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2025/6/15, 출17:5, 6), ‘호렙의 반석이신 주님'
호렙의 반석이신 주님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17:5, 6) And Jehovah said unto Moses, Pass on before the people, and take with thee of the elders of Israel; and thy rod, wherewith thou smotest the river, take in thine hand, and go. Behold, I stand before thee there upon the rock in Horeb; and thou shalt smite the rock, and there shall come waters out of it, that the people may drink. And Moses did so before the eyes of the elders of Israel. (Exdo. 17:5, 6)
그동안 여러 해 제 설교는 저의 오리지날 설교가 아니고, 지금은 은퇴하신,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설교를 원본으로 하여 우리 교회에 맞게 좀 다듬는 설교였습니다. 물론 사전 허락하에 말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제 역량, 곧 말씀을 속뜻(internal sense, inner meaning)으로 푸는 역량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하지만, 그러나 몇 주 전부터 이제는 네 힘으로 하라시는 주님의 어떤 퍼셉션이 있으셔요... 그래서 순종, 조금 준비와 연습을 거쳐 오늘부터 이렇게 저의 첫 속뜻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분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등 안정화 기간이 예상됩니다. 정성을 다하겠사오니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의 다른 모든 설교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계시록 본문은 모두 스베덴보리의 속뜻 주석인 ‘Arcana Coelestia’와 ‘Apocalypse Explained’(혹은 ‘Apocalypse Revealed’)를 가지고 준비합니다. 즉 이 주석들의 설명을 좀 더 쉽게 풀어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2018년 10월 이후 설교들부터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오리지날 설교는 아니었어도 말이지요.
말씀을 속뜻으로 읽는 것은 말씀을 천사들이 읽는 방식으로 읽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내적(內的, internal) 존재여서 모든 걸 내적으로 보는데요, 그러니까 천사들이 사람을 볼 때 그들 눈에는 사람의 육은 안 보이고 영, 곧 사람의 속만 보이며, 사람의 어떤 행위도 그 겉은 안 보이고 대신 그 속, 그 동기와 의도만 보이는 식입니다.
말씀을 속뜻으로 읽고자 하는 이유와 유익은 참 많고, 그리고 큽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사후 우리가 가게 될 나라가 그런 나라, 그러니까 겉이 아닌 속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지요. 우리가 다른 나라 이민을 고려할 때, 미리 그 나라에 대해 알아보고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을 속뜻으로 읽게 되면 시작되는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글자로만 있던 말씀이 살아있는 능력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지의 세계요, 그저 막연했던, 그저 좋은 내용들이기만 했던 말씀의 글자들이 말입니다. 이런 경험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마치 ‘극히 값진 진주’(마13:46)를 발견한 사람처럼,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마13:44)를 발견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는데요, 말씀의 살아있는 능력 가운데 들어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러나 아무나 지금 내가 하는 이 풀이가 속뜻이다 하면 곤란하므로, 주님은 280년 전인 1745년 어느 날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 나이 57세 때 그를 찾아오신 후, 1772년 그를 데려가실 때까지 27년간 영계 구석구석, 그리고 수많은 천사와 영들을 만나게 하시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라틴어로 기록하게 하셨는데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Arcana Coelestia’(1749-1756, ‘천국의 비밀들’)입니다. 이는 창세기, 출애굽기를 속뜻으로 풀이한 주석인데요, 총 10,837개의 글로 되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의하면, 이 주석을 집필할 때 주님이 곁에서 말씀하시고, 자기는 그걸 받아적기만 했다고, 자기는 그때 그 어떠한 세상 도서도 참고하지 않았고, 자기 책상 위엔 오직 속뜻 성경 한 권과 속뜻 사전 한 권, 그리고 펜과 종이, 잉크만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황이 곧 이 주석의 영적 권위를 드러내는데요, 이는 곧 신구약 말씀들이 기록되던 정황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현 성경 66권 중 ‘말씀’은 구약 29권, 신약 5권, 총 34권뿐입니다. 속뜻이 들어있는 성경이라야 ‘말씀’이기 때문인데요, 속뜻은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만 들어있습니다.
끝으로, 저는 이 주석을 온전히, 그리고 쉽게 풀어 전하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여기에 무슨 개인적 사사로움을 보태어 마치 저의 무슨 그럴듯한 새로운 저작인양하는 행태는 추호도 사양할 작정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제가 가장 힘쓰는 건 끊임없는 하늘의 퍼셉션(perception)입니다. 푸는 것도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작합니다.
지난 본문 끝 절인 4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4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아주 다급한 상황입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인 5절로 6절입니다. 먼저 5절,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여기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요, 첫째, ‘백성 앞을 지나서’, 둘째,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그리고 끝으로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입니다. 이 말씀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백성 앞을 지나서’(Pass on before the people)입니다. 이 말씀의 속뜻은,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가르쳐야 한다’(he should lead and teach them)는 것입니다. ‘모세’(Moses)의 속뜻은 ‘신성, 곧 여호와로 말미암는 진리’(truth from the Divine)이며, 이스라엘 자손을 표상하고 있는 ‘백성’은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을 의미하고, ‘앞을 지나서’(pass on before)는 이끄는 것, 곧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영적으로 인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인데, 지금 이 백성, 곧 영적 교회에 속한 이들 이스라엘은 물, 곧 진리가 없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며, 그래서 신성한 진리를 표상하는 모세가 이들을 이끌고 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백성 앞을 지나서’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험을 당하여 주님께 도우심(aid,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을 구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주님의 진리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진리가 아니고 말입니다. 모든 것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합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이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니까요. 그래서 무슨 망설임도 없습니다. 머리로는 혹 아, 먼저 주님께 여쭈어야 하는데, 먼저 기도하고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데 할지 몰라도 그러나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저부터도 우선 그럴 때가 많으니까요...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요만큼의 시간도 우리는 주님께 드리지 않습니다.
다음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and take with thee of the elders of Israel)입니다. 이 말씀의 속뜻은, ‘으뜸되는 진리들, 주된 진리들’(from primary truths)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속뜻은, ‘선에 일치하고 진리와 일치하는, 지혜와 지성에 속한 으뜸되는 것들’(the primary things of wisdom and intelligence which are in agreement with good and with truth)이며, 이는 곧 ‘으뜸되는 진리들, 주된 진리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백성’, 곧 ‘이스라엘’은 영적 교회(the spiritual church)라 하였습니다. 영적 교회는 그 메인이 진리입니다. 천적 교회(the celestial church)는 선이고요. 영적 교회는 신앙이 주된 교회이고, 천적 교회는 사랑이 주된 교회라고 해도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도 신앙과 진리, 말씀을 우선하는 교회는 좀 날카롭고 예민하며 판단하지만, 사랑과 선,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를 우선하는 교회는 한결 따뜻하고, 넉넉하여 품어줍니다. 어느 게 맞다, 틀리다가 아니고, 두 교회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이며, 이는 곧 두 천국의 특성, 두 천국 천사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으뜸되는 진리의 예를 하나 살피고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으뜸되는 진리의 가장 대표적인 말씀은 바로 아래 주님의 말씀이 아닐까 하는데요,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우리는 어떤 크고 작은 선을 행할 때 대체로 어떤 진리를 가지고 합니다. 가령 교회 봉사를 나가는 경우인데요, 교회 봉사, 즉 어떤 섬김이든 그 자체로는 참 좋은 일이나 그 동기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좀 쉬고픈데 맡은 직급이 있어 억지로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 곧 그 동기를 볼 수 없으므로 이 경우, 우리는 그 겉만 보고 저분은 참 귀하시다 합니다. 또한 다른 경우는, 이 경우 역시 좀 쉬고 싶은 건 같은데, 그러나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이고, 후자는 주님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개인적인 사사로움은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사랑해서 교회와 이웃, 나라와 민족을 섬기는 것, 일상생활 속 크고 작은 모든 상황, 즉 시험들 가운데서 이렇게 하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는 사람입니다. 즉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 가장 큰 진리, 가장 으뜸되는 귀한 계명인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을 기억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and thy rod, wherewith thou smotest the river, take in thine hand, and go)입니다. 먼저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인데요, 이 표현은 ‘거짓들을 소멸시켜 버린 신성한 능력, 힘’(the Divine power by which falsities had been dissipated)을 말합니다. ‘지팡이’(a rod)는 힘, 곧 신성한 능력을 가리키는데, 특히 이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로서, 모세는 신성한 진리이신 주님(he Lord as to Divine truth)을 표상하기 때문이며, 또 한 가지, ‘강’, 여기 애굽의 강인 나일강은 ‘거짓’(falsity)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라는 표현으로 ‘거짓의 소멸’(the dissipation of falsity)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신성한 능력으로 거짓들은 소멸되기 때문이지요. 이 진리는 ‘호렙산 반석에서 나오는 물’(the water out of the rock in Horeb)을 말합니다. 다음은 ‘손에 잡고 가라’(take in thine hand, and go)인데요, 이 표현은 ‘그걸 가지고 권한,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어떤 무장’(that equipped therewith he should perform the mandate)을 말합니다.
진리의 부족과 결핍으로 야기되는 시험 앞에서 우리는 오직 지난날 우리에게 행하신 주님의 순전하신 진리의 힘과 능력을 기억, 거기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이번 대선 결과와, 그 전에도 여러 번 부정선거로 인한, 진실이 거짓에 먹히는, 이 되풀이되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 민족, 특히 우리 신앙인들과 그 가운데 특별히 신앙을 가진 지도자들이 ‘오직 지난날 우리에게 행하신 주님의 순전하신 진리의 힘과 능력을 기억, 거기에만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께 속한 이스라엘에게 40년 광야 세월을 허락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저의 지난날 중에서 지금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 있다면 단연 대학 졸업 후 감히 삼성 그룹공채에 지원, 합격한 일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졸업 평점이 아주 낮아 삼성에 응시원서를 낸다는 건 언감생심, 그래서 처음엔 여러 중소기업 위주로 원서를 냈으나 아무 데서도 연락오는 데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1988년 당시, 전자공학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골방에 들어가 한 달을 주님께 부르짖었는데요, 제 동기들은 이미 엘지, 현대, 대우 등 대기업 여기저기 들어가 신입사원 입문 교육들을 받고 있을 때였지요. 비록 그땐 지금처럼 말씀의 속뜻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오직 네비게이토식 성경 암송과 제자 훈련, 제자 양육이 신앙의 전부인 줄 알던 시절이었지만, 그럼에도 한 달을 골방에서 보냈더니 뭔가 걸러지고 깨끗해지는 느낌과 함께 주님께 백지수표를 내어드릴 수 있는 심정이 되더군요. 그날 오전 기도 후 오늘 조간 1면 하단을 보라시는 분명한 음성인지 생각인지 하여튼,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게 바로 퍼셉션(perception)인데, 그래서 현관에 놓인 중앙일보를 펼쳐 그 1면 하단을 보니 ‘삼성그룹공채 29기 2, 3차 신입사원 모집’ 공고가 있더군요. 그때 솔직히 숨이 좀 막혔으나 눈 딱 감고 순종, 용기를 내어 응시했던 것입니다. 특히 1차 서류전형이라 졸업 평점이 아주 낮은 저로서는 보나마나였거든요. 그러나 적성 검사를 마치고, 사장단 면접과 실제 면접관들 대상 다면 면접 때, 그때그때 대답할 말을 주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결국 ‘합격’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20대 1이었다는군요. 그날의 감동,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일은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의 르비딤 시험 같은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그러나 이후 제 삶의 여러 고비마다 주님이 지난날 내 앞이 캄캄했을 때 내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기억, 힘을 낼 수 있었던 정말 고맙고 감사한 개인적 사례여서 특별히 나눴습니다. 지금 모세에게도 주님은 출애굽 전 그와 함께하셨던 열 가지 재앙 중 물을 피로 변케 하셨던 때를 기억하게 하시고 용기를 내게 하신 것입니다.
6절입니다.
6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먼저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Behold I stand before thee there upon the rock in Horeb)입니다. 이 표현의 속뜻은, ‘신앙의 진리들에 응답하시는 주님’(the Lord in respect to the truths of faith)입니다. 여기 ‘반석’(a rock)의 의미가 ‘신앙, 여기서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신앙, 혹은 신앙에 응답하시는 주님’(faith, here faith from the Lord, or the Lord in respect to faith)이기 때문인데, 여호와, 즉 주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그 반석 위에 서리니’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호렙’(Horeb)은 ‘신성한 법’(the Divine Law)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말씀들로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의 속뜻은 ‘그분의 법, 곧 말씀으로 말미암는 신앙의 진리들에 응답하시는 주님’(the Lord in respect to the truths of faith which are from His law, or the Word)입니다.
여기서 잠깐, ‘반석’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요, 잠깐 저 유명한 ‘베드로와 천국 열쇠’ 본문을 좀 보고 가겠습니다.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16:18, 19)
로마 카톨릭은 이 본문을 글자 그대로 해석,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대로 천국 열쇠를 주셨고, 그리고 자기들은 베드로의 후계자들이니 당연히 자기들한테 이 천국 열쇠의 권한, 곧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신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황한테 이런 권한,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말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 마주하게 되는 대표적인 오류 중 하나가 바로 이 경우인데요, 사실 이 오류는 교회사, 세계사 전체에 절대 가볍지 않은 큰 상흔을 남겼기에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 한 인간 베드로에게 저런 엄청난 권세를 주신 적이 없으신데요, 이는 여기서 말씀하신 ‘반석’의 의미, 곧 그 속뜻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반석’(rock)의 의미는 ‘신앙에 관한 주님, 그리고 또한 주님으로 말미암는 신앙’(the Lord as to faith, and also the faith which is from the Lord)입니다. 즉 신앙을 말할 땐 주님을, 그리고 사람과 관련해서는 신앙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주님이 반석이시며,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은 우리 것, 곧 우리가 잘나서 우리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 주님의 것, 곧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즉 우리의 이 신앙 역시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주신 신앙으로 우리는 주님을 향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일체 무슨 사사로움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대단히 오해한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성한 진리조차 거기에 인간의 무슨 사사로움이 섞이면 이토록 타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주님의 순결하신 진리에 우리의 무얼 섞으려는, 적당히 섞어 자신의 무슨 목적을 관철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사후 무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의 의미는 우리 신앙생활의 반석을 주님께 둘 때, 이스라엘이 그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신앙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두리번거리거나 주님이 주신 이 신앙의 진리들에다가 잔머리를 굴리며 세상에서 배운 뭘 섞는 짓을 하면 안 되겠습니다.
다음은 ‘너는 그 반석을 치라’(and thou shalt smite the rock)입니다. 이는 ‘to entreat urgently from a humble heart’, 곧 ‘절박한 심정으로, 그러나 겸손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석을 치는 것입니다.
이번 이 르비딤 시험을 오늘 이 출애굽기 본문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로 요약하지만, 아래 민수기 본문은 같은 사건을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오늘 이 출애굽기 본문에서는 주님은 분명히 ‘겸손한 마음’(a humble heart)을 명령하셨음에도 아래 민수기 본문을 보면, 실제로 모세와 아론은 그때 ‘완악한 마음’(a hard heart)이었다는 것입니다.
10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20:10-12)
참고로, 이때 모세와 아론은 ‘신성한 진리에 관한 주님’(he Lord as to Divine truth)을 표상하는 게 아니라 ‘저들의 지도자들한테서 볼 수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지나치게 종교적인 모습’(the religiosity of that nation whose leaders and heads they were)을 의미합니다. 이런 종교성은 필연적으로 완악함을 나타내게 되지요.
한 가지, 위 본문은 얼핏 여호와께서 저들을 저주하시는 것처럼 읽을 수도 있으나, 그러나 절대 그런 게 아니고, 오히려 주님은 정성을 다해 인격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expostulated) 것입니다. 차근차근 부드럽게 넌지시(was intimated to him) 말이지요. 주님은 절대로 누구를 저주하시거나 누구에게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아멘!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and there shall come waters out of it)와 ‘백성이 마시리라’(that the people may drink)의 속뜻은 각각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신앙의 진리들’(the truths of faith are from Him)과 ‘그들을 기운 차리게 하고, 그들에게 영적 생명을 주는’(which shall refresh them and give them spiritual life)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and Moses did so before the eyes of the elders of Israel)의 속뜻은, ‘으뜸되는 진리들로 인한 결과’(the effect by means of primary truths)입니다.
이들 풀이는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로 자명, 생략합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면, 우리가 말하는 소위 ‘영적 깨달음’이나 ‘영안이 열림’, 혹은 ‘내면이 밝아지는 것’(enlightenment)은 모두 이들로 인한 효과라는 것입니다. 그들, 곧 으뜸되는 진리들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진리들, 이걸 ‘2차적 진리’(secondary)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이제 밝히 깨달아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인 건 알겠는데 실제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딪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지를 그동안은 잘 몰랐다면,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우리 신앙의 반석으로 믿고, 모든 것을 반석 되신 주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즉 현재 천사들이 바로 그런 존재들인데, 그들처럼 우리도 일상생활 가운데 아주 해처럼 빛나는 명료함과 능력, 그리고 지혜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입니다.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17:5, 6)
지금까지 시험을 만난 이스라엘과 모세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그 속뜻으로 살폈습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을 거듭 되새김질하셔서 그럴수록 속 심령이 뜨거워지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
2025-06-15(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