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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2, 창2:9,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신앙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AC.102-106)

bygracetistory 2026. 4. 21. 21:44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2:9)

 

AC.102

나무(tree) 퍼셉션을 의미합니다. 보기에 좋은 나무(tree desirable to behold) 진리에 대한 퍼셉션을, 먹기에 좋은 나무(tree good for food) 선에 대한 퍼셉션을 의미합니다. 생명나무(tree of lives)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감각적인 것에서,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Atreesignifies perception; atree desirable to behold,the perception of truth; atree good for food,the perception of good; thetree of lives,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the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

 

해설

AC.102는 창2:9에 나오는 여러 나무의 속뜻을 간결하게 제시합니다. ‘나무자체는 퍼셉션을 의미하고, ‘보기에 좋은 나무는 진리에 대한 퍼셉션을, ‘먹기에 좋은 나무는 선에 대한 퍼셉션을 의미합니다. 이어 동산 중앙의 두 나무 가운데 생명나무는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감각적인 것, 곧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번호의 중심에는 천적 인간이 선과 진리를 어디에서 받아들이고 지각하는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먼저 나무가 퍼셉션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의 AC.96-99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퍼셉션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내는 특별한 직관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선과 진리를 지각하는 천적 인간의 상태와 관계됩니다. AC.99에서는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천적 인간의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시며, 그는 이것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지각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동산 안의 나무들은 바로 그러한 퍼셉션이 선과 진리에 관계하여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보기에 좋은 나무먹기에 좋은 나무도 단순히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자연의 나무를 뜻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전자는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후자는 선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여기서 진리와 선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에서 지성과 사랑이 함께 다루어진 것처럼, 천적 인간은 진리를 단순히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선을 받아들여 삶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동산의 풍성함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보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 지각할 수 있는 내적 생명의 풍성함을 나타냅니다.

 

생명나무는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사랑과 신앙이라고 병렬적으로만 말하지 않고 신앙이 사랑에서 나온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질서와 일치합니다. 신앙이 먼저 독립적으로 서서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이 그 사랑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가 의미하는 생명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신앙의 생명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신앙에까지 생명을 주는 질서입니다.

 

반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감각적인 것, 곧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기억지식 자체를 부정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의 AC.99에서 주님께서 천적 인간의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으므로, 기억지식은 그 자체로 거듭남에 방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신앙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있습니다.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이 아니라,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축적한 기억지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거기에서 신앙을 만들어 내려 할 때 질서가 달라집니다.

 

이 점에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차이는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보다 더 깊습니다. AC.102는 두 경우 모두 신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신앙의 근원을 다르게 설명합니다. 생명나무에서는 신앙이 사랑에서 나오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신앙이 감각적인 것과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창2의 두 나무를 이해할 때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앎과 신앙의 생명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천적 질서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먼저이고, 이해와 신앙과 지식은 그 사랑으로부터 생명을 받습니다.

 

AC.102는 아직 각각의 나무가 왜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상세히 논증하지 않습니다. 우선 상응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번호들에서 그것을 더 풀어 갈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뒤의 설명을 미리 가져와 결론을 확대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제시한 대조를 정확히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동산의 나무들은 퍼셉션을 나타내며, 생명나무에서는 사랑으로부터 신앙이 나오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감각적인 것과 단순한 기억지식으로부터 신앙이 나옵니다. 이 서로 다른 생명의 질서가 앞으로 두 나무에 관한 설명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AC.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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