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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0 심화 1,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한다’면 이성적인 것은 겉 사람에 속할까?

bygracetistory 2026. 6. 2. 11:19

AC.40 심화

1. 지적인 것들은  사람에 속한다 이성적인 것은  사람에 속할까?

 

AC.40에는 처음 읽으면 조금 걸리는 문장이 있습니다.

 

‘‘새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하는데, 이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합니다.’

 

영문은 by birds in general, rational and intellectual things, of which the latter belong to the internal man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지적인 것들이  사람에 속한다면, 앞의 이성적인 것들은  사람에 속한다는 뜻인가?

 

먼저 문장 자체가 무엇을 분명하게 말하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rational and intellectual things라는 두 가지를 말한 뒤 the latter’,  후자가 속 사람에 속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후자 intellectual things’,  지적인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AC.40이 직접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적인 것들은  사람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반대편 명제까지 만들어 그러므로 이성적인 것들은  사람에 속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AC.40은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짧은 문장이지만 AC를 읽을 때 상당히 중요한 원칙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빈자리를 대칭적으로 채워 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왜 스베덴보리는 새들이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한다고 하면서 그 가운데 특별히 지적인 것들이 속 사람에 속한다고 덧붙였을까요?

 

AC.40의 문맥에서 먼저 분명한 것은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들 새들 사이의 차이입니다. 물에서 번성하는 것들은 겉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을 뜻합니다. 반면 새들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물고기와 새의 차이를 통해 단순히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과, 그것을 넘어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인간의 더 높은 능력이 구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 구절 하나를 외우고 있다는 것과 그 구절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앞의 것은 기억 지식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뒤의 것은 이성적·지적인 활동과 관계됩니다. 물론 이것은 AC.40의 대응을 이해하기 위한 쉬운 예이지, rational intellectual을 각각 이렇게 정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지적인 것들은  사람에 속한다는 말은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의 참된 영적 이해는 단순히 외부에서 정보를 많이 축적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겉 사람의 기억 지식은 필요하지만,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곧 속 사람의 지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AC.40은 적어도 이 둘의 층위가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만 여기서 rational intellectual의 차이를 현대 심리학의 두 가지 사고 기능처럼 간단히 정의하려고 하면 오히려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rational 논리적으로 계산하는 능력이고 intellectual 마음 깊이 진리를 직관하는 능력이다라고 고정하면 이해하기는 쉬워 보이지만, AC.40은 그런 정의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rational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간 영역이다라고 이번 한 문장만으로 확정하는 것도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후 여러 글에서 인간의 rational intellectual,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를 훨씬 더 세밀하게 다룹니다. 그 전체 설명을 따라가야 두 용어의 관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40에서는 먼저 본문이 말하는 만큼을 정확하게 붙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고기는 겉 사람의 기억 지식을 나타냅니다. 새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가 왜 물고기와 함께 다섯째 날에 등장하는지도 조금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 안에는 단순히 기억에 저장된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더 높은 차원의 활동도 있습니다.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인간의 여러 능력도 살아 있는 질서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앞으로 AC를 계속 읽게 만드는 작은 예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성적인 것은 정확히 어디에 속하는가?’, ‘이성적인 것과 지적인 것은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 AC.40 한 문장으로 성급하게 답을 만들어 넣기보다, 스베덴보리가 뒤에서 인간의 내적 구조를 더 펼쳐 보일 때까지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답은 간단합니다.

 

지적인 것들이  사람에 속한다고 했으므로 이성적인 것들은   사람에 속한다는 뜻인가?

 

AC.40만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은 후자,  지적인 것들이  사람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성적인 것의 정확한 위치와 역할은 더 넓은 AC의 설명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본문이 말하는 것과 우리가 거기서 추론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AC를 오래 읽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때로는 조금 덜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스베덴보리가 말한 것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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