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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6, 창2:23,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 - 속 사람과 결합한 proprium’ (AC.156-159)

bygracetistory 2026. 5. 17. 13:3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23)

 

AC.156

중의 뼈와 중의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사람의 proprium 의미합니다. (bone) 생명을 얻은 proprium, (flesh) 생명을 얻은 proprium 의미합니다. 또한 사람은 사람을 의미하며, 다음 절에 언급된 것처럼 사람이 사람과 결합되기 때문에, 앞에서 여자(woman)라고 했던 proprium 여기서는 아내(wife)라고 합니다. 이제(Now) 상태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때 이렇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signify the own of the external man; bone,this own not so much vivified, andflesh,the own that is vivified. Man, moreover,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from his being so coupled with the external man as is stated in the subsequent verse, the own which was before calledwomanis here denominatedwife. Nowsignifies that it was thus effected at this time because the state was changed.

 

해설

AC.156은 창2:23이는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라는 말씀을 해설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proprium의 의미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로 연결합니다. 먼저 중의 뼈와 중의 은 겉 사람의 proprium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뼈와 살은 같은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는 생명을 덜 얻은 proprium, ‘은 생명을 얻은 proprium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겉 사람의 proprium 안에서도 생명의 정도가 구별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147-149의 설명과 직접 이어집니다. AC.147에서는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는 인간의 proprium, 갈빗대 대신의 살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AC.149에서는 인간의 proprium이 그 자체로는 죽어 있지만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으면 살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56에서는 같은 뼈와 살의 구별을 사람의 proprium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제시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뼈를 생명을 얻지 못한proprium이라고 하지 않고 생명을 얻은proprium이라고 한다는 점도 그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이 그 차이를 더 설명하지 않으므로 지금 단계에서 그 이유를 별도로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창2:23의 사람과 여자는 속뜻에서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인물을 가리키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현재 문맥에서 사람은 속 사람을, 앞에서 여자라고 했던 것은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AC.156은 이 proprium이 겉 사람의 proprium임을 명시합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각각 설명되던 사람’, ‘여자’, ‘proprium’, ‘뼈와 이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앞에서 여자(woman)라고 했던 것이 여기서는 왜 아내(wife)라고 하는지가 처음으로 밝혀집니다. 그 이유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서로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AC.151에서는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여자라고 하고 뒤에서는 아내라고 한다고만 했으며, 그 차이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때 그 차이를 미리 정하지 않고 기다렸던 이유가 여기서 확인됩니다. AC.156에 이르러 스베덴보리 자신이 아내라는 표현을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과 직접 연결합니다.

 

이 결합은 AC.155천국의 결혼과도 이어집니다. AC.155에서는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을 주님의 신부와 아내라고 하면서, 그 가장 깊은 내용이 천국의 결혼을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56에서는 현재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결합하는 모습이 사람아내라는 표현을 통해 나타납니다. 다만 현재 번호는 이 결합과 AC.155의 천국의 결혼 사이의 관계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두 표현을 곧바로 완전히 동일한 하나의 교리로 펼치기보다 본문이 제시하는 연결만 붙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Now)라는 한 단어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상태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때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창2:23이는 이제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에서 이제는 단순히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앞의 상태와 다른 새로운 상태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생명을 얻은 proprium이 주어지고, 그것이 속 사람과 결합하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창2를 역사적 사건의 연속으로만 읽는 것과 상태의 변화로 읽는 것의 차이를 다시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제라는 시간 표현조차 현재 다루는 사람들의 내적 상태가 달라졌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습니다. 따라서 갈빗대에서 여자가 지어지고, 여자가 사람에게 이끌려 오고, 사람이 이제 중의 뼈요 중의 이라고 하는 일련의 흐름은 속뜻에서 인간의 proprium이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고, 마침내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AC.156은 짧지만 앞의 여러 번호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뼈와 살은 겉 사람의 proprium 안에서 생명의 정도를 나타내고, 사람은 속 사람을 의미하며, 앞에서 여자라고 했던 proprium은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결합하면서 아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로 이 결합으로 상태가 변화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번호의 중심은 개별 상응어를 따로 암기하는 데 있지 않고,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이 속 사람과 결합하여 새로운 상태에 이르게 되는 전체 흐름을 보는 데 있습니다. (AC.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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