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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2, 심화 2, ‘왜 굳이 여자를 만들어 속게 하셨을까?’

bygracetistory 2026. 5. 16. 10:33

AC.152.심화

 

2. ‘왜 굳이 여자를 만들어 속게 하셨을까?’

 

그러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vivified own조차 결국 속임의 통로가 되었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좀 허무하게 끝날 것이었으면 그냥 오리지날 own으로 놔두시지 굳이 여자로 만드셨어야 했나요? 처음 own으로 속는 거와 이 여자라는 나중 own으로 속는 거가 뭐가 다른가요?

 

 

바로 그 질문 때문에 창세기 2장과 3장이 그렇게 깊고도 두려운 본문인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느끼시는 ‘허무함’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결국 속을 거였다면 왜 굳이 vivify proprium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도 사실상 바로 그 지점을 오래 붙들고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vivified proprium은 단순히 ‘속기 쉬운 개선판 자아’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였다는 점입니다. 만약 인간이 단지 최초의 오리지널 proprium, 곧 죽어 있는 자기성 상태에만 머물렀다면, 인간은 살아 있는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움직일 수는 있어도, 자기 삶처럼 느끼며 사랑하고 응답하는 존재는 되지 못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사랑은 강제로 주입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자유 안에서만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는 반드시 ‘내가 스스로 원한다’는 자기감(as if from himself)을 필요로 합니다. 바로 여기서 vivified proprium이 등장합니다. 주님은 인간이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면서도, 마치 자기 스스로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십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 있는 상호 관계 속 존재가 아니라, 거의 자동 기계 같은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의 죽은 proprium vivified proprium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죽은 proprium은 자기 자신 안에만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거기에는 진짜 천국적 사랑도, 자유로운 응답도 없습니다. 반면 vivified proprium은 주님의 생명이 통과하면서 인간 안에 살아 있는 자유와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 준 상태입니다. 즉, 인간이 ‘진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자유 때문에 타락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는 점입니다. 사랑과 자유를 허락한다는 것은, 동시에 인간이 자기 자신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위험을 모르셔서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히 아시면서도 허락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유 없는 선은 살아 있는 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의 ‘여자’는 단순 타락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주님과 실제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마지막 연결 구조입니다. 하지만 같은 구조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 삼기 시작할 때는 타락의 통로도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두려운 성격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own으로 속는 것’과 ‘vivified, 여자라는 own으로 속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처음 죽은 proprium은 원래부터 닫혀 있고 생명 없는 자기성입니다. 그러나 vivified proprium은 원래는 주님의 생명을 받아 자유롭게 사랑하도록 허락된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후자의 타락은 단순 기계적 오류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 안에서 일어난 배반에 가깝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은 더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구속과 거듭남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에게서 주님의 놀라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이 넘어질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자유를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넘어질 가능성까지 감수하시면서, 인간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천국은 단순히 ‘실수할 수 없는 자동 순종 상태’가 아니라, 자유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도록 형성된 존재들의 공동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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