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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15, 창5:19-20,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bygracetistory 2026. 1. 11. 19:24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5:19, 20)

 

AC.515

 

이 말씀의 의미 또한 앞서 나온 유사한 말씀들의 의미와 같습니다. 홍수 이전 사람들의 연령이 야렛의 경우 구백육십이(962) 년, 므두셀라의 경우 구백육십구(969) 년과 같이 그렇게까지 길었을 리 없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다음 장 셋째 절에서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는 대목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더 말씀드릴 내용들로부터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해(years)의 숫자는 어떤 개인의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때와 상태들(times and states)을 의미합니다. The signification of these words also is similar to that of the like words above. That the ages of the antediluvians were not so great, as that of Jared nine hundred and sixty-two years, and that of Methuselah nine hundred and sixty-nine years, must appear to everyone, especially from what of the Lord’s Divine mercy will be said at verse 3 of the next chapter, where we read, “Their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so that the number of the years does not signify the age of any particular man, but the times and states of the church.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6:3)

 

 

해설

 

이 글은 다시 한번 창세기 5장의 연령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분명히 짚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논쟁적으로 말하지 않고, 상식에 호소합니다. 야렛이 구백육십이(962) 년을 살았고, 므두셀라가 구백육십구(969) 년을 살았다고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 점을 굳이 길게 변증하지 않습니다. 이미 앞에서 제시된 해석 원리가 충분히 작동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음 장에서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6:3)라는 말씀이 나온다는 점을 미리 언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이것은 성경 자체가 문자적 연령 해석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만약 앞선 연령들이 실제 나이를 뜻한다면, 이 말씀은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연령을 교회의 상태와 때로 읽으면, 오히려 두 본문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여기서 다시 확인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해들의 숫자는 한 사람의 생물학적 수명을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이 지속된 상태의 길이와 성격’을 말합니다. 오래 살았다는 표현은 생명이 오래 유지되었다는 뜻이지, 육체가 오래 버텼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야렛이나 므두셀라의 ‘장수(長壽)는 교회의 어떤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선하든, 점차 쇠퇴하든, 중요한 것은 그 상태가 한동안 유지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숫자는 그 상태의 질과 지속성을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설명은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얼마나 오래’라는 질문으로 신앙을 가늠하려 합니다. 신앙 연수가 길면 더 성숙할 것이라 기대하지요.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보다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상태가 유지되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같은 백 년이라도, 퍼셉션이 살아 있는 상태로 지낸 백 년과, 이미 생명이 약화된 상태로 지낸 백 년은 전혀 다릅니다. 창세기 5장의 숫자들은 바로 이 차이를 말하고자 합니다.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어떤 생명이 있었는가’가 본질입니다.

 

또한 이 글은 성경을 읽을 때 생기는 불필요한 논쟁을 조용히 정리해 줍니다. 연령의 역사적 정확성을 따지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그 연령이 가리키는 교회의 상태를 읽는 데 마음을 두라는 초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성경을 더 깊이 존중하는 방식으로 봅니다.

 

결국 AC.515는 앞서 반복해 온 원리를 다시 한번 단단히 고정합니다. 창세기 5장의 해와 연령들은 개인의 전기가 아니라, 교회의 생명사를 기록한 언어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이 장은 더 이상 낯선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퍼셉션과 사랑의 생명이 어떻게 이어지고 약화되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깊은 기록으로 읽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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