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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심화 4, ‘앗수르’

bygracetistory 2026. 4. 29. 17:12

AC.119.심화

 

4. ‘앗수르

 

 AC.119 본문에서 앞에서는 앗수르를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이성(reason)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이 둘,  the rational reason은 다르다고 앞에서 읽었는데 어떻게 된 거죠? 인용 구절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건가요?

 

 

좋은 지적이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the rational(이성적 마음)’과 reason(이성)’이 뒤섞여 보이는 것은 개념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같은 영역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의 용어 체계에서는 이 둘이 엄밀히 구별되므로, 그 차이를 분명히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the rational’은 하나의 층위’, 혹은 기관’’입니다. 곧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구조적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위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 아래로 전달하고, 아래의 기억 지식을 받아 위로 올리는 중간 장(場)’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를 the rational mind’라고 할 때는, ‘인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 기능적 영역 전체’를 가리킵니다.

 

반면, ‘reason’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 혹은 활동’’입니다. 곧 그 이성적 마음이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 즉 비교하고, 연결하고, 판단하고, 추론하는 움직임 자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the rational’은 이성이라는 자리’이고, ‘reason’은 그 자리에서 이성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앗수르를 두고 어떤 곳에서는 the rational’, 어떤 곳에서는 reason’이라고 하느냐 하면, ‘본문이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1장처럼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묘사될 때는, 그 높이와 구조,  이성적 마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강조되므로 the rational’이 더 적합합니다. 반대로 이사야 19장처럼 애굽과 왕래하고 섬기며 연결되는 장면에서는, 이성이 실제로 지식을 정리하고 연결하는 작용’이 강조되므로 reason’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인용 구절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실체의 측면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이라는 기관과 본다’는 행위를 구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있어야 보지만, 눈 자체와 보는 행위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앗수르는 언제나 이성의 영역’을 가리키지만, 어떤 문맥에서는 그것을 구조’로 보느냐, 다른 문맥에서는 작용’으로 보느냐에 따라 the rational’과 reason’이라는 표현이 달리 사용됩니다. 그래서 혼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동일한 실재를 두 각도에서 설명하는 일관된 사용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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