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2, 심화 4, ‘겔32:2’
AC.42.심화
4. ‘겔32: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겔32:2) Take up a lamentation for Pharaoh king of Egypt, and say unto him, thou art as a whale in the seas, and hast gone forth in thy rivers, and hast troubled the waters with thy feet (Ezek. 32:2),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앞서 에스겔 29장과 마찬가지로 ‘큰 물고기’ 또는 ‘큰 악어’가 지식과 이해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혜에 교만해진 자연적 인간의 왜곡된 이해를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 21절의 ‘큰 물고기들’이 일반적으로는 지식들과 그로부터 형성된 이해의 큰 구조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그 상응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여러 예언서를 통해 증명합니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애굽의 바로입니다. 말씀에서 애굽은 기억-지식과 학문적 지식을 의미하고, 바로는 그러한 지식을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자연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바로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 또는 ‘큰 물고기’로 묘사되는 것은, 그가 방대한 지식과 이해를 소유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님을 향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은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물’은 진리와 지식을 의미합니다. 원래 물은 맑고 생명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발로 물을 휘저어 흐리게 만듭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것은 자연적 인간이 자기 추론과 자기 지혜로 진리를 왜곡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과 교만을 따라 진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점이 AC.42의 주제와 직접 연결됩니다. 큰 물고기는 이해력의 큰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님의 빛 아래 있지 않을 때는 오히려 진리를 흐리는 힘이 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야 하듯이, 이해력은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는 이해력이 진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목적에 종속시키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또한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이 생명의 물로 인해 번성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 안에서 살아나는 이해를 뜻하지만, 에스겔 32장의 큰 악어는 자기 지혜로 진리를 흐리는 이해를 뜻합니다. 하나는 생명을 주는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를 오염시키는 이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 또는 ‘큰 악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자기 지혜와 자기 확신에 빠진 자연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로가 물을 휘저어 더럽히는 모습은, 사람이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겸손히 받지 않고, 자기 추론으로 왜곡할 때 일어나는 영적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며,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큰 물고기들’의 부정적 상응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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