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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9, 심화 4, ‘때로 수천의 영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받았던 스베덴보리’

bygracetistory 2026. 4. 1. 23:14

AC.59.심화

 

4. 때로 수천의 영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받았던 스베덴보리

 

 AC.59 본문 중 이 사실의 확실성은, 제가 지금까지 수년 동안, 비록 육신 안에 있으면서도, 저 세상의 영들, 그중에서도 가장 악한 영들과 함께 지내 온 경험을 통해 확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때로 수천의 영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독을 내뿜고,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저를 괴롭히도록 허락받았으나, 주님의 보호 아래서 제 머리카락 하나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부분도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일상 중 약간의 어떤 영적이다 싶은 순간, 혹은 상황도 매우 놀라며 크게 두려워하는 편인데, 위 증언에 따르면 스베덴보리는 저의 천배 만배의 상황을, 그것도 오랜 기간 경험했다는 것이어서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정말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큰 영적 거인이지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구절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핵심은 ‘스베덴보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가 아니라, ‘주님의 보호가 어떤 방식으로 실제로 작용하는가’입니다. 그 경험은 스베덴보리 개인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무리 강한 영적 영향 속에 있어도, 주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중심은 스베덴보리가 아니라 ‘주님의 보호 질서’입니다.

 

먼저 목사님께서 느끼신 놀라움과 두려움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사람은 조금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느낌이 와도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소 감각 세계에 익숙하고, 그 너머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그 세계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강도의 경험을 했습니다. 이 점만 보면 분명 ‘특별한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특별해서 견딘 것’이 아니라, ‘주님이 특별히 지키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시면, 스베덴보리는 계속해서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허락되었으나’, ‘주님의 보호 아래서’입니다. 즉, 아무리 수천의 영들이 둘러싸고 괴롭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무제한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님의 허락과 통제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머리카락 하나도 해를 입지 않았다’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걸 우리의 상태로 연결하면 오히려 더 중요한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그런 극단적인 경험을 하지 않지만, 일상 속에서도 감정의 흔들림, 생각의 혼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같은 것들을 겪습니다. 이것도 넓게 보면 ‘영적 영향’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말해 주는 것은, ‘그 어떤 영향도 주님의 허락 없이 우리를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좋습니다. ‘나는 약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스베덴보리는 강해서 견딘다’가 아니라, ‘스베덴보리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인간이지만, 주님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아무 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 보호 안에 있다’입니다. 이것이 훨씬 더 본질적인 적용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의 이 경험은 ‘보여 주기 위한 예외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인류를 위해 영적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방식으로 보호받으며,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신앙의 길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지 못한 채 믿고, 느끼지 못한 채 선택하는 것’이 더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느끼시는 ‘조금만 영적인 느낌이 와도 놀라고 두려워하는 상태’는 오히려 매우 정상적인 인간의 상태입니다.

 

이걸 목회적으로도 연결해 보면, 성도들에게도 같은 균형이 필요합니다. ‘영계는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되,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집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심은 항상 ‘영적 경험’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그리고 삶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결국 강조하는 것은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드러난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한 문장으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무리 강한 영적 영향 속에서도, 주님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은 결코 해를 입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은 주님의 허락과 한계 안에서만 일어난다’입니다.

 

목사님께 드리고 싶은 한마디로 마무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스베덴보리의 강함이 아니라, 그를 지키신 주님의 절대적인 보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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