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87, 창5:4, '날'(day), '해'(year), 단순 숫자, 복합 숫자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7
‘날들’(days)이 일반적으로 시간들과 상태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첫째 장에서 이미 보인 바 있는데, 거기서 창조의 ‘날들’은 다른 어떤 의미도 갖지 않습니다. 말씀에서는 모든 시간을 ‘날들’이라고 부르는 일이 매우 흔하며, 이것은 현재 절과 그 뒤에 이어지는 절들(5, 8, 11, 14, 17, 20, 23, 27, 31)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시간들의 일반적인 상태들 또한 ‘날들’에 의해 의미됩니다. 여기에 ‘해들’(years)이 더해질 때에는, 해의 계절들에 의해 상태들의 성질들이 의미되며, 따라서 특별한 의미에서의 상태들이 의미됩니다. 태고 사람들에게는 교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을 의미하는 그들만의 숫자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셋’(three), ‘일곱’(seven), ‘열’(ten), ‘열둘’(twelve)과, 이것들과 다른 숫자들이 결합된 많은 숫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숫자들을 통해 교회의 상태들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숫자들 안에는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아르카나(arcana, 秘義, arcanum의 복수)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곧 교회의 상태들에 대한 하나의 기록이자 계산이었습니다. 같은 일이 말씀의 많은 부분들, 특히 예언서들에서도 나타납니다. 유대 교회의 의식들 안에서도 시간과 분량에 관한 숫자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제사, 소제, 봉헌물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적용되는 방식에 따라, 어디에서나 거룩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팔백’(eight hundred)이라는 숫자와, 다음 절에 나오는 ‘구백삼십’(nine hundred and thirty)이라는 숫자, 그리고 이어지는 절들에 나오는 연수의 숫자들 속에 포함된 것들, 곧 그들의 교회의 상태 변화들이 그들의 전반적인 상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이 작업의 뒤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열둘’까지의 단순한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일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이 숫자들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결합된 숫자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That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was shown in the first chapter, where the “days” of creation have no other signification. In the Word it is very usual to call all time “days,” as is manifestly the case in the present verse, and in those which follow (5, 8, 11, 14, 17, 20, 23, 27, 31); and therefore the states of the times in general are likewise signified by “days”; and when “years” are added, then by the seasons of the years are signified 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us states in special.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heir numbers, by which they signified various things relating to the church, as the numbers “three,” “seven,” “ten,” “twelve,” and many that were compounded of these and others, whereby they described the states of the church; wherefore these numbers contain arcana which would require much time to explain. It was an account or reckoning of the states of the church. The same thing occurs in many parts of the Word, especially the prophetical.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lso there were numbers, both of times and measures, as for instance in regard to the sacrifices, meat offerings, oblations, and other things, which everywhere signify holy things, according to their application. The things here involved, therefore, in the number “eight hundred,” and in the next verse, in the number “nine hundred and thirty,” and in the numbers of years in the verses following—namely, the changes of state of their church as applied to their own general state—are too many to be recounted.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ake occasion to show what the simple numbers up to “twelve” signify, for until the signification of these is known, it would be impossible to apprehend the signification of the compound numbers.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87에서 다시 한번 ‘날’과 ‘해’, 그리고 숫자에 관한 성경적 언어의 본질을 정리하며, 창세기 5장이 결코 연대기적 기록이 아님을 확증합니다. 그는 이미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날들’이 문자적 하루가 아니라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을 보였다고 상기시키며, 같은 원리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곧 성경에서 ‘날’은 언제나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어떤 상태가 지배하고 있는가’를 가리키는 언어입니다.
말씀에서 모든 시간을 ‘날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흔하다는 설명은, 창세기 5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모든 날들’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됩니다. 이 표현은 그 사람이 며칠을 살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상태가 어떤 성격으로 존재했는지를 요약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날들’이 시간들의 일반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전체적인 분위기, 방향, 중심 성질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해들’이 더해질 때, 의미는 한층 더 구체화됩니다. ‘해’는 계절을 포함하는 시간 단위이기 때문에, 상태의 ‘성질’, 곧 그 상태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났는지를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날들’이 큰 틀의 상태를 말한다면, ‘해들’은 그 안에서 일어난 ‘세부적인 변화와 국면’을 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날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상태들이고, ‘해들’은 특별한 의미에서의 상태들이라고 구분합니다.
이제 논의는 숫자 자체로 옮겨갑니다. 태고 사람들에게는 교회와 관련된 의미를 담아 표현하던 숫자 체계가 있었습니다. ‘셋’, ‘일곱’, ‘열’, ‘열둘’과 같은 숫자들은 단순한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적 언어’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숫자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수들 역시 교회의 상태 변화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숫자들 안에 많은 비의(秘義, 숨은 뜻)들, 곧 아르카나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숫자들이 하나의 ‘기록’이자 ‘계산’이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상태가 무질서하게 흘러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안에서 ‘정확한 질서와 단계’를 따라 변화해 갔음을 뜻합니다. 숫자는 그 질서를 인간의 언어로 남긴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의 숫자들은 생물학적 수명이 아니라, 교회가 거쳐 간 상태들의 질서를 기록한 표식들입니다.
이와 같은 숫자의 사용은 예언서들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며, 유대 교회의 의식들 안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됩니다. 제사와 소제, 봉헌물에 사용된 시간과 분량의 숫자들은, 그 자체로 거룩한 것들을 의미했습니다. 숫자는 적용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지만, 언제나 교회의 내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가 동일한 상징 언어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팔백’, ‘구백삼십’과 같은 큰 숫자들, 그리고 이어지는 절들에 나오는 연수의 숫자들에 담긴 의미를 여기서 모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각각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리고 그 변화가 전체 상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숫자들은 단독으로 이해될 수 없고, 전체 구조 안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중요한 예고를 합니다. 곧 ‘열둘’까지의 단순한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는 단순 숫자의 내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합된 숫자들의 의미를 결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숫자 언어는 임의적인 암호가 아니라, ‘체계적인 질서 언어’이며, 그 기초를 알 때에만 비로소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AC.487은 창세기 5장을 읽는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재정립합니다. 숫자는 연대가 아니라 상태이며, 길이는 중요하지 않고 질서가 중요합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족보는 더 이상 낯선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태어나고, 머물고, 변화해 갔는지를 보여 주는 정밀한 영적 기록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됩니다.
AC.488, 창5:4, '날'(day) 상태, '해'(year)는 거기 담긴 성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8 ‘날들’(days)이 일반적으로 상태들을 의미하고, ‘해들’(years)이 특별한 의미에서 상태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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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6, 창5: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C.486-491)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창5:3) AC.486 ‘아담은 팔백 년을 지내며’(the days of man were 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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