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70, 심화 1, 영계에도 ‘하루’가 존재하는지?
AC.70.심화
1. 영계에도 ‘하루’가 존재하는지?
이 세상 ‘하루’나 사후 세계인 저세상 ‘하루’나 동일한가요? 아니, 애초에 영계에 ‘하루’라는 게 존재하나요? 영계는 자연계처럼 시공간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의 나라라 들었는데, AC.70 본문에서는 ‘하루’라는 게 있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어 좀 이상합니다.
아주 정확한 지점을 짚으신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영계에는 자연계와 같은 의미의 ‘시간으로서의 하루’는 존재하지 않지만, ‘하루와 같은 것’, 곧 상태의 변화로 나타나는 ‘유사한 주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Arcana Coelestia나 다른 저작들에서 ‘하루’, ‘아침’, ‘저녁’ 같은 표현이 나오는 것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상태의 질서 있는 흐름’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먼저 원칙부터 보면,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계는 ‘시간과 공간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state)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나뉘지만, 영계에는 자연적 태양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곳에서는 사랑과 신앙, 곧 의지와 이해의 상태가 변함에 따라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생깁니다. 그래서 ‘시간’은 실제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에 대한 지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루’라는 표현이 나올까요? 이유는 그 상태 변화가 단순히 불규칙한 것이 아니라, 매우 질서 있고 반복적인 ‘주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천국에서 ‘아침–낮–저녁–밤’과 유사한 상태의 순환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지혜가 더 밝게 열리는 상태가 ‘아침’, 그 빛 안에서 활동하는 상태가 ‘낮’, 점차 빛이 약해지는 상태가 ‘저녁’, 그리고 비교적 어두워지고 휴식에 가까운 상태가 ‘밤’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 상태의 변화’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70에서 ‘하루’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의도적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자연적 시간 개념을 빌려, 영적 상태의 질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루’는 자주 단순한 24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 또는 ‘하나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의 ‘창조의 6일’이 실제 시간이라기보다 거듭남의 단계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하나 분명히 하시면 이해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이 세상의 ‘하루’는 외부 조건(태양의 운동)에 의해 강제로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반면 영계의 ‘하루’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곧 사랑과 생각의 상태 변화에 따라 형성됩니다. 그래서 영계에서는 같은 ‘하루’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될 수 있고, 어떤 상태에서는 시간이 매우 빠르게, 어떤 상태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게 흐르는 것처럼 인식됩니다.
정리하면, 영계에는 자연적 시간 단위로서의 ‘하루’는 없지만, 상태의 변화가 만들어 내는 질서 있는 순환이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때 ‘하루’라는 말로 번역됩니다. 따라서 AC.70의 ‘하루’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상태의 한 주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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