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83, 창3 앞, ‘인간의 지각 속에서 경험되는, 빛의 사용이 주어지는 과정’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3
이 천사들이 어떻게 하는지가 제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왼쪽 눈의 막을 코의 중격 쪽으로 말아 벗겨내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로 인해 눈이 열리고 빛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오직 그렇게 보이는 현상(appearance)일 뿐입니다. I was shown how these angels work. They seemed to as it were roll off the coat of the left eye toward the septum of the nose, in order that the eye might be opened and the use of light be granted. To the man it appears as if this were really done, but it is only an appearance.
해설
이 단락은 AC.182에서 말한 ‘빛의 사용이 주어지는 과정’이 인간의 지각 속에서는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이 하는 일을 물리적, 해부학적 행위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그것을 거의 물리적 사건처럼 지각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영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실제로는 내적 상태의 변화이지만, 경험하는 주체에게는 외적 움직임처럼 느껴진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왼쪽 눈’이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 체계에서 눈은 이해를, 특히 진리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며, 왼쪽은 이성적, 지적 측면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왼쪽 눈의 막이 제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이성의 사용이 방해받던 상태에서 벗어나 이해의 기능이 열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막’ 혹은 ‘겉껍질’은 실제 기관이 아니라, 이해를 가로막고 있던 이전의 상태, 곧 혼탁한 사고, 자기중심적 관념, 또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사유의 층을 뜻합니다. 그것이 제거되는 것처럼 보일 때, 비로소 ‘눈이 열리고’, 앞 단락에서 말한 ‘빛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진리가 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질 준비가 된 진리가 작동하기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묘사가 ‘실재’가 아니라 ‘현상’임을 분명히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독자가 상징을 문자 그대로 오해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선을 긋습니다. 천사들이 실제로 눈의 막을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상태가 변하면서 그것이 감각적으로 그렇게 지각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영계의 작용이 언제나 내적이며, 외적 형상은 그 내적 변화가 의식에 번역된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이 단락은 결국, 인간이 사후에 ‘본다’는 것이 시각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와 인식의 질서가 열리는 문제임을 아주 섬세하게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앞선 AC.182의 ‘생각만 하고 보지 못하던 상태’에서, 이제 비로소 ‘보는 상태’로 넘어가는 전환이 여기서 구체적 이미지로 제시됩니다.
심화
1. ‘현상’(appearance)
AC.183, 심화 1, ‘현상’(appearance)
AC.183.심화 1. ‘현상’(appearance) 그 사람에게는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오직 그렇게 보이는 현상(appearance)일 뿐입니다. To the man it appears as if this were 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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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왼쪽 눈’(left eye)
그들은 마치 왼쪽 눈의 막을 코의 중격 쪽으로 말아 벗겨내는 것처럼 보였으며, They seemed to as it were roll off the coat of the left eye toward the septum of the nose, (AC.183)
위 AC.183 본문에서 왜 ‘왼쪽 눈’?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AC.183을 읽으면서 ‘왜 하필 눈인가?’보다 더 나아가 ‘왜 하필 왼쪽 눈인가?’를 묻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곧바로 ‘왼쪽 눈 = 무엇’이라고 직접 해설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베덴보리의 전체 상응 체계와 다른 저작들을 참고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선 가장 넓은 의미에서 ‘눈’은 이해(intellect) 또는 진리에 대한 인식을 상징합니다. 말씀 전체에서 눈은 단순한 시각 기관이 아니라 ‘보는 능력’, 곧 이해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래서 ‘눈이 열린다’는 것은 대개 이해가 열리는 것을, ‘눈이 멀다’는 것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AC.182에서 영적 천사들이 와서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주는 장면 바로 다음에 AC.183에서 눈의 막이 벗겨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묘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실제 주제는 이해의 개방입니다.
그런데 왜 ‘왼쪽 눈’일까요? 스베덴보리의 상응 체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 다른 기능을 나타냅니다. 가장 넓게 말하면, 오른쪽은 선(good) 또는 의지(will) 쪽에, 왼쪽은 진리(truth) 또는 이해(understanding) 쪽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천국의 대인간(Maximus Homo) 구조에서도 오른편은 사랑과 선의 측면, 왼편은 신앙과 진리의 측면과 연결되어 설명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이 원리를 AC.183에 적용한다면, 여기서 열리고 있는 것은 사랑의 기관이라기보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해의 기관입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천적 천사들의 보호 아래 사랑과 평안의 상태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영적 천사들이 와서 ‘빛의 사용’을 주려고 합니다. 영적 천사들의 특징은 사랑보다 진리, 지각보다 이해의 빛에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열리는 것은 바로 진리를 보는 측면, 곧 ‘왼쪽 눈’인 것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스베덴보리가 ‘두 눈’이 아니라 ‘왼쪽 눈’만 언급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지금 일어나는 변화가 인간 전체의 완성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능의 개방을 말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아직 그는 천국의 완전한 지혜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사물을 분별하고 인식할 수 있는 첫 단계의 빛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과 진리가 모두 충만하게 결합된 상태라기보다, 먼저 진리를 인식하는 창이 열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흐름을 보면, AC.184에서는 희미한 빛이 보이고, AC.185에서는 지각이 전달되며, AC.186에서는 자신이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왔음을 알게 됩니다. 즉 AC.183은 일종의 ‘영적 시력의 개안식’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왼쪽 눈은 이해의 눈, 진리를 보는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지나친 기계적 해석은 피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지막에 ‘it is only an appearance’라고 덧붙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영혼의 왼쪽 눈에 어떤 막이 있었고 그것이 제거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변화는 내적 상태의 변화이며, 그 변화가 그 사람에게는 ‘왼쪽 눈의 막이 벗겨지는 것처럼’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AC.183의 ‘왼쪽 눈’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곧, ‘영적 천사들이 주는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의 기능이 열리는 현상이, 그 사람에게는 마치 왼쪽 눈의 막이 벗겨지는 것처럼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AC 전체 문맥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AC.182, 창3 앞,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AC.182-189)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2 천적 천사들이 소생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를 떠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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