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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 심화 1,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

bygracetistory 2026. 6. 1. 06:01

AC.36.심화

 

1.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웃 사랑에 대해 어디를 보니 charity를 쓰던데, 그러면 charity toward the neighbor라 해도 되는지요? 그리고 왜 주님 사랑은 전치사 to를 쓴 반면, 이웃 사랑 toward를 쓰나요?

 

아주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AC.36에서 말하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스베덴보리 신학 전체의 중심축이기 때문에, 이것이 또렷해지면 이후 내용들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먼저 개념부터 단순하게 잡고, 그 다음에 영어 표현까지 연결해 보겠습니다.

 

먼저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주님을 좋아한다’거나 ‘주님께 감정적으로 끌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 사랑’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뜻을 가장 높게 여기며, 그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삶 전체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경외, 순종, 신뢰, 기쁨’이 모두 포함된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삶의 중심을 내가 아니라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선택을 할 때,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보다 ‘이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가?’를 먼저 묻는 상태, 그것이 바로 주님 사랑입니다.

 

다음으로 ‘이웃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입니다. 이것도 단순히 사람을 좋아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는 정도를 넘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웃’은 단순히 옆집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그 사람의 영적, 도덕적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도움, 정직, 공정함, 용서, 배려 같은 모든 실제 삶의 행위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웃 사랑을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 봅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사랑’입니다.

 

이 두 사랑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따로 떼어 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속에서 주님 사랑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주님 사랑의 ‘열매’입니다.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는 주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입장입니다.

 

이제 ‘charity’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웃 사랑’을 말할 때, 매우 자주 ‘charity’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charity toward the neighbor’라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매우 전통적인 표현입니다. 다만 영어에서 ‘charity’는 단순한 ‘구제’나 ‘자선’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charity는 ‘이웃을 향한 사랑 전체’, 곧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그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하나의 단어로 옮기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전치사 문제를 보겠습니다. 왜 ‘love to the Lord’이고, ‘love toward the neighbor’일까요? 이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to’는 보통 ‘직접적인 향함과 결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love to the Lord’는 주님을 향한 직접적인 사랑, 곧 ‘근원과 중심을 향하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반면 ‘toward’는 약간 방향성과 확장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love toward the neighbor’는 주님에게서 나온 사랑이 ‘밖으로 흘러가 이웃에게 향하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아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랑’은 삶의 중심을 주님께 두고, 그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랑이고, ‘이웃 사랑’은 그 사랑이 실제 삶 속에서 사람을 향해 선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charity’는 바로 이 이웃 사랑을 가리키는 핵심 용어입니다. 전치사 ‘to’와 ‘toward’의 차이는, 하나는 근원과의 직접적 관계를, 다른 하나는 그 사랑이 밖으로 향하는 방향을 은근히 드러낸다고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주님 사랑은 뿌리이고, 이웃 사랑은 열매입니다. 뿌리가 건강하면 열매가 나오고, 열매가 없으면 뿌리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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