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창4

AC.435, 창4:25, '사람(아담)과 그의 아내'라는 표현의 반복

bygracetistory 2025. 12. 25. 23: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4:25)

 

AC.435

 

여기서 ‘남자’(man)와 그의 ‘아내’(wife)가 위에서 아다와 실라가 상징했던 새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무도 겉 글자로만 봐서는 알거나 추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그의 아내’(man and his wife)는 전에 있었던 태고 교회와 그 후손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 곧 속뜻과 바로 다음 장(1-4)에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이 낳은 셋이 완전히 다른 표현으로 다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경우에는 태고 교회의 첫 번째 후손을 상징합니다. That the “man” and his “wife” here mean the new church signified above by Adah and Zillah no one could know or infer from the literal sense, because the “man and his wife” had previously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and its posterity; but it is very evident from the internal sense,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immediately afterwards, in the following chapter (verses 1–4), the man and his wife, and their begetting Seth, are again mentioned, but in entirely different words, and in this case there is signified the fir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1-4)

 

앞의 구절에서 다른 의미가 없었다면 여기서도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첫 장에서 인간과 땅의 소산과 짐승의 창조가 다루어진 것과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장에서 그것들이 다시 다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첫 장에서는 영적인 사람의 창조가 다루어지는 반면, 두 번째 장에서는 천적 인간의 창조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언급에서 이러한 반복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항상 의미의 차이를 동반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내적 의미, 곧 속뜻으로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연결 자체가 주어진 의미를 확증하며, ‘남자[homo]와 아내’라는 표현은 문제의 모 교회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그러니까 관용적인 용어라는 점을 추가로 고려해야 합니다. If nothing else were signified in the passage before us, there would be no need to say the same thing here: in like manner as in the first chapter the creation of man, and of the fruits of the earth, and of the beasts, is treated of, and then in the second chapter they are treated of again, for the reason, as has been said, that in the first chapter it is the creation of the spiritual man that is treated of, whereas in the second chapter the subject is the creation of the celestial man. Whenever there is such a repetition in the mention of one and the same person or thing, it is always with a difference of signification, but what it is that is signified cannot possibly be known except from the internal sense. Here, the connection itself confirms the signification that has been given, and there is the additional consideration that man [homo] and wife are general terms which signify the parent church that is in question.

 

해설

 

AC.435에서 스베덴보리는 독자들이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문자적 혼동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즉, ‘사람(아담)과 그의 아내’라는 동일한 표현이 앞에서는 태고 교회를 뜻했고, 여기서는 아다와 씰라로 표상된 새 교회를 뜻한다는 점입니다. 문자적 의미만 붙들고 있다면, 이것은 명백한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차이는 결코 우연도 오류도 아니며, 오히려 말씀의 본질적 구조를 보여 주는 증거라고 말입니다.

 

그는 먼저, 이 사실이 문자 의미로는 절대 알 수 없고, 오직 ‘내적 의미(internal sense, 속뜻)로만 분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표현 ‘사람과 그의 아내’가 이미 앞부분에서는 태고 교회와 그 후손들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표현이 여기서도 동일한 교회를 뜻한다면, 성경은 불필요한 반복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말씀은 결코 그렇게 쓰이지 않습니다. 같은 표현이 반복될 때에는, 언제나 다른 영적 상태가 다루어집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바로 다음 장, 창세기 51–4절을 지목합니다. 거기서도 다시 ‘사람과 그의 아내’와 셋의 출생이 언급되는데, 그 표현과 문맥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분명히 태고 교회의 첫 후손, 곧 가장 오래된 교회의 계보가 다시 다루어집니다. 만일 창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가 태고 교회라면, 창5에서 같은 내용을 다시 반복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사실 자체가, 창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다른 교회, 곧 새 교회를 가리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창세기 1장과 2장의 관계를 예로 듭니다. 두 장 모두 ‘사람의 창조’를 말하지만, 전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1장은 영적인 사람의 창조를, 2장은 천적인 사람의 창조를 다룹니다. 표면적으로는 반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영적 차원과 상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창4와 창5에서 반복되는 ‘사람과 그의 아내’ 역시 서로 다른 교회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해석 원리가 하나 분명히 드러납니다.

 

말씀에서 동일한 인물이나 사물이 반복될 때, 그것은 항상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다른 상태의 기술’이다.

 

이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성경은 모순으로 가득 찬 책이 됩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의 관점에서 보면, 이 반복은 오히려 질서 있고 정밀한 영적 서술 방식입니다. 말씀은 사건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교회와 인간 내면의 상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AC.435의 마지막 문장은 이 해석을 결정적으로 확증합니다. ‘사람(homo)과 아내’라는 표현은 특정 개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언제나 그때그때 문제 되는 ‘부모 교회(parent church)를 가리키는 일반적, 관용적 용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동일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씀의 언어를 자연적 언어로만 오해한 결과입니다.

 

정리하면, AC.435는 이렇게 말합니다.

 

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는 아다와 씰라로 표상된 새 교회이며, 창5:1 이하의 ‘사람과 그의 아내’는 태고 교회의 첫 계보를 뜻하고, 이 둘은 시간적으로 이어진 반복이 아니라, 영적으로 서로 다른 층위의 교회 상태입니다.

 

이 설명은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가 병행했다는 해석’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말씀은 먼저 겉으로 드러난 붕괴의 역사(가인)를 끝까지 보여준 뒤, 그와 병행하여 보존되고 있던 생명의 계보(셋)를 다시 꺼내어 조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지만, 그 의미는 그때그때 다루는 교회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결국 AC.435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성경의 반복은 중복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문이며, 그 문은 내적 의미 없이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성경은 사건을 반복하는 책이 아니라 사람과 교회의 영적 상태를 겹겹이 비추는 책’입니다.

 

 

 

AC.434, 창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AC.434-437)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homo]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