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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96, 창5: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C.496-498)

bygracetistory 2026. 1. 7. 08:37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5:6)

 

AC.496

 

‘셋’(Seth)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태고교회의 부모 교회에 비해 덜 천적이지만, 여전히 태고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두 번째 교회입니다. ‘백오 세에’(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앞에서와 같이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에노스를 낳았고’(begat Enosh)는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고 하는 또 다른 교회가 이어졌음을 의미합니다. Seth,” as was observed,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that he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signifies, as before, times and states; that he “begat Enosh” signifies that from them there descended another church that was called “Enosh.”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내부 분화를 매우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Seth)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태고교회 내부에서 나타난 ‘두 번째 교회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는 이 교회를 ‘덜 천적이지만 여전히 태고교회들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함으로써, 단절이 아니라 연속 속의 변화임을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는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를 거치며 여러 상태로 분화된 것입니다.

 

덜 천적(less celestial)이라는 표현은 퇴보나 타락을 곧바로 뜻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랑이 중심이던 상태에서, 사랑과 결합한 신앙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방향으로의 이동을 가리킵니다. 즉, 셋의 교회는 여전히 퍼셉션을 지니고 있었지만, 태고교회의 최초 상태처럼 전적으로 사랑에서 즉각적으로 퍼셉션하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의 범주 안에 속하며, 그 생명은 퍼셉션에 있었습니다.

 

백오 세(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라는 표현은 앞서 반복적으로 확립된 원리에 따르면 연대적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고, 대신 셋의 교회가 ‘어떤 시간과 상태를 거쳐 유지되었는지’를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숫자는 그 상태의 성격을 암시하지만, 핵심은 길이가 아니라 질, 곧 숫자의 겉뜻에서 물러날 때 보이는 속뜻입니다. 셋의 교회는 일정한 기간 동안 고유한 상태를 유지했고, 그 상태 안에서 다음 교회가 준비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셋은 에노스를 낳았고(Seth begat Enosh)는 셋의 교회로부터 또 다른 교회가 출현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낳다’는 말은 생물학적 출산이 아니라, ‘영적 전이와 계승’을 뜻합니다. 한 교회의 상태 안에서 형성된 진리와 선의 퍼셉션이 다음 교회 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을, 성경은 출산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에노스(Enosh)라 하는 이 다음 교회는 셋의 교회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태의 변화와 차이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 변화 역시 단절이 아니라 연속입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은 점차 다른 형태로 표현되며, 각 단계마다 새로운 교회 상태를 형성합니다. 이처럼 창세기 5장의 족보는,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낳는 ‘영적 계보’를 보여 줍니다.

 

이 글은 태고교회의 쇠퇴를 단순한 붕괴로 이해하는 관점을 교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쇠퇴를 ‘갑작스러운 상실’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와 이동’으로 설명합니다. 셋의 교회는 태고교회의 부모 교회보다 덜 천적이었지만, 여전히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안에 있었고, 그 관계는 퍼셉션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변화는 타락이라기보다, 다른 형태의 질서로의 이동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개인의 신앙 여정에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한 사람 안에서도 신앙의 상태는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사랑이 중심이 되고, 어떤 시기에는 신앙의 이해가 더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태의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도 ‘퍼셉션이 살아 있는가’입니다.

 

셋이라는 교회가 에노스라는 교회를 낳았다는 말은, 살아 있는 신앙은 언제나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퍼셉션이 살아 있는 교회는 자신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합니다. 반대로 퍼셉션이 사라진 교회는 더 이상 ‘낳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5장의 족보가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와 신앙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AC.496은 태고교회의 연속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셋은 태고교회의 두 번째 교회로서, 부모 교회와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여전히 같은 생명의 흐름 안에 있었습니다. 그 흐름의 핵심은 퍼셉션이며, 그 퍼셉션이 이어지는 한, 교회는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해서 ‘낳고’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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