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5 심화 1, 천사들이 단어나 글자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원어 연구’는 필요 없는가?
AC.65 심화
1. 천사들이 단어나 글자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원어 연구’는 필요 없는가?
AC.65를 읽으면 성경을 깊이 공부해 온 독자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말씀 속의 어떤 단어나 글자도 이해할 수 없고 오직 가장 가까운 내적 의미에서 뜻하는 것만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하고 단어 하나의 뜻과 문법을 세밀하게 살피는 일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AC.65에서 그런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글은 천사들이 말씀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자연계의 인간에게 말씀의 문자를 연구하지 말라고 말하는 글이 아닙니다. 천사와 인간은 말씀을 동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은 실제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비롯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 전해졌고, 우리는 번역된 성경의 단어와 문장을 통하여 그것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와 문법과 문맥을 정확히 연구하는 일은 인간이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분명히 유익합니다.
특히 번역에서는 원어 연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뜻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고, 번역 과정에서 한 언어의 뉘앙스를 다른 언어로 완전히 옮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원어를 살피면 번역자가 왜 특정 표현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번역을 비교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천사는 글자를 보지 않으니 인간도 원어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AC.65가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 자신도 말씀의 특정 단어나 표현에 매우 세밀하게 주목합니다. AC를 읽다 보면 어떤 단어가 왜 사용되었는지, 단수와 복수가 왜 달라지는지, 같은 듯 보이는 표현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근거로 속뜻을 설명하는 경우를 계속 만나게 됩니다. 이것만 보아도 말씀의 문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AC.65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AC.65가 우리에게 주는 경계는 무엇일까요? 원어 연구 자체가 곧 말씀의 속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과 문법을 완벽하게 분석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천사들이 지각하는 영적이고 천적인 의미에 도달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AC.65의 사람들은 스베덴보리가 읽는 말씀의 단어나 글자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뜻하는 것을 지각했습니다. 따라서 문자 연구와 내적 의미는 동일한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둘을 서로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문자 연구는 낮은 것이고 속뜻만 높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말씀의 질서를 거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속뜻은 말씀의 문자와 무관하게 떠오르는 별도의 영적 생각이 아닙니다. ‘말씀의 속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계에서 말씀을 읽는 출발점은 여전히 주어진 문자입니다. 문자를 정확하게 읽는 일과 그 안에 있는 더 깊은 의미를 인정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이 생깁니다. 원어 연구를 통해 개역개정의 익숙한 표현과 다른 원문의 뉘앙스를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 성경은 틀렸고 원어를 아는 내가 진짜 뜻을 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번역은 언제나 여러 요소를 고려한 결과이고, 표현의 차이가 실제 의미 차이를 만드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반대로 스베덴보리의 해석이 특정 히브리어나 헬라어 표현의 차이에 실제로 의존한다면 그때는 그 차이를 숨기지 말고 독자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원어는 말씀을 교정하기 위한 권위 경쟁의 도구라기보다, 주어진 말씀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원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영적 수준을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원어를 많이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말씀의 속뜻을 더 깊이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원어를 모른다고 해서 말씀을 깊이 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AC.65는 그런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글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말씀을 지각하는 방식이 인간의 문자 이해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입니다.
따라서 목회와 설교에서도 원어는 매우 유용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설교의 권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헬라어로 보면 진짜 뜻은 이것입니다’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번역 성경을 읽는 회중이 마치 불완전한 말씀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원어의 차이가 본문 이해에 중요할 때 그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면 충분합니다.
반대로 원어 연구를 경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의미니까 단어의 정확한 뜻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독자의 주관적인 연상을 속뜻이라고 부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말씀의 속뜻은 우리가 문자를 넘어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뜻이 아니라, 스베덴보리의 주장에 따르면 주님께서 주신 바로 그 말씀 안에 있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문자 자체도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결국 AC.65가 보여 주는 것은 ‘원어 연구냐 속뜻이냐’라는 선택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말씀의 문자가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동시에 말씀은 그 문자적 의미로 다 소진되지 않으며, 천사들에게는 그 안에서 뜻하는 내적 의미가 지각됩니다. 원어 연구는 전자를 돕는 귀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후자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장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원어 연구는 필요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의 문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안다는 것 자체가 말씀의 속뜻을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AC.65는 문자를 버리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읽는 그 문자 안에 천사들이 ‘영광’이라고 부를 만큼 아름답고 질서 있는 내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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