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7, 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AC.57.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이 도입 문장이 이해가 안 됩니다. 차근차근 설명 좀 해주세요.
이 문장은 처음 보면 낯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채소’와 ‘나무’를 그냥 식물로 읽는데, AC에서는 이것들을 ‘사람 안에 자라는 영적인 것들’로 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씨 맺는 채소’는 아직 자라 가는 단계의 진리, 곧 사람 안에서 계속 퍼지고 다음 것을 낳는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진리가 더 깊어져 삶이 되고, 실제 선한 행위와 성품으로 나타난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앞의 것은 주로 ‘진리’ 쪽에, 뒤의 것은 ‘선’ 쪽에 더 가깝습니다.
먼저 ‘씨 맺는 채소’부터 보겠습니다. 씨는 ‘무엇인가를 다시 낳는 것’입니다. 성경의 상응에서 씨는 매우 자주 ‘진리’, 또는 더 정확히는 ‘사람 안에 심겨져 다음 단계를 낳는 진리’를 뜻합니다. 왜 진리가 씨이냐 하면, 진리는 사람 안에 들어오면 거기서 생각을 낳고, 분별을 낳고, 선택을 낳고, 더 나아가 삶의 변화를 낳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라는 진리를 배웁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냥 한 문장, 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붙들고 살기 시작하면, 거기서 ‘그럼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작은 거짓도 피해야 하나?’, ‘정직은 말뿐 아니라 태도에도 해당하나?’ 같은 더 많은 생각과 적용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진리가 또 다른 진리들을 낳습니다. 이 점에서 진리는 ‘씨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 맺는 채소’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람 안에서 계속 자라고 퍼지고 다음 것을 낳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채소’일까요? 채소나 풀은 보통 땅에서 비교적 빨리 돋고, 넓게 퍼지고, 먼저 눈에 띄는 생장입니다. AC의 흐름에서 이것은 ‘진리가 먼저 밖으로 드러나는 상태’와 잘 맞습니다. 사람의 거듭남에서도 대개 처음에는 ‘진리를 아는 것’, ‘옳고 그름을 배우는 것’,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처음부터 큰 나무처럼 확고한 선을 가진 상태로 시작하지 않고, 먼저 채소나 풀처럼 ‘진리의 싹’이 많이 돋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씨 맺는 채소’는 ‘아직 성장 중이지만 이미 생명력이 있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낳는 진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제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라는 말을 풀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진리는 진리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는 반드시 어디론가 갑니다. 그것은 사람을 더 바르게 살게 하고, 더 선하게 행하게 하고, 더 유익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이것이 ‘쓰임’을 향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라’는 진리를 안다고 해 보십시오. 그 진리가 참된 진리라면, 그것은 결국 말, 행동, 배려, 인내, 용서, 봉사 같은 ‘쓰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아직 그 진리는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씨 맺는 채소’는 ‘계속 무언가를 낳는 진리’, 곧 ‘쓰임으로 나아가려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본래 열매를 향해 자라는 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말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채소보다 더 안정되고, 더 깊이 뿌리내리고, 더 오래 지속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열매는 성경에서 거의 언제나 ‘삶에서 실제로 나타난 선’, 곧 행위와 성품의 결과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나무’는 단순히 진리를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니라, 그 진리가 사람 안에 깊이 뿌리내려 실제 선한 삶으로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다시 아까의 예를 들면, ‘정직해야 한다’라는 진리를 아는 것은 아직 씨나 채소 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실제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말과 판단과 행동에서 정직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그때는 ‘열매 맺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선’이라는 표현도 차근차근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신앙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진리를 아는 것이고, 선은 그 진리가 삶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선’은 ‘신앙에서 나온 선’, 다시 말해 ‘배우고 믿은 진리가 삶 속에서 실제 선으로 나타난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냥 타고난 착함과는 다릅니다. 타고난 온순함이나 성격 좋은 것과도 다릅니다.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여 그것에 따라 살면서 형성된 선, 곧 ‘진리에서 태어난 선’이 바로 신앙의 선입니다. 그래서 ‘열매 맺는 나무’는 ‘진리가 선이 된 상태’, ‘아는 것이 사는 것이 된 상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둘의 관계를 아주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씨 맺는 채소’는 ‘알고 배우며 자라 가는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진리가 삶이 되어 실제 선을 낳는 상태’입니다. 전자는 과정 쪽, 후자는 결과 쪽입니다. 전자는 아직 퍼지고 낳는 힘이 강조되고, 후자는 이미 맺고 먹이는 힘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이어집니다. 채소가 나무보다 하찮다는 뜻도 아니고, 나무만 중요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가 먼저 자라고, 그다음 그 진리가 선으로 굳어져 열매를 맺는다는 영적 성장의 순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걸 실제 신앙생활에 붙이면 더 와닿습니다. 처음 말씀을 배울 때는 머릿속에 진리가 많이 들어옵니다. ‘기도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교만하면 안 된다’, ‘남을 섬겨야 한다’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이 ‘씨 맺는 채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중 어떤 것들은 실제 삶이 됩니다. 정말로 기도하는 사람, 정말로 용서하는 사람, 정말로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입 문장은 ‘진리는 자라서 선이 되어야 한다. 아는 것은 결국 살아내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한 문장으로 다시 줄이면 이렇습니다. ‘씨 맺는 채소’는 사람 안에서 계속 퍼지고, 다음 것을 낳으며, 쓰임을 향해 자라는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진리가 깊이 뿌리내려 실제 선한 삶과 행위로 나타난 상태입니다.
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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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심화 2, ‘시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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