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31, 심화 1, ‘프로프리움’(proprium)
AC.131.심화
1. ‘프로프리움’(proprium)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은 원전 용어로, 이곳과 다른 곳들에서는 영어 ‘오운’(ow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형용사 ‘프로피우스’(propius)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개가 소유한’(one’s own), ‘적절한’(proper), ‘아무개 본인한테만 속한’(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special), ‘특정한’(particular), ‘특유한’(peculiar)입니다. 이 형용사의 중성 표현, 그게 바로 이 프로프리움인데, 이게 명사로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소유’(possession), ‘재산’(property)이며, 또 ‘어떤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characteristic mark), ‘구별점’(distinguishing sign), ‘특징’(characteristic)입니다. 영어 형용사 ‘오운’(own)은 웹스터에 보면 그 의미가 ‘...에 속한’(belonging to), ‘...에 배타적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정한’(peculiar)인데, 그래서 우리가 채택한 이 ‘오운’이라는 말은 프로피우스에 정말 딱 맞는 말이며, 만약 라틴어 프로프리움을 대신하기 위해 이 오운을 명사로 사용한다 해도 정말 아주 근접한 번역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이렇게 ‘프로프리움’이 길게 설명되어 있지만, 한 문장으로 잡으면, 이렇게 이해하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내 것이라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 ‘내 것’이라는 감각에서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입니다.
조금 더 풀어보면, 프로프리움은 단순히 재산이나 소유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내 생각’, ‘내 판단’, ‘내 의지’, ‘내 공로’, ‘내 신앙’까지 포함해서 ‘‘이건 나한테서 나온 것이다’라고 느끼는 모든 것의 중심 감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서 proprium은 ‘소유’라기보다, ‘자기에게 귀속시키는 의식 전체’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스베덴보리의 핵심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아니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이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유입된 것을 그대로 ‘받아 쓰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합니다’. 바로 그 착각 상태가 proprium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훨씬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합니다. 겉으로 보면 훌륭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속으로 ‘이건 내가 한 거야’, ‘내가 옳았어’, ‘내 능력이지’라고 느끼는 순간, 그 전체는 proprium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이건 주님이 주신 것이고, 나는 그걸 사용했을 뿐이다’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proprium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proprium은 ‘나쁜 것’이라기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근원으로 삼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사람의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모입니다. 생각도, 판단도, 신앙도 결국 자기 확증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AC.129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원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면, 모든 지식이 그것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proprium의 작용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더 나아가 말하는 점은,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프로프리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자기에서 나온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자기중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자는 ‘새로 주어지는 프로프리움’(regenerate proprium)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 후자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타락한 자기중심입니다. 겉으로는 둘 다 ‘내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구분이 잘 안되지만, 근원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인간은 proprium을 완전히 없애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proprium 안에 사느냐 하는 존재’입니다. 자기중심의 proprium 안에 살면 모든 것이 왜곡되지만,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것처럼 쓰되 그 근원을 인정하는 상태로 들어가면, 그때는 ‘살아 있는 proprium’, 곧 자유롭게 주님의 것을 누리는 상태가 됩니다.
정리하면, ‘프로프리움’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내가 근원이다’라고 느끼는 내적 중심 감각 전체’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은 그 중심을 ‘나’에서 ‘주님’으로 옮기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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