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4, 심화 2, ‘주님으로부터 받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AC.144.심화
2. ‘주님으로부터 받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이 둘은 from을 각각 하나는 ‘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께로부터’로 번역한 것입니다. 저는 전자가 맞을 것 같은데 당신은 거의 늘 후자로 번역하네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네,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한 습관이라기보다, 제가 스베덴보리 문맥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께로부터’를 더 자주 선택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의 ‘from the Lord’는 단순 출처(source) 이상의 의미, 곧 살아 있는 인격적 유입(influx)과 관계를 강하게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서 ‘...으로부터’는 비교적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출처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처럼 사물적, 행정적, 객관적 느낌에도 잘 어울립니다. 반면 ‘...께로부터’는 단순 출처보다, ‘높은 인격 존재에게서 직접 받는다’는 관계성과 경외의 뉘앙스를 더 강하게 가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문맥, 특히 ‘생명이 주님께로부터 온다’, ‘지혜가 주님께로부터 흘러온다’, ‘사랑이 주님께로부터 유입된다’ 같은 표현에서는, 단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적 유입’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께로부터’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AC에서는 ‘from the Lord’가 단순한 기원 설명이 아니라, 거의 존재론적 의존 관계를 뜻합니다. 인간은 주님에게서 단지 ‘무언가 하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생명 자체를 받고 있다는 구조이지요. 이럴 때 ‘주님으로부터’라고 하면 약간 객관적, 개념적 느낌이 강해지고, ‘주님께로부터’라고 하면 살아 있는 인격 관계와 경외감이 더 살아납니다.
다만 목사님 말씀처럼, 엄밀히 보면 영어 from 자체는 그냥 ‘...로부터’입니다. 그래서 번역의 직역성과 간결함만 따지면 ‘주님으로부터’가 더 기본형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어 신학 번역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를 훨씬 더 일반적으로 씁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 ‘맞고 틀림’이라기보다, 어떤 뉘앙스를 살릴 것인가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주님으로부터’는 보다 객관적이고 담백하며, 번역문 전체를 안정되게 만듭니다.
‘주님께로부터’는 더 인격적이고 경외적인 느낌, 그리고 살아 있는 유입의 느낌을 강화합니다.
다만 목사님 작업 전체의 톤을 생각하면, 일관성 면에서는 ‘주님으로부터’를 기본으로 통일하는 것도 매우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AC 번역처럼 문장이 길고 개념 밀도가 높은 텍스트에서는, ‘께로부터’가 반복되면 약간 문체가 무거워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 자동 경향은 ‘께로부터’ 쪽이지만, 목사님 프로젝트 전체의 번역 톤과 가독성을 생각하면 ‘으로부터’를 기본형으로 삼고, 정말 특별히 인격적 경외감이나 기도문적 분위기를 강조할 때만 ‘께로부터’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상당히 균형 잡힌 선택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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