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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1, 창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AC.421-426)

bygracetistory 2025. 12. 23. 12:17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2)

 

AC.421

 

‘씰라’(Zillah)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새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the mother of the natural things of the new church)와,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는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와 상응합니다. 여기서 ‘구리’(brass)는 자연적 선을, ‘쇠’(iron)는 자연적 진리를 가리킵니다. ‘나아마, 두발가인의 누이’(Naamah, the sister of Tubal-Cain)는 유사한 교회, 즉 그 교회 밖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a similar church, or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outside of that church)와 상응합니다. By “Zillah” is signified, as previously stated, the mother of the natural things of the new church; by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brass” denoting natural good, and “iron” natural truth. By “Naamah, the sister of Tubal-Cain” is signified a similar church, or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outside of that church.

 

해설

 

AC.421에서 스베덴보리는 ‘씰라(Zillah)를 새 교회에서 자연적 차원의 어머니로 규정합니다. 앞서 아다가 천적인 것(사랑의 거룩함)과 그로부터 나온 선을 낳는 어머니였다면, 씰라는 그 사랑과 신앙이 자연계의 삶과 행위 속으로 내려와 구체화되는 차원을 낳는 어머니입니다. 이는 새 교회가 내적 차원(천적, 영적)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판단, 행위, 도덕, 질서로까지 확장됨을 뜻합니다. 교회는 마음과 생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연적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씰라가 낳은 ‘두발가인(Tubal-Cain)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로 묘사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장인과 기술을 물질문명의 진보로 보지 않고,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의 형성으로 해석합니다. ‘구리(brass, )는 성경 전반에서 자연적 선을, ‘(iron, )는 자연적 진리를 표상합니다. 자연적 선이란 외적 삶에서 실천되는 선한 행위와 유익함이며, 자연적 진리란 그 행위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도덕적, 합리적 진리입니다. 두발가인이 ‘스승(instructor)으로 불린 것은, 이러한 선과 진리가 무질서한 관습이 아니라 가르쳐지고 전수되는 교리의 형태로 정착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구분이 나타납니다. 자연적 선과 진리는 천적, 영적 선과 진리의 단순한 복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더 거칠고, 더 외적이며, 감각과 경험에 가까운 형태를 띱니다. 그러나 새 교회에서는 이 자연적 차원조차도 천적 사랑과 영적 신앙에서 내려온 질서 안에 놓입니다. 두발가인이 놋과 철을 다룬다는 표현은, 인간의 외적 삶이 선과 진리라는 재료로 형성되고 단련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즉, 자연적 삶 역시 교회의 일부로 회복됩니다.

 

또한 두발가인의 누이로 소개되는 ‘나아마(Naamah)는, 그 교회 밖에 있는 유사한 교회, 혹은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표상합니다. ‘누이(sister)라는 표현은 동일한 본질을 지니되, 직접적인 계보 안에는 속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새 교회 밖에서도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가르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대목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교회가 아닌 곳에도 도덕, 정직, 질서, 유익함에 관한 참된 가르침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들 역시 자연적 차원에서는 진리와 선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유사성’과 ‘동일성’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나아마로 표상된 교리는 새 교회와 유사하지만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리는 천적 사랑과 영적 신앙으로부터 직접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자연적 이성과 경험의 차원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이’로 불린 것은, 그러한 교리들 역시 주님의 섭리 안에서 교회와 접촉하고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AC.421은 새 교회의 구조가 천적(아다)–영적(야발, 유발)–자연적(씰라, 두발가인)으로 온전히 갖추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사랑과 신앙의 내적 차원에서 시작되어, 자연적 삶의 선과 진리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 자연적 차원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나, 참된 생명은 언제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질서 안에서만 온전히 유지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새 교회가 결코 관념적이거나 내면에만 머무는 종교가 아니라, 삶 전체를 형성하는 전인적 질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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