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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 심화 5, ‘렘46:22-24’

bygracetistory 2026. 6. 9. 07:10

AC.195.심화

 

5. ‘46:22-24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46:22-24) The voice of Egypt shall go like a serpent, for they shall go in strength, and shall come to her with axes as hewers of wood. They shall cut down her forest, saith Jehovah, because it will not be searched; for they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locust, and are innumerable. The daughter of Egypt is put to shame; she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north (Jer. 46:22–24).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렘46:22-24를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애굽’과 ‘’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그는 이 본문을 통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 지식들(scientifica)에 근거하여 신적인 것들을 판단하는 상태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애굽’은 단순히 고대 국가가 아닙니다. 상응적으로는 기억 지식, 학문, 경험적 지식의 영역을 뜻합니다. 원래 이것들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실제로 태고교회 이후의 고대교회에서는 많은 지식과 학문이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주님과 진리를 섬기는 종의 자리를 떠나, 주님과 진리를 심판하는 자리에 올라설 때입니다. 그때 애굽은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AC.195에서 스베덴보리는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라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왜 하필 뱀의 소리일까요? 창3의 뱀이 감각적 인간을 상징하듯이, 여기서도 애굽은 기억 지식과 감각적 증거를 근거로 신적인 것들을 판단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뱀의 소리’란 단순한 말소리가 아니라, 감각과 지식을 근거로 추론하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도끼를 가지고 와서 수풀을 찍는다’는 표현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도끼는 분석하고 쪼개고 해체하는 지성의 작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기억 지식과 감각적 추론은 모든 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려 합니다. 문제는 그 대상이 영적인 신비일 때입니다. 사랑, 신앙, 천국, 주님의 섭리 같은 것은 본래 해부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인데, 감각적 인간은 그것마저 분석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마치 숲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숲은 종종 진리와 지식의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완전히 조사하고 이해,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들은 감각과 기억 지식만으로는 결코 완전히 탐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것은 조사될 수 없다’는 말씀을,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적 진리에 대한 암시로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라는 말씀은 AC.195의 결론과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북쪽’은 흔히 진리의 빛이 없는 상태, 곧 어둠이나 무지를 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각과 기억 지식에 가장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더 깊은 어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은 결국 북쪽 백성의 손에 넘겨집니다. 즉, 자신을 지혜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영적 맹목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AC.195에서 예레미야 46장은 단순히 애굽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통해 창3의 뱀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계속 작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감각과 기억 지식은 본래 주님께서 주신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신앙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면, ‘애굽의 소리’는 ‘뱀의 소리’가 됩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해 보자면, 이 본문은 ‘지식질’ 또는 ‘학문질’의 위험성을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주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성이 주님을 재판하려 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AC.195에서 스베덴보리는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신앙의 신비를 판단하려는 인간의 추론이 결국 영적 어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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