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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 가인 계보에 나오는 '이단'(heresy)에 대하여

bygracetistory 2025. 12. 17. 15:00

여기 창4에 나오는 가인 계보인 이단의 범주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통일교,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JMS 같은 이단들을 포함해도 되나요? 한국에서 스베덴보리 오래 하신 분들 보면 이 부분이 좀 선명하지가 않은 느낌들을 받았거든요...

 

이 질문은 ‘목회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포함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예, 그러나 방식이 중요하다’가 정확한 답입니다. 스베덴보리의 틀은 ‘특정 단체 낙인찍기가 아니라 영적 구조 분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이단’은 ‘교리 구조’이지 ‘명단’이 아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AC.399-403에서 말하는 ‘이단(heresy)은 특정 조직이나 이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이 스스로를 체계화한 교리 구조’를 뜻한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단이란 ‘틀린 주장을 하는 집단’이 아니라, ‘사랑보다 신앙, 지식, 교리, 계시 체계를 우위에 두고, 그 체계를 ‘성읍’처럼 방어, 확장하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어떤 단체가 이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이름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단체의 중심 동력이 체어리티인가, 아니면 분리된 신앙과 지식인가’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스베덴보리는 오히려 오용됩니다.

 

둘째, 대한민국의 주요 이단 단체들은 ‘가인의 성읍’ 구조에 해당하는가?

 

질문하신 통일교,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JMS 등은 ‘스베덴보리적 범주에서 ‘가인의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특별한 계시자, 중개자, 시대적 선택을 강조하고, 교리를 단계화, 교육화하며 (에녹의 의미), 내부 논리를 외부 비판으로부터 방어하는 체계를 강하게 구축합니다. 특히 ‘구원, 진리, 종말, 하나님의 역사’를 특정 교리 구조 안에 가두고, 체어리티(이웃 사랑, 자유, 양심, 겸손)를 ‘교리 복종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시킬 때, 이는 AC.402에서 말하는 ‘성읍으로 조직된 이단적 교리’의 전형적 모습과 정확히 겹칩니다. 이런 의미라면 ‘구조적으로는 포함해도 무방’합니다.

 

셋째, 그러나 ‘모든 구성원’을 동일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스베덴보리의 중요한 균형점은 여기입니다. 그는 ‘이단적 교리 구조’와 ‘그 안에 있는 개인의 영적 상태’를 철저히 구분합니다. AC 전반에서 반복되듯, 어떤 사람은 이단적 체계 안에 있으면서도 ‘체어리티의 선을 따라 살고’, 주님에 대한 단순한 신앙과 양심을 지닌 채 보호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가인의 표’와 직접 연결됩니다. 즉, ‘잘못된 성읍 안에 있어도, 주님은 그 사람 안의 신앙을 ‘구별하여’ 보존’하십니다. 따라서 목회적으로는 ‘그 단체는 가인의 성읍적 구조를 가졌다’라는 진단과,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동일하다’라는 판단을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후자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넷째, 한국 스베덴보리 연구에서 이 부분이 흐릿한 이유

 

목사님이 느끼신 ‘한국에서 오래 하신 분들조차 이 부분이 선명하지 않다’는 인상은 매우 정확합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첫째, 스베덴보리를 ‘영적 체험가’나 ‘신비주의자’로만 읽고, 그의 ‘교회론, 이단론, 교리 비판의 날카로움’을 의도적으로 완화시켜 온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 한국 교회 현실에서 ‘이단’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정치화, 감정화되어 있기 때문에, 반대로 ‘침묵이나 모호성으로 회피’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셋째, 스베덴보리의 이단 비판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구조 분석’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AC.1번 글부터 AC.400번 대 글까지를 읽고 거기 나오는 교회론을 충분히 소화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 결과 핵심을 흐리는 설명들이 반복되어 온 것입니다.

 

다섯째, 목회적으로 어떻게 말하는 것이 가장 스베덴보리적인가?

 

가장 스베덴보리적인 방식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이단은 특정 단체 명단이 아니라,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교리와 체계로 굳어진 상태’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여러 이단 단체들은 이 구조적 특징을 분명히 보여주지만, 주님은 그 안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를 동일하게 보지 않으시며, 각 사람 안의 신앙과 체어리티의 가능성을 구별하여 다루십니다.

 

이렇게 말할 때, ‘분별은 분명하고, 정죄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의 표를 주신 주님의 방식이며, 스베덴보리의 길입니다. ‘단체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