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34, 심화 3, '영적 인간과 proprium'
AC.134.심화
3. ‘영적 인간과 proprium’
그럼 proprium은 영적 인간 단계에서는 아직 없는 건가요? 아직 영적 인간인 사람들한테는 이 proprium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자아, 자기, 고유 본성 같은 이런 것만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proprium은 영적 인간 단계에 가서 처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천적 인간 단계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에게서 proprium은 ‘타락 이후 인간 전체에 깊이 깔려 있는 기본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세상적 인간에게도 있고, 영적 인간에게도 있으며, 심지어 천적 인간에 대해서 말할 때조차 계속 조심스럽게 다루어집니다. 다만 단계마다 ‘proprium이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세상적, 육적 인간에게서 proprium은 거의 노골적입니다. ‘내 생각’, ‘내 욕망’, ‘내 판단’, ‘내 소유’가 중심이며, 그것을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는 사람 자신이 거의 곧 proprium 안에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이런 상태를 두고 ‘죽은 상태’라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을 자기 안에 두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 단계에 들어오면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는 말씀을 배우고, 선과 진리를 사랑하려 하며, ‘모든 것은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proprium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그것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영적 인간은 자기중심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갈등, 자기 의지와 주님의 뜻 사이의 긴장이 나타납니다.
즉, 영적 인간은 proprium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proprium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자기중심 속에 완전히 잠겨 있었다면, 이제는 그 자기 중심이 얼마나 끈질기게 올라오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 싸움, 순종, 기도 같은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천적 인간 단계에서는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는 이미 큰 방향이 주님께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노골적인 자기중심은 많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아주 미세하고 깊은 형태의 proprium 문제가 드러납니다. 곧 ‘이 선한 상태 자체를 자기 것으로 느끼고 싶어지는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구조는 ‘영적 인간에게는 proprium이 없고, 천적 인간에게만 있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세상적 인간은 proprium 안에 묻혀 있고, 영적 인간은 proprium과 싸우기 시작하며, 천적 인간은 proprium의 가장 미세한 그림자까지도 주님께 돌리는 상태를 배워 갑니다.
따라서 영적 인간에게도 proprium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는 더 이상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이 주님의 생명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깨달음이 거듭남의 실제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자아’, ‘자기’, ‘고유 본성’ 같은 말과 proprium의 관계를 굳이 구분하자면, 자아나 자기는 존재 구조 자체를 말할 수 있지만, proprium은 그 자아가 ‘자기중심으로 굳어져 자기 자신을 근원으로 삼으려는 방향성’을 특별히 가리킨다고 보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AC.134, 심화 4, '천국과 지옥, 그리고 천사와 proprium'
AC.134.심화 4. ‘천국과 지옥, 그리고 천사와 proprium’ 계시록이나 이사야 등에 나오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를 높이려는’ 세력들의 등장 이유를 이 proprium의 시작에서 찾아도 될까요? 그리
bygrace.kr
AC.134, 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AC.134.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천적 인간까지 되고 난 다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가요? 이런 건 이미 영적 인간 단계에서 해결된 거 아닌가요? 예를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