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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9, 심화 1,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자기 인식’

bygracetistory 2026. 6. 5. 09:01

AC.189.심화

 

1.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자기 인식

 

이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자기 인식을 통해 그가 점차적으로 천국을 향해 인도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기 인식과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없이는 아무도 그곳으로 인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which signify that by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nd by self-acknowledgment, he should be led by degrees toward heaven; for no one can be conducted thither without such self-acknowledgment, and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C.189)

 

이 상승의 조건으로 두 가지가 명시됩니다. 첫째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며, 둘째는 자기 인식입니다. 지식만으로도, 혹은 선한 정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인식이 반드시 함께 요구됩니다. 여기서 자기 인식은 단순한 자기 성찰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상태가 주님의 질서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조건을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도 이러한 자기 인식과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없이는 천국으로 인도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천국이 도덕적 보상이나 외적 신분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상태와 이해의 질서에 따라 도달되는 곳임을 분명히 하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AC.189 해설)

 

개신교인들, 더 나아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천국 가는 거, 곧 구원받는 걸 예수 믿고 그분의 피로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 신분을 취득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선과 진리’, 자기 인식 같은 용어, 개념들은 아주 낯설어하며 불편해하고, 힘들어하지요. 그러나 죽어 영이 되면, 이런 다른 결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호의적이 되나요? 이런 매우 낯선 두 절대 조건이 반드시 요구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질문은 AC.189 하나를 넘어, 스베덴보리 신학과 전통적 개신교 신학이 어디에서 갈라지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갑자기 신학이 바뀌거나,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선과 진리’,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사람의 본질을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 이후에는 지상에서 가려져 있던 것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개신교인이 평생 ‘나는 예수 믿으니 천국 간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 속에 실제로는 주님을 사랑하려는 마음, 이웃을 해치지 않으려는 양심, 진리를 사랑하려는 태도가 있었다면, 그는 사후에 천사들의 교육을 받으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 이것이 내가 믿어 왔던 믿음의 실제 내용이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 경우 ‘선과 진리’, ‘자기 인식’은 낯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어렴풋이 살아왔던 것의 설명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예수 믿으면 된다’는 말을 자기 삶의 변화를 거부하는 면허증처럼 사용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 사람은 사후에도 처음에는 같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신분이나 교단, 신학 체계보다 실제 사랑과 삶이 드러납니다. 그때 그는 점차 ‘내가 생각했던 믿음과 실제 내 삶은 달랐구나’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AC.189의 ‘자기 인식’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기 인식은 현대 심리학적 자기 분석과 다릅니다. 그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주님 없이 스스로 선할 수 없는 존재다’, ‘내 안에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있다’, ‘내 생명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개신교의 가장 깊은 전통과 완전히 다른 말도 아닙니다. 루터나 칼뱅도 인간의 자기 의를 경계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구원이 점점 ‘법적 신분 변화’ 중심으로 이해되면서, 인간 내면의 실제 변화와 자기 인식의 문제가 뒤로 밀려난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 지점을 다시 끌어냅니다. 그는 ‘예수 믿고 천국 간다’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AC.189의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과 ‘자기 인식’입니다.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선과 진리’, ‘자기 인식’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으면 상당히 낯설어합니다.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사들은 사람에게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선한 개신교인이 죽어 천사들의 교육을 받을 때, 천사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전부 틀렸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랑이 실제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회개라고 불렀던 것이 실제로는 이런 자기 인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불렀던 것이 실제로는 이런 선과 진리였습니다’ 하고 설명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사람들은 죽은 뒤 스베덴보리의 용어를 배우기보다, 자신이 지상에서 부분적으로만 이해했던 것의 실제 내용을 배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종교적 언어의 차이는 점점 중요성을 잃고, 삶과 사랑의 실제 상태가 중요해집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AC.189가 말하듯, 천국으로 인도되는 데에는 반드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과 ‘자기 인식’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이 반드시 ‘스베덴보리라는 이름을 알아야 한다’거나, ‘상응이라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님은 사람마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사후 세계에서 많은 선한 개신교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그 뜻이었구나.’

 

, 이것이 내가 평생 기도하면서 어렴풋이 느끼던 것이었구나.’

 

, 이것이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실제로 의미하던 자기 인식이었구나.’

 

, 이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던 선과 진리였구나.’

 

그때는 ‘선과 진리’, ‘자기 인식’이라는 말 자체보다, 그 실재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씨앗으로 심겨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교리의 이름으로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사랑한 것과 실제로 살고자 했던 것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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