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3, AC.485,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5
여기서 ‘셋’(Seth)이 앞에서 묘사된 교회(창4:25)와는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AC.435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at a different church is here meant by “Seth” from that which was described above (Gen. 4:25), may be seen at n. 43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교회들이 같은 이름으로 일컬어졌다는 것은 앞 장에서(창4:17-18) ‘에녹’(Enoch)과 ‘라멕’(Lamech)이라 한 교회들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에녹’과 ‘라멕’이라 하는 다른 교회들(창5:21, 30)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churches of different doctrine were called by the same name, is evident from those which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4:17–18) were called “Enoch” and “Lamech,” while here other churches are in like manner called “Enoch” and “Lamech” (Gen. 5:21, 30).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18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4:17, 18)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1, 30)
해설
AC.485는 창4와 창5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글입니다. 문자적 족보만 따라 읽으면 창4:25의 셋과 창5:3의 셋은 당연히 동일 인물이며, 창5는 창4 끝부분에서 등장한 셋의 족보를 다시 이어 가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속뜻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명시합니다.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를 의미합니다.
AC.485가 직접 참조하라고 한 AC.435를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창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는 앞에서 아다와 씰라로 표상된 ‘새 교회’를 의미하고, 거기서 태어난 ‘셋’은 체어리티가 심어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신앙을 의미합니다. 반면 창5:1-4에서 다시 등장하는 ‘사람과 그의 아내’와 ‘셋을 낳음’은 ‘태고교회의 첫 후대’를 의미한다고 스베덴보리는 명시합니다. 그는 같은 사람과 사건이 다시 언급되는 것처럼 보여도 속뜻에서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반복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AC.435)
따라서 창4와 창5를 하나의 단순한 직선적 계보로 이어 붙이면 속뜻에서 중요한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창4는 가인으로 표상된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발생과 그로부터 나온 여러 이단과 교리적 계열,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새 교회가 일어나는 흐름을 다룹니다. 그 마지막에 등장하는 셋은 바로 그 문맥 안에서 ‘체어리티가 심어질 수 있게 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반면 창5는 태고교회 자체와 그 후대의 여러 교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다루며, 여기의 셋은 태고교회에 이어지는 두 번째 교회입니다. AC.460-463의 장 전체 개요와 AC.481-484의 설명도 이 흐름을 일관되게 보여 줍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셋’ 하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창4에도 ‘에녹’과 ‘라멕’이 나오고 창5에도 ‘에녹’과 ‘라멕’이 나옵니다. 그러나 AC.485는 이들도 각각 서로 다른 교회들이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같은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속뜻에서 같은 교회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교회들이 같은 이름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름 자체보다 그 이름이 놓인 문맥과 그 교회가 표상하는 내적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이 점은 우리가 창4부터 계속 살펴 온 한 가지 질문에도 중요한 빛을 던집니다. 곧 ‘가인 계열이 태고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갔다면, 태고교회 자체와 그 후대는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AC.485와 AC.435는 적어도 창4의 셋과 창5의 셋을 하나의 동일한 교회 계열로 합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창4의 마지막은 그 장에서 전개된 교회적 흐름의 결론이고, 창5는 태고교회와 그 첫 후대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별도의 교회적 계승을 보여 줍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4와 창5의 모든 교회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같은 시기에 나란히 존재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AC.485가 직접 확정하는 것은 ‘같은 이름이 서로 다른 교회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며, AC.435가 확정하는 것은 창4:25의 새 교회와 창5:1-4의 태고교회 첫 후대가 서로 다른 문맥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두 장을 단순히 하나의 직선적인 교회 계보로 읽는 것은 어렵습니다. 두 계열의 시간적 관계와 서로의 관계는 앞으로 나오는 설명들을 더 모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러한 구별은 창5의 셋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앞의 AC.484에서 보았듯이 이 셋 교회는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이 태고교회에서처럼 그만큼 주된 것은 아니었으나 신앙은 여전히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5의 셋은 창4에서 사랑과 신앙의 분리와 회복이라는 문맥 가운데 나타난 셋과 달리, 태고교회 자체로부터 이어지면서 그 천적 질서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과정 가운데 나타난 교회입니다.
결국 AC.485는 창4와 창5를 읽는 우리의 지도를 수정해 주는 글입니다. 같은 이름이 반복된다고 같은 교회가 아니며, 같은 ‘사람과 그의 아내가 셋을 낳았다’는 서술이 반복된다고 같은 교회적 사건을 단순히 되풀이한 것도 아닙니다. 말씀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름과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교회와 서로 다른 내적 상태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5를 읽을 때에는 창4의 이름들을 그대로 연결하기보다,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교회적 계승의 흐름 안에서 각각의 이름과 상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AC.485 해설)
창5:4, AC.486, '날들과 해들, 아들들과 딸들의 의미'(AC.486-491)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창5:3) AC.486‘날들’(days)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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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3, AC.484, ‘사랑이 여전히 신앙과 결합되어 있었던 셋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4‘셋’(Seth)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모양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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