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AC 창1

AC.53, 창1:27,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AC.53-54)

bygracetistory 2026. 3. 30. 17:21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1:27)

 

AC.53

 

여기서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이해에 속한 신앙을 자기 형상(his image)이라 하며, 의지에 속한 사랑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영적 인간에게서는 뒤따르지만, 천적 인간에게서는 앞서 나옵니다. The reason why “image” is here twice mentioned is that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is called “his image”; whereas love, which belongs to the will, and which in the spiritual man comes after, but in the celestial man precedes, is called the “image of God.”

 

 

해설

 

이 구절은 짧지만, 스베덴보리 인간학에서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 그리고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관계를 가장 정밀하게 압축해 놓은 핵심 문장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형상이 두 번 언급되는 것은 두 개의 형상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형상이 이해 중심의 상태에서 의지 중심의 상태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문장을 그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해에 속한 신앙을 자기 형상이라 하며’입니다. 여기서 ‘자기 형상’이라는 표현은, 아직 형상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쪽에 더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상태는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이해하고, 그것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단계입니다. 분명 주님을 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심은 ‘내가 이해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따라가는’ 구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자기 형상’이라고 표현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영적 인간의 출발점입니다. 그는 진리를 통해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옳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이해에 따라 삶을 조정해 갑니다. 이때 사랑은 아직 앞서지 않고, 신앙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점점 형성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이 사랑은 영적 인간에게서는 뒤따른다’고 말합니다. 즉, ‘신앙 사랑’의 순서입니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면, ‘의지에 속한 사랑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형상의 중심이 더 이상 ‘사람 쪽’이 아니라 ‘하나님 쪽’으로 옮겨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단순히 배워서 갖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직접 작용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므로, 그 사랑이 사람 안에서 중심이 될 때, 그 사람은 단순히 주님을 닮아 가는 수준을 넘어, ‘주님의 생명이 실제로 흐르는 형식’이 됩니다. 그래서 이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릅니다.

 

이 상태가 바로 천적 인간입니다. 그는 더 이상 ‘이것이 옳은가’를 먼저 따지지 않습니다. 이미 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옳은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본문은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앞선다’고 말합니다. 즉, ‘사랑 신앙’의 순서입니다. 이해는 더 이상 주도권을 쥐고 판단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미 있는 사랑을 밝히고 표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 전체를 하나로 묶어 보시면, 이 구절의 구조가 분명해집니다. ‘형상’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다만 그 하나의 형상이 처음에는 ‘이해 중심(신앙 중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기 형상’이라 불리고, 점차 ‘의지 중심(사랑 중심)’으로 완성되면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즉, 두 번의 언급은 두 개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상이 ‘중심이 이동하며 완성되는 두 단계’를 보여 줍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말씀을 배우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노력하며 따라갑니다. 이때는 여전히 ‘내가 이해해서 따라가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이 좋아서’, ‘이것이 참으로 선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이해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중심이 되어 삶이 흘러갑니다. 바로 그 전환이 ‘자기 형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용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의 깊은 흐름을 한 문장으로 보여 줍니다. ‘신앙이 앞서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형상이 완성되는 길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AC.53형상의 두 번 언급은 두 개의 형상이 아니라, 신앙 중심에서 사랑 중심으로 이동하며, 하나의 형상이 완성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AC.54, 창1:27,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AC.54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속뜻으

bygrace.kr

 

AC.52, 창1:26, ‘순서에 깃든 아르카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2 사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