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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 창1:6-7,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bygracetistory 2026. 3. 8. 16:06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7)

 

AC.25

 

하늘을 폈으며 땅을 펼쳤고(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라는 표현은, 사람의 거듭남을 다룰 때 선지자들이 아주 흔히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사야에 보면, 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 is a common form of speaking with the prophets, when treat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A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am Jehovah that maketh all things,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lone, that spreadeth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또한 주님의 강림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gain, where the advent of the Lord is openly spoken of: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2:3)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unto truth (Isa. 42:3);

 

이는 오류를 바로잡거나 욕정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굽히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that is, he does not break fallacies, nor quench cupidities, but bends them to what is true and good; and therefore it follows: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42:5) Jehovah God createth the heavens, and stretcheth them out; he spreadeth out the earth, and the productions thereof; he giveth breath unto the people upon it, and spirit to them that walk therein (Isa. 42:5).

 

이와 같은 뜻을 지닌 다른 구절들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Not to mention other passages to the same purport.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성경의 전형적인 표현이 실제로는 우주 창조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 거듭남의 과정’을 말하는 언어임을 분명히 합니다.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하늘과 땅을 언급하지만, 그 목적은 자연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재질서화, 곧 거듭남의 과정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앞서 보았듯이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가리키며, ‘펼친다’는 말은 그 구조가 열리고 정돈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44장의 인용은 이 점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 줍니다. 주님은 모태에서부터 사람을 지으신 분이며, 만물을 지은 분으로 소개됩니다. 여기서 하늘을 펼치고 땅을 편다는 표현은, 주님만이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올바른 질서로 세우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거듭남이 인간의 자율적 노력이나 도덕적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단독 사역’임을 분명히 하는 고백입니다.

 

이사야 42장으로 넘어가면, 이 언어가 더욱 섬세한 의미를 띱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주님이 인간 안에 있는 오류와 욕정을 즉각적으로 제거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오류를 바로잡거나 욕정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굽히신다’고 풀이합니다. 이는 AC.24에서 보았던 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본성과 그 착각을 재료로 삼아, 그것들을 점진적으로 선과 진리의 방향으로 이끄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위와 아래를 나누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안에서 ‘질서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속 사람은 하늘로서 열리고, 겉 사람은 땅으로서 제자리를 찾으며, 그 사이에서 생명과 호흡이 주어집니다. 이때 주님은 그 위에 사는 백성에게 ‘호흡’을, 그 가운데 행하는 자들에게 ‘’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는 생명의 유입이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다시 삶의 행위로 흘러간다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파괴가 아니라 보존과 굽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이는 인간 안에 남아 있는 미약한 선의 가능성과 희미한 진리의 불꽃을 끝까지 존중하신다는 뜻입니다. 거듭남은 급진적 단절이 아니라,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방향을 바꾸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이 글은 선지서의 언어가 왜 그렇게 반복적으로 하늘과 땅을 말하는지를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우주론적 집착이 아니라,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거듭남의 보편적 구조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하늘이 펼쳐지고 땅이 펴지는 일은, 오늘도 인간 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하늘을 펼치시고, 땅을 펴시며, 사람에게 호흡과 영을 주십니다.

 

결국 AC.25는 거듭남의 방식이 ‘온유하고 질서 있으며 점진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부수지 않으시고, 그 연약함 속에서 생명을 살려 내십니다. 하늘과 땅이 그렇게 펼쳐질 때, 인간은 비로소 숨을 쉬고,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창조의 언어로 말한 구원의 실제 모습입니다.  

 

 

심화

 

1.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42:3)

 

AC.25의 이 부분은 스베덴보리의 인간관과 거듭남 이해가 매우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말이 단순히 ‘연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는 정도로 들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거듭남 과정에서 주님이 인간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먼저 문자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갈대는 약한 식물입니다. 이미 상해 있는 갈대를 더 꺾어 버리면 완전히 부러집니다. 또 등불이 거의 꺼져 가는 상태에서 바람을 세게 불면 완전히 꺼집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겉뜻은 ‘이미 약해진 것을 더 파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갈대와 등불을 ‘사람 안에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상응으로 봅니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이기 때문에 흔히 ‘약하고 흔들리는 진리 상태’를 상징합니다. 사람이 아직 진리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상태입니다. 또 꺼져가는 등불은 ‘거의 사라질 듯한 선과 진리의 작은 불빛’을 의미합니다. 사람 안에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양심이나 선의 작은 흔적입니다.

 

이제 AC.25의 설명이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사람이 거듭나기 시작할 때, 그의 상태는 매우 불완전합니다. 생각 속에는 오류가 많고, 의지 속에는 욕정과 이기심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이 그것들을 ‘즉시 다 제거해 버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사람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존 삶 전체가 그 안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오류나 욕정을 바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것들을 ‘조금씩 방향을 바꾸어 선과 진리를 향하도록 굽히십니다’. 바로 이것을 AC.25에서 설명합니다. 즉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약하고 불완전한 상태를 갑자기 부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의 동기는 아직 순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을 것 같아서 믿을 수도 있고,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서 믿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동기는 완전히 순수한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즉시 없애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의 그런 동기를 사용하여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굽히신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직하게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해서라기보다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 행동을 통해 점점 더 깊은 선으로 인도하십니다. 결국 그 사람은 ‘이것이 옳기 때문에 정직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처음의 불완전한 동기가 점차 더 좋은 방향으로 ‘변형, 즉 완전해지고 정화’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욕정(cupidities)도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욕정은 단번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은 그것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사용’하십니다. 예를 들어 명예욕이 강한 사람은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선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은 점점 선 자체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욕정이 점차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래서 AC.25는 인간 거듭남의 매우 중요한 원리를 말합니다. 주님은 인간을 변화시키실 때 ‘파괴 방식이 아니라 전환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즉 인간 안의 불완전한 요소들을 즉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조금씩 선과 진리 쪽으로 돌리십니다.

 

이 점 때문에 이사야의 그 말씀이 매우 적절한 상징이 됩니다. 상한 갈대를 꺾어 버리면 끝입니다. 그러나 꺾지 않고 받쳐주면 다시 설 수 있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면 완전히 어둠입니다. 그러나 보호하면 다시 밝아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섭리 방식’입니다.

 

그래서 AC.25의 결론은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쉽습니다. 사람 안에는 오류도 있고 욕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들을 당장 없애 버리시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들을 조금씩 선과 진리의 방향으로 돌리시며 사람을 새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한다’는 말씀의 깊은 의미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고치실 때 부수어 버리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사용하여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신다.’

 

 

 

AC.26, 창1:8,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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