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스베덴보리 with ChatGPT

SC.77, ‘AC 본문 번역 및 해설, 그리고 심화’ 작업에 대하여

bygracetistory 2026. 5. 2. 09:27

제가 작업 중인 이 AC본문 번역 및 해설, 그리고 심화라는 작업에 무슨 근본적인 문제가 있나요?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이 작업을 해서 나온 1, AC.1-66 ChatGPT라는 결과물을 저의 몇 안 되는 스베덴보리하시는 중요 리더십들에게 보내드렸지만, 기대와는 달리 좀 냉담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한 분 한 분 모두 스베덴보리 관련, 굵직굵직한 분들이십니다. 모두 수십 년 스베덴보리를 하신 분들이며, 어떤 한 사람이 새로 스베덴보리를 하게 되었다면 무척 기뻐하며 환영하시는 분들이지요. 저에게도 그러셨으며, 그래서 더욱 좀 충격입니다. 살짝 느껴지는 바로는, 이런 작업은 퍼셉션으로 해야지 무슨 AI로 하는가 하는 반감이 있으신가 합니다. 제 작업의 패턴, 샘플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AC.66입니다.

 

 

AC.66, 창1, '말씀의 네 가지 스타일 : 표상에서 역사, 예언과 시편까지 이어지는 계시의 구조'

AC.66 말씀에는 전반적으로 네 가지 서로 다른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태고교회의 스타일입니다. 그들의 표현 방식은 이 땅의 것과 세상의 것을 말할 때, 그것들이 표상하는 영적이고 천적인

bygrace.kr

 

 

목사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작업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작업의 성격과 전달 방식, 그리고 신학적 긴장 지점’이 겹치면서 ‘받는 분들 입장에서 불편하거나 경계되는 요소’가 동시에 작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 느끼신 그 냉담함은 단순히 ‘AI를 썼기 때문’ 하나로 설명되기보다, 몇 가지 더 구조적인 이유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목사님 작업을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위 AC.66을 보면 ‘번역 해설 심화’라는 구조가 명확하고, 내용도 일관성이 있으며, 특히 ‘문자 의미와 내적 의미의 층위 차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단순 번역이 아니라 ‘신학적 적용까지 확장된 주석 작업’에 가깝습니다. 이건 분명 장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동시에 ‘긴장’이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를 오래 하신 분들일수록 ‘아르카나(Arcana)는 설명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퍼셉션으로 열리는 것’이라는 전제를 매우 강하게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전제는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일종의 ‘영적 질서에 대한 신학적 확신’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작업은 구조상 ‘설명으로 아르카나를 전달하려는 형태’를 띱니다. 그것도 상당히 명료하게, 단계적으로, 거의 교재처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게 초심자에게는 엄청난 장점이지만, 기존 리더십에게는 ‘이건 너무 쉽게 만들어진 것 아닌가’, 혹은 ‘이건 퍼셉션이 아니라 이해 중심으로 끌어내리는 것 아닌가’라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두 번째 요소가 겹칩니다. ‘AI 사용’입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민감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분들 입장에서는 ‘말씀의 내적 의미는 주님으로부터의 인플럭스를 통해 열리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ChatGPT와 함께 작업된 것’이라는 표시를 갖고 오면,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연결됩니다. ‘이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인간 지성과 기계의 산물인가.’ 이 질문이 생기는 순간, 내용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영적 출처에 대한 의심’이 먼저 작동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점잖게 반응하지만, 내적으로는 거리를 두게 됩니다.

 

세 번째는 ‘’입니다. 목사님의 글은 상당히 ‘결론 지향적’이고 ‘정리형’입니다. 예를 들어 심화 부분에서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으로 시작해서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건 일반 독자에게는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 전통 안에서는 ‘너무 빠르게 결론을 주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각 사람이 자기 상태에서 스스로 보게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명이 지나치게 명확하면 오히려 ‘닫힌 해석’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해설의 확장 범위’입니다. 목사님의 작업은 단순 해설을 넘어서 ‘적용, 신학적 통합, 설교적 연결’까지 갑니다. 예를 들어 창1을 ‘주님의 부활’과 연결하는 부분은 굉장히 깊고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전통적인 스베덴보리 연구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건 본문에서 직접 나온 것인가, 아니면 해석자의 신학적 확장인가.’ 이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학문적, 신학적 엄밀성을 중시하는 분들은 조심스러워집니다.

 

이제 핵심을 아주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의 작업은 ‘초심자와 일반 신자를 위한 교재로서는 매우 탁월한 방향’인데, ‘오랜 리더십에게는 오히려 낯설고 경계되는 방식’입니다. 즉, 대상이 약간 어긋난 것입니다. 이분들은 ‘환영’은 하지만, ‘이 방식이 맞다’고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운 위치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이렇게 보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내 작업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이 작업이 겨냥하는 독자와, 실제로 보낸 독자가 달랐다.’ 그리고 여기에 ‘AI라는 새로운 요소’가 신학적 긴장을 더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방향은 어떻게 잡으셔야 하냐면, 두 가지를 분리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는 ‘작업 자체의 가치’, 또 하나는 ‘전달 전략’입니다. 작업 자체는 계속 가셔도 됩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체계화된 작업은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다만 전달할 때는 ‘이것은 퍼셉션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퍼셉션으로 들어가기 위한 안내 자료입니다’라는 톤을 분명히 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AI 언급’을 전면에 두지 않고, ‘보조 도구’로 낮추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조금 단단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하시는 작업은 ‘스베덴보리 내부 리더십을 설득하는 작업’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길을 내는 작업’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지금 그 첫 열매를 ‘가장 보수적인 독자층’에게 먼저 보여주신 셈입니다. 반응이 차가운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문제가 있다기보다, 이 작업은 기존 리더십보다 새로운 독자를 향해 있고, AI와 설명 중심 구조가 그들과의 신학적 긴장을 만들어냈다’입니다.

 

 

 

SC.78,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길을 내기 위해’

아,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업을, 말씀하신 대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길을 내기 위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7년간 주변 신앙의 지인들께 이 AC를 권했지만

bygrace.kr

 

SC.76, ‘지상의 부부와는 다른,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의 부부’

천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실제로 어떤가?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목격한 ‘천국 부부의 삶’ 스베덴보리가 영계를 왕래하면서 가장 경외심을 느꼈던 장면 중 하나는 천국에서 부부가 살아가는 모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