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2, 심화 3, ‘사랑이 바르고’
AC.142.심화
3. ‘사랑이 바르고’
바로 위에 ‘천적 인간은 먼저 사랑이 바르고’에서 이 ‘사랑이 바르고’가 무슨 뜻인가요?
여기서 ‘사랑이 바르다’는 말은, 단순히 감정이 착하다거나 성격이 온순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구조에서는 ‘무엇을 가장 중심적으로 사랑하느냐’, 그리고 그 사랑의 방향이 ‘주님과 이웃을 향하느냐,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하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바르다’는 것은, 인간 안의 가장 깊은 중심 사랑이 자기 자신에게 닫혀 있지 않고, 주님과 선을 향해 질서 있게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선 자체를 사랑하며’, ‘진리를 자기 자랑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천적 인간은 바로 이 사랑의 방향이 먼저 바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배울 때도, 먼저 ‘옳은가?’보다 ‘선한가?’, ‘주님께 속한 건가?’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에게 진리는 사랑을 섬기는 빛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용서’라는 진리를 두 사람이 듣는다고 해보겠습니다. 영적 인간은 먼저 ‘왜 용서해야 하는가’,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를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더 깊은 자리에서 ‘사랑은 원래 그렇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낍니다. 물론 둘 다 귀한 상태지만, 중심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랑이 바르다’는 말은 결국, 사랑의 대상과 방향과 질서가 바르다는 뜻입니다. 곧,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주님이 중심이시고, 소유와 자기 영광보다 선 자체를 더 사랑하며, 진리를 자기 우월감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의 특징입니다. 그는 먼저 사랑의 방향이 주님 쪽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그다음의 생각과 이해도 그 방향을 따라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반대로 사랑의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진리를 알아도 결국 자기 확증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서 인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 이전에,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입니다. ‘사랑이 바르다’는 것은 바로 그 가장 깊은 중심 사랑이 주님의 질서 안에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AC.142, 창2:19-20, ‘이름을 주었으나 여전히 기울어지는’(AC.142-146)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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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2, 심화 2, ‘천적 애정들’, ‘영적 애정들’
AC.142.심화 2. ‘천적 애정들’, ‘영적 애정들’ ‘짐승’(beasts)은 천적 애정들을 뜻하고, ‘하늘의 새’(fowls of the heavens)는 영적 애정들을 뜻하는데 윗글은 AC.142 본문 내용인데요, 여기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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