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8, 심화 3, ‘요3:19, 21’
AC.38.심화
3. ‘요3:19, 21’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1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3:19, 21)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He that doeth truth cometh to the light (John 3:19, 21).
이 구절이 AC.38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낮과 밤’, ‘빛과 어둠’의 의미가 단순한 상징적 해석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영적 진리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8에서 스베덴보리는 ‘낮’은 선을, ‘밤’은 악을, ‘빛’은 진리를, ‘어둠’은 거짓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응이 단순한 해석자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요한복음 3장의 주님 말씀을 인용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빛은 단순한 자연적 빛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므로 영적 의미의 빛, 곧 진리를 뜻합니다. 반대로 어둠 역시 단순한 밤의 어둠이 아니라 거짓과 영적 무지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사람이 진리를 몰라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악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진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AC.38의 관점에서 보면, 빛과 어둠의 차이는 단순히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에 관한 문제입니다.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악에서 돌이키게 하며, 주님을 향해 살도록 요구합니다. 그래서 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불편하게 여기고, 결과적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 21절에서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에서는 ‘진리를 행하는 자’라는 의미가 더욱 강합니다. 이것은 진리가 단순히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참된 진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리를 아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행하는 자’가 빛으로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점은 AC.38의 핵심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을 ‘낮의 일’, 악을 ‘밤의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오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어둠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빛은 진리와 선의 영역이고, 어둠은 거짓과 악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요3:19, 21이 AC.38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의 ‘빛’과 ‘어둠’이 각각 진리와 거짓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주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사람의 영적 상태는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행하는가에 의해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빛으로 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진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이며, 어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지한 것이 아니라 거짓과 악을 붙드는 삶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 구절은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AC.38, 창1:18-19, ‘낮과 밤의 분별 : 행위로 드러나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의 기준’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And to rule in the day, and in the night,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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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 심화 2, ‘첫째 날부터 넷째 날까지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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