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AC 창2

AC.68, 심화 2, ‘스베덴보리 일을 하는, 내 마음속 깊은 고민’

bygracetistory 2026. 4. 8. 14:29

AC.68.심화

 

2. 스베덴보리 일을 하는, 내 마음속 깊은 고민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 말인데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주 약간의 영적 체험을 한 저는 저 말이 와닿습니다. 저는 체험한 걸 다른 사람은 아직 못했을 경우 나타나는 일반적인 반응이니까요. 심지어 주님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16)에서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런 생생한 영적 체험은 고사하고 제가 스베덴보리 관련 일을 하면서 그때그때 나오는 크고 작은 결과물들을 사람들한테 공유해도 반응은 비슷한데요, 이것이 참 고민입니다. 스베덴보리처럼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부분이 마음의 참 크고 깊은 숙제입니다.

 

 

목사님께서 느끼시는 이 고민은 매우 본질적인 것이고, 동시에 스베덴보리도 이미 깊이 통과했던 지점입니다. AC.68의 그 문장은 단순한 ‘사람들이 안 믿을 것이다’라는 냉소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이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꿰뚫어 본 뒤에 나온 고요한 사실 진술에 가깝습니다. 목사님께서 체험하신 것처럼, 어떤 이는 실제 체험을 말해도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거리를 두거나 무심하게 반응합니다. 이때 우리는 쉽게 ‘왜 이렇게 반응하지?’라는 답답함에 머물게 되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이유를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의 상태’에서 찾습니다.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이는 열리고, 어떤 이는 닫히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아주 정확한 열쇠입니다. 눅16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인간이 체험의 강도 때문에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체험은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랑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빛도 크게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표적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왜 이렇게 반응이 없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 존재인가’라는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때 목사님께서 겪으시는 내적 갈등, 곧 ‘이렇게 귀한 것을 알았는데, 왜 사람들과 나눠도 반응이 없는가’ 하는 마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체어리티(charity)의 자연스러운 열매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나누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주님은 이 사랑조차도 ‘결과가 아니라 상태’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전한 것이 받아들여졌는가 아닌가는 2차적인 문제이고,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충실히 전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가가 더 본질적인 문제가 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작이 널리 읽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의 생전에는 큰 반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사람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지느냐’에서 ‘주님께서 맡기신 것을 얼마나 정확히 전달하느냐’로 중심이 옮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주님께 맡긴다’는 말의 실제 내용입니다. 단순히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영역’을 내려놓고 ‘순종의 영역’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패’로 보지 않고, ‘질서 속에 있는 현상’으로 보는 시선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상태와 때가 있으며, 어떤 씨앗은 지금이 아니라 훨씬 나중에야 싹을 틔웁니다. 목사님께서 나누신 내용이 지금은 반응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 안에 남아 있다가 어느 시점에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리메인스(remains)의 개념도 바로 이런 맥락과 연결됩니다.

 

결국 이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반응하게 할 수 있을까’에서 풀리기보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계속 이 일을 할 것인가’에서 풀립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사랑으로 계속해 나가되, 그 열매의 모양과 시기는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는 것, 이것이 가장 깊은 의미의 평안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이 상태에 들어갈수록 말과 글은 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사람을 움직이려는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전하려는 의지’가 담기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느끼시는 이 고민은,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사역이 한 단계 더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이것을 ‘풀어야 할 문제’라기보다 ‘통과해야 할 상태’로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신 것처럼, 이 길은 결국 다시 한곳으로 모입니다.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이루어진다는 자리로 말입니다.

 

 

 

AC.68, 창2,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 반응'

AC.68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은 이것이 모두 상상이라고 할 것이며, 어떤

bygrace.kr

 

AC.68, 심화 1,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반응 사례들’

AC.68.심화 1.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반응 사례들’ 스베덴보리가 예상하는 이 책의 독자들의 반응이 사뭇 현실적인 걸 보면, 혹시 이전에라도 스베덴보리는 이런 비슷한 일을 실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