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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심화 1,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마5:37)

bygracetistory 2026. 4. 10. 11:53

AC.80.심화

 

1.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5:37)

 

해설 중, 천적 인간은 이것이 옳은가를 따져 묻지 않고, 이것이 선하다는 것을 봅니다.’를 읽었을 때, 주님 말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5:37)가 생각났습니다.

 

 

목사님께서 연결하신 이 두 말씀은 매우 깊은 차원에서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AC.80에서 말하는 ‘천적 인간은 이것이 옳은가를 따지지 않고, 이것이 선하다는 것을 본다’는 표현은, 단순히 사고를 생략한다는 뜻이 아니라, ‘선이 곧 진리로 보이는 상태’, 곧 의지와 이해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 마5:37의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는 말씀 역시 바로 그 동일한 상태를 요구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태의 인간은 먼저 ‘이게 맞나?’를 따져 묻고, 논리와 비교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이것은 이해가 주도하는 상태이며, 영적 인간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은 그보다 더 깊은 상태에 있어서, 이미 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선한지에 대해 ‘본다’고 표현됩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의지 안에서 직관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맞는지 틀린지 따져야 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선한 것은 곧 옳은 것이고, 옳은 것은 곧 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라는 말씀은 바로 이 상태의 단순성과 일치를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직 분열된 상태에 있을 때는, 말이 길어지고 설명이 많아지며, 맹세나 강조가 필요해집니다. 그러나 내적 상태가 정직하고 단순할수록, 말은 짧아지고 분명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상태에서 바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말을 길게 하지 말라는 윤리적 권면이 아니라, ‘내적 분열에서 나오는 복잡함’을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면, AC.80의 천적 인간과 주님의 이 말씀은 같은 축 위에 있습니다. 하나는 교리적으로 설명한 것이고, 하나는 삶의 언어로 직접 주신 말씀입니다. 천적 인간은 ‘선을 보기 때문에 옳음을 아는 사람’이고, 주님은 그 상태를 ‘단순하고 일치된 말’로 나타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이 연결을 떠올리신 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앙이 깊어질수록 복잡해지는가, 아니면 단순해지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처음에는 복잡해지지만, 결국은 다시 단순해집니다. 다만 그 단순함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단순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과한 뒤의 ‘일치된 단순함’입니다.

 

그래서 이 두 말씀을 함께 묶어 정리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선을 보기 때문에 옳음을 안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말은 ‘옳다, 아니라’처럼 단순하고 분명해진다. 이것이 바로 의지와 이해가 하나로 결합된 상태, 곧 주님 안에서의 참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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