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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정치 상황 속에서 목사의 바람직한 태도

bygracetistory 2025. 11. 25. 11:41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스베덴보리를 주제로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뉴스와 유튜브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저들 악하고 거짓된 사람들, 불의한 자들 때문에 속으로 화가 많이 나요. 이런 불의한 정치 상황 속에서 스베덴보리를 하는 목사로서 저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맞는 건가요? 스베덴보리는 자기가 처한 나라의 정치 상황하고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제 갈 길을 간 건가요?

목사님, 이 질문은 신앙·소명·시민의식·감정 관리가 모두 얽혀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오래 읽고 번역하시는 목사님의 자리에서는 더욱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정치적 입장에 서지 않고, 오직 스베덴보리적 관점 + 목회적 관점 + 영적 원리로 답변드립니다.


1. 스베덴보리는 자기 시대의 정치 혼란에 “무심”했던 게 아닙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스웨덴 내부의 파벌 싸움, 귀족 세력의 충돌, 국왕과 의회의 힘겨루기를 직접 겪었고, 때로는 정계 중심에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첫째, 정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우 뚜렷하게 영적 사명과 내적 삶을 정치적 격동과 분리했습니다. 나라 문제가 심각할 때에도 그의 일관된 관점은 “정치적 승패보다 영적 질서와 선의 회복이 먼저”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정치인이나 특정 세력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편도 “악하다, 거짓되다”라는 식의 정념적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적 악보다, 그 악을 증오하는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손상을 더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회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질서 회복”이 더 근본이라고 보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늘 말합니다. 사회적 부패의 뿌리는 제도보다 인간 개개인 내부의 자애와 교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정치가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본인의 사명을 흔들림 없이 지속했습니다.


2. 스베덴보리적 관점에서 볼 때, 목사님의 “분노 문제”는 신앙적 질문입니다

정치가 악하다 혹은 불의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이 목사님 마음 안에서 어떤 영적 작용을 일으키는가가 더 본질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영적 원리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분노의 대상이 악이든 불의든, 그 분노가 지속되면 내적 자유가 사라집니다. AC 588, 599 등에서 말하듯, 분노는 “선한 분별력”이 아니라 “내적 평화를 빼앗는 정념”으로 변합니다. 둘째, 정치 뉴스는 사탄이 쓰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스베덴보리는 악령들이 두려움·분노·원망·혐오를 통해 사람의 내면을 열어젖힌다고 말합니다. 정치적 뉴스 소비로 인해 영적 분별력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가 사라지며, 선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번역과 소명이 흐트러진다면, 그 순간 이미 정치 현실보다 더 큰 영적 손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셋째, “의분”과 “정념적 분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의로운 분노는 가능하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합니다. “의분은 선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지만, 정념적 분노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미워하는 데서 나온다.지금 목사님의 표현들(“악하고 거짓된 사람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난다”)은 정치적 악의 분석이 아니라 감정적 상처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 생활을 많이 갉아먹습니다.


3. 그럼 목사님에게 맞는 “스베덴보리적 태도”는 무엇인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도하되, 미움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스베덴보리는 국가를 위한 기도를 권합니다. 하지만 관심은 가지되 마음을 빼앗기지는 말라고 합니다. 즉, 뉴스는 “상황 파악” 정도로만 보되 감정적 몰입은 극도로 절제하고, 영적 분별을 잃게 만드는 콘텐츠는 줄이는 한편, 정치인 개개인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피하는 것, 이게 스베덴보리적 균형입니다.

지금의 분노를 “소명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정치에 분노한다고 해서 그것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 에너지를 선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면 오히려 소명이 강화됩니다. 예컨대, 내가 번역하는 이 말씀의 진리로 한국교회의 영적 분별력을 세우자”, 사회적 혼란보다 더 깊은 원인은 영적 진리의 부재다”, 내 번역과 가르침이 미래 한국의 영성을 세우는 토대가 된다” 등, 이렇게 분노를 사명으로 승화시키면, 정치 뉴스는 오히려 목사님의 영적 집중력을 돕는 “경각심”이 됩니다.

스베덴보리처럼 “자기 과업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기”

정치 현실이 어렵다고 번역이 멈춰도 안 되고, AC 연구의 흐름이 흔들려도 안 되며, 영적 평화가 깨져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변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자기 과업은 단 1mm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영적 진리를 기록하는 사람은 세상 문제보다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목사님께도 동일합니다.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되든, 목사님은 AC 번역과 연구, 가르침이라는 평생의 소명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4. 결론 - 목사님이 취하면 좋을 태도 (스베덴보리적 종합)

뉴스는 필요 최소한만 정보 파악” 수준까지만 접하시고, 감정적 콘텐츠는 줄이십시오. 분노가 생기시면 “내적 상태 점검”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정치적 분노는 “사회적 정의 문제”보다 내적 평화의 침해”가 더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악에 주의를 기울이시되, 악과 싸우겠다는 마음에 집착하시면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악을 악으로 인정하되, 그것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내면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분노 에너지를 소명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 설교, AC 번역 등, 이 모든 것이 나라 장래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베덴보리처럼 “타고난 사명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그가 시대 정치와 거리를 뒀던 것처럼, 목사님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향해 가시면 됩니다. 목사님, 지금 느끼시는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이 목사님 안의 영적 평화, 사명, 지혜를 조금이라도 깎아 먹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영적 공격입니다. 어느 시대든 나라가 혼란할 때, 주님은 “더 깊은 영적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