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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1, 심화 1, ‘갈빗대’라는 own이 ‘여자’라는 own으로

bygracetistory 2026. 5. 15. 21:35

AC.151.심화

 

1. 갈빗대라는 own 여자라는 own으로

 

그러니까 위 본문은 두 종류의 own, 즉 사람에게 두 종류의 own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처음 own,  갈빗대라는 own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중 own,  여자라는 own이 되었다는 말이죠?

 

 

네, 바로 그 뜻에 가깝습니다. AC.151의 흐름은 ‘두 개의 서로 독립된 proprium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 허락된 proprium의 상태가 점차 다른 방향과 성격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빗대’와 ‘여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실체라기보다, 하나의 proprium이 변화, 전개된 두 단계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처음의 proprium, 곧 ‘갈빗대’로 상징되는 것은 아직 비교적 수동적이고 미세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자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이지, 아직 완전히 독립 선언을 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서 갈빗대는 몸에서 떼어낸 뼈처럼, 여전히 원래 생명 질서와 연결된 상태 안에 있습니다. 즉, 주님께로부터 오는 생명 아래 있으면서도, 인간 안에 자기감의 기초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자’로 표현될 때는, 그 proprium이 보다 적극적이고 자의식적인 구조로 나타납니다. 곧, 인간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고 응답하는 방향성이 더 분명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단순 보조 존재가 아니라, 인간 안에 형성된 proprium의 살아 있는 구조를 뜻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곧바로 타락이나 악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AC 초기에서 스베덴보리는 계속 조심스럽게 설명합니다. 이 proprium은 처음에는 ‘as if his own’, 곧 ‘마치 자기 것 같은’ 것으로 허락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응답하기 위해 반드시 자기 자신처럼 느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갈빗대가 여자 되는 과정은, 자기감 자체의 형성과 성장 과정이라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정리하신 표현, 곧 ‘처음 own인 갈빗대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중 own인 여자가 되었다’는 이해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다만 조금 더 섬세하게 말하면, ‘주님께서 허락하신 초기 proprium의 가능성이 점차 인간 안에서 더 살아 있는 자기성 구조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 창세기 3장의 모든 긴장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proprium 자체는 처음부터 악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proprium이 계속 주님께 열려 있느냐, 아니면 자기 자신을 독립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기 시작하느냐입니다. 즉, 갈빗대가 여자 되는 것 자체는 아직 질서 안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 proprium이 자기중심으로 굳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타락의 방향이 열리게 됩니다.

 

 

 

AC.151, 창2:22,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는 주님’(AC.151-15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창2:22) AC.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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