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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21, 창5:23-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bygracetistory 2026. 1. 16. 16:40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5:23, 24)

 

AC.521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라는 말이 그 교리가 후대의 쓰임새를 위해 보존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에녹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그는 태고교회에서 퍼셉션의 대상이었던 것들을 교리로 정리하였는데, 그 교회의 시대에는 그러한 일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퍼셉션으로 아는 것과 교리로 배우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퍼셉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식화된 교리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그 규칙이 거의 예술 수준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굳이 그런 걸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바르게 생각하는 능력이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학문적 잔재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경우와 같습니다. 퍼셉션으로 배우는 이들에게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를 내적인 길로 알게 하시지만, 교리로 배우는 이들에게는 외적인 길, 곧 육체적 감각의 길을 통해 지식이 주어집니다. 이 둘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와 같습니다. 또한 천적인 사람의 퍼셉션은 묘사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만큼 그러한데, 이는 상태와 상황에 따라 모든 미세하고 개별적인 것들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고교회의 퍼셉션 능력이 장차 사라질 것이고, 그 이후에는 인류가 선과 진리를 교리를 통해, 곧 어둠을 통해 빛으로 나아가며 배우게 될 것이 예견되었으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God took him)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그 교리가 후대의 쓰임새를 위해 보존되었음을 뜻합니다. As to the words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signifying the preservation of that doctrine for the use of posterity, the case with Enoch, as already said, is that he reduced to doctrine what in the most ancient church had been a matter of perception, and which in the time of that church was not allowable; for to know by perception is a very different thing from learning by doctrine. They who are in perception have no need to learn by formulated doctrine that which they know already. For example: he who knows how to think well, has no occasion to be taught to think by any rules of art, for in this way his faculty of thinking well would be impaired, as is the case with those who stick fast in scholastic dust. To those who learn by perception, the Lord grants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by an inward way; but to those who learn from doctrine, knowledge is given by an external way, or that of the bodily senses; and the difference is like that between light and darkness. Consider also that the perceptions of the celestial man are such as to admit of no description, for they enter into the most minute and particular things, with all variety according to states and circumstances. But as it was foreseen that the perceptive facul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ould perish, and that afterwards mankind would learn by doctrines what is true and good, or by darkness would come to light, it is here said that “God took him,” that is, preserved the doctrine for the use of posterity.

 

 

해설

 

이 글은 에녹의 교회를 가리켜 왜 ‘사라졌지만 보존되었다’고 말하는지를 가장 깊이 있게 설명해 줍니다. 핵심은 퍼셉션과 교리의 ‘질적 차이’에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초기 상태에서는 선과 진리를 퍼셉션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교리로 정식화하는 일이 오히려 부적절했습니다. 이미 살아 있는 인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규칙과 문장으로 묶어 두는 것은, 생명을 틀에 가두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매우 실제적인 예로 설명합니다.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그 규칙이 거의 예술 수준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굳이 그런 걸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비유가 그렇습니다. 이미 살아 있는 사고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규칙을 강요하면, 그 능력은 오히려 경직되고 약해집니다. 이는 퍼셉션의 영역에서 교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확히 보여 주는 비유예요.

 

퍼셉션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앎은 ‘내적인 길’을 통해 옵니다. 주님께서 직접 선과 진리를 비추어 주시는 방식이지요. 반면 교리를 통해 배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앎은 ‘외적인 길’, 곧 감각과 언어와 개념을 통해 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둘의 차이를 빛과 어둠의 차이에 비유합니다. 빛은 사물을 곧바로 보게 하지만, 어둠에서는 더듬어 가며 배워야 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주목할 점은, 천적인 사람의 퍼셉션에 대해 ‘묘사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퍼셉션은 일반적 개념이 아니라,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극히 미세하고 개별적인 인식’이기 때문에, 언어로 고정해 설명하는 순간 이미 그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태고교회의 시대에는 교리가 필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의 핵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미리 보셨다’고 말합니다. 퍼셉션의 능력이 장차 사라질 것이고, 그 이후의 인류는 더 이상 내적인 빛으로 즉각 알지 못하고, 교리를 통해 배우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될 것을 예견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예견 때문에, 에녹의 교회에서 정리된 교리는 버려지지 않고 보존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는 말은, 이 교리가 인간의 판단이나 역사적 우연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 안에 보관되었다’는 뜻입니다. 에녹의 교회는 더 이상 역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그 교리는 후대의 쓰임새를 위해 안전하게 간직됩니다. 이는 교회의 생명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이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글은 오늘날 교회가 교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교리는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생명이 사라진 시대에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퍼셉션이 약화된 시대일수록, 교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결국 AC.521은 에녹의 교회를 이렇게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퍼셉션이 살아 있던 시대에는 필요 없었지만, 퍼셉션이 사라질 시대를 대비해 주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교리의 그릇이라고 말입니다. 에녹은 사라졌으되, 그가 남긴 교리는 후대를 위해 살아남았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는 말은, 상실의 언어가 아니라 ‘섭리와 준비의 언어’입니다.

 

 

 

AC.520, 창5:23-24,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AC.520-522)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And Enoch walked with God,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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