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13, 창5: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C.513-514)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창5:18)
AC.513
‘야렛’(Jared)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섯 번째 교회를, ‘에녹’(Enoch)은 일곱 번째 교회를 의미합니다. By “Jared,” as before said, is signified a sixth church; by “Enoch” a seventh.
해설
이 글은 매우 간결하지만, 태고교회의 전개가 ‘여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도 개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직 교회의 상태만을 지목합니다. 이는 독자가 이미 ‘이름 = 교회 상태’라는 해석 원리를 충분히 익혔다는 전제 위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야렛’(Jared)으로 상징되는 여섯 번째 교회는, 퍼셉션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외적 구조와 매개에 크게 의존하는 단계였습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의 흐름 안에 있지만, 중심의 생명은 더 두꺼운 외피 속에 감싸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단계까지는 아직 퍼셉션의 잔존이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에녹’(Enoch)으로 상징되는 일곱 번째 교회가 등장합니다. 이 이름의 등장은 이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지요. 에녹은 곧 ‘보존’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즉, 퍼셉션이 계속 약화되는 흐름 속에서 주님께서 어떤 것을 ‘따로 보존하시는 단계’가 시작된다는 암시가 여기서 처음 주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AC.513은 단순한 목록의 연장이 아니라, 태고교회의 말기에 접어들며 ‘질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글’입니다. 여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로 넘어가면서, 교회는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지점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전승’이 아니라 ‘의도적인 보존’이라는 방식이 등장하게 됩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전환은 신앙 공동체나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도 익숙하게 발견됩니다. 어떤 단계까지는 살아 있는 인식과 전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것을 그대로 두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지키는, 즉 보존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에녹’의 등장은 쇠퇴의 신호이면서 동시에 은혜의 신호입니다. 퍼셉션이 약해졌기 때문에 보존이 필요해졌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개입하신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 점을 염두에 두면, 곧 이어질 에녹에 대한 설명이 훨씬 깊이 있게 읽히게 됩니다.
결국 AC.513은 태고교회의 연속성 안에서, 단순한 다음 단계의 언급을 넘어, ‘보존의 섭리가 시작되는 문턱’을 가리키는 글입니다. 짧지만, 이후 전개 전체의 방향을 미리 보여 주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어요.
AC.514, 창5:18, ‘마할랄렐과 에녹 사이에 있는 야렛’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창5:18) AC.514 ‘야렛’(Jared)이라 하는 교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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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12, 창5:16-17,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이유’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Ma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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