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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0, 창1:20,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들’, '새들'

bygracetistory 2026. 3. 19. 16:35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1:20)

 

AC.40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들(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은 겉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을 뜻하고, 새들(birds)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하는데, 이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합니다. 물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들(creeping things of the waters), 물고기들(fishes)이 기억 지식을 뜻한다는 사실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re signified the memory-knowledge which belong to the external man; by “birds” in general, rational and intellectual things, of which the latter belong to the internal man. That the “creeping things of the waters,” or “fishes,” signify memory-knowledges is plain from Isaiah:

 

2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3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50:2, 3) I came and there was no man; at my rebuke I dry up the sea, I make the rivers a wilderness; their fish shall stink because there is no water and shall die for thirst; I clothe the heavens with blackness (Isa. 50:2–3).

 

[2] 그러나 이 의미는 에스겔을 보면 더 분명한데, 거기서 주님은 새 성전, 곧 일반적으로는 새 교회를, 그리고 교회에 속한 사람인 거듭난 사람을 묘사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still plainer from Ezekiel, where the Lord describes the new temple, or a new church in general, and the man of the church, or a regenerate person; for everyone who is regenerate is a temple of the Lord: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47:8-10) The Lord Jehovih said unto me, These waters that shall issue to the boundary toward the east, and shall come toward the sea, being led into the sea, and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that shall creep for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there shall be exceeding much fish, because those waters shall come thither, and they shall heal, and everything shall live whither the river come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fishers shall stand upon it from En-gedi to En-eglaim, with the spreading of nets shall they be; their fish shall be according to its kind, as the fish of the great sea, exceeding many (Ezek. 47:8–10).

 

여기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의 어부들(Fishers from En-gedi unto En-eglaim)그물 치는 것(spreading of nets)은 자연적인 사람을 신앙의 진리로 가르칠 사람들을 뜻합니다. Fishers from En-gedi unto En-eglaim,” with the “spreading of nets,” signify those who shall instruct the natural man in the truths of faith.

 

[3] 새들(birds)이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한다는 점도 선지자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이사야에 보면, That “birds” signify things rational and intellectual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Isaiah: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46:11) Calling a bird from the east, the man of my counsel from a distant land (Isa. 46:11).

 

예레미야에서도 And in Jeremiah: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4:25)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5).

 

에스겔서에서는 In Ezekiel:

 

22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17:22, 23) I will plant a shoot of a lofty cedar, and it shall lift up a branch, and shall bear fruit, and be a magnificent cedar; and under it shall dwell every fowl of every wing, in the shadow of the branches thereof shall they dwell (Ezek. 17:22–23).

 

그리고 호세아에서는 새 교회, 곧 거듭난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And in Hosea, speaking of a new church, or of a regenerate man: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2:18) And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beast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s of heaven, and with the moving thing of the ground (Hos. 2:18).

 

여기서 들짐승(wild beast)이 실제 짐승을 뜻하지 않고, ‘(bird)도 실제 새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은, 주님께서 그것들과 새 언약을 맺는다(make a new covenant)고 하는 것만 봐도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wild beast” does not signify wild beast, nor “bird” bird, must be evident to everyone, for the Lord is said to “make a new covenant” with them.

 

 

해설

 

이 글은 다섯째 날에 등장하는 생명체들이 인간의 거듭남 과정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매우 정밀하게 풀어 줍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생명이 있는 것들’이 등장하지만, 그 생명은 무작위적인 생명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구조에 정확히 대응되는 생명입니다. 물속 기는, 그러니까 돌아다니는 것들, 곧 물고기들은 겉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을 뜻하고, 새들은 이성적, 지적 작용을 뜻합니다.

 

먼저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들’이 기억 지식을 뜻한다는 설명은, 지식이 생겨나는 자리와 방식에 주목하게 합니다. 기억 지식은 겉 사람의 영역에 속하며,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축적됩니다. 그것은 물처럼 유동적이고,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쉽게 썩거나 말라 버립니다. 이사야에서 바다가 말라 물고기가 죽는 장면은, 지식이 생명의 흐름과 분리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물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의 유입이 끊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에스겔의 새 성전 환상은 이 의미를 한층 더 분명하게 합니다. 거기서 물은 성전에서 흘러나와 바다로 들어가고, 그 결과 바다가 치유되며 물고기가 넘쳐납니다. 이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가 인간의 기억 영역으로 흘러 들어갈 때, 그 지식들이 비로소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물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많아진다는 표현은, 지식이 무질서하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질서 안에서 분류되고, 기능을 갖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어부들’과 ‘그물을 펼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는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자연적인 사람, 곧 겉 사람을 신앙의 진리로 가르치는 사역을 뜻합니다. 어부는 바다에서 생명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며, 그물은 진리를 질서 있게 적용하는 수단입니다. 여기서 기억 지식은 버려지거나 초월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과 질서를 통해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글은 이어서 ‘새들’의 의미를 다룹니다. 새들은 물에서 나오지 않고 하늘을 날며, 이는 생각이 지식의 차원을 넘어 이성과 지성의 차원으로 올라간 상태를 뜻합니다. 이사야에 ‘동쪽에서 부르는 새’는 사랑의 근원에서 나오는 지적 인식을 뜻하며, 예레미야에서 새들이 날아가 버린 상태는 지성과 판단력이 사라진 황폐한 상태를 뜻합니다.

 

에스겔의 백향목 아래 깃드는 새들의 모습은, 진리의 질서가 세워질 때, 지성과 이해가 그 안에서 안식을 얻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억지로 붙잡힌 생각이 아니라, 진리의 그늘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머무는 이해입니다. 호세아에서 들짐승과 새들과 기는 것들과 언약을 맺는 장면도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은 인간 안의 모든 층위, 곧 감각적, 자연적, 지적 기능과 새 질서를 맺으십니다.

 

그래서 이 글은 강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짐승과 새는 자연적 존재가 아닙니다. 만일 그것들이 문자 그대로의 동물이라면, 주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은 인간 안의 생명 구조와 맺는 언약입니다.

 

AC.40은 다섯째 날의 생명이 단순한 ‘생물의 창조’가 아니라, 기억 지식과 지성의 생명화를 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지식은 버려지지 않고, 지성은 억제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흐름 안에서 새롭게 살아납니다. 이 글은 신앙이 무지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질서 안에서 지성과 지식을 되살리는 과정임을 깊이 있게 보여 줍니다.

 

 

심화

 

1.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합니다

 

AC.40, ‘‘새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하는데, 이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합니다.’(by “birds” in general, rational and intellectual things, of which the latter belong to the internal man.)에서 이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한다는 설명이 언뜻 이해가 안 됩니다. 단순히 이성적(rational)인 것들은 겉 사람에 속하고, 지적(intellectual)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한다는 말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이성적(rational)은 단순히 겉 사람, ‘지적(intellectual)은 단순히 속 사람이라고 ‘기계적으로 나누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AC의 구조를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소속’의 문제가 아니라, ‘작용의 층위와 깊이의 차이’입니다.

 

먼저 ‘이성적(rational)이라는 것은 사람 안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기능 전체’, 곧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의 ‘중간 영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은 감각과 기억 지식(겉 사람)에서 자료를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더 높은 차원의 빛(속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성은 ‘아래(경험, 지식)와 위(빛, 진리)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이성 자체는 겉 사람만의 것도 아니고, 속 사람만의 것도 아니라, ‘둘 사이에 걸쳐 있는 다리 같은 기능’입니다.

 

반면 ‘지적(intellectual)이라는 것은 이성보다 더 깊은 차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생각하는 기능이 아니라, ‘진리를 빛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곧 이해가 밝아지는 상태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속 사람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은 감각이나 경험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해 비추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같은 내용을 듣더라도, 어떤 이는 단순히 논리적으로만 이해하고, 어떤 이는 마음 깊이에서 ‘, 이것이 참이구나’ 하고 느끼는 차이가 생깁니다. 후자가 바로 ‘지적(intellectual)이 작동하는 경우입니다.

 

이성(rational)은 ‘생각을 조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고, 지적(intellectual)은 ‘진리를 빛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이성은 중간 영역에서 작용하며, 지적인 것은 속 사람에서 오는 빛과 직접 연결됩니다. 그래서 ‘새들’이 이 둘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때, 그중에서도 특히 ‘지적인 것들’이 속 사람에 속한다고 따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곧, ‘모든 생각이 다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중 일부는 더 깊은 빛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사람이 생각한다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이 아닙니다. 어떤 생각은 단순히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고, 어떤 생각은 속에서 빛이 비추어져 , 이것이 참이다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이성적이고, 후자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성만으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적인 빛이 들어오면, 사람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진리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거듭남의 과정은 단순히 ‘생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지적인 빛에 의해 이끌리기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이 점에서 AC.40의 이 문장은, 단순한 용어 설명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합니다.  

 

 

2. 47:8-10과 호2:18새 교회를 뜻하는 이유

 

AC.40 인용 구절들 중, 47:8-10과 호2:18새 교회를 뜻한다고 하는데 어째서인가요?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가 단순히 성경 구절을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들이 어떤 상태교회를 가리키는지를 일관된 상응의 틀 속에서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겔47:8-10과 호2:18이 왜 ‘새 교회’를 뜻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새 교회’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여기서 ‘새 교회’는 어떤 특정한 조직이나 시대적 교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새롭게 형성되는 영적 상태, 곧 사랑과 신앙이 다시 살아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이전 교회가 사랑과 신앙을 잃고 무너진 뒤에 주님이 새롭게 세우시는 교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먼저 겔47:8-10을 보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바다로 들어가 죽은 물을 살리고, 고기가 번성하며, 어부들이 그 위에 선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의 핵심은 ‘‘죽은 것이 살아난다는 변화’입니다. 여기서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 특히 생명을 주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 물이 바다, 곧 혼란하고 죽어 있는 상태(거짓과 무지의 상태)에 들어가자, 그곳이 살아나고 생물이 번성합니다. 이것은 바로 ‘기존에 죽어 있던 교회 상태가, 새로운 진리의 유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 곧 새 교회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특히 ‘고기가 심히 많아진다’는 표현은, 단순한 생물의 증가가 아니라 ‘지식과 이해, 곧 영적 진리들이 풍성해진 상태’를 뜻합니다. 어부들이 그 위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진리들을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구절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가 죽은 상태를 살려 내어 새로운 생명과 질서를 이루는 장면’, 바로 그것이 새 교회의 본질입니다.

 

다음으로 호2:18을 보면, 그 날에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기는 것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활과 칼과 전쟁을 끊어 평안히 눕게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약평화’’입니다. 들짐승, 새, 기는 것은 각각 사람 안의 다양한 수준, 곧 자연적, 이성적, 감각적 요소들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것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사람 안의 모든 부분이 ‘주님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 곧 내적 질서가 회복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활과 칼과 전쟁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동안 계속되던 내적 싸움, 곧 욕정과 거짓, 갈등과 분열이 멈추고, ‘평안의 상태’, 곧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교회의 특징입니다. 이전 상태에서는 계속 싸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랑이 주도하는 질서 속에서 평화가 자리 잡는 상태’입니다.

 

이 두 구절을 함께 보면 공통점이 분명해집니다. 겔47은 ‘생명의 회복’, 호2는 ‘질서와 평화의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는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흩어진 것을 하나로 묶어 평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비로소 ‘새 교회’가 됩니다. 곧 ‘진리가 다시 살아나고, 사랑이 질서를 이루며, 그 결과 사람 안과 공동체 안에 생명과 평화가 자리 잡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AC.40에서 이 구절들을 인용하는 이유는, ‘새들’, 곧 이성적, 지적인 것들이 단순히 생각의 기능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 상태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진리의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새 교회에서는 지적인 것들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진리로서 작동합니다. 그래서 물이 고기를 살리고, 새와 짐승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모두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나는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새 교회란 새로운 조직이 아니라, 죽어 있던 진리가 살아나고, 싸움이 끝나고, 사랑이 질서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겔47의 ‘살아나는 물’과, 호2의 ‘평화의 언약’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AC.39, 창1:20,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AC.39-41)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 waters cause to creep forth the creeping thing, the living soul; and let fowl fly above the earth upon the 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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