 마쳤습니다

 

지난 1, 2장 번역은 장별 한 달여 걸린데 반해 이번 3장은 두 달 걸렸습니다. 아마 주일설교를 원고설교하느라 주중 절반을 설교준비에 쓰기 때문 같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및 계시록 총 절 수가 각각 1,533, 1,213 및 404 하여 총 3,150이므로 300으로 나누면 10.5, 즉 하루에 한 절, 주일 제외, 부지런히 하면 대략 십 년 정도 걸린다고 나오네요 ^^

 

주님은 스베덴보리를 통해 창세기와 출애굽기만 풀어주셨습니다. 이 안에 모든 것, 곧 나머지 말씀들을 풀 수 있는 모든 원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며,

 

또 이 두 권의 주석 총 10,837개의 글 안에 나머지 거의 모든 말씀들에 대한 언급 혹은 터치들이 조금씩은 있어 웬만큼은 말씀 전체가 다 커버되는 셈입니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Critical Notes

 

각주 #1, p.10, ‘계시록 주해’ 462번 e번 글에 보면, ‘sociantis sodalitia’(매력을 발산하는 것) 대신 ‘incantatoris incantationum’(마법사의 마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In Apocalypse Revealed (n. 462e), instead of sociantis sodalitia (one that charmeth charms) there is incantatoris incantationum (enchanter of enchantments). [Reviser]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3:20-24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개요

 

280. 여기서는 태고(太古) 교회와, 태고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fell away) 사람들, 그러니까 태고 교회의 끝인 홍수 때까지로 이어지는 태고 교회 후손들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81. 20절은,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그리고 주님 신앙의 생명으로 시작한, ‘하와’(Eve)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했던 태고 교회 이야기입니다. (20)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282. 21절은, 천적 영적 선이 있었던 첫 번째 후손과, 자연적 선이 있었던 두 번째, 세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인데, 그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21)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283. 22절은, 자연적 선이 소멸되기 시작했던, 그리고 만일 이런 상태에서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거나 가르침을 받기라도 했었더라면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을 네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으로, 그걸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로 말하고 있습니다. (22)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284. 23절은,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이었던 본래의 상태(1:2)로 돌아갔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285. 24절은,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으로, 이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지식, 곧 머릿속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마저 다 박탈당했고, 그들의 본성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과 망상에 가까운 신념들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로 말미암아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이 모독을 당할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24)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배경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 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 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 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4. 깨어난 사람, 혹은 영이 빛을 사용하여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면, 앞서 말한 영적 천사들이 그가 그 상태에서 원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친절하게 제공하며, 또 내세에 관한 정보도 제공하되 그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After the use of light has been given to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so that he can look about him, the spiritual angels previously spoken of render him all the kindly services he can in that state desire, and give him information about the things of the other life, but only so far as he is able to receive it.

만일 그가 신앙이 있었고, 지금도 원한다면, 그들은 그에게 원더풀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천국을 보여줍니다. If he has been in faith, and desires it, they show him the wonderful and magnificent things of heaven.

 

 

315. 그러나 만일 그 깨어난 사람, 혹은 영이 누구한테 배우는 걸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어서 자기랑 함께 있는 천사들이 좀 가줬으면 하면, 천사들은 그걸 또 바로 알아차립니다. 내세에서는 모든 생각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이지요. But if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is not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willing to be instructed, he then desires to be rid of the company of the angels, which they exquisitely perceive, for in the other life there is a communication of all the ideas of thought.

 

그들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대신 오히려 그가 그들을 떠나갑니다. Still, they do not leave him even then, but he dissociates himself from them.

 

천사들은 모두를 사랑하며, 신참 영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 인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 말고 따로 무슨 원하는 건 없습니다. The angels love everyone, and desire nothing more than to render him kindly services, to instruct him, and to convey him to heaven.

 

천사들의 가장 큰 기쁨은 이런 걸로 되어 있습니다. In this consists their highest delight.

 

 

316. 그 영이 그렇게 스스로 물러나면, 이번에는 선한 영들의 순서가 되는데,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가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친절하게 제공합니다. When the soul thus dissociates himself, he is received by good spirits, who likewise render him all kind offices while he is in their company.

 

그러나 그가 세상 살 때 삶이 이런 선한 영들하고 있는 것조차도 불편한 그런 것이었다면, 그는 이번에도 이들 선한 영들이 어서 좀 가줬으면 하는데, 이런 과정은 반복, 또 반복, 결국 그가 세상 살 때 모습하고 딱 맞는, 그래서 완전 내 스타일이야!’ 싶은 영들을 만날 때까지 그에게 계속됩니다. If however his life in the world has been such that he cannot remain in the company of the good, he desires to be rid of these also, and this process is repeated again and again, until he associates himself with those who are in full agreement with his former life in the world, among whom he finds as it were his own life.

 

그때부터 그는 정말 놀랍게도 그가 몸 안에 있을 때 살던 모습 그대로 그들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And then, wonderful to say, he leads with them a life like that which he had lived when in the body.

 

그런 예전 생활로 도로 돌아가버린 후, 그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요, 일부는 오래, 일부는 짧게 그곳 생활을 통해 지옥을 향해 새로 태어들, 즉 준비들을 하게 됩니다. 반면,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던 영들은 그들도 역시 그곳의 새로운 생활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그러나 이번에는 천국을 향해 인도를 받습니다. But after sinking back into such a life, he makes a new beginning of life; and some after a longer time, some after a shorter, are from this borne on toward hell; but such as have been in faith toward the Lord are from that new beginning of life led step by step toward heaven.

 

 

317. 그러나 일부는 천국을 향해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또 어떤 영들은 아주 빨리 나아갑니다. Some however advance more slowly toward heaven, and others more quickly.

 

저는 그동안 사후 즉시 천국으로 들려올라가는 영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허락하심으로 두 가지 경우만 말씀드리겠습니다. I have seen some who were elevated to heaven immediately after death, of which I am permitted to mention only two instances.

 

 

318. 어떤 영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요, 몇 가지 점에서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게 분명했습니다. A certain spirit came and discoursed with me, who, as was evident from certain signs, had only lately died.

 

그는 처음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지금 내세에 와 있고, 자기는 더 이상 세상 살 때 소유했던 집, () 같은 것들이 없으며, 자기는 지금 다른 왕국에 있는데, 이 왕국은 세상 살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은 박탈당하는 그런 데라는 것을 깨닫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자기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는지 몰라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At first he knew not where he was, supposing himself still to be in the world; but when he became conscious that he was in the other life, and that he no longer possessed anything, such as house, wealth, and the like, being in another kingdom, where he was deprived of all he had possessed in the world, he was seized with anxiety, and knew not where to betake himself, or whither to go for a place of abode.

 

그때 그는 오직 주님이 그와 모두를 위해 공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혼자가 되자 세상 살 때처럼 자유롭게 원하는 걸 생각해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He was then informed that the Lord alone provides for him and for all; and was left to himself, that his thoughts might take their wonted direction, as in the world.

 

그는 이제 (내세에서는 모든 이의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생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이렇게 근심 중에 그는 심장 지역에 속한 어떤 천적 영들의 교제권 속으로 옮겨졌으며, 거기서 그는 이들이 자기가 바라는 것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He now considered (for in the other life the thoughts of all may be plainly perceived) what he must do, being deprived of all means of subsistence; and while in this state of anxiety he was brought into association with some celestial spirits who belonged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o showed him every attention that he could desire.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체어리티 가운데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받은 이 엄청난 친절을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 이것을 보면, 그는 살아생전 체어리티 신앙으로 살던 사람임이 분명했고, 그러자 그는 즉시 천국으로 올려졌습니다. This being done, he was again left to himself, and began to think, from charity, how he might repay kindness so great, from which it was evident that while he had lived in the body he had been in the charity of faith, and he was therefore at once taken up into heaven.

 

 

319. 저는 또 다른 경우를 보았는데, 그는 천사들에 의해 즉시 천국으로 옮겨져 주님의 영접을 받고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조금 머물다가 천국으로 옮겨지는 훨씬 더 많은 경우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I saw another also who was immediately translated into heaven by the angels, and was accepted by the Lord and shown the glory of heaven; not to mention much other experience respecting others who were conveyed to heaven after some lapse of time.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땅덩어리 2022.08.11 0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유드려요~!
    지금 알고있는 천국과 지옥 다 뻥이다
    https://youtu.be/g_jrXyDL6hs

창3:20-24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Verse 24,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 24절 속뜻

 

거듭남 이전 상태인 ‘혼돈과 공허, 흑암’(창1:2) 상태로 원위치, 태고 교회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고,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교회가 다시 ‘에덴 동산 안 생명 나무’를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즉 신성모독의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주님은 주님의 섭리로 막으시며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306.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그에게서 선에 관한 모든 의지와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understanding)를 깡그리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부터까지 분리가 되어 더는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도록 말입니다. To “cast out the man” is to entirely deprive him of all the will of good and understanding of truth, insomuch that he is separated from them, and is no longer man.

   

※ 사람은 의지와 이해가 있어 사람인데 이런 기본적인 것들하고도 분리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더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게 된 지경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는 그가 무슨 신앙의 신비와 관련된 것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동쪽’은 천적(天的, the celestial)이요, 여기서 지성이 나오기 때문이며, ‘그룹들’(cherubim)은 저런 사람이 신앙과 관련된 것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o “make cherubim from the east to dwell” is to provide against his entering into any secret thing of faith; for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is the celestial, from which is intelligence; and by “cherubim” is signified the providence of the Lord in preventing such a man from entering into the things of faith.

 

두루 도는 불 칼은 광적(狂的, insane) 욕망과 그로 인해 고착된(固着, persuasions) 자아 사랑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그는 정말 신앙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육적(肉的, corporeal)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마는,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의 목적, 즉 거룩한 것들에 대한 신성모독을 막고자 하시는 목적입니다. By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is signified self-love with its insane desires and consequent persuasions, which are such that he indeed wishes to enter, but is carried away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and this for the purpose of “keeping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that is, of preventing the profanation of holy things.

 

 

307. 여기서 다루는 후손들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입니다. 이들은 홍수로 사라졌고,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즉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에서 박탈, 광적 탐욕(cupidities)과 들러붙은 신념(persuasions)만 남은, 그래서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It here treats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which perished by the flood, and were altogether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that is, from all understanding of truth, and became as it were not men, being left to their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308. 동쪽에덴동산에 관한 상징은 위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이걸로 오래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그룹이 주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the Lord), 곧 이 섭리가 없으면 사람은 자기 본성을 따라, 그리고 감각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을 따라 광적으로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들어가서는 그것들을 신성모독(profane),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는, 그런 섭리를 가리킨다는 것은 말씀 가운데 그룹이 나오는 데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As the signification of the “east” and of the “garden of Eden” were given above, it is needless to dwell longer on them; but that “cherubim” denote the providence of the Lord lest man should insanely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from his own, and from what is of the senses and of memory-knowledge, and should thus profane them, and destroy himself, is evident from all the passages in the Word where mention is made of “cherubim.”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주님의 오심, 유대교회의 표상들, 형식들이 주님을 상징한다는 것, 그리고 사후에도 계속되는 삶, 또한 속 사람과 말씀의 속뜻 등에 관하여 계시가 열려 어떤 지식을 갖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그것을 모독하려 할 것이고, 결국엔 영원히 소멸되어 버리고 말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이 그들을 지키심을 궤 위(above) 속죄소 위(on), 성막 휘장들 위(upon), 성전 안 휘장 위(upon) ‘그룹으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25:18-21; 26:1, 31; 왕상6:23-29, 32) As the Jews were of such a quality that if they had possessed any clear knowledge concerning the Lord’s coming, concerning the representatives or types of the church as being significative of him, concerning the life after death, concerning the interior man and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they would have profaned it, and would have perished eternally; therefore this was represented by the “cherubim” on the mercy seat over the ark, upon the curtains of the tabernacle, upon the veil, and also in the temple; and it was signified that the Lord had them in keeping. (Exod. 25:1821; 26:1, 31; 1 Kings 6:2329, 32)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출25:18-21)

 

1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31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출26:1, 31)

 

23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 29내 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2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왕상6:23-29, 32)

 

그 안에 증거판이 들어있었던 증거궤가 이 본문의 생명 나무와 같은 것을 상징, 즉 주님과 오직 주님에게 속한 천적인 것들을 상징했기 때문이지요. For the ark, in which was the testimony, signified the same as the tree of lives in this passage, namely, the Lord and the celestial things which belong solely to him.

 

그래서 또한 주님은 자주 일컬음 받으시기를,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셨고, 그래서 주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두 그룹 사이에서말씀하셨습니다. (25:22; 7:89) Hence also the Lord is so often called the “God of Israel sitting on the cherubim,” and hence he spoke with Moses and Aaron “between the cherubim.” (Exod. 25:22; Num. 7:89)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25:22)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민7:89)

 

이것은 에스겔, 그룹이 언급된 부분을 보면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This is plainly described in Ezekiel, where it is said:

 

3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9:3-7)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was uplifted from upon the cherub whereon he was, to the threshold of the house. And he called to the man clothed with linen, and said unto him, Go through the midst of the city, through the midst of Jerusalem, and set a mark upon the foreheads of the men who groan and sigh for all the abominations done in the midst thereof. And to the others he said, Go ye after him through the city, and smite; let not your eye spare, neither have ye pity; slay to blotting out the old man, and the young man, and the virgin, the infant, and the women; defile the house, and fill the courts with the slain. (Ezek. 9:37)

 

 

2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7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10:2, 7) He sai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Go in between the wheel to beneath the cherub, and fill thy palms with coals of fire from between the cherubim, and scatter them over the city; the cherub put forth his hand from between the cherubim unto the fire which was between the cherubim, and took thereof, and put it into the palms of him that was clothed in linen, who took it and went out. (Ezek. 10:2, 7)

 

이 구절들에서 분명한 사실은, ‘그룹의 상징이 사람들이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라는 것이며, 그래서 성읍 위에 흩을 숯불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말라의 상징이 그들은 자기들의 광적 탐욕들 가운데 버려졌다는 거라는 것입니다. 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the providence of the Lord in preventing men from entering into the mysteries of faith is signified by the “cherubim”; and that therefore they were left to their insane cupidities, here also signified by the “fire that was to be scattered over the city,” and that “none should be spared.”

 

 

309. 두루 도는 불 칼이 광적 탐욕과 들러붙은 신념, (신앙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기를 무척 원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육적, 세속적인 것들을 향해 휩쓸려 버리고 마는, 그런 자아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페이지들을 가득 채울 수도 있을 만큼 많은 인용 구절들을 가지고 확인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에스겔에 나오는 몇 구절 가지고만 하고자 합니다. That by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is signified self-love with its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which are such that they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ut are carried away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might be confirmed by so many passages from the Word as would fill pages; but we will cite only these from Ezekiel: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21:9-10, 14-15) Prophesy and say, Thus saith Jehovah, Say a sword, a sword, it is sharpened, and also burnished to make a sore slaughter; it is sharpened that it may be as lightning. Let the sword be doubled the third time, the sword of his slain; the sword of a great slaughter,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that their heart may melt, and their offenses be multiplied, I have set the terror of the sword in all their gates. Alas! it is made as lightning.

 

여기 은 사람의 황폐함, 곧 선과 진리는 전혀 못 보고 대신 많이 엎드러지게 하다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대로 그저 매사를 거짓과 거꾸로만 볼 뿐인 상태, 황폐함을 상징합니다. A “sword” here signifies the desolation of man such that he sees nothing that is good and true, but mere falsities and things contrary, denoted by “multiplying offenses.”

 

또 나훔에도 보면, 거기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가리켜,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3:3)라 하고 있습니다. It is also said in Nahum, of those who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word, and the flash of the spear, and a multitude of the slain.” (Nahum 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훔3:3)

 

 

310. 이 구절 각각의 표현들에는 제시, 곧 다루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깊은, 그리고 중요한 아케이나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 아케이나는 홍수로 사라진 지금 이 사람들의 천성(天性, genius)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천성은 홍수 후 일어나 살았던 노아 이후 사람들의 천성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Each particular expression in this verse involves so many arcana of deepest import (applicable to the genius of this people who perished by the flood, a genius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those who lived subsequent to the flood), that it is impossible to set them forth.

 

다음은 간략히 보시게 될 내용인데요, 그들의 첫 부모 세대는 태고 교회를 형성한, 천적인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 자기들 안에 천적 씨가 심긴 사람들이었으며, 자연히 그 후손들 역시 그들 안에 천적 기원을 가진 씨를 갖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We will briefly observe that their first parents, who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celestial men, and consequently had celestial seeds implanted in them; whence their descendants had seed in them from a celestial origin.

 

어떤 씨의 기원이 천적이라는 것은 사랑이 온 마음을 다스려 하나가 되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Seed from a celestial origin is such that love rules the whole mind and makes it a one.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의지와 이해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For the human mind consists of two parts,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사랑 혹은 선은 의지에, 신앙 혹은 진리는 이해에 속합니다. 태고인들은 사랑 혹은 선을 가지고 신앙 혹은 진리에 속한 것을 지각하였고, 그렇게 해서 그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Love or good belongs to the will, faith or truth to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or good those most ancient people perceived what belongs to faith or truth, so that their mind was a one.

 

※ 사랑으로 신앙에 속한 것을, 선으로 진리에 속한 것을 지각한다는 게 어떤 것일까요? 누가 입만 열면 신앙, 신앙, 진리, 진리 해도 그저 사랑으로, 선으로 품어버리고 마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무슨 속사정이 있겠지...’ 하며, 따뜻하게 대하고, 판단하거나 맞대응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들 후손과 함께, 즉 후손들을 통해 같은 천적 기원을 가진 씨가 필연적으로 남습니다. 즉 유전됩니다. 이렇게 천적 씨를 유전한 태고 교회 후손들한테는 그래서 진리와 선 사이 무슨 틈이 벌어지는 것만으로도 아주아주 위험합니다. 저세상에서는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마음 전체가 거의 복구불능일 정도로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With the posterity of such a race, seed of the same celestial origin necessarily remains, so that any falling away from truth and good on their part is most perilous, since their whole mind becomes so perverted as to render a restoration in the other life scarcely possible.

 

한편, 천적인 씨 대신 영적인 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홍수 후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오늘날 사람들도 해당합니다. It is otherwise with those who do not possess celestial but only spiritual seed, as did the people after the flood, and as also do the people of the present day.

 

이들에겐 전혀 사랑이 없고, 결과적으로 선한 의지도 없습니다만 그러나 신앙 혹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있어 이걸로 어느 정도는 체어리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다른 식, 즉 진리에 속한 지식 및 거기서 나오는 선에 기반, 주님으로 말미암은 양심의 암시라는 방식이지만 말입니다. There is no love in these, consequently no will of good, but still there is a capability of faith, or understanding of truth, by means of which they can be brought to some degree of charity, although by a different way, namely, by the insinuation of conscience from the Lord grounded in the knowledges of truth and the derivative good.

 

이런 이유로 이 사람들의 상태는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와 아주 다른데요, 이 상태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 즉 이후 허락하실 때 다루겠습니다. Their state is therefore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the antediluvians, concerning which stat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이들 아케이나는 현세대에게는 정말 낯선 아케이나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은 아무도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심지어 영인(靈人, the spiritual man, 영적 인간)에 대해서조차 아는 사람이 없고, 더 나아가 그로 인한 사람의 마음과 생명, 삶의 퀄러티라는 게 무엇인지, 그로 인한 사후 상태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기 때문입니다. These are arcana with which the present generation are utterly unacquainted, for at the present day none know what the celestial man is nor even what the spiritual man is, and still less what is the quality of the human mind and life thence resulting, and the consequent state after death.

 

 

311. 홍수로 사라진 사람들의 내세(來世, the other life)에서의 상태는 이렇습니다. 그들은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영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대신 마치 어떤 산 아래인 것 같은 데에 있어 다른 지옥들하고는 분리된 그런 지옥에 있습니다. In the other life, the state of those who perished by the flood is such that they cannot be in the world of spirits, or with other spirits, but are in a hell separated from the hells of others, and as it were under a certain mountain.

 

이것은 그들의 무시무시한 환상과 들러붙은 신념들의 결과, 마치 중간에 떠억 하니 가로막는 산처럼 보입니다. This appears as an intervening mountain in consequence of their direful fantasies and persuasions.

 

그들이 가진 이런 남다른 고약한 능력은 다른 영들을 아주 중증(重症) 인사불성 상태에 이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하는 그런 건데, 이것은 그들이 다른 영들한테서 진리를 이해하는 모든 능력을 빼앗아 그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Their fantasies and persuasions are such as to produce so profound a stupor in other spirits that they do not know whether they are alive or dead, for they deprive them of all understanding of truth, so that they perceive nothing.

 

세상에 있을 동안에도 그들의,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능력은 그랬습니다. 내세에서도 그들은 다른 영들을 이런 일종의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고는 다른 영들과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자들임이 예견되었고, 그래서 결국 그들은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주님의 신적 자비로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들과는 다른 상태들로 인도되었습니다. Such also was their persuasive power during their abode in the world; and because it was foreseen that in the other life they would be incapable of associating with other spirits without inducing on them a kind of death, they all became extinct, and the Lord of his Divine mercy induced other states on those who lived after the flood.

 

 

312. 본 절에서, 이들 홍수 전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상태가 아주 충분히 설명되었는데요, 그들은 쫓겨났다’, 즉 천적 선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룹들이 동쪽에서부터 에덴동산을 향하여 있었다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In this verse, the state of these antediluvians is fully described, in that they were “cast out,” or separated from celestial good, and in that “cherubim were placed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이 표현, ‘동쪽에서부터(from) 에덴 동산을 향하여(toward)’라는 표현은 그들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후를 산 사람들 관련해서는 쓸 수 없는데, 이들의 경우라면 에덴 동산에서부터(from) 동쪽을 향하여(toward)’라고 했을 겁니다. This expression,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is applicable only to them, and could not be used in relation to those who lived afterwards, of whom it would have been said, “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

 

※ 전자는 천적인 반면, 후자는 영적이기 때문입니다. 천적인 것은 주님, 곧 ‘동쪽’에서부터, 사랑과 선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영적인 것은 지성, 곧 ‘동산’에서부터, 신앙과 진리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 ‘스스로 도는 검의 화염’이라는 표현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쓰고자 하였다면, ‘스스로 도는 화염의 검’이라고 했을 겁니다. In like manner, had the words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been applied to the people of the present day, they would have been “the sword of a flame turning itself.”

 

뿐만 아니라, ‘생명들의 나무역시 생명의 나무라 했을 것입니다. 설명이 불가능한, 오직 천사들에게만 이해가 되는, 주님이 이들에게는 계시를 드러내시는데요, 이런 일련의 것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모든 상태마다 무한한 아케이나가 들어있는데 심지어 그 중 사람들에게 알려진 단 하나의 아케이나조차 그렇기 때문입니다. Nor would it have been said the “tree of lives,” but the “tree of life”; not to mention other things in the series that cannot possibly be explained, being understood only by the angels, to whom the Lord reveals them; for every state contains infinite arcana, not even one of which is known to men.

 

※ 내면이 닫힌 우리와 달리 그만큼 천사들의 내면은 열려있는 것입니다. 내면이 열린 만큼 아케이나에 담긴 계시를 지각, 곧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3. 여기서 말씀드리고 있는 내용이 첫 사람(the first man)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한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유전악은 그(him)로 말미암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From what is here said of the first man, it is evident that all the hereditary evil existing at the present day did not come from him, as is falsely supposed.

 

그 이유는, 여기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를 아담이라 하면서 상징하는 것은, 사람은 땅으로 말미암았다는 것, 사람이 아닌’(nonman) 상태에서 시작,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For it is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s here treated of under the name of “man”; and when it is called “Adam,” it signifies that man was from the ground, or that from being nonman he became man by regeneration from the Lord.

 

※ 겉모습이 사람이라고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주님의 신성이 깃들어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름의 기원과 상징입니다. This is the origin and signification of the name.

 

유전악에 대해서는 그 경우는 이런데요, But as to hereditary evil, the case is this.

 

실제 죄를 짓는 사람마다 스스로에게 그로 인한 어떤 본성(a nature)을 초래하며, 그 본성에서 나오는 악이 그의 어린 자녀들에게 심겨 유전악이 되는 것입니다. Everyone who commits actual sin thereby induces on himself a nature, and the evil from it is implanted in his children, and becomes hereditary.

 

※ 내가 범하는 낱낱의 죄로 인해 실제로 나의 본성이 손상되며,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며,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이를 지켜보며 자란 자녀들 또한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 주님과 동거한 열두 제자들, 프란치스코와 함께한 열두 형제들, 이현필 선생과 함께한 동광원 사람들, 공용복 선생과 함께한 핵심진리의 사람들 등 ‘동거’, ‘공동생활’의 비밀과 유익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중심인물이 주님께 사로잡힌 바만 확실하다면 말입니다.

 

유전악은 그렇게 모든 부모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및 가계를 따라 그들의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며, 그렇게 각각의 이어지는 후손들 안에서 배가하고 늘어납니다. 유전악은 각 사람 안에 머무르며, 각자 실제 짓는 죄로 인해 증가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절대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저절로 소멸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It thus descends from every parent, from the father, grandfather, great-grandfather, and their ancestors in succession, and is thus multiplied and augmented in each descending posterity, remaining with each person, and being increased in each by his actual sins, and never being dissipated so as to become harmless except in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by the Lord.

 

주의 깊게 관찰하시는 모든 분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모의 악한 경향은 자녀들 안에 눈에 보이도록 남아 한 가계, 심지어 그 종족 전체가 그로 인해 다른 모든 가계나 종족들하고 구별될 수도 있을 정도라는 걸 말입니다. Every attentive observer may see evidence of this truth in the fact that the evil inclinations of parents remain visibly in their children, so that one family, and even an entire race, may be thereby distinguished from every other.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3:20-24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Verse 23,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 23절 속뜻

 

태고교회 다섯 번째 후손에 이르자 이들은 모든 지성과 지혜, 곧 선과 진리를 박탈당하고, 거듭나기 이전 상태인 육(肉, corporeal)의 상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305.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는 모든 지성과 지혜를 박탈당하는 것이며,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는 육의 상태가 되는 것, 곧 거듭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To be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is to be deprived of 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is to become corporeal, as he was previous to regeneration.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가 모든 지성과 지혜를 박탈당하는 것임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동산’, 그리고 에덴의 상징을 생각하면 분명한데요, ‘동산은 지성, 혹은 진리에 대한 이해를, 사랑을 상징하는 에덴은 지혜, 혹은 선에 대한 의지를 각각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to be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is to be deprived of all intelligence and wisdo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garden,” and of “Eden,” as above; for a “garden” signifies intelligence, or the understanding of truth; and “Eden,” being significative of love, signifies wisdom, or the will of good.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가 육의 상태, 곧 거듭나기 전 상태로 돌아감을 상징한다는 것은 위 19절 말씀에서 이미 보았는데요, 그 말씀과 유사하지요. That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signifies to become corporeal, such as he was before regeneration, has been shown above (verse 19), where similar words occur.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3:20-24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Verse 22,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 22절 속뜻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주님을 상징할 때는 단수로, 천국을 상징할 때는 복수로 표기되며, 태고교회의 이 네 번째 후손은 신앙의 신비를 배워서는 안 되는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 여기 나오는 ‘우리’는 주님의 뜻 안에 온전히 거하는 천사들을 말하며, 지혜와 지성을 가진 천적 인간이 된 이들 후손은 오직 천사들하고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신앙의 신비를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알고는 있는데 인정은 안 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을 할 수 없으니 이런 관점으로 보면 그나마 나름 안전합니다. 그러나 인정까지 해 놓고 나중에 부인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의 사람이 되며, 그 결과 그의 속 사람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늘 신앙과 세속이 뒤섞여있는 상태가 되어 지옥 중에서도 상(上) 지옥 상태로 영원을 보내게 됩니다. 주님은 이를 막으시고자 유대인들에게는 일체 계시를 허락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타고난 성품이 신성모독의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 후손들은 바로 이런 운명을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종말을 맞이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노아의 홍수’로 표현하셨습니다.

 

 

298.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엔 단수로(in the singular), 그리고 나중엔 복수로(in the plural number) 언급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주님을, 그리고 동시에 천사들의 천국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Jehovah God” is first mentioned in the singular, and afterwards in the plural number, is that by “Jehovah God” is meant the Lord, and at the same time the angelic heaven.

 

그가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천적 인간이 되었고(天的, had become celestial), 그래서 지혜와 지성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을까라는 것은 그가 절대 신앙의 신비들을 배워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리되면 그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영생(live to eternity)의 의미입니다. The man’s “knowing good and evil” signifies that he had become celestial, and thus wise and intelligent;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means that he must not be instructed in the mysteries of faith, for then never to all eternity could he be saved, which is to “live to eternity.”

 

 

299. 여기엔 두 가지 아케이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님과, 그리고 동시에 천국을 상징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들에게 신앙의 신비를 가르치게 되면 그들은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Here are two arcana: first, that “Jehovah God” signifies the Lord, and at the same time heaven; secondly, that had they been instructed in the mysteries of faith they would have perished eternally.

 

 

300. 첫 번째 아케이나인 여호와 하나님이 주님과, 그리고 동시에 천국을 의미한다는 것과 관련, 말씀을 보면 늘 어떤 비밀스런 이유로, 주님을 어떨 때는 단지 여호와로만, 어떨 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어떨 때는 여호와와 그리고 하나님으로, 어떨 때는 주 여호와, 어떨 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어떨 때는 하나님으로만 부르고 있다는 걸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regards the first arcanum—that by “Jehovah God” is meant the Lord and at the same time heaven—it is to be observed that in the Word, always for a secret reason, the Lord is sometimes called merely “Jehovah,” sometimes “Jehovah God,” sometimes “Jehovah” and then “God,” sometimes the “Lord Jehovih,” sometimes the “God of Israel,” and sometimes “God” only.

 

그래서 보면 창세기 첫 장, 거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복수 표현이 나오는 데서는 하나님으로만 일컬음을 받으시는 반면, 천적 인간을 다루는 다음 장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Thus in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where it is also said, in the plural,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he is called “God” only, and he is not called “Jehovah God” until the following chapter, where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그는 여호와라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그는 홀로 계시고 혹은 사시고, 그래서 만물이 비롯되는 에센스(from essence)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전능하시며, 그래서 만물이 비롯되는 능력(from power)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이런 구분들이 있는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49:4, 5; 55:7; 18:2, 28, 29, 31; 31:14) He is called “Jehovah” because he alone is or lives, thus from essence; and “God,” because he can do all things, thus from power; as is evident from the Word, where this distinction is made. (Isa. 49:4, 5; 55:7; Ps. 18:2, 28, 29, 31; 31:14)

 

4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사49:4-5)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55:7)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28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31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시18: 2, 28-29, 31)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시31:14)

 

이런 이유로, 사람과 대화한, 그리고 무슨 능력을 가진 걸로 여겨진 모든 천사나 영을 일컬어,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시편 말씀처럼 말이지요. On this account every angel or spirit who spoke with man, and who was supposed to possess any power, was called “God,” as appears from David: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82:1) God hath stood in the congregation of God, he will judge in the midst of the gods; (Ps. 82:1)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89:6) Who in the sky shall be compared unto Jehovah? Who among the sons of the gods shall be likened to Jehovah? (Ps. 89:6)

 

2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3) Confess ye to the God of gods, confess ye to the Lord of lords. (Ps. 136:23)

 

사람들도 능력을 소유했을 때는 시82:6, 10:34-35를 보면, ‘신들이라 합니다. Men also as being possessed of power are called “gods,” as in Ps. 82:6; John 10:34, 35.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82:6)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10:34-35)

 

모세 또한 바로에게 신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7:1) Moses also is said to be “a god to Pharaoh.” (Exod. 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출7:1)

 

이런 이유로,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은 엘로힘이라는 복수인 것입니다. For this reason the word “God” in the Hebrew is in the plural number—“Elohim.”

 

그러나 천사들은 자기들 스스로는 그 어떤 아주 작은 힘조차 갖고 있지 않으며, 실제로 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요, 대신 이 힘이라는 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며, 그리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하면 그것은 홀로 주님 한 분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But as the angels do not possess the least power of themselves, as indeed they acknowledge, but solely from the Lord, and as there is but one God, therefore by “Jehovah God” in the Word is meant the Lord alone.

 

그러나 천사들의 사역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가령 창세기 첫 장에서처럼, 그분은 복수로 표현되십니다. But where anything is effected by the ministry of angels, as in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he is spoken of in the plural number.

 

여기서는 또한 천적 인간 역시 사람으로서, 주님하고는 감히 비교할 수 없고 대신 오직 천사하고만 비교 가능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그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 즉 지혜와 지성을 갖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Here also because the celestial man, as man, could not be put in comparison with the Lord, but with the angels only, it is sai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that is, is wise and intelligent.

 

 

301. 또 다른 아케이나는, 그들이 만일 신앙의 신비들을 배웠더라면 그들은 영원히 소멸되었을 꺼라는 것으로, 이것이 본문,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가 상징하는 것입니다. The other arcanum is that had they been instructed in the mysteries of faith they would have perished eternally, which is signified by the words,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그 경우는 이런 것인데요, 사람들이 생명의 질서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온 나머지 이제는 사는 것도, 지혜로워지는 것도 스스로(themselves)의 힘과 자신들의 본성(own)으로가 아니면 내켜 하지 않을 때, 그들은 신앙에 대해 듣는 모든 걸 그게 과연 그런지 따져보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감각과 기억-지식에 속한 자신들의 본성으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인(denial) 및 그 결과, 신성모독(blasphemy)과 불경(profanation)에 이르게 되고, 그래서 결국, 그들은 세속적인 것들에다가 거룩을 뒤섞는 일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The case is this: When men have become inverted orders of life, and are unwilling to live, or to become wise, except from themselves and from their own, they reason about everything they hear respecting faith, as to whether it is so, or not; and as they do this from themselves and from their own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it must needs lead to denial, and consequently to blasphemy and profanation, so that at length they do not scruple to mix up profane things with holy.

 

사람이 이 지경이 되면, 그는 저세상에서 유죄 선고를 받아 구원받을 아무 희망도 남지 않게 됩니다. When a man becomes like this, he is so condemned in the other life that there remains for him no hope of salvation.

 

그 이유는, 신성모독으로 섞인 것들은 그렇게 섞인 상태로 있게 되고, 그래서 어떤 거룩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과 결합 되어 있는 불경한 생각 또한 따라 나오게 되어, 그 결과, 그 사람은 지옥 말고는 그 어떤 데에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For things mixed up by profanation remain so mixed up, so that whenever any idea of something holy presents itself, an idea of something profane that is conjoined with it is also there, the consequence of which is that the person cannot be in any society except one of the damned.

 

이런 식으로 섞여 결합된 생각은 무엇이든지 그 한 조각 생각만으로도 저세상에서는 정말 가장 기가 막힌 방법으로 지각이 됩니다. 심지어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에 의해서, 그리고 천사 같은 영들에 의해서는 훨씬 더 그런데요, 그들은 무슨 한 조각 생각만으로도 어떤 사람의 캐릭터 전체를 정말 절묘하게 지각합니다. Whatever is present in any idea of thought in consequence of being conjoined with it, is most exquisitely perceived in the other life, even by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and much more so by angelic spirits, so exquisitely indeed that from a single idea they know a person’s character.

 

이렇게 결합되어 있는 신성모독과 거룩 간 분리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맛보지 않고는 일어날 수가 없는데요, 이런 고통은 사람이 이런 일에 깨어 있어 지옥 자체를 피하려는 듯 주의 깊게 신성모독을 피하고자 할 때 겪는 그런 고통입니다. The separation of profane and holy ideas when thus conjoined cannot be effected except by means of such infernal torment that if a man were aware of it he would as carefully avoid profanation as he would avoid hell itself.

 

 

302. 이것이 왜 유대인들에게는 신앙의 신비들이 절대로 계시되지 않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This is the reason why the mysteries of faith were never revealed to the Jews.

 

그들은 사람의 사후에도 삶이 있다는 것과 주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말씀들조차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They were not even plainly told that they were to live after death, nor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to save them.

 

그들은 정말 대단할 정도로 무지하고 어리석더니, 그때도 고집스럽게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속 사람의 존재나 내적인 것들에 관해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만일 그걸 인정하고자 전부터 그걸 알았었거나 지금 알게 된다면, 그들은 기어코 그걸 신성모독, 기어코 저세상에서 자기들 몫의 어떤 구원도 남겨 놓지 않을 그런 캐릭터들이기 때문입니다. So great were the ignorance and stupidity in which they were kept, and still are kept, that they did not and do not know of the existence of the internal man, or of anything internal, for if they had known of it, or if they now knew of it, so as to acknowledge it, such is their character that they would profane it, and there would be no hope of any salvation for them in the other life.

 

이것이 주께서 요한복음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This is what is meant by the Lord in John: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12:40) He hath blinded their eyes, and stopped up their heart, that they should not see with their eyes, n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convert themselves, and I should heal them. (John 12:40)

 

그리고 주께서 그들에게 풀이 없이 비유로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안 그러면 그들이 보며 들으며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And by the Lord speaking to them in parables without explaining to them their meaning, lest (as he himself says),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3:13) Seeing they should see, and hearing they should hear, and should understand. (Matt. 13:13)

 

같은 이유로, 신앙의 모든 신비가 그들에게는 숨겨졌고, 그들의 교회의 표상들 속으로 봉인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예언적 스타일 또한 그 캐릭터가 같은 것입니다. For the same reason all the mysteries of faith were hidden from them, and were concealed under the representatives of their church, and for the same reason the prophetic style is of the same character.

 

그렇지만, 아는 것이 있고,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It is however one thing to know, and another to acknowledge.

 

알고는 있는데 인정하지는 않는 사람은 마치 그걸 몰랐던 사람인 것처럼 있습니다. 그런데 인정을 하고, 나중에 신성모독 및 불경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하신 이 말씀들의 의미입니다. He who knows and does not acknowledge is as if he knew not; but it is he who acknowledges and afterwards blasphemes and profanes, that is meant by these words of the Lord.

 

 

303. 사람은 그가 설득된, 즉 인정하고 믿는 모든 것을 통해 일종의 생명을 얻습니다. A man acquires a life by all the things he is persuaded of, that is, which he acknowledges and believes.

 

설득되지 않았거나 인정도 믿지도 않는 것으로는 사람의 마음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That of which he is not persuaded, or does not acknowledge and believe, does not affect his mind.

 

그리고 그래서 인정할 정도로 설득되었고 아직 부인하지는 않고 있는 한, 아무도 거룩한 것들을 모독할 수 없습니다. And therefore no one can profane holy things unless he has been so persuaded of them that he acknowledges them, and yet denies them.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알면서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아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may know, but are as if they did not know, and are like those who know things that have no existence.

 

주님 강림의 때에 유대인들의 모습이 저랬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 저들을 가리켜 황폐해졌다’, 혹은 파괴되어 초토화되었다’, , 더이상 무슨 신앙이라는 게 없다 하는 것입니다. Such were the Jews abou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and therefore they are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or “laid waste,” that is, to have no longer any faith.

 

이런 상황 가운데서는, 말씀의 속뜻이 그들에게 오픈된다고 해서 그들이 무슨 해를 받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비록 보고 있으나 아직 못 보며, 듣고 있으나 아직 못 듣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꽉 막혀 있습니다. 이들에 관하여 주님은 이사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Under these circumstances it does men no injury to have the interior contents of the Word opened to them, for they are as persons seeing, and yet not seeing; hearing, and yet not hearing; whose hearts are stopped up; of whom the Lord says in Isaiah: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6:9-10) Go and tell this people, Hearing hear ye, but understand not, and seeing see ye, but know not.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fat, and make their ears heavy, and smear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so that they be healed.(Isa. 6:910)

 

사람들이 그런 상태, 즉 너무나 황폐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믿는 상태(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이 신앙의 신비들을 모독할 수 없는)가 될 때까지 신앙의 신비들은 밝히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같은 이사야 계속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아주 분명히 선포하고 계십니다. That the mysteries of faith are not revealed until men are in such a state, that is, are so vastated that they no longer believe (in order, as before said, that they may not be able to profane them),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the subsequent verses of the same prophet:

 

11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6:12) Then said I, Lord, how long? And he said, Even until the cities are desolated, so that there be no inhabitant; and the houses, so that there be no man, and the ground be utterly desolated, and Jehovah have removed man. (Isa. 6:11, 12)

 

그를 일컬어 지혜로운 혹은 인정하고 믿는 사람이라 하고 있습니다. He is called a “man” who is wise, or who acknowledges and believes.

 

유대인들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그 정도로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탐욕, 특히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런 황폐함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주님에 관해 수천 번을 듣고 있고, 또 그들의 교회 여러 표상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다 예외 없이 주님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며, 안 믿고 있습니다. The Jews were thus vastated, as already said, a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and for the same reason they are still kept in such vastation by their cupidities, and especially by their avarice, that although they hear of the Lord a thousand times, and that the representatives of their church are significative of him in every particular, yet they acknowledge and believe nothing.

 

이것이 노아 이전 고대인들이 에덴동산에서 내쫓기고 황폐해진, 심지어 더이상 어떠한 진리도 인정할 수 없는 지경까지 황폐해진 이유였습니다. This then was the reason why the antediluvians were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and vastated even until they were no longer capable of acknowledging any truth.

 

 

304. 이 모든 사실로부터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해지는데요, From all this it is evident what is meant by the words,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는 사랑과 신앙에 대해서 알되 얼마든지 시인하고, 인정하기 위해서 아는 걸 말합니다. ‘생명’이 이렇게 복수로 사용되면 사랑과 신앙을 뜻하며, 여기 ‘먹다’는 전에도 말씀드렸듯 ‘알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To “take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is to know even so as to acknowledge whatever is of love and faith; for “lives” in the plural denote love and faith, and to “eat” signifies here as before, to know.

 

‘영생하다’는 몸,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산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는 사후 지옥에서 영원히 산다는 뜻입니다. To “live to eternity” is not to live in the body to eternity, but to live after death in eternal damnation.

 

‘죽은’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은 몸의 생명, 육체의 생명이 다 한 후에는 죽기 때문이며, 그러나 그는 사후에도 계속해서 죽음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지옥 같은 삶이며, 곧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A man who is “dead” is not so called because he is to die after the life of the body, but because he will live a life of death, for “death” is damnation and hell.

 

‘살다’라는 표현 역시 에스겔을 보면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The expression to “live,” is used with a similar signification by Ezekiel:

 

18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19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13:18-19) Ye hunt souls for my people, and save souls alive for yourselves, and ye have profaned me among my people, to slay souls that will not die, and to make souls live that will not live.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3:20-24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Verse 21,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 21절 속뜻

 

주님은 태고교회와 그 초기 후손들을 영적 자연적 선으로 가르치셨습니다.

 

 

292. 이 말씀은 주께서 그들을 영적, 자연적 선으로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지어’, ‘입히시니라는 주님이 그들을 가르치셨음을, ‘가죽옷은 영적, 자연적 선을 표현합니다. These words signify that the Lord instructed them in spiritual and natural good; his instructing them is expressed by “making” and “clothing,” and spiritual and natural good, by the “coat of skin.”

 

 

293. 겉 글자로는 도저히 위 말씀이 이런 의미처럼 보이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분명, 여기엔 어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정말로 가죽옷을 지으셨다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t could never appear from the letter that these things are signified; and yet there is evidently here enfolded some deeper meaning, for everyone must be aware that Jehovah God did not make a coat of skin for them.

 

 

294. 속뜻에 관한 어떤 계시도, 그리고 말씀 내 유사 표현들이 나오는 여러 일련의 비교 구절들 없이도 사람들이 이 가죽옷을 보고는 이것은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하고 있다.’ 할 거라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할 게 분명합니다. Neither would it be evident to anyone that a “coat of skin” signifies spiritual and natural good, except by a revelation of the internal sense, and a subsequent comparison of passages in the Word where similar expressions occur.

 

여기 가죽’(skin)이라는 일반적인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새끼염소나 양, 또는 숫양의 가죽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말씀에서 이들 동물들은 선이나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관련 어펙션(affection, 애정), 그리고 희생양이 상징했던 것과 똑같이 체어리티에 관한 것을 상징합니다. The general term “skin” is here used, but that of a kid, sheep, or ram, is understood, which animals in the Word signify affections of good, charity, and that which is of charity, as was likewise signified by the sheep used in the sacrifices.

 

체어리티의 선, 곧 영적 자연적 선을 가진 사람들을 이라고 하며, 그래서 주님도 양의 목자시라 하고, 체어리티의 사람들을 그분의 이라 하지요. 다들 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Those are called “sheep”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 of charity, that is, with spiritual and natural good, and hence the Lord is called the “shepherd of the sheep,” and those who are endowed with charity are called his “sheep,” as everybody knows.

 

 

295. 태고인(太古人)들을 일컬어 가죽으로 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벌거벗은 사람들’(naked)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노센스(innocence, 순진무구)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던 이 이노센스를 잃어버렸고, 그러자 자신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벌거벗음’(nakedness)이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y are said to be “clothed with a coat of skin,” is that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said to be “naked,” on account of their innocence; but when they lost their innocence they became conscious that they were in evil, which also is called “nakedness.”

 

(태고인들의 스피킹 방식에 맞춰) 모든 일이 상호 긴밀히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그들은 벗은 채로 있게 될까 봐 주님이 자기들에게 옷을 입히셨다라고 합니다. 악 가운데 있는 것은 벗은 채로 있는 것입니다. That all things might appear to cohere historically (in accordance with the way of speaking of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are here said to be “clothed lest they should be naked,” or in evil.

 

그들이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음이 분명한 것은 그들에 관한 언급인 위 본 장 1절로 13절까지 내용과, 그것이 여기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내용과 연관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여기서는 그 교회의 첫 번째, 그리고 더욱 특별히는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 이들은 그런 선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Their being in spiritual and natural good is evident from what was remarked above concerning them, from verse 1 to 13 of this chapter, as well as from its being here related that “Jehovah God made them a coat of skin, and clothed them”; for it here treats of the first—and more especially of the second and third—posterities of the church, who were endowed with such good.

 

 

296. 염소의 새끼, , 염소, 해달 및 숫양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건 말씀에서 야곱이 나오는 데와 또 궤(the ark)가 나오는 데의 속뜻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skins of kids, sheep, goats, badgers, and ram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is evident from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ere Jacob is treated of, and also where the ark is treated of.

 

야곱의 경우, ‘에서의 의복으로 옷 입혀졌고’, 그의 손과 목 매근매끈한 곳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대신했으며, 이삭이 그 향취를 맡았을 때, ‘내 아들의 향취는 밭의 향취로다하였습니다. (27:15, 16, 27) Of Jacob it is said that he was “clothed with the raiment of Esau,” and on his hands and on his neck, where he was naked, “with skins of kids of the goats,” and when Isaac smelled them, he said, “the smell of my son is as the smell of a field.” (Gen. 27:15, 16, 27)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창27:15, 16)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27:27)

 

이 가죽들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것은 주님의 허락으로 해당 부분(AC.3540)을 다룰 때 보시게 됩니다.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een in that place.

 

궤의 경우는, 성막의 덮개는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만들었다고 합니다. (26:14; 36:19) Of the ark it is said that the covering of the tent was “of rams’ skins and badgers skins,” (Exod. 26:14; 36:19)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출26:14; 36:19)

 

그리고 그들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증거궤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같은 식으로 상과 대접들, 등잔대와 그릇들, 금제단, 그리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그릇들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4:614) and that when they set forward Aaron and his sons covered the ark with a covering “of badgers’ skins,” and likewise the table and its vessels, the candlestick and its vessels, the altar of gold, and the vessels of ministry and of the altar. (Num. 4:614)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9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1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3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14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민4:6-14)

 

이 가죽들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것 또한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해당 부분에서 보시게 됩니다. , 성막 혹은 장막 안에 있던 것들은 그게 무엇이었던지 간에, , 아론이 입은 거룩한 옷 위에 있던 것들 또한 그게 무엇이었던지 간에 사실은 천적 영적인 것을 상징하였고,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그 나름의 고유한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Of the Lord’s Divine mercy it will in that place also be seen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 for whatever was in the ark, the tabernacle, or the tent, yea, whatever was upon Aaron when clothed with the garments of holines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spiritual, so that there was not the least thing that had not its own representation.

 

 

297. 천적 선은 옷을 입지 않습니다. 가장 내적이며, 천진(天眞, innocent)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영적 선은 옷을 입는 첫 번째 선이며, 그 다음은 자연적 선입니다. 이들은 더 외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 선은 ’(garments)에 비유되며, 이들 선을 이라 합니다. 에스겔 고대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Celestial good is not clothed, because it is inmost, and is innocent; but celestial spiritual good is that which is first clothed, and then natural good, for these are more external, and on that account are compared to and are called “garments”; as in Ezekiel, speaking of the ancient church: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6:10)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covered thee with silk.  (Ezek. 16:10)

 

이사야에서 In Isaiah: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52:1) Put on thy beautiful garments, O Jerusalem, the city of holiness. (Isa. 52:1)

 

계시록에서 In Revelation: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45) Who have not defiled their garments, and they shall walk with me in white, for they are worthy, (Rev. 3:45)

 

44절에서도 흰옷을 입은이십사 장로들에 대해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where it is likewise said of the four and twenty elders that they were “clothed in white raiment.”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4)

 

그래서 천적 영적 및 자연적인 더 외적인 선들이 입니다. 또한 이런 이유로, 체어리티의 선들을 가진 사람들은 천국에서는 광채 나는 옷을 입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몸 안이기 때문에, ‘가죽옷을 입은 것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Thus the more external goods, which are celestial spiritual, and natural, are “garments”; wherefore also those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s of charity appear in heaven clothed in shining garments; but here, because still in the body, with a “coat of skin.”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3:20-24

 

20절,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Verse 20,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 20절 속뜻

 

보통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태고교회는 천인(天人))이었으며, 주님 신앙으로 말미암은 주님의 생명을 가졌다 하여 하와라고도 부르는, 주님의 아름다운 꽃다운 신부된 첫 교회, 모든 교회의 어머니된 교회였습니다.

 

 

287. 여기 아담’(man, 사람, homo)은 태고(太古) 교회, 혹은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 ‘아내모든 산 자의 어머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By the “man” [homo] is here meant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celestial man, and by the “wif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is meant the church.

 

그녀를 가리켜 어머니라 하는 이유는 첫 교회였기 때문이며, ‘’(living)은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 신앙을 소유한 결과입니다. She is called “mother,” as being the first church; and “living,” in consequence of possessing faith in the Lord, who is life itself.

 

 

288. 아담이 태고 교회인, 혹은 천인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서 277번 글에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주님 홀로 사람이시라는 것(AC.49),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천인은 사람이라는 것, 그 이유는 주님을 닮았기(likeness) 때문(AC.50-51)이라는 것 또한 보여드렸습니다. That by “man” is meant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celestial man, was previously shown; and at the same time it was also shown that the Lord alone is man, and that from him every celestial man is man, because in his likeness.

 

※ 49번 글에 의하면, 태고 교회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사람’으로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감히 자기들을 ‘사람’이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외감을 오늘을 사는 우리도 꼭 좀 다시 되살렸으면 좋겠습니다.

 

※ 50번, 51번 글에 의하면, 왜 주님이 자신을 가리켜 ‘인자’(The Son of Man)이라 하셨는지를, 그리고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의 차이를, 형상은 모양을 담는 그릇이요, 영적 인간은 천적 인간을 담는 그릇이라는 설명으로 각각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외나 차별 없이 그 교회의 모든 멤버를 가리켜 ‘사람’이라 하였고, 결국은 그 외모가 사람처럼 보이는 누구에게나 다 이 이름이 적용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짐승과 구별한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Hence every member of the church, without exception or distinction, was called a “man,” and at length this name was applied to anyone who in body appeared as a man, to distinguish him from beasts.

 

 

289. 아내가 교회, 가장 광의(廣義, in the universal sense)로는 천국들과 땅 위 주님의 왕국을 의미한다는 것은 위에서 이미 보여드렸으며, 이로부터 어머니역시 같은 의미라는 사실이 이어집니다. It has also been shown above that by “wife” is meant the church, and in the universal sense the kingdom of the Lord in the heavens and on earth; and from this it follows that the same is meant by “mother.”

 

말씀에 보면, 굉장히 자주 교회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사야처럼 말입니다. In the Word the church is very frequently called “mother,” as in Isaiah: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50:1) Where is the bill of your mother’s divorcement? (Isa. 50: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50:12) Your mother is greatly ashamed; she that bare you was suffused with shame. (Jer. 50:12)

 

에스겔에서는 In Ezekiel: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16:45) Thou art thy mother’s daughter that loathed her man and her sons; your mother was a Hittite, and your father an Amorite, (Ezek. 16:45)

 

여기 남편’[vir]은 주님과 천적인 모든 것을, ‘자녀는 신앙의 진리들을, ‘은 거짓된 것을, ‘아모리는 악한 것을 가리킵니다. where “man” [vir] denotes the Lord and all that is celestial; sons,” the truths of faith; a “Hittite,” what is false: and an “Amorite,” what is evil.

 

같은 책에서 In the same: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19:10) Thy mother is like a vine in thy likeness, planted near the waters; she was fruitful and full of leaves because of many waters. (Ezek. 19:10)

 

여기 어머니는 고대교회를 가리킵니다. Here “mother” denotes the ancient church.

 

어머니라는 말은 태고교회에 더 특별히 해당되는데요, 첫 교회였고, 천적이었던 유일한 교회였으며, 그래서 주님에게 그 어떤 다른 교회보다도 더 사랑스러웠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The term “mother” is more especially applicable to the most ancient church, because it was the first church, and the only one that was celestial, and therefore beloved by the Lord more than any other.

 

 

290.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 신앙을 가진 결과, 그녀를 일컬어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한 것 역시 이미 지금까지 보여드린 사실들로 분명합니다. That she was called the “mother of all living” in consequence of possessing faith in the Lord, who is life itself, is also evident from what has been already shown.

 

만물의 생명이신 분으로 말미암는 생명 말고 무슨 다른 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AC.2). 또 생명 되신 주님 신앙을 통한 생명 말고 무슨 다른 생명이라는 것도 (AC.30.2), 주님을 제외, 그래서 그 안에 생명이신 주님이 안 계시는 그런 신앙이라는 것도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AC.41). There cannot be more than one life, from which is the life of all, and there can be no life, which is life, except through faith in the Lord, who is the life, nor can there be faith in which is life, except from him, consequently unless he is in it.

 

이런 이유로 말씀에서 주님 홀로 살아 계신’(living)으로 일컬음을 받으시며, ‘살아 있는 여호와’(the living Jehovah)라는 이름으로 불리십니다 (5:2; 12:16; 16:14, 15; 23:7; 5:11). On this account, in the Word, the Lord alone is called “living,” and is named the “living Jehovah(Jer. 5:2; 12:16; 16:14, 15; 23:7; Ezek. 5:11);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5:2) And though they say, Jehovah lives; still they promise falsely. (Jer. 5:2)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2:16) And it shall be, if learning they shall learn the ways of My people, to promise by My name, Living Jehovah, as they taught My people to promise by Baal, then shall they be built in the midst of My people. (Jer. 12:16)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6:14-15)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it shall no more be said,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but,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from the land of the north, and from all the lands whither He had compelled them; and I will return them onto their ground that I gave unto their fathers. (Jer. 16:14-15)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23:7)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they shall no more say,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Jer. 23: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5:11) Therefore, as I live, says the Lord Jehovih, shall it not be, because thou hast defiled My sanctuary with all thy detestable things, and with all thine abominations, that even I shall diminish thee; and My eye shall not spare, and even I will not have pity. (Ezek. 5:11)

 

영생하시는 이’로도 (단4:34; 계4:10; 5:14; 10:6); he that liveth to eternity” (Dan.4:34; Rev. 4:10; 5:14; 10:6);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4:34) And at the end of the days I, Nebuchadnezzar, lifted up my eyes to the heavens, and my knowledge returned to me, and I blessed the Most High and I praised and honored Him who lives to eternity, whose dominion is an eternal dominion, and His kingdom is with generation and generation; (Dan.4:34)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4:10) the twenty and four elders fell down before Him who sat on the throne, and worshiped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and cast their crowns before the throne, saying, (Rev. 4:10)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5:14) And the four animals said, Amen. And the twenty four elders fell down and worshiped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Rev. 5:14)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10:6) and swore by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who created heaven, and the things in it, and the earth, and the things in it, and the sea, and the things in it, that time shall be no longer. (Rev. 10:6)

 

생명의 원천’ (시36:9); the “fountain of life” (Ps. 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9) For with Thee is the spring of lives; In Thy light shall we see light. (Ps. 36:9)

 

생수의 근원’으로도 불리십니다. (렘17:13)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Jer.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7:13) O Jehovah, the hope of Israel, all who forsake Thee shall be ashamed, and they who turn aside away from Me shall be written in the earth, for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 spring of living waters. (Jer. 17:13)

 

천국(주님에 의해 또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곳)을 일컬어 ‘산 자의 땅’이라 합니다 (사38:11; 53:8; 겔26:20; 32:23–27, 32; 시27:13; 52:5; 142:5). Heaven (which lives by or from him) is called the “land of the living.” (Isa. 38:11; 53:8; Ezek. 26:20; 32:23–27, 32; Ps. 27:13; 52:5; 142:5)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 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38:11) I said, I shall not see Jah, Jah in the land of the living! I shall not look on man any more with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Isa. 38:11)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53:8) From restraint and from judgment He was taken; and who shall contemplate His generation? For He was severed from the land of the living; on account of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a plague was upon Him; (Isa. 53:8)

 

내가 너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내려가서 옛적 사람에게로 나아가게 하고 너를 그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땅 깊은 곳 예로부터 황폐한 곳에 살게 하리라 네가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되지 못하리니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 (26:20) and I shall bring thee down with those who go down into the pit, to the people of an age, and shall cause thee to dwell in the lower earth, as in waste places of an age, with those who go down into the pit, so that thou not be dwelt in; and I shall put elegance in the land of the living; (Ezek. 26:20)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whose graves are put in the flanks of the pit, and her assembly is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put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24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Elam is there, and all her crowd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have gone down uncircumcised to the lower earth, who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and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25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침상을 놓았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뉘었도다 They have put a bed for her in the midst of the slain with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slain by the sword, for their dismay was put in the land of the living, but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em that go down to the pit. He is put in the midst of the slain. 26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Meshech is there, Tubal, and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pierced by the sword, for they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27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가운데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And they shall not lie with the mighty who are fallen of the uncircumcised, who are gone down to hell with their weapons of war; and they have put their swords under their heads, but their iniquities shall be on their bones, as they were the dismay of the mighty in the land of the living. (겔32:23-27 Ezek. 32:23-27)

 

내가 바로로 하여금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게 하였으나 이제는 그가 그 모든 무리와 더불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이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32) For I have put My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and he shall be laid down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are slain with the sword, even Pharaoh and all his multitude, says the Lord Jehovih. (Ezek. 32:32)

 

그리고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라 합니다. 시편에서처럼, And those are called “living” who are in faith in the Lord; as in David: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66:9) Who putteth our soul among the living. (Ps. 66:9)

 

그리고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을 일컬어 ‘생명책에’(시69:28; 계13:8; 17:8; 20:15) 있다 합니다. And those who possess faith are said to be “in the book of lives”(Ps. 69:28), and “in the book of life.”(Rev. 13:8; 17:8; 20:15)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69:28) Let them be wiped out of the Book of Lives, And not be written with the just. (Ps. 69:2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13:8) And all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worship him,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ing of the world. (Rev. 13: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17:8) The beast that thou sawest was and is not, and is about to come up out of the abyss, and to go away into destruction; and they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marvel, whose names were not written on the book of life from the founding of the world, looking at the beast that was and is not, and yet is. (Rev. 17:8)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0:15) And if anyon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Rev. 20:15)

 

그래서 또한 주님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살리시며’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호6:2; 시85:6) Wherefore also those who receive faith in him are said to be “made alive.” (Hos. 6:2; Ps. 85:6)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2) After two days He will make us live;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before Him. (Hos. 6:2)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85:6) Wilt Thou not return, wilt Thou not make us live, That Thy people may be glad in Thee? (Ps. 85:6)

 

다른 한편으로, 신앙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일컬어서는 죽은 상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에 보면, On the other hand it follows that those who are not in faith are called “dead”; as in Isaiah: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26:14) The dead shall not live; the Rephaim shall not rise again, because thou hast visited and destroyed them, (Isa. 26:14)

 

자아 사랑으로 부풀어 오른 사람들을 의미하면서 말입니다. ‘다시 사는 것은 생명 안으로 들어감을 말합니다. meaning those who are puffed up with the love of self; to “rise again” signifies to enter into life.

 

그들은 또한 ‘칼에 죽임을 당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겔32:23–26, 28–31) They are also said to be “pierced.” (Ezek. 32:23–26, 28–31)

 

※ 23절로 26절은 앞 인용구절 참조

 

28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And thou shalt be broken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and shalt lie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29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There is Edom, her kings, and all her chiefs, which with their might are put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y shall lie with the uncircumcised, and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30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There be the princes of the north, all of them, and all the Zidonians, who have gone down with the slain; by their dismay they are ashamed of their might; and they lie uncircumcised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and bear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31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Pharaoh shall see them, and shall comfort himself over all his crowd; Pharaoh and all his host are slain by the sword, says the Lord Jehovih. (겔32:28-31 Ezek. 32:28–31)

 

그들은 또한 주님에 의해서도 ‘죽은 상태’라는 말을 듣습니다. (마4:16; 요5:25; 8:21, 24, 51, 52) They are also called “dead” by the Lord. (Matt. 4:16; John 5:25; 8:21, 24, 51, 52)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4:16) the people who sat in darkness saw great light; and to them who sat in the country and shadow of death, light has risen. (Matt. 4:16)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Amen, amen, I say to you, that an hour comes,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ey who hear shall live. (John 5:25)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요8:21) Then Jesus said again to them, I go, and you shall seek Me, and shall die in your sin. Whither I go, you cannot come. (John 8:2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4) I said then to you that you shall die in your sins; for unless you believe that I am, you shall die in your sins. (John 8:24)

 

5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Amen, amen, I say to you, If anyone keep My word, he shall not behold death for eternity. 52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Then the Jews said to Him, Now we know that Thou hast a demon. Abraham is dead, and the prophets, and Thou sayest, If anyone keep My word, he shall not taste death into the ages. (요8:51, 52 John 8:51, 52)

 

지옥 또한 ‘사망’이라고 합니다. (사25:8; 28:15) Hell also is called “death.” (Isa. 25:8; 28:15)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25:8) He shall swallow up death perpetually; and the Lord Jehovih shall wipe away the tear from all the faces; and the reproach of His people shall He remove from all the earth; for Jehovah has spoken. (Isa. 25:8)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사28:15) for you have said, We have cut a covenant with death, and with hell have we made a vision; when the whip of inundation passes through, it shall not come to us; for we will set a lie as our protection, and in falsity will we hide ourselves. (Isa. 28:15)

 

 

291. 이 절에서는 맨 처음 시대를 설명하면서, 교회를 천국 결혼을 대표하는 젊음의 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일종의 결혼으로 묘사되며, 이름하여 하와’(Eve)라 하는데, 이는 생명’(life)을 의미하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In this verse is described the first time, when the church was in the flower of her youth, representing the heavenly marriage, on which account she is described by a marriage, and is called “Eve,” from a word meaning “life.”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3:14-19

 

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Verse 19,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 19절 속뜻

 

태고 교회는 마지막 선인 자연적 선 상태도 모잘라 이젠 완전히 거듭남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상태는 정죄와 지옥의 상태입니다. 선악과를 범하면 정말 이런 끔찍한 상황으로까지 떨어집니다. 이후 20절로 끝절까지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후손까지 이 저주가 하나하나 어떻게 실현되는지 하는 내용입니다.

 

 

275.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는 천적(天的, celestial)인 것을 싫어하게 되었음을, ‘취함을 입은 그 흙으로 돌아감’은 거듭남 이전 상태였던 겉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그가 정죄를 받고,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됨을 말합니다. By “eating bread in the sweat of the face,” is signified to be averse to what is celestial; to “return to the ground from whence he was taken,” is to relapse into the external man, such as he was before regeneration; and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signifies that he is condemned and infernal.

 

 

276.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가 천적인 것을 싫어하는 것임은, ‘먹을 것’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o “eat bread in the sweat of the face” signifies to be averse to what is celestial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bread.”

 

먹을 것’은 천사들의 양식인 영적, 천적인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것이 없으면 천사들은 삶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도 양식이 떨어지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By “bread” is meant everything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is the food of the angels, on the deprivation of which they would cease to live as certainly as men deprived of bread or food.

 

천국의 천적, 영적인 것은 또한 지상의 ‘먹을 것’과 상응하며, 이것으로 천국의 많은 것들이 표현되고 있음을 말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at which is celestial and spiritual in heaven also corresponds to bread on earth, by which moreover they are represented, as is shown by many passages in the Word.

 

주님으로부터 모든 천적, 영적인 것이 나오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이 ‘’이심을 요한복음에서 직접 가르치십니다. That the Lord is “bread,” because from him proceeds whatever is celestial and spiritual, he himself teaches in John: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6:58) This is the bread that cometh down from heaven; he that eateth of this bread shall live to eternity. (John 6:58)

 

그래서 성찬(聖餐, the holy supper) 심볼들도 빵과 포도주로 정한 것이고, Wherefore also bread and wine are the symbols employed in the holy supper.

 

만나도 이 천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This celestial is also represented by the manna.

 

천사들의 양식은 천적, 영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주님의 말씀, That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constitutes the food of angels is manifest from the Lord’s words: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4)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Matt. 4:4)

 

곧, 모든 천적, 영적인 것이 주님의 생명에서 나오는 것을 볼 때 분명합니다. that is, from the life of the Lord, from which comes everything celestial and spiritual.

 

[2] 홍수 직전까지 존재한, 지금 다루고 있는, 태고 교회의 마지막 후손은 감각 및 육체의 일에 너무도 철저히 잠긴 나머지 완전 사라져 버릴 정도여서 신앙의 진리가 무엇인지,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혹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 등에 관해 더 이상 일체 귀 기울여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주제들이 언급될 때,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The la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existed immediately before the flood, and is here treated of, had become so thoroughly lost and immersed in sensuous and bodily things, that they were no longer willing to hear what was the truth of faith, what the Lord was, or that he would come and save them; and when such subjects were mentioned they turned away.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는 바로 이런 혐오를 표현합니다. This aversion is described by “eating bread in the sweat of the face.”

 

그렇게 유대인들 역시 천적인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오직 세속적 메시아만을 원하는 그런 캐릭터들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만나를 보고는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나는 그들이 ‘하찮은 음식’이라고 한, 주님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불뱀이 그들 가운데 왔습니다. (민21:5-6) So also the Jews, in consequence of their being of such a character that they did not acknowledge the existence of heavenly things, and desired only a worldly messiah, could not help feeling an aversion for the manna, because it was a representation of the Lord, calling it “vile bread,” on which account fiery serpents were sent among them (Num. 21:5, 6).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21:5-6)

 

게다가 역경과 비참이라는 상태로 그들에게 전달된 천적인 것들을 가리켜, 그들은 울면서 말하기를, ‘역경의 빵’, ‘비참의 빵’ 및 ‘눈물의 빵’이라 하였습니다. Moreover the heavenly things imparted to them in states of adversity and misery, when they were in tears, were called by them the “bread of adversity,” the “bread of misery,” and the “bread of tears.”

 

앞의 구절에서, 혐오하면서 받은 것을 가리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이라 하고 있습니다. In the passage before us, that which was received with aversion is called the “bread of the sweat of the face.”

 

 

277. 이것은 속뜻입니다. This is the internal sense.

 

글자의 뜻, 겉뜻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를 사람은 자기가 먹을 것을 땅을 갈아 힘들게 구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합니다. He who keeps close to the letter, understands no other than that man must procure bread for himself out of the ground by labor, or by the sweat of his face.

 

하지만 여기서 ‘사람’은 어떤 한 사람이 아닌, 태고 교회를 말합니다. ‘’도 땅을, ‘’도 빵을, ‘동산’도 동산을 말하는 게 아니라 천적 영적인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말씀드린 대로 말입니다. Man” however does not here mean any one man, but the most ancient church; nor does “ground” mean ground, nor “bread” bread, nor “garden” garden, but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s has been sufficiently shown.

 

 

278. ‘그가 취함을 입은 흙으로 돌아감’이 교회가 거듭나기 전 상태였던 겉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임이 분명한 것은 ‘’(ground)의 상징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겉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returning to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is signified that the church would return to the external man such as it was before regeneration,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ground” signifies the external man, as previously stated.

 

그리고 ‘’(dust)의 상징이 정죄를 받아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뱀에 관해 들으신 말씀으로 분명한데요, 이 뱀은 저주의 결과, ‘흙을 먹을지니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And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serpent, which in consequence of being cursed is said to “eat dust.”

 

’(dust)의 상징에 대해 거기서 볼 수 있었던 것 외에도, 시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도 있는데요 In addition to what was there shown as to the signification of “dust,” we may add the following passages from David: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시22:29) All those who go down to the dust shall bow before Jehovah, and those whose soul he hath not made alive. (Ps. 22: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Ps. 104:29)

 

이 말씀은 사람들이 주님의 얼굴을 외면할 때 그들은 끝나거나 죽고, 그래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즉 정죄를 받고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which means that when men turn away from the face of the Lord, they expire or die, and thus “return to the dust,” that is, are condemned and become infernal.

 

 

279. 일련의 시리즈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모든 말씀에 들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각 파트 때문에 천적인 것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14절): 주께서 그들과 재결합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다는 것(15절): 겉 사람이 스스로를 외면하는 결과, 전투가 일어난다는 것(16절): 그래서 비참이 초래되었다는 것(17절): 정죄(18절): 그리고 결국은 지옥(19절): All these verses then, taken in a series, involve that the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e celestial (verse 14);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for the purpose of reuniting them (verse 15); that combat arose in consequence of the external man averting itself (verse 16); whence resulted misery (verse 17); condemnation (verse 18); and at length hell (verse 19).

 

이런 일들이 그 교회 안에서 네 번째 후손부터 홍수 때까지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These things followed in succession in that church, from the fourth posterity down to the flood.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