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 심화 3, 왜 셋째 날을 ‘회개의 상태’라고 하는가?
AC.29 심화
3. 왜 셋째 날을 ‘회개의 상태’라고 하는가?
AC.29 두 번째 단락에,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좀 어리둥절합니다. 갑자기 repentance가 나오기 때문인데...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요?
AC.29을 읽다 보면 마지막에 갑자기 등장하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라는 표현이 조금 뜻밖으로 느껴집니다. 앞에서는 ‘연한 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차례로 나오는 식물의 성장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스베덴보리는 이 셋째 단계를 가리켜 ‘인간 거듭남의 세 번째 연속 단계이며, 그의 회개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왜 식물이 자라는 단계가 곧 ‘회개’일까요?
이 질문을 풀려면 먼저 창1의 앞선 두 날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첫째 날에는 사람이 자기 안의 선과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기 시작합니다. 둘째 날에는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구별이 생기고,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겉 사람의 기억 속에 모여 거듭남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 이르면 마침내 그 준비된 ‘땅’에서 무엇인가 실제로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즉 진리가 단지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삶에서 어떤 결과를 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회개’라는 말이 연결됩니다. 회개는 단지 잘못을 슬퍼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감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비추어 자신의 삶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며, 실제로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가 단순한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삶을 바꾸기 시작할 때 회개가 실제로 나타납니다.
셋째 날의 식물들은 바로 이런 변화를 보여 줍니다. ‘연한 풀’은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씨앗이 사람 안에서 처음 돋아나는 매우 연약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씨 맺는 채소’는 그보다 더 유용한 것이 나타나는 상태이며,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는 마침내 실제 열매가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 표현을 지나치게 세밀한 심리 단계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서 처음 실제 결과를 내기 시작한다’는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말씀을 통하여 ‘남을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고 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지 기억 속의 지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특정 사람을 오래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리의 빛 속에서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미움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험담을 줄이고, 보복하려는 마음을 억제하며, 상대를 조금이라도 공정하게 대하려고 애쓰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진리는 단순한 지식에서 실제 삶의 변화로 넘어갑니다. 이런 움직임이 ‘회개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AC.29에서 repentance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에서 설명한 ‘식물이 돋아나는 것’이 바로 회개의 영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스베덴보리가 그 단계 전체를 ‘회개의 상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땅이 드러나고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되었으며, 이제 그 씨앗에서 실제 싹과 열매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람 역시 진리를 배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진리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AC.29의 회개는 아직 거듭남의 완성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단계의 사람이 자기가 행하는 선과 말하는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오지만, 아직 사람은 그것을 참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셋째 날의 식물들은 열매까지 맺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생명 없는 것들’로 불립니다. 이 회개는 참된 신앙의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중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이 점은 회개와 거듭남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회개는 거듭남과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거듭남의 실제 과정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악을 악으로 보고 그것을 피하려 하며, 진리에 따라 삶을 바꾸려고 할 때 거듭남이 현실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 안의 악과 거짓을 보게 되고, 그것을 버리며,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AC.29의 ‘회개의 상태’는 눈물이나 감정의 강도를 말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이전에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진리를 기준으로 자기 삶을 살피고 실제로 고치기 시작합니다. 아직 불완전하고 동기도 혼합되어 있으며 선의 근원을 자기에게 돌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바로 그 상태에서 사람을 다음 단계로 이끄십니다.
이렇게 보면 셋째 날의 식물과 회개는 서로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씨앗이 땅에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싹을 내고 자라며 열매를 맺듯이, 진리도 기억 속에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변화가 AC.29에서 말하는 ‘회개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를 통하여 사람은 점차 자기 선과 진리의 생명이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다는 더 깊은 신앙의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됩니다.
AC.29, 창1:11-13, ‘연한 풀에서 열매 맺는 나무까지 : 회개 안에서 자라나는 거듭남의 셋째 날’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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